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7. 미치광이 펠로페(117/192)
#117. 미치광이 펠로페
2024.03.26.
에시카의 입술이 움직였다.
“꺼지려무나.”
“……예?”
평민 여자들도 쓰지 않을 법한 조롱 섞인 목소리에 가벤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잘못 들은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들려왔다.
“꺼지래도? 이 구정물처럼 한심하고 더러운 놈아.”
에시카의 눈썹이 즐겁다는 듯 둥글어져 있었다.
대개의 여자들은 가벤의 춤 신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젊고 잘생겼으며 부유했다.
그리고 무도회에서 같이 춤을 추는 것은 일종의 남녀간의 인사였다.
유부남과 유부녀라고 하더라도 왈츠 한 곡 정도야 뭐가 문제인가. 그는 황후와도 춤을 춘 적이 있었고 말이다.
그의 사생활을 아는 여자들이 춤을 거절할 때는 조금 더 예쁜 거절의 언사를 썼다.
다음에 춤을 추자던지. 오늘은 몸이 조금 안 좋다던지, 그런 류의 대답 말이다.
“……황태자비 전하?”
하지만 가벤은, 에시카가 제 춤 신청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여자들이 암흑가에 발을 들이는 것은 그러니까…… 보통은 평민들 사이에서도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암흑가에서 여자들이 할 일이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떳떳하지 않은 일밖에 없었고 하물며 귀족가의 부인이 그런 곳에 발을 들인다?
엄청난 스캔들이 돌 만한 일이었다.
당시 클라우스 공작가가 망한 시점에 공작 부인이 그런 곳에 있었다는 것은…… 아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그녀가 황태자비가 된 지금 가벤은 그녀의 약점을 하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태자가 그 일을 알게 되면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겠지.
“방금 제게…….”
그렇기에 가벤은 에시카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춤 신청을 했었다.
“……더러운 놈이라고 하신 겁니까?”
생전 여자에게 이런 모욕을 당해 본 적 없다.
가벤은 불쾌한 표정으로 조금 큰 소리를 냈다.
“아무리 황태자비 전하라고 하더라도 그런 언사는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에시카는 아름다웠다. 그때 애먼 놈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황태자와 결혼하기 전 하룻밤을 보내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아쉬울 정도로.
이건 조금 간 큰 생각이기는 하다.
어쨌든 오늘 가벤은 에시카와 춤을 추며, 저번에 있었던 일의 진상을 파악하고 제 손을 이렇게 만든 놈을 기필코 찾아낼 생각이었다.
“구정물처럼 더럽고 한심한 놈이라니……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죠!”
하지만 에시카는 입을 꾹 닫고 가벤을 볼 뿐이었다.
“후작님,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곁에 서 있던 청년이 황급히 가벤을 말리러 왔다.
“옆에서 듣지 않았는가, 방금 황태자비 전하께서 나를 큰 소리로 모욕하는 소리를.”
“……?”
에시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가벤을 말리는 귀족 청년도 무슨 말이냐는 듯 다그쳤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작님. 황태자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있었다.
가벤은 제게 말한 귀족 청년의 멱살을 잡았다.
“나를 놀리는 건가? 방금 자네도 들었잖아. 황태자비 전하께서 꺼지라고 내게 소리를 지르신 거. 맞아 그 정도의 목소리라면…….”
가벤은 자신과 몇 걸음 떨어진 귀족 청년들에게도 도움을 구하듯 말했다.
“자네들에게도 들렸겠군. 황태자비 전하의 목소리가 말이야.”
귀족 청년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 서로 난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한편 자신의 먼 친척과 춤을 춘 황후는 소란이 이는 것을 보고는 음악을 멈추게 하고 가벤에게 다가왔다.
“제기랄, 왜 다들 모른 척하는 거야?!”
황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에시카를 힐끗 노려보고는 가벤에게 물었다.
“펠로페 후작,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황후 폐하. 방금 황태자비 전하께서, 제 춤 신청을 거절하고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거절은 그렇다고 쳐도 구정물처럼 더러운 놈이라는 욕설은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가벤은 아군이 나타나자 거침없이 보고했다.
모욕을 당한 가벤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황후는 에시카를 보았다.
“황태자비께 황족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언사를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황자의 신성극까지 망쳐 놓고는 이제 제 손님을 모욕하다니, 이는 에시카를 향한 책망의 빌미가 될 것이다.
“설마요.”
하지만 에시카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황후의 눈썹이 움찔 움직인다.
에시카는 미소를 띤 채 가벤의 뒤에서 난처해하고 있는 청년 귀족들에게 말했다.
“누구라도 들은 적 있나요? 제가 펠로페 후작을 소리 높여 모욕한 것을?”
가벤은 어서 말하라는 듯 청년 귀족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자네들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들은 대로 이야기해야지!”
아까 에시카가 어찌나 크게 말했던지 골이 울릴 정도였다.
그러니 그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던 한 청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후작님께서는, 들어가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이 피로하신 듯합니다.”
“……뭐?”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다른 청년 귀족이 황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가벤이 혼자 헛소리를 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에시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하!”
가벤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에시카 클라우스, 아니, 이제는 에시카 루세인이지. 그녀가 이 청년 귀족들까지 매수해 자신을 미친 사람처럼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되죠. 황태자비 전하. 저는 암흑가에서 황태자비 전하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 이러시면 이렇게 밝힐 수밖에…….”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구나, 벌레 같은 놈아.”
훅 들어오는 에시카의 목소리에 가벤은 펄쩍 뛰며 소리를 높였다.
“거봐요. 방금, 다들 들으셨죠. 황태자비 전하께서 제게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벌레 같은 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가벤은 황후가 황태자비를 혼내 주는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방금 암흑가에서 만난 사실까지 밝혔으니 이를 추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황후의 찌푸려진 얼굴은 에시카가 아닌 가벤 펠로페에게로 향했다.
“손을 다치며 머리도 크게 다친 모양이군. 안타깝게도.”
황후의 입술이 달싹이며, 탄식을 내뱉었다.
곁에서 한 청년 귀족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아까부터 아무 말씀도 하고 계시지 않은데 무슨 소리이십니까.”
“후작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가벤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에 얻어맞은 듯 얼얼한 표정으로 에시카를 보았다.
에시카의 얼굴은 태연했고 그녀의 입꼬리에는 옅은 미소가 고여 있었다.
분명……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제가 여자의 목소리를 착각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던가!
에시카가 그렇게 큰 소리로 자신을 모욕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한다니.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네들은 펠로페 후작을 데려가서 의원의 진료를 받게 하게.”
황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청년 귀족들에게 말했다.
“자…… 잠깐만요!”
“가만 계십시오, 후작님.”
청년 귀족들이 제 팔을 잡자 가벤은 발버둥쳤다.
살아생전 겪어 보지 못한 억울하고 해괴망측한 일이었다.
그가 반항하려 힘을 주고 있을 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절차가 잘못되었군.”
무도회장에 한기가 들어차는 듯한 느낌은 모두의 시선을 이끌었다.
조금 늦은 시간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다름아닌 레스반 데온 루세인 황태자였다.
그의 구둣발 소리가 정적 속에 울려 퍼졌고 그는 청년들에게 팔이 잡힌 가벤, 그리고 에시카가 있는 그곳으로 곧장 걸어가 황후 앞에서 멈추었다.
레스반의 허리에는 검집이 달려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엉터리 황자 브레이튼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과 살기, 그것이 가벤을 짓눌렀다.
“…….”
황후는 주먹을 꼭 쥐며 입을 다물었다.
황태자가 말하는 절차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족을 모욕한 이는 엄벌한다.”
그의 입술 새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가벤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자비없는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몸이 절로 위축되는 것 같았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본 상황은, 감히 그대가 내 아내인 황태자비를 일방적으로 모욕한 것으로 보이는데. 암흑가에서 그녀를 봤다며 허튼소리까지 중얼거리고.”
“아, 아닙니다!”
가벤은 황급히 외쳤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황태자비 전하께서 제게 욕설을 하셔서 저는!”
모두의 눈에는 가벤이 혼자 떠드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에시카가 암흑가에 있었다는 말 또한 사람들이 믿어 줄 리 없다.
그렇다.
에시카가 전음을 사용해 가벤에게 말을 흘려넣었을 것이라고 누가 짐작하겠는가.
“가벤 펠로페의 구속에 이의가 있는 자는 말하시오. 단 이의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오. 근거 없이 그를 옹호한다면 이 또한 황족을 모욕하는 것이니.”
황태자의 야수처럼 형형한 눈은 황후를 향해 있었다.
황후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도 가벤이 혼자 미친 것은 분명해 보였으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화…… 황후 폐하!”
뒤돌아서는 황후의 차가운 말에 가벤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문에서 나온 기사들이 가벤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했다.
브레이튼의 생일 무도회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생일 당사자인 브레이튼 역시 멀찍이 떨어져 상황만 보고 있었다.
‘뭐야, 왜 갑자기 미친 거야? 아까만 해도 멀쩡했는데.’
브레이튼은 끌려가는 가벤을 보며 의아해할 뿐이었다.
“……늦었군.”
한편 가벤이 끌려간 뒤 레스반은 에시카를 보았다.
혼자 파티에 참석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던.
아니, 자기 멋대로 적들을 골려 주고 있던 그녀는 멋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무도회 음악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춤을 출 시간이었다. 온몸에서 서리가 흐르듯 차가운 기운을 풍기던 레스반은 에시카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