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 남편의 관심을 얻으려는 아내(11/192)
#11. 남편의 관심을 얻으려는 아내
2023.12.11.
클라우스가의 검술 연무장.
가문의 사병들이 구호에 맞추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칼리안이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병사들의 목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공작 전하.”
기사의 목소리에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린 칼리안은 멈칫했다.
일순간 그의 눈썹은 옅게 찡그려졌다.
멀리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는데…….”
칼리안의 입술이 달싹였다.
“역시.”
마치 제게 관심이 없다던 듯, 일어나던 에시카의 모습에 작은 충격을 받았던 때가 며칠 전이었다.
에시카 클라우스가 누구인가.
지겹도록 저를 쫓아다니는 여자가 아닌가.
집무실에도 다과를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하루에 네다섯 번은 얼굴을 들이밀려 했었고.
연무장에도 와서 계속 제게 말을 걸며 아는 척을 했었다.
산책을 하려고 해도 칼리안을 쫓아다니기 일쑤였는데 칼리안이 화를 낼 때마다 멍청한 얼굴로 이렇게 울먹였었다.
“저는 그저…… 당신과의 대화가 필요할 뿐이에요. 칼리안. 우리는…….”
우물거리는 입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부부잖아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지겨워질 뿐이었다.
대화? 그런 건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지.
돈밖에 모르는 상인 가문의 그녀는 수도 토레스 귀족들의 대화 주제나 예법에 무지했다.
그러니 칼리안은 에시카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돈으로 제 부인 자리를 산 여자에게 왜 일상적인 대화까지 해 줘야 하는 건지, 에시카의 호소를 이해할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무심하게 내뱉었던 말.
“피차 시간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싸늘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 건데, 이상했다. 오묘하게 속이 뒤틀렸었다.
어딘가 짜증스럽고 꺼림칙한 여운이 가슴에 오래 남았었다.
하지만 이 순간, 칼리안은 다시 이전의 짜증이 솟아오를 뿐이었다.
“…….”
에시카는 칼리안의 앞에 섰다.
늘 입고 다니는 붉은 드레스, 그래도 오늘은 어울리지 않는 보석들은 차고 있지 않다.
얼굴도 어쩐지 더 맑고 눈빛이 차가운 것 같지만, 여기까지 온 목적은 하나이겠지.
칼리안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상대할 시간이…….”
“공작 전하를 뵈러 온 것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일순간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에시카는 인사를 하듯 칼리안에게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곧장 칼리안을 스쳐 지나갔다.
칼리안은 가만히 서서 방금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에시카가 연무장에 왔다. 연무장에 온 이유는 보나 마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한 것.
그러나 오늘의 에시카는 제 말조차 끊고 발을 옮긴다.
“……?”
칼리안은 황급히 에시카가 가는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에시카의 뒷모습이 보였다.
에시카는 연무장 옆의 무기 창고로 가고 있었다.
에시카가 그곳 앞에 서자, 나이 많은 병사 하나가 나와 에시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칼리안은 에시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칼리안이 안중에 없는 것처럼, 그를 힐끔거리지조차 않았다.
정말 제 용무를 하러 온 사람처럼…….
‘말도 안 되는 일.’
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공작 부인이 연무장에 올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에시카는 집안의 대소사조차 거의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여자였다.
그런데 군과 사병에 관련된 일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내게 관심받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는 건가?’
간혹 그런 여자들이 있었다.
사내들에게 특별히 보이고 싶어서, 보통 여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대해 관심 있는 척하는 여자들 말이다.
에시카는 그 정도 머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이다.
‘칭찬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건가. 우습군.’
칼리안은 입술을 비틀며 시선을 돌렸다.
저럴 때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애가 타 포기하겠지.
칼리안은 에시카가 결국 연무장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제가 한 마디라도 걸어 주기 전에는.
“…….”
하지만 몇 분 정도 다시 병사들의 연무를 보고 있다가, 무기 창고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빗나간 예상에 칼리안의 눈썹이 굳었다.
칼리안이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이미 점만큼 멀어진 에시카가 보였다.
칼리안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정말 여기에 용건이 있었다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칼리안은 성큼성큼 무기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아까 에시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이 든 병사가 나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지?”
병사는 칼리안의 물음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잠시 후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
“아…… 부인 말씀이십니까? 그분께서는 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검?”
“검을 만져 봐도 되냐고 하셨고, 품질에 감탄하셨어요. 제련 기술이 좋은 것 같다고 하셨던가……. 그리고 이곳의 검을 어디에서 구입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오늘이 새 검들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그것도 방금 만져 보고 가셨습니다. 레이피어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군요.”
칼리안은 눈썹 한쪽을 찡그리며 물었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고?”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닷새 전에 처음 오셨습니다.”
칼리안의 주먹이 움찔 움직였다.
그렇다면 정말, 칼리안 자신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연무장에 왔단 말인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에시카는 검에 묻은 피만 봐도 놀라 자지러지는, 귀족 여인일 뿐이었다.
“저어…… 공작 부인께서는 검에 대해 잘 아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날의 방향과 내구도 같은 것들이요. 얕은 지식은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에시카에 대해 대단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칼리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다가 잔잔함을 되찾았다.
장사꾼 집안이니, 이것저것 공부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중에는 병장기도 있었을 수 있겠고.
하지만 지금 칼리안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것은 에시카가 검에 대해 묻고 갔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칼리안은 돌아서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꽤 짙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로, 나를 보러 온 게 아니라고?”
칼리안의 얼굴에 묘한 괘씸함과 불쾌함의 표정이 혼재되어 있었다.
**
유리는 땀에 젖은 얼굴로 제 다리 위의 면포를 갈았다.
면포에는 피가 묻어났는데,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시카가 부었던 소금물에 상처가 덧났기 때문이다.
유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에시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유리는 에시카를 생각하며 독기 어린 눈을 빛냈다.
멍청한 계집애가 뭐 잘못 먹은 것처럼 날뛰는데, 꼭 다시 제 주제를 알게 해 줄 것이다.
그때 똑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대부인의 세 하녀 중 하나인 루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어리고 숫기 많은 성격으로 기가 약했다.
“괜찮으세요, 시녀장님?”
“너는 이게 괜찮은 것으로 보이니?”
유리는 괜스레 하녀에게 화를 냈다.
요즘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화를 내지 않고 배기지 못할 정도였다.
“저…… 다름이 아니라 대부인께서요.”
눈썹 끝을 올리고 있던 유리는 그녀의 말에 잠시 흠칫했다.
대부인은 제 다리를 이렇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녀를 증오할 수는 없었다.
칼리안의 친모였기 때문이다.
칼리안을 어찌 유혹한다 해도, 그녀의 눈에 들지 않으면 에시카의 자리를 빼앗는 과정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고 하시니?”
유리는 조금 기대를 담은 눈으로 하녀에게 물었다.
그래도 매번 대부인에게, 에시카의 보석을 빼돌려서 바쳤던 그녀였다.
총애를 받아 시녀장으로까지 임명했는데 이렇게 심하게 때린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유리의 산통은 곧바로 깨졌다.
“아니요. 시녀장님께 맞는 혼처를 찾아보셨다고…….”
하녀는 치맛자락에서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냈다.
유리의 눈썹 끝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하녀는 다가와서 구겨진 종이 세 장을 읽으며 말했다.
“우선 첫 번째 신랑감 후보는 번화가에서 유명한 푸줏간 주인의 아들인데, 시집을 가시면 할 일은 많겠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먹고 사실 수 있을 거예요.”
하녀의 눈빛에 부러움이 차 있었다.
평민인 그녀가 생각기에 꽤 좋은 혼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끄트머리라도 귀족 성을 가진 유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신랑감 후보는 클라우스 공작가에 밀을 납품하는 농부입니다. 이분은 시녀장님보다 열다섯 살이 많고, 아이가 둘 있어요. 아내가 있었는데 작년에 괴질에 걸려 죽었다고 하네요. 나이는 많지만…….”
“……하…….”
유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가 꿈꾸던 이상형은 클라우스 공작이었다.
평민들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세 번째 신랑감 후보는 관청 관리인데요, 봉급은 적어 여자도 삯바느질을 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만해!”
유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하녀는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하녀로서는 유리가 화가 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유리가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고평가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한테 고작 그 정도 수준의 남자를 들이민다고? 에시카…… 그 멍청한 에시카도 클라우스 공작과 결혼했는데, 나한테 고작…….’
“나가!”
유리는 하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리의 눈이 분노와 독기, 질투에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