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1. 파리 목숨(111/192)
#111. 파리 목숨
2024.03.20.
황궁에서의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사업장은 한스가 맡아서 잘 운영하고 있었고, 엘뮤르가 중심 상업 지구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흘러들었다.
당연히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에시카의 재산은 수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되었다.
에시카가 승승장구하는 이때에, 황후는 쉬이 마수를 드러내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는 말이다.
“오늘 음식을 내 온 아이가 누구지?”
에시카가 딱딱한 어조로 묻자 하녀 몇이 눈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한 하녀가 주춤거리며 나왔다.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앳된 여자아이였다.
“이 아이를 빼고는 모두 나가거라.”
그 아이를 빼고 나가게 한 에시카는 더는 흉포한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평온하던 공기에 갑자기 벼락이 치듯 강렬한 기운이 내려앉자 하녀는 떨기 시작했다.
바들바들, 떨며 그녀는 손을 뒤로 숨겼다.
“숨기는 걸 내놓아 보거라.”
“화…… 황태자비 전하.”
“네 손목을 잘라 받아내야 하겠니?”
친절한 어조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이 그녀의 입술에서 나오자, 하녀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결국 숨기던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푸른 액체가 묻어 있는 작은 병은, 얼마 전까지는 액체가 담겨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이걸 내 음식에 뿌리라고 시킨 자가 누구지?”
에시카는 다리를 꼬며 태연하게 물었다.
하녀는 울먹이며 진실을 실토했다.
“화…… 황후 폐하세요…… 황후 폐하께서 이 약을 뿌리라고…….”
에시카는 서늘한 시선으로 하녀를 응시했다.
범인은 꽤나 쉽게 밝혀졌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서는 안 되는 일이다. 황후는 이렇게 단순한 여자가 아니니까.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에시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의 팔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우선은 덫에 걸려 보자꾸나.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단 말이지.”
그리고 하녀를 데리고 황후에게로 향했다.
황후가 누구와 있는지 알게 된 에시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얼마 전 황궁으로 돌아온 아스티아 루세인 황녀, 그리고 그 옆에는 에시카의 전 시어머니인 리오나가 있었다.
리오나의 드레스는 기대만큼 너덜거리지는 않았지만 전에 비해 충분히 초라해서 흡족한 감이 있다.
그리고 말을 잘 옮기는 귀족 부인들 둘.
리오나는 대놓고 에시카를 흘겨보았지만 에시카는 리오나의 눈빛을 무시했다.
그저 지금 따져야 할 것에 충실하게 하녀를 끌고 황후 앞에 섰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인사를 올 황태자비가 아닌데, 무슨 일이지?”
꼬인 심사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녀의 질문에 에시카는 가만히 황후를 응시했다.
에시카가 한참을 입을 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자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은 이내 에시카가 잡고 있는 하녀에게 향했다.
그제야 에시카가 입을 열었다.
“제 음식에 뭔가를 섞으셨더군요.”
갑자기 긴장이 팽팽해지는 이 상황을 바라보던 부인들이 어머, 하고 입을 막았다.
리오나는 하- 하며 입술 끝을 비틀었고 말이다.
“네가 말해 봐.”
“네…… 황후 폐하께서…… 콜록…….”
에시카의 말에 겁에 질린 하녀는 곧장 실토했다.
이리도 직설적으로 따질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황후의 눈썹 새가 확 좁아졌다.
하지만 쉽사리 화는 내지 않았다.
단지 차가운 목소리로 맞받아칠뿐.
“황태자비의 어조가 상당히 불손해 보이는구나. 회임에 좋은 영양제가 있다고 하여 어렵게 구해 넣으라고 시켰을 뿐인데, 설마 나를 의심하는 것일까?”
아스티아는 미소 띤 얼굴로 찻잔을 든 채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관망했다.
에시카는 흐음,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녀는 점차 호흡이 가빠지고 있다.
워낙 경우의 수가 많은지라 쉽게 짐작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이번 함정을 알 것 같았다.
“내가 혹여 황태자비에게 독이라도 먹이라 시켰을까 봐?”
황후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하녀가 와락 피를 토했다.
무릎을 꿇은 하녀는 요란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각혈. 황후는 그 모습을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헛된 의심에 하녀에게까지 해코지를 하다니, 심하구나. 황태자비.”
“…….”
황후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에시카에게 말했다.
“아직도 의심이 든다면, 황의를 불러 약의 성분을 분석해 보거라. 내가 황태자비를 죽이려 든 것인지, 도우려 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겠지.”
황후가 그린 저열한 그림의 마무리였다.
“저도 저런 식으로 걸려들었지요.”
리오나가 과장된 말투로 귀족 부인들에게 머리 아픈 티를 냈다.
“제 며느리 유리도, 이렇게 모함을 당했다고 했고요.”
황후는 심기가 상한 듯 독기 어린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가려진 미소가, 에시카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이 김에 리오나의 악행에 의한 클라우스의 명예까지 손보겠다는 계획이겠지.
“황의를 불러 분석하겠다는 답은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납득이 간 모양인데. 내 손님들 앞에서 제 의심으로 비롯된 황가의 불화를 드러내다니, 얼마나 법도에 어긋난 일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각혈하던 하녀는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아마 다시 눈을 뜨지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이럴 생각으로 독을 먹였을 테니까.
사람 목숨을 여자들끼리의 정치질하는 데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점도, 영락없는 전생의 황태후였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에시카가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황후 폐하.”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반응에 황후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에시카가 반박할 것을 생각해 이다음의 수도 준비시켜 놓았는데, 정말 여기에서 굴복한다고?
“고작 말로 하는 사과로 되겠느냐.”
황후는 입술 끝을 비틀며 에시카에게 말했다.
에시카는 차분한 눈으로 황후를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네게 매우 실망하였는데.”
**
“황태자비가 나를 오해하고 모함하여, 내 충성스러운 하녀를 죽인 것처럼 나 또한 황태자비에게 같은 벌을 내려야겠다. 다시는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야.”
황후는 이어 말했다.
“내 벌이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황후의 안전을 나와 제 방으로 돌아갔을 때, 에시카는 목을 메어 죽은 하녀 하나를 발견했다.
일주일 내내 에시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중을 들었던 하녀였다.
그 애의 발이, 에시카의 침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뒤에서, 헙, 하는 하녀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개중 몇몇은 에시카의 반응을 보고할 것이다.
보통 여자라면 제 침대 위에 시체가 매달려 죽어 있는 것을 보면 혼절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에시카는 무심한 눈으로 시체를 바라보았다.
“…….”
황후는 잠깐 사이에 어린 하녀들 둘을 죽였다. 셀라도 잔인하게 죽였었고.
이건 아마 셀라의 일을 다시 경고하는 것이겠지.
하녀들을 때려 내쫓기는 했어도 죽이지는 않았던 리오나와는 결이 다르다.
그러나 상관없다.
사과는 그저 관찰을 위한 것일 뿐,
적은 분명하고 적의 행동양식을 다시 한번 파악하는 것은 이후의 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에시카는 조용히 손을 들어 하녀들에게 시체를 치우게 했다.
그리고 한스에게 편지를 썼다.
죽은 하녀들의 이름, 인적사항을 적어 그들의 가족을 사업체에 취업시킬 것을 명령했다.
같잖은 동정심이 그 원인은 아니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쉽게 스러지던 전생의 어느 날, 영령은 살아남기 위해 손에 지독히도 많은 피를 묻혔다.
물론 죄 없는 사람을 벌한 적은 없고, 대부분 불나방처럼 제게 덤벼든 작자들이었다.
그러나 영령 스스로 원한을 가지고 보니,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명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삶은 소중한 것이며 누군가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언젠가 업보를 돌려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작은 속죄일 뿐이다.
**
“그대가 아름답다고 떠드는 병사가 있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기절하더군.”
와인잔에 와인을 다르며 중얼거리는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눈썹을 올렸다.
병사가 기절할 정도면 얼마나 눈빛으로 겁을 준 거야?
그러자 레스반이 피식 웃는다.
“농담이야.”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잔을 든 레스반이 에시카에게 다가와 그녀의 곁에 앉았다.
황제의 병세는 여전했고 그는 황제의 정무를 전부 대신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스티아는 왜 바로 이용하지 않는 거지?”
물론 바쁜 와중에도 에시카를 보호하며, 그녀를 위협할 만한 자들에게 겁을 줄 여유는 있었다.
황후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기도 했었고.
하지만 에시카를 알기에, 또 무슨 일을 꾸미는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글쎄요.”
에시카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레스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요?”
잠깐의 침묵 후 레스반은 손을 뻗어 에시카의 볼을 감쌌다.
에시카의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동자에는 언제나 서늘한 불꽃이 보였다.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복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한 번쯤은, 레스반에게도 전생에서 이어진 악연과 인연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