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28. 첫 번째 불(128/192)
#128. 첫 번째 불
2024.04.06.
유리가 돌아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다.
리오나는 하루 종일 유리의 욕을 하면서 아론을 돌보고 있었다.
“그년을 안 닮아서 다행입니다. 이 눈도, 코도, 입도…….”
리오나가 보기에 못된 유리 년의 얼굴은, 아론의 얼굴에서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발가락 빼고는 전부 클라우스예요.”
그녀는 선천적으로 조금 휘어지게 태어난 새끼 발가락을 보며 말했다.
그건 유리를 닮은 것도 같다.
“이 눈은 칼리안을 닮지는 않았지만, 황후 폐하를 조금 닮은 것도 같습니다. 칼리안의 고모시니, 그럴 법도 하죠.”
발가락을 보며 잠시 정색했던 리오나는 잠들어 감고 있는 아기의 눈을 보며 다시 화사하게 말했다.
“코는 뭉툭해 칼리안보다는 인물이 덜하긴 하지만, 선대 공작 전하가 떠오르는군요. 칼리안의 아버지 말입니다. 그리고 입은…….”
리오나는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오물오물 예쁜 것이 말이에요.”
클라우스의 성을 가지게 된 이 아이는 클라우스를 닮아야만 했다.
리오나의 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점은……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리오나는 문득 아이의 콧잔등에 있는 점을 보며 말했다.
유난히 큰 점은 클라우스의 친척들 누구에게도 없었다.
“뭐, 흠은 다 그년 탓이겠죠.”
어두운 창 밖을 보고 있던 칼리안의 눈이 문득 복잡해졌다.
청사에서 만난 관원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괜한 생각이 든다.
“잠시…….”
깊이 생각하지 말자는 다짐이 들면서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무를 것 같았다.
어차피 오래 머무를 생각이라면 그 생각의 근원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칼리안은 옷깃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론의 이목구비를 뜯어보며 칭찬과 감탄, 그리고 유리 욕을 하고 있던 리오나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바람 쐬고 오세요. 칼리안. 답답할 만도 하지.”
리오나는 허름한 집 내부를 보며 또 습관처럼 불평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대체 언제 좀 살 만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주실는지…….”
**
‘대단하세요, 종이가 재가 되어 버리다니.’
에시카는 손가락을 들어 창틀을 쓸어내렸다.
셀라의 목소리가 귀에서 조잘조잘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날 때부터 천마교주의 딸로 태어났고, 약육강식의 마교에서 오래 살아남으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방법은 결국 강해지는 것이었으니 강해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에시카는 콰직, 하고 문틀을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삼매진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 나무 사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폐허의 숲은 불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순간은 십리마화에 휩싸였던 때와 닮아 있었으나, 절망뿐이던 그녀의 눈에는 이제 흙을 뚫고 무성히 솟아오르는 새싹처럼 강한 생명력이 차 있었다.
이제 첫 번째 불을 놓을 시간이었다.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폐하, 황궁 동쪽 폐허에 불이 났습니다.”
이 소식은 황제의 귀에 곧바로 들어왔다.
집무실에서 정무를 보고 있던 황제는 놀란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동쪽 폐허에 불이 났다고?”
“예, 사람이 기거하는 곳은 아니지만 다들 물을 날라 진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가 봐야겠군. 황태자에게도 전하라.”
“명령 받들겠습니다.”
황제는 황궁이 타올랐던 그날을 기억했다.
20년 전의 끔찍했던 공격, 무수한 황족의 피가 흩뿌려지고 황궁이 불에 타고 무너졌다.
그렇기에 화재란 결코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고의로 황궁에 불을 냈다면, 이는 반역과 다름없는 일.
황제의 뒤를 많은 기사들이 따랐다.
그들은 한참을 걸어, 타오르고 있는 동쪽 폐허에 도착했다.
허름한 건물들에는 불이 붙어 있었고 이미 탈 건덕지도 없는지 얼마 안 되는 물동이질에도 진화되고 있었지만 황제의 눈썹은 굳어 있었다.
그는 콜록, 기침을 했고 기침 속 잘게 피가 섞여 나왔다.
“폐하.”
몇 초도 되지 않아 황태자 레스반이 보였다.
그의 어깨에 달린 망토는 걸을 때마다 휘날렸으며 연무 중에 소식을 들었는지 입고 온 경갑옷은 황제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 주었다.
그에게 레스반은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이었으니.
“어찌된 일인지 폐하께 보고하라.”
레스반의 서늘한 목소리에 시종이 굽신거리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인데 왜…….”
그때, 타닥- 하고 뭔가 크게 타오르는 소리에 모두가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화성 물질이 있는지 바닥 쪽의 뭔가가 빛을 내며 탔고 몇 초 뒤 커다란 기둥이 파삭 하고 주저앉았다.
먼지가 훅 날아올랐는데 황제는 재빨리 소매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먼지가 조금 걷히고 드러난 것은…….
“……시체입니다.”
가까이 서 있던 시종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황제의 눈썹은 꿈틀 움직였고 레스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나둘 달려간 시종들이 새로 발견한 사실들을 보고했다.
“시체가 있습니다. 여기, 또 다른 손이 보입니다.”
“누가 이곳에 시체를 묻었습니다!”
시종의 말에 황제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황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사제들도 있었으며, 의사들도 있었고, 리하임 백작과 같은 귀족들도 있었다.
황후에게도 머지않아 이 소식은 전달될 것이었다.
레스반은 고개를 돌려, 황궁 쪽을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어디에서 보고 있을까.
어디가 되었든 꽤 즐거운 구경거리일 것이다.
“시체가 또 있습니다.”
“젊은 여자의 시체인데…… 묻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
시종들의 보고에 황제의 눈동자가 심각한 빛을 띠고 일렁였다.
“이 여자는 하녀복을 입고 있습니다.”
“또 여자입니다!”
“폐하…….”
황제의 얼굴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본 시종장이 황제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향후의 상황 정리는 황태자 전하께 맡기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우선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 이 일은 내가 끝까지 지켜봐야겠다.”
시종장은 황제의 말에 흠칫했다.
그는 몸이 좋지 않고 시한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체력이 소요되는 일은 전부 레스반이나 믿는 귀족들에게 맡기었고 사소한 일은 제게 일임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직접 해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종장은 알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결코 눈을 돌릴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고, 불타는 폐허 속 시체들을 보고 황제가 뭔가를 떠올렸다는 것을.
레스반의 금안에 서늘한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문득 에시카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것 같았다.
**
“정말 끔찍하군요, 이렇게 끔찍한 것은 처음 봅니다.”
“시체가 열한 구예요.”
“몇 구는 꽤 부패했지만 대부분 젊은 여자들인 것 같습니다.”
동쪽 폐허는 누구도 쉬이 오지 않는 곳이었다.
20년 전 튜레시안의 황족들 중에서는 적들과 협력한 자도 있었다.
그래서 황궁이 무너질 때 그들이 상이라도 받았냐고?
아니, 배신자는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한 번 배신한 자가 두 번 배신은 못 하겠는가.
그들은 그대로 이 동쪽 폐허에 묻히고 황제에게 외면받았다.
하지만 줄줄이 나온 이 시체들은 당시에 묻힌 배신자들이 아니었다.
부패가 덜 된 것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백골만 남은 것도 있었지만. 절반은 아직도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를 풍겼다.
“폐하…….”
시종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황제의 입술은 피기가 식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레스반은 그저 서서 관망할 뿐이었다. 에시카가 이곳을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하며.
“자세히 봐야겠다.”
“하지만…….”
“황궁에서 죽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이 데려가 장사를 지내지.”
황제는 비틀거리며 시체들 가까이 걸어갔다.
탄 흙이 그의 발에 밟히며 푹푹 아래로 꺼졌다.
그는 시체들을 나열해 놓은 곳에 서서 그것들을 보았다.
몸의 어느 부분도 절단되거나 상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죽은 것 같은, 사람의 몰골을 꽤나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도 보였다.
여자는 아름다운 금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젊어 보였다. 그 얼굴은 푸른빛을 띠었고 손끝 역시 그러했다.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손목에 낀 팔찌는 어느 시체에서 본 것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발치에 뒹구는 그것은…….
“새끼발가락이 보이는 구두로구나.”
황제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새끼발가락이 보이는 구두는 코르티잔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코르티잔은 황명으로서, 황궁에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짐작한 듯 황제의 눈썹 사이가 구겨졌다.
그 시선이 점점 아래로 향했으며 복수가 찬 듯 볼록한 배에 흠칫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