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0. 잘 짜여진 판(130/192)
#130. 잘 짜여진 판
2024.04.08.
한 달 전,
“에우니브스?”
에시카를 어깨에 기대게 한 레스반이 눈썹을 흠칫 움직였다.
그곳은 수년 전 레스반이 정복한 제국의 땅이었다.
“그곳에 헤노모스의 원료가 되는 암석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에시카는 슬그머니 머리를 레스반에게서 떼고 바로 앉았다.
레스반은 그녀가 제게서 떨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에시카는 손을 뻗어 다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의 넓은 가슴의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그곳을 욕심내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틀림없이 얻어야 할 그곳이라면, 조금 더 빨리 얻게 해 주는 거죠. 물론 대가는 있어야겠죠. 제가 바라는 것도 황후가 필히 내놓아야 할 대가이고요.”
“브레이튼을 말하는 것이군.”
레스반은 턱을 비스듬히 기울여 에시카를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은 잔잔한 바다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고, 에시카가 그녀다운 수를 조잘거리는 모습이 그에게는 썩 즐겁게 느껴졌다.
“…….”
에시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그의 단정한 검은 머리카락은 지난밤의 격한 정사로 인해 흐트러져 있었고, 옷매무새 역시 그러했으나 그의 태도에는 언제나 여유가 넘쳤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빤한 금안.
여전히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제 수를 다 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생의 독영이 어떤 성격이었더라. 영령에게는 믿음직스럽고 좋은 오라비가 맞았는데…….
고아 출신으로 천마교주의 자리에 오르려면 고강한 무공은 물론이고 몇 수 앞을 읽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 말을 멈추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럴 리가.”
레스반이 딴청을 부리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능구렁이 노마들이 꿈틀대는 마교에서, 지존의 자리에 오른 독영. 그리고 그 영혼으로 환생한 레스반.
전에도 독백했었지만 고수들은 괴팍하고 속을 알 수 없다.
에시카는 모르는 척하는 레스반의 태도에 조금 심통이 났지만 그래도 말을 이어 가기로 했다.
“황후 본인이 에우니브스에 갈 생각은 없을 테니 브레이튼을 보낼 거예요.”
“……그 여자라면, 그러겠지.”
“덧붙이면 브레이튼 황자는 황후의 가장 취약한 점이니, 만만찮은 적이 나타난 지금은 안중에서 숨기고 싶겠죠. 그리고 제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확실하게 드러내면…….”
레스반이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레스반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문제라니요?”
“황후와 황자 사이 이간질 계책을 쓰기에, 적절치 않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레스반은 손을 뻗어 에시카의 어깨를 다시 감싸며 제 품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칼에 코를 살짝 묻으며 말했다.
“그 녀석은 이간질에 당할 만큼 똑똑하지 않거든.”
이간질에 당할 만큼 멍청하지 않아도 문제이지만, 이간질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멍청해도 문제이다.
“제가 쓰고자 하는건 이간질 계책이 아니에요.”
에시카는 레스반의 귓가에 속삭였다.
“황후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죠.”
예상치 못한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에시카는 셀라의 피 묻은 손톱들을 기억했다.
제 몸에 붙은 것을 떼어 내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황후도 필히 경험해야 할 것이다.
설령 그녀가 아픔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진득하고 오래 가며 절대 회복할 수 없는 불편감이라도 주어야겠지.
에시카는 레스반의 얼굴을 감싸며 그를 마주 보았다.
그의 코가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에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 생각에 감탄하듯 옅은 웃음기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던 레스반은 그녀의 입술에 잘게 입을 맞추었다.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너무해요.”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을 향한 열기보다는 당장의 복수심에 차 있었다.
이럴 때면 사소한 불만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황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레스반도 알고 있었다.
단지 전쟁에 바빠서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황후가 브레이튼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들을 죽여 댄다는 사실도.
“방금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레스반은 나른한 표정으로 에시카를 보았다.
“기다려 줘, 전리품을 얻고 말해 주지.”
**
“……!”
황후는 에시카의 표정을 보는 순간, 자신이 처음부터 계략에 걸린 것임을 알아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가려고 해도 사방에 불이 난 후이니, 뛰어내리거나 혹은 타 죽거나였다.
황후는 결국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꽉 쥔 주먹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혀 있었다.
“…….”
황후가 홀로 시선을 받고 있는 정전에는 깊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무심하시기도 하시지.
타메론이 벼락이라도 쳐 주셨으면 좋으련만, 하늘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천인공노할 시체 열한 구에 대한 살인 사건의 책임이 황후에게 있는지, 혹은 에우니브스에 있는 2황자에게 있는지 그녀는 스스로 입을 떼야 했다.
“저는…….”
이 희대의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될 자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권력과 미래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황제는 이 일을 그냥 두고 넘길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한둘도 아니고 시체 열한 구, 튜레시안의 황권이 아무리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법도와 절차가 있었다.
특히 임신한 여자들의 시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그 안의 아기가 누구의 아기인지는 정황상 분명하다.
“……죽이지 않았습니다.”
끝내 황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에시카에게 탄식과 감탄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자녀를 낳아 본 적은 없었지만 많은 여자들은 자기의 명예와 권력보다는 자녀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령이었을 적 황궁에서 암투를 벌였던 그녀의 정적들도 그러했다.
아무리 독하고 못된 여자라고 해도 자녀에게만은 그렇지 않았지.
“브레이튼은…….”
황후가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이 일에 대해 알 수도 있겠지만요.”
그녀는 2황자 브레이튼과 자신, 둘 중에 자신을 택했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운 계략이기는 했지만 이 모습을 보니 감흥이 더욱 새로웠다.
자신이 위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외지에 있는 아들에게 덮어씌우는 꼴이라니.
“생각해 보니 브레이튼이 제게,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얼굴이 어두워져 더 묻지는 않았고 그 후 말하지 않아 잊어 넘겼지만…….”
황후의 실토를 듣는 황제의 눈썹이 굳어 있었다.
“잘못된 선택을 해왔을 수도 있겠군요.”
“아무리 철이 없고 못돼 먹었다고 해도 어찌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분노한 황제가 버럭 호통을 쳤다. 황후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송구합니다. 폐하.”
“황실 조사단은 이 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에우니브스에 있는 브레이튼을 소환…… 아니, 평생 그곳의 신전에서 속죄하게 하라!”
황제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명령했다.
“황자위를 폐해도 할 말이 없는 중죄이다. 아무리 천한 몸에서 품은 씨라고 해도 루세인 황가의 혈통을 품은 여자들을 어찌 죽인단 말이냐!”
차기 황위 계승권은 2황자인 브레이튼이 아무리 오른다고 해도 범접하지 못할 위치의 레스반 데온 루세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균형과 화합을 중요시하는 황제는 황후가 거느린 2황자파에게도 상당한 신경을 써 주었다.
2황자는 황제가 되지 못하겠지만, 황제의 사후에도 2황자파의 세력에 의해 보호받을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2황자파를 이끄는 거대한 세력인 클라우스가 패망하고, 심지어 2황자인 브레이튼마저도 황제의 분노를 샀다.
“……황후 역시 그 일을 알면서도, 황태자비가 황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에 대한 말을 고했을 때 모르는 척을 했었어. 지금 생각하면 황태자비가 옳은 말을 한 것임에도!”
“…….”
“황녀 역시 실망이 크다!”
“송구합니다.”
주먹을 쥔 채 떨고 있는 황후의 숙인 얼굴,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 뒤의 아스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차분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조사단에게 브레이튼이 그날 시체를 바꿔치기해 짐을 농락하려 든 것인지도 조사하도록 해라!”
“존명!”
제가 공을 들여 세웠던 탄탄한 기둥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황후는 속으로 저주할 뿐이었다.
에시카 저 마녀를 필히 화형에 처하리라.
언젠가 그 몸에 기름을 붓고 영원히 불타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