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4. 단단한 토양(114/192)
#114. 단단한 토양
2024.03.23.
아스티아 황녀의 방에 밤이 찾아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금색과 갈색이 섞인 듯한 다소 어두운 색이었다.
황가의 표식이라고도 불리는 특유의 번뜩거리는 금안이 특징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백작가에서 에시카를 만나기 전까지 별일 없이 하녀로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끝내 황궁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스티아는 의자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주근깨가 박힌 다소 창백한 피부에 달그림자가 진다.
[에이든의 약은 잘 챙겨 먹이고 있죠? 이사벨에게 잘 당부했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편지해요. 마로운에는 곧 서리가 내릴 계절인데 당신이 많이 보고 싶네요.]끊고 싶지 않은 글을 끊듯 그녀는 어렵게 마침표를 찍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헤레미야가.]편지를 끝마친 아스티아는 그것을 접어 봉인했다.
마로운 평원의 남편에게 보낼 편지였다.
그곳에도 밤이 왔을 것이다. 아기가 엄마를 너무 찾지는 않을까, 매일 걱정이 된다.
어두운 밤, 은은한 전등석이 밝혀진 책상 위에는 반지 하나가 보였다.
오랜 약속을 뜻하는 에메랄드는 어둠 속에서도 불빛을 받아 영롱했다.
아스티아는 봉투 속에 그것을 넣었다.
그리고 밀납을 떨어뜨려 봉인하고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아스티아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똑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녀들이 지키고 있을 터인데, 하녀의 노크는 아니었다.
아스티아는 몇 발짝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놀라 움찔하며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방문을 지키고 있던 하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문앞에는 황태자비가 된 전 클라우스 공작 부인 에시카가 서 있었다.
흔들리는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던 아스티아는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에시카는 아스티아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고, 여전히 전등석의 불빛은 일렁이고 있었다.
아스티아는 불안에 찬, 흔들리는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인가 보군요, 초대 요청에 응답도 없고 서운한걸요?”
차가운 기운이 섞인 그 말에 아스티아의 손끝이 꿈틀 움직였다.
“황태자비 전하.”
몇 초 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아스티아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또렷한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황이 많이 변했어요.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아스티아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에시카도 잘 알고 있었다.
아스티아의 목줄을 잡기 위해 황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아스티아의 아기는 다소 아픈 약한 몸으로 태어났다.
“황태자비 전하께서 제 은인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저는 제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인걸요.”
전생의 황태후가 어쨌더라. 에시카는 떠올렸다.
“제가 직접 나서는 것이 발각되었다가는…….”
그러니까, 천하독존악녀라 불리우던 천영령도 제 편이 없지는 않았다.
악독할 때는 누구보다도 악독하면서도, 의리를 지킨 자에게는 보상을 해 주는 영령을 따르는 여자들도 있었지.
하지만 황태후는 그들의 가족이라던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협박하여 배신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에시카가 예상하고 있는 범위 내였다.
“……나중에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제 가족이 앙갚음당할지도 몰라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에시카는 조용히 손을 뻗어 아스티아 황녀 앞에 폈다.
그 위에는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뭔가요?”
아스티아가 겁먹은 눈빛으로 에시카에게 물었다.
에시카는 그것을 아스티아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황후가 보내는 약은 확실히 제국에서 가장 효험이 있는 약이기는 하죠. 하지만 젖을 소화하지 못하는 아기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해요. 그저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할 뿐.”
에시카의 말에 아스티아의 눈이 슬프게 일렁였다.
“황후에게 약을 받았던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요?”
“황녀님이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황후가 내민 선택지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모두 함정이니까.”
아스티아는 에시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시카는 그저 비교하게 할 계획이었다. 어느 동아줄이 더 튼튼한지.
은혜를 입은 사람이더라도 가족의 일에 약해져 배신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전생의 영령은 때때로 그런 실책을 범했고, 자신을 배신한 이들에게 마냥 끔찍한 최후를 안겨다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으로 지금은 알고 있었다.
배신의 싹이 트기 전, 그것을 자르고 토양을 옮기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말이다.
“부마께서 쪽지를 들고 거기 적힌 장소로 가면 곱게 빻은 가루를 줄 거예요. 그걸 물에 개어서 아기에게 먹여요. 아기를 죽이고 있는 우유와 약 대신.”
“……네?”
아스티아는 두려운 눈으로 종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고 제가…….”
아스티아는 고개를 저었지만 에시카가 말을 끊었다.
“황녀님은 어차피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하나의 끝이 낭떠러지인 것은 분명하죠.”
눈빛 하나 변하지도 않고 하는 그 말에 아스티아의 손이 떨렸다.
이래서, 황궁은 절대로 다시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지도를 드리는 거예요. 지도가 맞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죠.”
지도라, 익숙한 단어에 아스티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 반응이 에시카의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싱긋 웃었다.
아스티아의 시선은 제 손에 들린 종이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가족에게 쓴 편지로 옮겨 갔고 말이다.
“제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죠. 절벽 아래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에시카가 아스티아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아스티아는 한참 동안 에시카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게 시간을 주세요.”
**
“그럼 오늘부터 황태자비 전하의 교육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제 에릴 퓨즈는 에시카의 앞에 섰다.
꽁지머리를 한 그의 키는 에시카와 비슷한 정도였으며, 눈은 살짝 찢어져 있었고 흰자위가 많이 보이는 삼백안을 가지고 있었다.
“튜레시안의 황실에는 가장 중요한 네 가지 행사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황제 폐하의 탄신일, 건국제, 사냥제입니다.”
에시카가 세 가지를 대답하자 에릴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한 가지를 빠트리셨군요.”
에시카는 똑바로 에릴을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에릴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강조해서 말했다.
“감사제.”
에릴의 말에도 에시카는 묵묵부답이었다.
에시카의 반응에 에릴의 삼백안이 번뜩였다.
“튜레시안과 만물의 주인이신 타메론 님을 숭배하고 희생을 바쳐 그분께 감사를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행사이죠.”
에시카의 입술이 옅게 비틀렸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축제와 달리 감사제는 국경일으로조차 승격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제님께서는 어째서 세 축제와 감사제를 동격으로 보시는 걸까요?”
에시카의 가벼운 반론에 에릴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국경일로서의 승격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황후 폐하께서 감사제의 기틀을 잡으셨다는 사실과, 황태자비 전하께서…….”
에시카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에릴은 강한 어조를 실어 그녀에게 말했다.
“기꺼이 받아들이셔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협박 같은 에릴의 목소리에도 에시카의 얼굴은 태연했다.
그 모습을 본 에릴이 휙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타메론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서들 중 하나에는 장차 제국을 위험하게 할 마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타메론의 뜻을 업신여길 것이고, 타메론의 충실한 종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며…… 결국 사악한 기운으로 이 나라를 물들일 것이라고요.”
정식 경전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 에시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황태자비 전하.”
황후의 세력은 이미 국교를 장악하였으며, 그리하여 이 나라의 종교는 절반쯤은 사교나 다름없이 변질되었다.
사제들은 권력과 결탁하였고 특히 2황자파라 불리는 귀족들은 황후의 이름과 종교의 힘을 빌어 민도를 쥐락펴락했다.
그들에게 황후는 선지자 대우를 받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황후가 휘두를 강력한 무기임에 동시에, 에시카가 찌를 수 있는 그녀의 급소가 될 것이다.
“그저 저는 단 하나의, 타메론의 뜻을 믿습니다.”
에릴은 천장을 향해 손을 펼쳤다.
확신 어린 목소리에는 약간의 광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에시카 쪽으로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타메론의 뜻대로 되시리라고.”
사필귀정이라, 우습기도 하지.
잠시 후 에릴은 제가 가져온 두꺼운 경전을 에시카에게 주며 말했다.
“제가 판단하기에……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믿음이 부족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타메론 경전을 필사하는 것을 과제로 드리지요.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타메론 경전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시면서 믿음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에릴의 삼백안이 음침히 빛나고 있었다.
에시카는 기꺼이 타메론 경전을 받아 들었다. 보통의 경전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다.
“기꺼이 마음에 새기도록 하죠. 타메론의 교리를.”
수업이 끝나고 에릴 퓨즈는 바깥으로 나왔다.
황태자비가 경전을 쓰느라고 애를 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황후에게 보고할 것이 생겼구나.
그가 코너 하나를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
육중하도록 무겁고 섬뜩한 살기가 발목을 붙잡았다.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짙은 기운에 에릴은 잠시 얼어붙었다가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
지독한 살기가 목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
에릴은 눈썹을 꿈틀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 느낀 것인가, 아니, 그러기에 그 존재감은 너무도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