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22. 복선의 설치(122/192)
#122. 복선의 설치
2024.03.31.
어느 날 밤 신이 나서 무작정 에시카를 찾아온 헤모스는 레스반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간이 떨어질 뻔했다.
“…….”
‘젠장할! 무서워!’
어깨를 저도 모르게 움츠린 헤모스는 다시 힐끔 레스반을 보았다.
저를 노려본 적 없었다는 듯, 에시카를 향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황태자는 단정하며 세련되어 보였다.
‘설마 진짜 소문대로 황태자비 전하 앞에서만 신사적이신 건가. 그리고 내가 신혼에 방해가 되어서…….’
레스반의 옷깃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단추 하나는 막 풀었던 것 같고.
본의 아니게 들이닥친 헤모스로서는 억울할 뿐이다.
“헤모스.”
에시카가 기쁜 표정으로 헤모스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움찔했다.
“아. 예!”
그리고 차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고생 많았어. 덕분에 근심이 줄었군.”
“소…… 송구합니다. 황태자비 전하.”
“그럼 셀릭서의 복용법에 대해 설명해 줘.”
오늘 헤모스가 완성해서 가져온 약은, 에시카가 전부터 필요로 하던 셀릭서였다.
워낙 재료들이 희귀한지라 구하기는 꽤 어려웠지만 사방으로 뛴 헤모스의 공이 컸다.
“몇가지 재료들은 몸에 열이 많이 나게 해서,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준비 과정?”
레스반의 물음에 헤모스는 대답했다.
“예. 황태자 전하. 제가 이런 약을 다뤄 본 것은 처음이라 저도 완전히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보통의 몸으로 이런 약을 먹었다가는 중독되어 죽을 것입니다.”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래서 약을 먹기 전에 대비가 필요한데…… 우선 일주일 가까이 금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만 간간이 먹고요. 사실 부담이 많이 가는 약을 먹기 전에는 보통 그러거든요.”
“여기도 단식이 혈을 깨끗하게 한다는 류의 이야기가 있는 건가?”
에시카의 말에 헤모스는 갸웃했다.
“피를요? 그런 말은 없지만, 그냥 위험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주 햇볕을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몸을 뜨거운 빛에 적응시킨다고 해야겠죠. 왜나면 약을 먹으면 열이 확 올라올 텐데 미리 조금이나마 준비하는 겁니다.”
무림에서도 희귀한 영약을 먹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 과정을 거쳤었다.
헤모스는 중원의 것처럼 체계화된 지식은 없었지만 제법 비슷한 방법대로 처방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건가.
“일주일이라.”
“푹 쉬시며 햇볕을 받아야 합니다. 단식도 하시고요.”
에시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과연, 황궁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그것이 가능할까.
“이상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리고 황태자비 전하. 잘 사용해 주십시오.”
에시카의 손에는 셀릭서가 든 작은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상을 주도록 하지.”
목 근처의 옷깃을 매만지는 레스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숙여 굽신거렸다.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리고 황태자비 전하. 그…… 복용법은 꼭 지켜 주십시오. 그냥 막 드셨다간 큰일납니다.”
헤모스는 불안한지 한 번 더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에게 다시 예를 표하고 나갔다.
다시 둘만 남았지만, 지금 로맨틱한 무언가를 할 순간은 아니겠지.
레스반은 골똘히 셀릭서를 보는 에시카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것을 복용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다.
약이 오른 황후는 에시카에게 끝없이 트집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시카의 주변에 신전 병력을 배치하기도 했다. 신전병들은 황후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언제 이걸 복용하는 게 좋을까요?”
복용 전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황궁 일정을 소화하면서는 무리일 것이다.
“잠시 쉬어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지?”
레스반의 입술이 달싹이자 에시카가 그를 바라보았다.
레스반은 손을 뻗어 에시카의 허리를 감싸 제게로 끌어왔다.
레스반의 짙은 금안이 에시카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수께끼처럼 닫힌 그 입술 안이 에시카는 궁금했다.
그래서 비스듬히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레스반의 눈썹 사이가 미미하게 움직인다.
자신의 적들에게는 독초처럼 행동하는 에시카였지만 레스반에게만은 달랐다.
레스반이 말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이용해서.”
“가진 것이라면…….”
“저번의 코르티잔.”
터뜨릴 것을 차곡차곡 모아 두고 있지만, 적재적소에 쓰일 때가 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안도는 필시 기회를 가져오니까.”
말을 마친 레스반이 에시카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한 번쯤은 더 세워 주는 것도 좋겠네요.”
그들의 기세를.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킬 방심을 기대하면서.
레스반은 피식 입술을 비틀며 에시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쉬어 갈 날이 많으니 오늘 저녁쯤은 재우지 않아도 좋겠지.
**
황제의 곁에는 황후가 앉아 있었고, 그들의 오른쪽에는 레스반과 에시카가, 그리고 왼쪽에는 아스티아 황녀, 그리고 브레이튼 황자가 앉아 있었다.
오늘은 황실 일가가 함께하는 만찬의 자리였다.
황제는 레스반에게 물었다.
“에우니브스의 상황은 어떠하더냐.”
적들로부터 5년 전 되찾은 땅인 그곳은 아직도 재건이 한창이었다.
“민심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나, 불순한 세력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감시하고 있습니다.”
“불순한 세력이라면 가네쇼프의 무리들을 말하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아마도…….”
레스반의 나이프가 반쯤 익힌 스테이크를 갈랐다.
“사교의 세력들인 것 같습니다.”
레스반의 말에 황후의 눈가가 움찔 움직였다.
“사교의 세력이라…….”
“잘못된 방식으로 신을 섬기고 자신들의 거짓 선지자를 믿는…….”
그의 금안이 서늘하게 빛났다.
“마땅히 처벌하여 끊어 버려야 할 세력이죠.”
황후는 포크를 들어 음식을 찍었다.
그리고 잘게 잘라진 그것을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전쟁이 종료되었어도 끝없이 일이 생기는군요.”
레스반의 말에 황제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황제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 하나를 마무리 지으면 또 하나의 일이 심기를 어지럽히지. 그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황제와 레스반과의 대화를 듣던 황후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브레이튼은 듣는 둥 마는 둥 태평한 표정으로 접시나 뒤적이고 있었고, 황후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속이 답답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교가 활개 치지 않도록 에우니브스 지역에도 신전을 건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제국민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2황자에게 이 일을 맡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브레이튼은 갑자기 모친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에 어깨를 움찔했다.
에우니브스, 변방 지역에 가기는 귀찮았지만 곧장 대답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폐하.”
황후는 미소 지으며 황제를 살폈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황후의 의견이 옳겠소. 브레이튼, 네가 다녀오거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월한 진행에 만족하며 황후가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시카가 입을 열었다.
“송구하지만 황제 폐하. 2황자 전하께서 다녀오시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합니다.”
그 말에 황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브레이튼은 인상을 찌푸리며 형수인 에시카를 보았다.
황후는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이제 막 황실에 들어온 황태자비께서, 정무에 대해 무슨 지식이 있기에 폐하께 그리 아뢰는 것이죠?”
황제 역시 갑자기 며느리가 제 뜻에 반대 표현을 내비치자 다소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황태자비는 황실 내부의 일을 할 뿐이지, 정무적인 외부의 일은 참견할 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으나…….”
에시카는 황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귀한 황실의 씨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에 황제의 미간이 움찔 움직였다.
얼굴을 굳힌 것은 황후와 브레이튼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시선이 에시카의 배 쪽으로 내려왔다.
홀쭉한 배의 모양만으로는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황실의 씨라면!”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에시카를 보던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제는 레스반을 한 번 보고, 그리고 다시 에시카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기대가 차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다시 말해 보겠느냐.”
“네. 황제 폐하.”
포크를 쥔 황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시카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2황자이신 브레이튼 황자 전하의 아기를…….”
갑작스레 다시 튀어나온 제 이름에 어깨를 흠칫한 브레이튼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가진 여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황후는 눈썹 끝을 치켜세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에시카는 눈썹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에시카에게 도망친 코르티잔을 어디에 숨겼냐고 물었던 황후는 꾹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