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2. 과거의 당신, 지금의 당신(112/192)
#112. 과거의 당신, 지금의 당신
2024.03.21.
에시카의 이야기는 밤이 아주 깊어서야 끝났다.
에시카는 독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곳과, 그가 좋아했던 것, 그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죽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리고 아마 레스반이, 그의 환생일 것이라는 것.
“나는……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이제야 설명이 되는군. 전쟁광 황태자와 어울리지 않는 그대에 대한 갈구가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었다는 것도.”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은 레스반은 눈썹이 굳은 채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그가 기억하지 않아도 에시카는 그에게서 독영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하지 마세요. 지난 삶의 저는 정말 한심했고, 당신에게 걱정만 끼쳤으니까요. 그리고 과거는 과거일 뿐…… 당신은 레스반 황태자 전하예요.”
이제 둘은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튜레시안에서 가장 고귀하고 찬란한.”
레스반이 천천히 에시카의 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볼을 감싸었다.
“듣는 내내 심장이 욱신거리는 이유는, 그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이겠지.”
조금 거친 숨이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과거의 독영과 레스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내 독영의 잔상이 사라지고 천천히 레스반의 얼굴이 또렷해진다.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죽기까지 그대를 원할 운명이겠군.”
“…….”
“불가항력으로.”
에시카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독영의 마음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가 그때 이어졌다면.
후회는 이미 소용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후회가 되었다.
그에게 못된 짓을 한 것 같아서.
하지만 그는…… 레스반은 한결같았다.
“지옥 끝까지 그대를 쫓아왔으니. 그리고 지금 또 그대의 곁에 있으니까.”
짙은 레스반의 눈을 보던 에시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무엇에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 따위, 그냥 모른 척했으면 되었는데 그는 영령과 함께 죽는 길을 택했다.
그는 영령이 해야 했을 옳은 선택이었으나 그때의 영령은 그를 놓쳤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와 함께,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결국 내 몸으로 목표를 이룬 건가. 독영은.”
레스반은 서늘한 미소를 띤 채 그녀에게 말했다.
그날 영령의 몸과 궁궐을 뒤덮던 십리마화는 악연으로 얽혔던 이들을 이곳의 삶으로 데려왔다.
모든 것을 주었으나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했던 황제는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이 되어 그녀를 방임하는 남편이 되었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영령의 가족 같은 사람들을 찢어 죽인 황태후는 이곳에서도 황후가 되어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령은 에시카가 되어, 두 사람을 직접 징벌할 기회를 얻었다.
에시카는 칼리안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를 버리며 전생의 업보를 되돌려주었다.
자신이 겪었던 쓸쓸함과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아픔을 절절히 겪게 했다.
이제 황후에 대한 징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필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제가 지은 죗값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제가 원망스럽지는 않으세요? 독영의 기억은 없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대에게 들은 게 전부인데.”
레스반이 평이한 말투로 에시카의 말을 끊었다. 그는 독영의 환생이지만, 독영은 아니다.
에시카는 레스반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내가 전생의 나보다 나은 사내인 것 같군.”
레스반은 에시카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자는 그대를 끌어안고 죽는 마지막 순간에야 마음을 고백했지만…….”
에시카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레스반의 부드러운 손길이 에시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레스반의 여유롭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지금 살아 숨쉬는 그대를 안고 있으니, 내가 이긴 것이지.”
레스반의 품에 기댄 에시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전생의 사실을 알게 된다면 레스반의 심경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각오했는데, 그저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
레스반은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잠들어 있는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피부는 부드러웠고 이마는 둥글고 콧대는 오뚝했다.
속눈썹은 아래로 옅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시카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에시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레스반과 시선을 맞추었다.
레스반은 그녀의 어깨에 살짝 힘을 주어 눕게 한 뒤 그 위에 엎드려 목에 키스했다.
뜨겁고 아찔한 감각에 에시카는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귓가에 레스반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대가…… 불꽃 속에 있는 꿈을 꾸었어.”
레스반은 그 무엇에게도 에시카를 빼앗길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잘근잘근 물었다.
에시카는 따끔따끔한 감각에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괜히 옛날 이야기를 했나 봐요. 이렇게 악몽을 꿀 줄 알았으면…… 흣.”
레스반이 에시카의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을 그녀의 허리 사이로 넣어 실크 드레스를 단번에 끌어내렸다.
아직은 날이 밝지 않은 새벽이었다.
어둠 속 그의 눈빛은 유독 형형했다.
“……!”
피부에 닿는 그의 감각에 에시카는 움찔거렸다.
그의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탐했다.
레스반이 새벽에 일어났다는 것은 기척으로 알 수 있었다.
자고 있는 도중에도 다른 이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수련했으니까.
하지만 그냥 먼저 침실을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지…….
“……!”
레스반은 연신 자신을 밀어내려는 에시카의 손목을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 부드럽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목선을 이어 쇄골과 다른 여린 살결까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듯,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반응은 별미처럼 그의 입에 와서 감겼다.
“…….”
그가 호흡을 집어삼켰다.
그는 에시카의 손목을 누르고 있었던 한쪽 손으로 누워 있는 에시카의 턱을 더욱 치켜올렸다.
그리고 벅찰 정도로 격한 키스를 이어 갔다.
그렇게 기진맥진해질 만큼 키스를 나눈 뒤에는 다시 그녀의 어깨에 키스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아래로 내려간 드레스가 머물러 있는 허리 부근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단단한 손이 천천히 허벅지를 감쌌다.
에시카는 열에 들떠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그는 다소 급해 보인다.
욕정과 욕망이 담긴 그의 눈빛은, 형식적인 거부가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평생 그대를 바라보기만 했던 한 사내는.”
실내는 어두웠지만 그의 눈에는 에시카의 몸이 뚜렷이 보일 것이다.
에시카는 힘을 주었지만 그에게 잡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열기와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얼마나 이런 순간들을 열망했을까.”
에시카는 그에게 손을 내뻗는 대신 제 얼굴을 가렸다.
예민한 곳에 와닿는 그의 시선에 온몸이 움찔거렸다.
레스반은…… 짓궂다.
어쩌면 그 이야기가 그를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복욕을 더욱 불러일으킨다거나.
“……!”
아찔한 감각에 에시카는 무릎에 힘을 주며 약하게 발버둥쳤다.
그의 호흡이 더욱 예민하게 몸 속으로 들어와 와닿는다.
에시카는 황급히 그의 어깨를 밀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저 바동거리게 될 뿐이었다.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진다.
“달콤해.”
젖어 있는 목소리에 에시카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시집가기 전, 교주가 된 독영과 함께했던 나들이에서, 에시카는 붉은 꿀풀을 그에게 내민 적 있었다.
그는 에시카가 넘긴 꿀풀을 입에 대더니 혼잣말을 했었지.
왜 그 목소리와 겹쳐지는 것일까.
“……레스반…….”
뜨거운 물주머니를 껴안고 있듯 몸이 뜨거웠다.
에시카는 흐느끼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스반, 레스반…….”
아릿한 감각은 척추로부터 퍼져 나와 손끝 발끝까지 짜릿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키스는 너무도 야해서 에시카는 어깨를 떨어야 했다.
“전생의 나라면 이렇게 불렀겠지.”
그리고 귀에 흘러드는 나직한 목소리, 그녀는 그를 끌어안았다.
“영령.”
“……!”
완전히 해가 떠 버린 듯 한동안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흐려진 시야 속 그의 얼굴이 점점 뚜렷해진다.
검은 머리카락과 찬란한 황금안의 남자.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레스반은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꿈속에서 또 그대를 보았어.”
꿈속, 뒷모습만을 보여 주던 에시카가 돌아서서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에시카였고, 레스반의 운명 속 그가 사랑했던 여자 영령이었다.
그리고 벚꽃이 함께 서 있는 풍경을 뒤덮었을 때 레스반은 깨달았다.
제가 어째서 이토록 이 여자를 좇게 되었는지.
“……알겠더군, 그 남자가 얼마나 그대를 원했는지.”
이내 그가 에시카에게 밀려들었다.
아찔하고 짜릿한 충족감에 에시카는 그의 단단한 어깨를 꾹 잡았다.
독영이 언제나 영령에게 한 사내가 아닌 좋은 오라비였던 이유는 그녀에게 그렇게라도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영령을 가지고, 놓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심해 속의 상자를 열어 보듯, 레스반은 그가 가지고 있던 욕망조차 받아들였다.
그의 과거는 독영이었고, 현재는 레스반이었으니까.
“레스반…….”
에시카가 물기에 젖은 눈으로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레스반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대는 이제 내 거야. 에시카.”
흔들리는 눈망울로 레스반을 보던 에시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뜨겁게 이어진 두 사람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