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5. 신성극(115/192)
#115. 신성극
2024.03.24.
“고분고분하다니…… 의외로구나.”
아스티아 황녀와 함께하는 티 타임, 에릴 퓨즈의 보고를 들은 황후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에시카는 분명한 마녀였다.
잠시 기가 꺾였을 뿐, 사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을 텐데…… 타메론 경전 필사의 과제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포기한 것이겠죠. 황후 폐하의 맑은 기운에 눌려서 말입니다.”
아스티아 황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 그녀가 황궁에 되돌아온 이후로 황후는 그녀에게도 사제 교육관을 붙여 감시하고 있었다.
“타메론께서 황후 폐하를 도와주고 계신 모양입니다.”
아스티아는 차를 마셨다.
이곳의 차는 그녀의 남편이 있는 마로운 평원의 차보다 향이 훨씬 부드러웠다.
그리고…… 문득 에시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지도. 등이 욱신거리는 기분이 든다.
에시카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호호…… 황녀의 말이 듣기에 좋군요.”
타메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을 찬양하는 아스티아의 말에 황후는 흡족해했다.
아스티아의 말처럼, 타메론이 자신을 돕고 있기에 마녀의 힘이 약해져서 기운을 못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셀 경과는 편지를 주고받고 있나요? 내가 마로운으로 곡식 일곱 수레를 보냈는데.”
“네. 그렇지 않아도 황후 폐하의 선물에 감동한 것 같았습니다.”
황후가 남편의 이름을 언급하자, 아스티아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바셀 부부로 살아오던 황녀 부부는 지금까지 마로운 평원에서 목축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기반을 선물해 준 이가 있었고 아스티아의 수완이 뛰어났기에, 그들의 사업은 번창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위기가 생겼다.
그들의 사업에 필요한 곡식을 거래하던 자가 터무니없이 곡식값을 올렸기 때문이다.
다른 거래처를 찾아보려 했지만,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기라도 한 듯 그들은 아스티아와의 거래를 거부했다.
그러던 와중 황후에게서 편지가 왔다. 자신이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그리고 아이를 위한 약을 준비하겠다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황후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스티아를 사로잡은 이야기이다.
아스티아의 관점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더 많은 양을 보내고 싶으나, 황후궁의 재정에도 한계가 있으니…… 황녀께서는 이해하세요.”
“물론입니다. 황후 폐하.”
황후는 잡은 노예를 배불릴 만큼 미련하지 않았다.
지금쯤 마로운에는, 새로 보낸 편지가 도착했을 것이다.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쓸모가 있었으려만 생각하며, 황후는 찻잔을 들었다.
만약 아스티아가 미혼이라면 쓸모 있는 가문과 사돈을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클라우스의 몰락 이후, 브레이튼을 지지해 줄 그런 가문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려나.’
아이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조금만 손을 쓰면 쉬워질지도.
**
2황자 브레이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렸다.
지난번 하인즈 공녀와 브레이튼이 파혼한 일 이후로, 큰 파티를 열지 않던 황후가 모처럼 귀족들을 꽤 많이 초대했다.
‘재미있군, 황태자가 참여하면 2황자의 존재감이 희미해질까 봐 그가 바쁜 날로 잡고서는, 내게 필참을 명령한 이유는…….’
“고귀하신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황후 폐하, 천년만년, 건강을 누리시기를!”
볼란과 마샬 콤비가 와서 황후에게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알랑대고 있는 모습에 썩 속이 좋지 않았다.
‘약소하게라도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어서이겠지.’
에시카는 태연한 표정으로 파티에 온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친황후파, 즉 2황자파의 귀족들이었다.
리오나 클라우스의 생일 파티에서도 보았던 귀족들 말이다.
메르힌 부인은, 이제 이 무리에서 축출되었기에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들의 축하에, 마음이 흡족하군요.”
황후는 화려한 부채를 느리게 흔들며 귀빈들에게 인사했다.
제복을 입은 브레이튼은 어색한 표정으로 잔에 담긴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그의 주변으로 귀족 자제들이 몰려들어 인사를 했지만 영 지루한 표정이다.
오늘 금주하며 바른 자세로 자리를 지킬 것을 황후가 당부한 모양이었다.
“황자 전하, 제가 전에 말했던 그 계집애 있잖습니까. 남작가, 빨간 머리에 몸매가 죽이는.”
“곧 아카데미 졸업 파티인데 한 번 참석하시는 게 어때요? 술을 진탕 마실 텐데 기회를 봐서.”
“그러고 싶은데, 또 결혼 앞두고 허튼짓했다가는 어머님이 가만 안 계실 것 같아서 말이야.”
에시카의 민감한 청력은, 2황자 브레이튼이 망나니 귀족 자제들과 나누는 대화를 그녀의 귀에 꽤 선명하게 실어 옮겨 주었다.
그가 대화하고 있는 자들은 볼란과 마샬의 아들들인 것 같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이런 걸 뜻하는 것이겠지.
“아, 저기 펠로페 후작이 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는 가벤 펠로페에게 향했다.
‘금요일의 파티’의 주인.
몇몇 문란한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가벤 펠로페는 꽤 발이 넓었으며, 그는 칼리안과 더불어 2황자파에 속하는 귀족들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손이 왜…….”
한껏 멋을 낸 듯 그의 제복은 화려했지만 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가벤 펠로페는 곧장 황후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오, 와 주었군요, 펠로페 경.”
황후가 가벤의 손을 보고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런데 그 손은…….”
황후가 손에 대해 언급하자, 다시 한번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에 향했다.
가벤은 아, 하면서 잠시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검술 훈련을 하다가 조금 다쳤는데 낫는 데 오래 걸린다더군요.”
“오, 이런.”
황후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술 연습도 좋지만 몸을 아끼도록 해요. 장차 황자께서 정무에 나서시면 가까이서 보필할 중요한 몸 아니십니까.”
“황송합니다. 황후 폐하.”
가벤 펠로페는 깊이 감명받았다는 듯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시카의 입술 끝이 희미하게 비틀렸다.
가벤 펠로페의 손이 저렇게 된 일에 대해서는 에시카만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암흑가에서 에시카에게 허튼짓을 하려다가 레스반에 의해 꿰뚫렸었지.
황후에게 인사를 한 가벤은 브레이튼에게 향했다.
브레이튼은 막역한 사이의 형을 만나듯 가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청력을 껐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그 내용은 한심하며 유해한 것들이었다.
‘쯧.’
“그런데 말입니다, 황후 폐하.”
문득 볼란이 황후에게 말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 황자 전하의 생신을 맞아 저와 알헤미츠 부인이 준비한 것이 있는데, 감상해 주시면 어떠시겠습니까.”
“성심성의껏 준비했습니다. 황후 폐하.”
마샬도 볼란의 말 끝에 덧붙였다.
“준비한 것?”
“예. 신성극을 준비했습니다.”
마샬의 말에 사람들이 다들 오, 하며 그들을 보았다.
에시카도 ‘신성극’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타메론 경전의 신화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혹은 시대에 맞게 인용해서 교훈을 주는 인형극의 일종이었다.
“이런, 부인들이 내게 정말 큰 선물을 주는군요.”
타메론의 광적 숭배자인 황후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어서 준비해 보세요. 신성극이라면 안 볼 수가 없죠.”
“황송합니다. 황후 폐하.”
“어서 준비하거라!”
당사자인 브레이튼은 곧바로 지루한 표정을 지었지만, 브레이튼의 생일 파티는 브레이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샬이 명령하며 손뼉을 치자, 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 몇과 인형술사가 등장했다.
그들은 앞쪽에 자리를 잡고 빠른 손으로 장치를 설치했고, 그 곁으로 많은 귀족들이 신성극을 보기 위해 다가왔다.
중앙에는 황후가 있었다.
“…….”
문득 어디에선가 시선이 느껴져 보니 꽤 가까이 다가온 가벤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저 애절한 표정은 뭐야, 이번에는 손이 아닌 배에 구멍이 나고 싶은 건가?
에시카는 눈썹을 찡그리며 시선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극이 시작되었다.
신성극이 보통의 인형극과 다른 점은 일반적으로 사제가 그 대본을 짜고, 종교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신성극의 제목은 <왕자와 마녀>였다.
타메론 경전에는 마흔여섯 가지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실린 장이 있는데, 아마 그것 중 하나의 이야기를 주제로 준비한 모양이었다.
두둥- 둥- 둥-
작은 북 소리와 함께 인형극 무대 박스에 설치된 전등석이 켜졌다.
처음 얼굴을 보인 것은 잘생긴 왕자 인형이었다.
왕자는 타메론의 의지로 지상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타메론과 신성한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형은 누가 봐도 알아볼 만큼 실존 인물의 모양을 닮아 있었다.
어느날 붉은 피를 잔뜩 묻힌 악마가 나타나서 왕자 인형을 해하려 했다.
그는 간계에 능했으며 다양한 계략을 사용했다.
그에게 왕자가 위협당할 때마다 귀족 부인들은 ‘세상에,’ ‘어머나’ 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피를 잔뜩 묻힌 선혈의 악마는 왕자가 제 계략에 걸려들지 않고 현명하게 행동하자 다른 수를 쓰기로 했다.
악마는 사창가로 가서 그곳에 살고 있는 마녀를 만났다.
그녀는 아주 난잡했으며, 무수한 성자들을 죽인 살인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촌스럽게 여기저기 달아 둔 단추는, 그녀가 별볼일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에시카는 신성극의 진행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황후가 눈에 띄는 방법으로 자신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브레이튼의 생일에 구설수가 생기는 것은 자신도 싫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볼란과 마샬 콤비가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이야.
뻔히 알면서 자신을 초대한 황후의 유치한 품격에 웃음이 날 정도이다.
황후가 제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고 말이다.
“어머나, 소름이 끼치네요. 성자 집안의 보물을 다 강탈하다니.”
“왕자가 저 악마와 마녀를 꼭 물리쳐야 하는데.”
신성극에 몰입한 사람들이 격한 숨을 섞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녀는 악마와 계약을 해서 강한 힘을 가지게 되고, 왕자를 유혹하기 위해 왕자의 궁전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왕자의 약혼녀를 탑에서 밀어 떨어뜨려 버렸다.
왕자는 절망했지만 이내 타메론에게 기도하여 새로운 힘을 얻고, 사악한 행동으로 왕궁을 집어삼키려는 악의 세력인 마녀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공감하게 하고 몰입하게 하고, 편견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한다면, 이야기일 뿐인데 어떻냐고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 수도 있겠지.
신성극이 끝나고 황후는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찍었다.
“정말 감동적인 내용이군요.”
결국 이 신성극의 결말은 왕자가 악마와 마녀의 목을 베는 것으로 끝났다.
볼란과 마샬은 황후의 반응에 매우 흡족해했다.
그리고 슬쩍 에시카의 표정을 살폈다.
한때 클라우스가의 떨어져 나갈 비천한 끈이었으나, 이제 자신들의 훨씬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에시카 클라우스, 아니, 에시카 루세인 황태자비.
에시카의 표정은 평소처럼 태연했으나 그 속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황후에게 미리 보고하고 만든 이 신성극의 타깃은 명확했으니 말이다.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마샬이 싱긋 웃으며 에시카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에시카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