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2. 이간질의 효과(12/192)
#12. 이간질의 효과
2023.12.12.
“대부인께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대요. 풋.”
셀라는 우습다는 듯 입을 가렸다.
에시카의 입술에도 은은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어제 유리는 대부인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충성 맹세를 했다고 한다.
자기는 시집가지 않고, 시녀장으로서 대부인께 평생 충성하겠다며 말이다.
그 덕에 신랑감 후보의 목록이 적힌 종이가 폐기되기는 했다고 한다.
리오나가 유리에게 충성 맹세를 받았다는 것은 에시카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합지졸 둘이 손을 잡는다고 해서, 어찌 두렵겠는가.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한번 시작된 유리에 대한 의심은, 계속 유리의 목을 조이겠지.
유리는 리오나가 자신을 칼리안의 짝 후보로라도 올릴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개와 원숭이를 이간질해 놓은 것과 같으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대부인은 충성의 대가를 요구할 거야.”
“하지만 시녀장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 급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녀는 이제 에시카의 보석을 빼돌리지 못한다.
급한 마음은 충동을 부르고, 충동은 파멸로 이끈다.
그러한 심리를 이용해 무수한 숙적을 처리했던 기억이 있는 에시카로서는, 앞으로 있을 일이 기대되었다.
“저는 무식해서 부인의 계획은 모르겠지만…….”
셀라가 눈을 빛내며 에시카에게 말했다.
“부인이 대단하시다는 건 알겠어요. 그리고 부인이 하시는 일이 잘 이루어지리라 믿어요.”
셀라의 말에 에시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헤모스를 시켜 유리에게 선물을 보내야겠어.”
“……선물이요?”
“뭐, 선물보다는 미끼에 가까우려나.”
절벽에서 뒷걸음질 치는 적의 손을 잡아 줄 만큼, 에시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멸로 한 걸음 몰아붙이면 몰라도.
**
‘공작 전하께 섣불리 접근하는 걸 들킨다면, 다음에는 살아남기 힘들 거야.’
유리는 서늘한 눈빛으로 리오나의 뒤를 따랐다.
리오나는 여느 때처럼 정원에 앉아서 악사의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음률은 예술적이었지만, 유리의 귀에 그런 것쯤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속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겨우 대부인 곁에 남았는데…… 이래서는 공작께 다가갈 방법이 없잖아.’
지난 일 이후로, 하녀들은 유리에 대해 리오나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행여 유리가 칼리안 가까이만 가도 눈치를 주었고 말이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 매일 화가 끓어올랐다.
에시카가 그런 망할 이야기만 하지 않았더라도 순조로웠을 텐데 말이다.
“주방에서 다과를 가져오겠습니다.”
유리는 대부인에게 보고하고 주방으로 갔다.
아까 헤모스에게서 쪽지가 왔었다.
흉터에 좋은 과일을 챙겨 주겠다고 말이다.
미리 주문했던 간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녹색 병은 가져가면 안 돼. 그거, 집사님이 잠시 놔둔 닭 치료제인데 행여 사람이 마시면 큰일 난다고.”
“죽기라도 해요?”
“아니, 배탈을 유발해. 일주일은 정신없이 앓을걸.”
헤모스와 하녀의 대화가 들렸다.
유리의 시선이 선반 위를 향했고, 작은 녹색 병 네댓 개가 보였다.
저것이 방금 헤모스가 말한 것일까.
“…….”
그리고 그 순간 유리의 머릿속에서 뭔가 떠올랐다.
대부인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면, 경계할 정신이 없게 만들면 된다.
그녀는 아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종종 꾀병을 앓고는 했다.
그래서 아마 일주일쯤 앓는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건은 되지 못할 것이다.
유리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병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재빨리 앞치마 속으로 숨겼다.
잠시 후 헤모스가 간식이 담긴 화려한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작은 봉지도 하나 내밀었다.
“여기 다과. 그리고 이건 파과라는 과일인데, 좀 쓰기는 하지만 흉터 회복에 좋을 것이오.”
“고마워요, 헤모스.”
유리는 봉지를 잡으며 접시를 바라보았다.
맛있는 디저트들이 놓인 접시는 순간적으로 군침을 고이게 했다.
‘평민들과 결혼한다면 이런 건 꿈도 못 꿔.’
그리고 이어 생각했다.
‘하지만 장차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 된다면…… 매일 이런 것을 먹으며 사치를 즐길 수 있다고. 난 제 것도 챙겨 먹지 못하는 멍청한 에시카가 아니니까.’
유리는 그것을 받아 들며 헤모스에게 미소 지었다.
“가 볼게요. 수고해요.”
헤모스는 유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유리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주방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셀라와 눈을 맞추고 피식 미소 지었다.
**
대부인에게 신호가 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얼굴이 창백해진 대부인을 부축해야 했지만, 유리는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그 약이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
아마 일주일은 앓는다고 했으니, 그동안은 유리의 세상이 될 것이다.
“대부인, 의사를 불렀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유리는 한껏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대부인은 눈을 감고 죽은 듯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속을 비워 내야만 했다.
하녀들이 헤모스에게 가서 따져 댔지만, 헤모스는 어제 황후가 보내 준 쿠키를 그대로 접시에 내오기만 했다고 반박했다.
황후에게 따질 수도 없으니 일은 무마될 것이다.
“어머니!”
잠시 후 칼리안이 방으로 뛰쳐 들었다.
유리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칼리안에게 인사를 했다.
칼리안은 급하게 유리를 지나쳐 리오나에게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런, 또 쓰러지신 겁니까. 어머니…….”
평소라면 그렁그렁한 눈으로, 괜찮다고, 자애롭고 연약한 어머니를 연기할 리오나였지만 오늘은 그럴 힘도 없어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왔고 배탈이라는 결론을 냈다.
“칼리안, 오늘은 정말…… 윽…….”
리오나는 문득 눈썹을 찌푸렸다.
칼리안은 걱정하는 눈으로 리오나를 보고 있었지만 리오나는 그 눈빛이 서운했다.
정말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아픔에 비해 아들의 반응에 진심이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너무 자주 아픈 척을 했기에 칼리안도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만사를 제쳐 두고 어머니에게 달려오는 효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리오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짜증스러운 마음에 그냥 눈을 감았다.
요즘은 되는 일이 없다.
잠시 후 방을 나서는 칼리안의 뒤로 유리가 따라붙었다.
‘어쩜 저리도 어깨가 넓고 듬직하실까?’
“공작 전하.”
유리의 말에 칼리안이 멈칫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
오늘따라 한껏 치장에 힘을 준 모습이었다.
유리는 옅은 침울함을 일부러 드러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였다.
“제게 벌을 내려 주세요.”
“…….”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제가 대부인께 쿠키를 가져다드려서, 이렇게 심한 배탈이 나셨어요…….”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칼리안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의 탓이 아니오.”
“하지만…….”
칼리안은 손을 들어 유리의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문득 에시카가 떠올라 가슴 한쪽에 저릿한 불편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안해하는 유리를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
다음 날, 에시카가 탄 마차는 어느 저택 앞에 멈추어 섰다.
갑작스레 결정된 일정을 위해서 외출한 것이다.
클라우스 저택에서 나가는 일이 거의 2년 만이었다.
에시카가 멈추어 선 곳은 클라우스의 먼 친척 알헤미츠 백작가의 저택 앞이었다.
‘공작저로부터 도심까지의 지리를 파악했으니.’
마차가 달리는 동안 에시카는 바깥의 풍경을 눈으로 훑었다.
지형과 지리, 그리고 번화가의 방향 등.
언젠가 외출할 때 쓸모 있을 것들을 말이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은 달성이군.’
품질 좋은 무기 상점에 대한 정보도 얻었으니 조만간 그녀는 외출을 할 생각이었다.
이곳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림이 아니었으며, 적들을 검으로 제압하거나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검은 꼭 필요했다.
영령으로 살아갈 때도 검은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켰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검을 보고 마음을 바로잡았고 검술을 수련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검은 외로운 그녀에게 상징적인 마음의 지주이자 오로지 하나뿐인 친구였다.
그러니 평생 쓰던 검을 쏙 닮은 검을 하나 주문할 예정이긴 한데…….
무리하게 경공을 사용하여 나섰다가 괜히 누군가의 눈에 띄면 곤란하다.
그러니 이렇게 마차를 타고 주변의 지리를 파악할 생각으로 나섰다.
무엇이든 한 번의 예행 연습은 필요한 것이니까.
‘두 번째 목적은…….’
오늘은 알헤미츠 백작 부인의 티파티가 있었는데, 알헤미츠 백작이 황제로부터 특별 훈장을 받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였다.
원래라면 대부인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심한 배탈이 났다고 한다.
헤모스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덕이다.
대부인의 하녀들은 탐탁잖은 얼굴로 드레스 하나를 건네주었다.
연식이 오래된 허름한 드레스로 외부의 티파티에 참여할 수는 없으니.
그리고 대부인은 하녀를 통해 에시카에게 언질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오라고.
“에시카 클라우스 공작 부인입니다.”
알헤미츠 백작가의 온실 화원.
에시카의 입장을 알리는 하녀의 말에, 열 명 정도 모여 있던 귀족 부인들이 고개를 돌려 에시카를 보았다.
그녀들의 앞에 다가온 에시카는 멈추어 섰고, 다소 서늘한 인상을 주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두 번째 목적은…… 미래의 아군을 만드는 것이지.’
유리가 갖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칼리안 따위에게는 관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