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3. 예법 선생(113/192)
#113. 예법 선생
2024.03.22.
황후 마리엘라 루세인의 발을 하녀들이 정성스레 씻기고 있었다.
황태자비를 제 앞에서 패배시킨 이후 요즘 그녀의 기분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아무리 독한 에시카라도, 방에 하녀의 목을 매달아 놓았으니 정신이 혼비백산해졌을 것이다.
먼저 실수를 한 것은 자신이었으니 황후에게 따지러 오지도 못했고 말이다.
“마녀래 봤자 타메론께 선택받은 내 상대는 되지 않아.”
황후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렇지 않습니까. 위대하신 타메론이여.”
머지않아 그 마녀를 꼭 황궁에서 쫓아내고야 말 것이다.
“어머니!”
잠시 후 문가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황후는 눈썹 끝을 치켜들었다.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브레이튼의 모습이 보였다.
“쯧.”
못마땅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가까이 다가온 브레이튼은 칭얼거리듯 말했다.
“너무하십니다. 아침부터 어머님을 뵈러 인사를 왔는데, 영 반겨 주시지 않는군요.”
“…….”
황후가 반응이 없자 브레이튼은 더 가까이 다가와 살짝 무릎을 굽혔고, 주변에 있던 시녀와 하녀들은 황후의 발을 씻던 물그릇을 치우고 물러났다.
브레이튼은 철없는 표정으로 시녀와 하녀들에게 씩 웃으면서 손인사를 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굳은 표정으로 황후에게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어머니.”
처음 브레이튼이 들어올 때부터 대충 용건을 짐작했던 황후였다.
“이번엔 누구입니까?”
“딜레나, 코르티잔인데 어젯밤에 도망친 것 같습니다.”
황후의 눈썹 새가 확 구겨졌다.
이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브레이튼을 질책했다.
“내가 몇 번이나 피임을 하라고 말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겁니까!”
“피임을 하면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서…….”
황후가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브레이튼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뒤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잘 하겠습니다. 아무튼…… 어머니. 찾아서 잘 설득해 주세요.”
브레이튼이 여자를 임신시킨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 브레이튼이 한 하녀를 임신시켰다며 황후에게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브레이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그 애를 찾아서, 잘 설득해 아기를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아기를 임신했던 하녀는 그다음 날, 황궁에서 사라졌다.
황후는 브레이튼에게 말했다.
하녀를 잘 설득해 아기를 지웠고, 돈을 주고 다른 곳에서 살게 했다고.
브레이튼은 이번에도 그의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
황후는 속이 터진다는 듯한 눈빛으로 브레이튼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이 어미가 알아서 할 테니…… 황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원하는 대답이 나오고야 브레이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그가 돌아서려는데 황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만간 힐레스 공작의 질녀와 자리를 마련하려 합니다. 하인즈 대공가와는 연이 닿지 않았으니 대신할 여자를 찾아야겠지요.”
“…….”
브레이튼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제 어머니는 새로운 여자를 황자비로 염두로 두고 있는 듯했다.
“……그년이 그런 수를 쓰지만 않았더라도…….”
황후의 입술이 달싹이며 분노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에시카의 계략 때문에 하인즈 대공과의 혼약이 깨진 일을 생각한 것이다.
제 어머니는 어지간히도 형수에 대해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브레이튼에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마시고, 여자들과 놀 생각뿐이었다.
황자비를 들이는 것을 포기하면 좋으련만, 이라는 생각을 감춘 채 브레이튼은 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음식을 들고 온 하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익숙한 얼굴에 에시카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고였다.
하녀는 음식을 둔 뒤 나갔지만 요리사는 그대로 방 안에 있었다.
“앉게.”
“예, 황태자비 전하.”
황궁 요리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헤모스였다.
에시카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맛보았다.
과연 헤모스가 정성으로 만든 것이어서 음식들의 맛은 매우 뛰어났다.
그리고 음식의 옆에 놓인 컵, 에시카는 그 안에 든 물을 넘겼다.
“황궁에서의 생활은, 공작저에서보다 더 낫지?”
“돈과 명예는 확실히 더 딸려오는 게 맞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에시카의 물음에 헤모스는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돈이 모여 봤자 뭐 합니까. 도박할 시간도 없는데.”
헤모스의 말에 에시카는 풋 웃으며 말했다.
“잘됐군.”
“사람이 인생의 낙이…… 흠. 그런데 황태자비 전하.”
헤모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황후께서 주시는 약은 몸을 건강하게 하지만 피임 확률을 높입니다.”
헤모스의 말을 이해한 에시카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게도 좋은 일이야. 나는 이번에도 그 여자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을 생각이 없거든.”
헤모스는 에시카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린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옳은 방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녀의 명령을 믿어 볼 수밖에.
“자네는 계속 지금처럼 해 주면 되네. 그리고…….”
에시카의 눈동자가 짙게 일렁였다.
“한스에게 이걸 알아봐 달라고 전해 줘.”
그녀가 건넨 것은 하인즈 대공녀가 준 메모장이었다.
***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노을이 질 무렵 에시카는 황후의 부름을 받아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예의를 다해 인사했다.
그녀의 푸른 눈은 차가웠으며 차분했다.
“예의가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사가 지나치게 드물구나. 바쁜 것이더냐. 혹은…… 이제 황태자비가 되었으니 자질구레한 노력은 다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더냐?”
다리를 꼬고 있는 황후는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입꼬리 한쪽을 비틀고서는 말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호…… 그래?”
제 눈을 바라보지조차 않는 에시카의 모습에 황후는 저번에 그녀의 기를 한 번 꺾은 것이 확실하다고 확신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먹였는데 몸이 안 좋아진다니. 약사를 타일러 더 잘 듣는 약을 알아봐야겠구나.”
하지만 여기에서 그만둬 줄 생각은 없다.
그녀의 목표는 에시카를 이 황궁에서 내쫓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녀에게 맞는 새로운 처방을 준비한 참이었다.
“아무튼 오늘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사실 네가 황궁에 들어온 뒤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
에시카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신부 수업을 받지 않았으니, 어찌 황실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황후는 부채를 펴서 제 입가를 가렸다.
“귀족가의 예법과 황실의 예법은 아주 다르거든. 더군다나 황태자비는 클라우스 공작의 처로 있을 때에도 예법을 숙달하지 못해 대부인의 속을 썩였다던데…… 여기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허튼 트집이었다. 그녀는 이미 에시카의 예법이 완벽한 것을 본 적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침 괜찮은 황실 예법 선생이 있어서, 그에게 황태자비를 맡겨 보려 해.”
이내 황후의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에시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긴 그림자가 에시카에 닿도록 드리워졌다.
“인사하거라. 에릴 퓨즈 사제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꽁지머리로 묶은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고 매우 깐깐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감각이 예민한 에시카는 그가 누구인지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전에 황후의 세력에 납치되었을 때 제 몸을 묶었던 남자.
황후의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아스티아 황녀도 사제에게 교육을 받고 있단다. 신관들은 아주 자질 있고 훌륭한 교육자이지.”
“반갑습니다. 그리고, 영광이군요. 황태자비 전하.”
남자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에시카에게 인사했다.
“저의 예법 강의는 조금 엄격하지만, 받다 보면 지엄한 황실에서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나쁜 습관들을 전부 없앨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뱀 같은 교활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타메론의 뜻에 반하는 온전치 못한 정신이라던지, 뜯어고쳐야 할 것들 말입니다.”
에시카는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황후를 알현한 에시카는 그녀의 방을 나섰다.
어느덧 바깥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저번에 황후에게 당해 준 이후로, 과연 그녀는 에시카에게 방심하고 있었다.
또한 이 기세를 이어 그녀를 몰아붙이고 싶어했다.
에릴 퓨즈는, 그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에시카의 입가가 옅게 비틀렸다.
모든 것은 아주 큰 계획의 일부가 될 것이다.
큰 나무를 쓰러뜨리는 데는 그만큼 많은 도끼질이 필요하니까.
“……에시카.”
발걸음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문득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기척이 감지된다.
에시카는 눈썹에 힘을 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림자 하나가 수풀 쪽으로 들어간다.
에시카가 그쪽을 보고 있음에도 그 누군가는 숨어 버린 듯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막상 충동적으로 불러 놓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으로 보였는데, 그것이 에시카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다.
에시카는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