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25. 헌 신발(125/192)
#125. 헌 신발
2024.04.03.
“유리, 이 천박한 드레스는 대체 뭐니? 너 설마 이러고 황궁에 갈 생각이야?”
리오나는 유리의 차림새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붉은 드레스 앞은 지나치게 파여 있었고, 치마단은 쭉 찢어져 걸을 때면 무릎이 보일 정도였다.
화장은 너무 짙었고 그녀에게서는 향수 냄새가 났다.
콧잔등에 큰 점이 있는 아기 아론은 백일쯤 되자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고, 리오나의 품에 안겨 있었다.
“제가 뭐 어때서요?”
유리는 리오나를 휙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게 공작가의 안사람에게 어울리는 차림새라고 생각해? 코르티잔들도 그보다는 정숙하겠구나.”
“하, 공작 부인이요? 이이가 지금 공작인가요? 기껏 자작 나부랭이 마누라밖에 못 된 신센데…… 자작 부인이 뭐 하고 다니든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리오나는 눈썹을 올리며 화를 냈다.
“뭐? 자작 나부랭이? 남작가의 딸 에시카 년보다도 못한 천한 것이 어디서 우리 칼리안을 들먹여?”
“에시카, 에시카! 그 망할 에시카! 이름도 꺼내지 말아요. 나는 그 대단하신 칼리안 클라우스 자작님의 봉록이 너무 작아서…….”
유리는 제 치마단을 치켜들며 말을 일었다.
“이 정도의 드레스밖에 못 산다고요. 에시카가 버린 고귀하신 자작님의 능력이 없어서…… 그리고 어머님 드레스 꼴도 보세요. 사교계에서 유행이 10년은 지나간 건데 남들이 얼마나 욕을 할까요?”
“이년이……!”
“이제 황후 폐하께서도 어머님을 찾지 않으시잖아요. 부끄러워서겠죠. 우리 클라우스의 꼴이!”
아론을 아기 침대에 올린 리오나는 유리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았다.
“아악! 이거 놔요!”
“죽어 버려! 천한 년!”
유리 역시 리오나의 어깨를 밀어내며 그녀를 때렸다.
“평민 출신인 어머님이 더 천한 년이겠죠!”
악, 억, 하며 서로 때리고 비난하는 소리가 울려 펴지고 아론이 울기 시작했다.
칼리안은 아기 우는 소리에 들어왔다가 눈썹을 찡그리며 버럭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칼리안!”
리오나는 칼리안을 보자마자 유리를 밀어냈다.
그리고 그에게 바짝 다가와서 안기며 말했다.
그녀의 머리는 엉망이었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도무지 이렇게 배운 데 없는 년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감히 하늘 같은 시어머니에게…… 이런 년은 내쫓아야 합니다. 아론이 뭘 배우겠어요.”
“그만하십시오.”
칼리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일갈하자 리오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리는 입술을 비틀며 리오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휙 돌아서서 거울 쪽으로 갔다.
외출을 위해 흐트러진 드레스와 머리를 다시 정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칼리안……!”
“전부 지겹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아들이 유리를 따끔하게 혼내 주길 바라고 있던 리오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칼리안이 느끼고 있는 것은 지독한 피로감뿐이었다.
에시카와 이혼 후 그는 단 한 번도 리오나를 편들지 않았다.
그리고 리오나를 편들었던 제 과거를 지독히도 후회했다.
제대로 된 판단을 했으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늦지 않게 준비하십시오.”
칼리안은 제게 붙은 리오나의 팔을 떼어 내며 휙 돌아섰다.
리오나는 죽일 듯한 눈으로 유리를 노려보고 파르르 떨었다.
아론이 태어나고서도 칼리안은 유리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유리는 그런 칼리안에게 관심을 끌려고도 하고 애걸하다가 에시카의 약혼 파티 이후로 더는 칼리안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에시카가 황태자비가 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심지어 술에 취해서는 칼리안에게 왜 에시카와 이혼해 줬냐고, 당신이 이혼해 줘서 에시카가 황태자비까지 되지 않았냐고 미친년처럼 따지기도 했다.
에시카의 행복은 유리의 정신줄을 몇 갈래로 찢어 놓은 것 같았다.
며칠을 혼이 나간 듯 지내다가 칼리안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저 한집에 살 뿐,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
칼리안은 낡은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꺼내 마부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안고 있는 리오나, 부인인 유리와 함께 황궁 앞에 섰다.
그의 눈 아래는 새카만 그늘이 져 있었으며 그는 더 이상 젊은 여자들의 화제가 되는 잘생기고 모든 것을 다 가진 클라우스 공작이 아니었다.
재산이라고는 평민들이 사는 것과 다름없는 작은 집 하나뿐이다.
그는 청사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주로 군에 납품하는 식량과 과일에 대한 감독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상관은, 그가 공작이었을 무렵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던 백작이었는데 칼리안에게 존대를 쓸 뿐 칼리안을 존중하지 않았다.
언제나 명령하는 위치에 있던 칼리안에게는 연일 자괴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화려하네요. 아름답고.”
유리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의 눈에는 탐욕이 깃들어 있었고, 어서 황궁의 문턱을 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실수하지 말거라. 황후 폐하께 인사 드릴 기회이니.”
오늘은 힐레스 공작의 질녀와 2황자 브레이튼의 결혼일이었다.
하인즈 대공녀와 파혼한 지 고작 석 달만의 일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황궁 안으로 들어갔고, 웅장한 거행전에는 이미 많은 귀족들이 와 있었다.
들어서는 셋을 보며 몇몇 귀족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리오나의 눈가가 떨렸다.
클라우스 공작 대부인으로서 위세를 떨칠 때는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귀족 부인들이 몰려들어 얼굴 도장을 찍으려고 난리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인사라도 하려는 년들은 양반이고, 친분이 있던 부인들도 못 본 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괘씸한 년들……’
칼리안에 대한 대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상석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한때 어울렸던 귀족들도 몰락한 그를 모른 척하거나 뒤에서 비웃었다.
유리의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재의 상황을 살폈다.
‘황후 폐하…….’
그녀로서는 닿지 않는 까마득한 상석에 황제와 황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까운 곳에 황태자와 에시카가 보였다.
에시카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꾹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은발을 우아하게 묶은 에시카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고 고고했다.
그 옆의 레스반 황태자는, 전쟁광이라고 불리던 시기의 악명은 씻겨 내려갔는지 조각처럼 잘생겼고 고귀했으며 어떤 여자든 바랄 만한 남자였다.
마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유리의 인생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에시카가 가진 모든 것은 찬란해 보였다.
드레스와 보석, 그녀가 앉은 의자조차도.
“2황자 전하의 혼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타메론 신전의 주교가 혼인의 시작을 알리며 사람들 앞에 섰다.
“황자 전하가 결혼을 하시긴 하는군요. 철이 드시면 좋으련만.”
“글쎄요, 옛 버릇을 고치실 수 있을까요.”
몇몇 귀족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고작 스무 살인 브레이튼의 여성 편력은 벌써부터 유명했다.
성년이 되기 전부터 그가 황궁의 하녀들을 희롱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었고, 이후에는 코르티잔들을 황궁에 불러 매일 파티를 열었다.
귀족 영애들 중에서도 영 질이 안 좋은 무리의 여자들을 매일 제 방에 부르고는 했으며 임신을 했다가 사라진 여자들도 있다고 한다.
황태자비와 결혼하기 전, 여자에 대한 소문 한 번 없던 황태자와는 정반대의 평판이었다.
“…….”
사제의 앞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섰는데, 남자는 브레이튼 황자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힐레스 공작의 질녀가 섰다.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미인이 아니라는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이것이 정략혼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힐레스 공작은 가진 재물과 권력은 크지 않지만, 발이 넓으며 많은 귀족들이 그를 따랐다.
뚜렷한 전공이 있는 황태자와는 달리 가진 것은 나쁜 소문뿐인 2황자에게 좋은 지지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유리는 서늘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뒤돌아섰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너, 어딜 가니?”
리오나의 말에 그녀는 쌀쌀하게 대답했다.
“당분간 저를 찾지 마세요.”
남편과 시어머니가 무능하니,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
에시카는 차분한 눈으로 혼인식을 보고 있었다.
근신 명령 기간이었지만 공식 행사 중 혼인식만은 참석하라는 황명이 내려와 레스반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브레이튼 황자는 아침부터 술을 입에 댄 듯 얼굴과 목이 조금 붉었지만 황자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무표정해 보였다.
이전의 하인즈 대공녀와는 다른 게 사랑을 꿈꾸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차라리 그 편이 보기에 덜 괴롭다.
한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하는데, 사랑받지 못하는 그런 부부 관계는…… 에시카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어차피 혼인식이 끝나자마자 황자는 홀로 에우니브스로 떠날 예정이니 황자비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황후뿐일 것이다.
“…….”
문득 생각에 빠져 있는데 그녀의 손에 레스반의 손이 닿았다.
에시카는 레스반을 보았고, 레스반은 입술을 옅게 비틀더니 손을 잡았다.
조금 흠칫한 에시카는 잠시 멍하니 그를 보다가 말했다.
“남들이 보고 있어요. 전하.”
“보라고 잡는 거야.”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레스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킨십을 하는 종류의 남자는 아니었다.
늘 갈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왜…… 라고 생각했을 때 에시카는 문득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
쓴 풀을 씹은 표정으로 이곳을 보고 있는 리오나였다.
그녀의 품에는 손자로 보이는 백일 남짓의 아기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퀭한 얼굴의 칼리안이 보였다.
그는 형형한 눈으로 에시카를 보고 있었는데 그의 몰골은 말끔했던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저 아기가…… 칼리안과 유리의 아기인가?’
그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가족을 이룬 것 같았다.
에시카는 입술을 비틀며 시선을 돌렸고 칼리안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들이 행복하건 불행하건 에시카는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버린 헌 신발과 다름없는 자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