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18. 초보자의 전음 연습(118/192)
#118. 초보자의 전음 연습
2024.03.27.
“전음이에요.”
“……전음?”
“전생의 당신도 사용했었는데. 말을 기로 흘러넣는, 그러니까 오러 같은 것을 통해 상대방에게 직접 전달하는 기술이죠.”
“……그런가.”
레스반은 독영에 대한 꿈을 꾸며 독영의 기억을 조금은 되찾은 것 같았지만,
그리고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중원에서 쓰는 언어로 말해도 그 의미를 알아들었지만…….
무공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뭐, 중원의 무공을 다시 기억해 내지 못해도 황태자인 그는 소드 마스터이니, 전생의 독영과 비등하기는 하다.
“어떻게 사용하지?”
침대에 나른한 포즈로 누워 있는 레스반이 긴 머리카락을 빗고 있는 에시카에게 물었다.
어둑한 와중에도 밝은 안광을 내는 그의 금안에 약간의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그러자 에시카는 싱긋 웃더니 전음을 사용했다.
‘이렇게요.’
에시카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자 레스반이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가볍게 쓸었다.
겉으로 들리는 소리와 달리 직접 전해지는 소리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에시카에게 다가왔다.
큰 키가 에시카에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그녀의 은발이 조금 어두운 색으로 바뀌어 보였다.
레스반은 에시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고 있던 자신의 뒤에, 레스반이 비추어 보였다.
그의 눈썹은 굳어 있었고 표정은 진지해 보였다.
잠시 후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들렸나?”
“……네?”
에시카는 흠칫 뒤를 돌아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요.”
방금…… 전음 써 본거야?
에시카의 표정을 본 레스반이 다시 눈썹을 굳혔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몇 초 정도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에시카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들렸나?”
에시카는 고개를 저었다.
레스반이 전음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뭔가 우스워 쿡쿡, 웃음이 났다.
“이상하군, 분명 누군가에게 전달한 느낌이었는데.”
레스반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썹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는 빗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레스반과 마주보았다.
“전음은 말을 하는 것과 똑같아요.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오러를 통해 상대방의 귀로 직접 전달되죠.”
그리고 다음 말은 전음으로 했다.
“오러에 대해 문외한이면 그냥 누군가 말을 거는 것처럼 들리고, 오러를 쓰지는 못해도 느끼기는 하는 초급 기사 정도만 되더라도 머리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거예요.”
“……그렇군.”
에시카는 눈썹을 움찔 움직였다.
레스반이 전음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방금 성공하셨어요.”
“그랬나?”
또 전음이었다.
입술은 살짝 움직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바깥에 흩어지지 않고 오직 에시카에게로만 전달되었다.
“잘하셨어요. 이 다음 단계가 입술을 움직이지도 않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어기전성인데 아마 금방 할 수 있을 거예요.”
에시카의 신난 모습을 레스반은 빤히 보았다.
그녀의 눈은 소녀처럼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고, 입술은 붉었다.
생기가 흐르는 즐거워 보이는 표정…… 이러면 또 다른 쪽으로 신경이 쏠린다.
“아까는 두 번이나 말했는데, 막상 성공하니 다시 말하기 쑥스럽군.”
뭐가 쑥스럽다는 거지? 레스반이…… 쑥스러움이란 걸 느끼는 남자였나?
레스반은 천천히 상체를 살짝 숙여 에시카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
끝이 휘어져 있던 입술이 조금 떨리더니 그의 입술 안으로 빨려들 듯 파고들었다.
“그것도 알려 줘. 입을 열지 않고도 멀리 전할 수 있는…….”
레스반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에시카의 머릿속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음이 아닌 어기전성이었다.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레스반에게 말을 흘렸다.
“이미 그것도 하고 있어요.”
그의 입술이 에시카의 호흡을 휘감고, 그의 손이 에시카의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레스반은 오늘도 그녀를 그냥 잠재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거의 매일 그녀를 안았다.
과할 정도의 정무가 아니었다면, 고수인 그녀의 몸도 축날 정도로 말이다.
이제 새로운 놀이 방식도 생겼으니 오늘 밤은 더욱 뜨겁게 타오를 예정이었다.
레스반이 어기전성으로, 맨입으로 하기 힘든 말을 흘려넣자 에시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뭔가 항의하려고 했지만 레스반은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에시카를 안아 들고 침대에 눕혔다.
**
그날 밤, 칼리안은 검은 로브를 입고 황궁으로 향했다.
오늘 황태자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으나 가지 않았다.
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고 말이다.
전에 황궁에 들어온 뒤 문득 에시카를 발견해 그 뒤를 쫓았으나, 이제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의 옛 친구가 전해온 소식에 급히 황궁으로 발길을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처인 황태자비에 대해 급하게 물을 것이 있습니다. 꼭 와 주십시오!’
가벤 펠로페, 사교계의 난봉꾼이자 금요일의 파티의 주인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굳은 표정으로 칼리안이 황궁 감옥에 들어서자 병사들이 그를 막았다.
칼리안은 자신의 신분 증명서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저 면회만 잠깐 할 것이다.”
신분 증명서를 확인한 병사들은 그를 감옥으로 들여보냈다.
황궁 감옥은 리하임 백작을 필두로 한 황실 조사단들이 조사할 중죄수들을 위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감옥들 중 하나에, 처량한 표정의 가벤이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복식은 척 봐도 오늘의 무도회를 위해 준비한 좋은 재질로 된 것이었고, 헤어 스타일과 구두 역시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광을 내었다.
시큰둥한 표정의 칼리안은 가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날 왜 부른 거지?”
그 말에 흠칫한 가벤이 번쩍 고개를 들어 칼리안을 올려다보았다.
“공작 전…… 아니, 아무튼 와 주셨군요.”
이미 둘의 작위는 역전되었지만, 가벤은 늘 하던 대로 존대를 썼다.
“우리의 인연은 끝난 것으로 아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겪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국에서 황태자비를 가장 잘 아는 분은 3년간이나 결혼 생활을 한 공작 전, 아니 자작이실 테니까요.”
죄는 사면되었어도 작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귀족이고 한 귀족가의 가장이기에 자작 대우를 받고 있었고 말이다.
칼리안이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리며 으르렁댔다.
“그래, 자네의 말대로 에시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야. 그런데 자네가 왜 그녀를 입에 올리는 거지?”
몰입해서 화를 내는 듯한 칼리안의 반응에 가벤은 흠칫했다.
설마 아직도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건가. 뭐…… 말이 되기는 한다.
금요일의 파티에 참석하는 어느 매춘부보다도 황태자비는 아름다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황태자비는 악마의 기술 같은 것을 쓰고 있습니다. 분명 이야기를 하는데 말을 내 귀에만 들리게 한다던지, 남에게는 들리지 않게 말입니다.”
“……뭐?”
“그런 적 없습니까? 그녀가 말을 하는데 남에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렸던 일 말입니다.”
가벤은 창살을 쥐며 간절하게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 리하임 백작이 출근하면 엄격한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미 무도회장에서 가벤이 황태자비를 일방적으로 모욕하는 것을 본 증인들도 있을 테니, 조사는 어렵지 않을 테고 가벤은 엄벌에 처해지겠지.
최악의 상황에는 패가망신하고 거지가 된 눈앞의 친구처럼 크게 혼이 날 수도 있다.
“…….”
“분명 있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3년인데, 들어 보셨겠죠. 그렇죠?”
칼리안이 그런 경험에 대해 증언해 준다면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테고 말이다.
“나만 들리게 욕을 한다거나, 잘 생각해 보시오…….”
“미쳤나 보군.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칼리안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험악한 경멸의 목소리였다.
그는 쭈그려 앉아 창살을 잡고 자신을 애원하듯 바라보는 가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벤 펠로페.”
칼리안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그녀가 자네 따위를 은밀한 목소리로 유혹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 자……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남한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는 그런 목소리를.”
“닥치게! 에시카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한 번만 더 허튼 소리를 했다가는 내 필시 자네를 죽여 버릴 거야.”
그때 가벤의 눈이 부릅떠졌다.
칼리안 때문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어떤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기절할 것처럼 눈이 빙빙 돌았다.
가벤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면서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악! 으아아악!!”
옷깃을 털고 나가려던 칼리안이 가벤을 힐끗 보았다.
가벤은 제 귀를 막고 어쩔 줄 몰라 방방 뛰고 있었다.
금요일의 파티에서 그가 종종 헤노모스를 복용하는 것은 알았고, 헤노모스가 종종 환각이나 환청을 보여 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도가 심하기는 하다.
가벤은 정말 못 들을 것을 들은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도…… 도와주십시오……. 바…… 방금 이상한 목소리가!”
가벤이 붕대로 뒤덥힌 한쪽 손을 창살 밖으로 내밀며 목소리를 떨었다.
듣는 것만으로 오한이 밀려드는 이 목소리는 어쩐지 전쟁광 황태자의 목소리를 닮았다.
정말 자신이 미쳐 가는 것일까, 가벤은 벌벌 떨며 발을 굴렸다.
“내 머릿속에 이상한 것이 들리오. 정말, 이번에는 그녀가 아니야…….”
“쯧…… 한심하군.”
칼리안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
괜히 시간 낭비를 한 기분이었다.
가벤은 멀어져 가는 칼리안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자…… 잠깐만, 날 좀 도와……!”
하지만 곧바로 또 그 목소리가 제 머리를 강타했다.
‘매우, 사랑한다.’
“히이이이익!”
가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황태자비가 뭔가 이상한 기술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모두의 말대로 자기 혼자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미쳐 버린 것이 분명하다.
선명하게 귀에 들리는, 그 무시무시한 황태자와 비슷한 목소리.
이미 온몸에 빳빳하게 서 버린 털과, 닭처럼 까슬해진 피부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극한의 소름을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귀를 막고 뒤로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