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2. 다시, 점화(132/192)
#132. 다시, 점화
2024.04.10.
“제가 좀 잘생긴 얼굴이라고 해도, 그렇게 빤히 보실 것까지야.”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에시카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는 검술 수련자의 경지 정도는 찻잔을 드는 손만 봐도 알아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검술을 수련한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에 필적할 만한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 되었습니다.”
그때, 무기 상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세공을 마친 무기 상점 주인은 단검을 놓았다.
과연 에시카의 주문대로 잘 세공이 되어 있었다.
에시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무기 상점 주인의 앞에 올렸다.
“저희 녹스 무기점을 이용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손님.”
에시카는 단검이 든 작은 자루를 들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햇살 같은 금발과 에메랄드와 사파이어가 섞인 듯한 눈동자, 그는 눈이 반달 모양이 되게 웃으며 에시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저와 차 한잔하시는 게 어떨까요.”
“필요 없어요.”
에시카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그는 무기점밖까지 에시카를 졸래졸래 쫓아왔다.
“나쁜 사람 아닙니다. 외국에서 이제 막 도착해서 이 나라가 궁금해서 그래요. 어차피 마차도 저쪽에 제 마차 근처에 세워 두셨던데.”
“내 마차를 어디 세운 것까지 보았다면…….”
에시카는 손에 공력을 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가슴을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굉장한 민첩성으로 뒤로 훅 피했다.
에시카의 손에 흐르는 기운을 보며 남자는 후우, 하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쪽이 내게 위협이 된다 판단해도 되는 일이겠죠?”
에시카의 싸늘한 말에도 남자는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이런. 난 당신의 적이 아니랍니다, 아름다운 레이디. 그저 인연을 맺고 싶었을 뿐인데.”
“잘 들어요.”
에시카는 손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잡듯 옷깃을 잡아 제 시선 가까이 내렸다.
서늘한 살기가 흐르는 눈으로 남자와 눈을 맞춘 채 그녀는 또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이 내 적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답니다.”
남자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에시카의 지독한 한기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인연은 만들지 않는 게 더 낫답니다.”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여자인데도, 남자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눈빛이라니. 재미있다.
그의 입술 끝이 비스듬하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에시카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탁-
에시카는 거칠게 남자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남자는 에시카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삭이듯 혼잣말을 했다.
“어떤 인연은 이어지기를, 레이디.”
한편 에시카는 눈썹을 세운 채 마차를 향해 걸었다.
예전에 무기점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일당들이나, 혹은 암흑가에 들를 때 안내를 자청하며 뺀질거렸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남자였다.
멱살을 잡고 그의 눈을 가까이 보며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무림에서 느껴 보았던 혈교의 기운과 비슷했다.
이곳에서는 그런 기운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런 힘을 사용하는 자들을 마법사라고 불렀고 말이다.
타메론이 국교인 튜레시안에서는 마법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술이라고 하여 금지되었지만, 외국에는 마법사들이 있다고 했었지.
어쨌든 귀찮은 이와는 얽히지 않기를, 생각하며 에시카는 마차에 올랐다.
단검이 든 자루를 바닥에 놓자, 금화가 잘그닥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
황후의 응접실,
아스티아의 말에 황후는 찻잔을 든 손을 움찔했다.
“……역경전?”
브레이튼의 유폐 결정 이후로 어떤 귀족들도 황후를 찾지 않았다.
황후를 저버려서라기보다는, 황궁의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차기 황제가 될 것이 확실한 황태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황후와 2황자에게 실어 주던 황제가 노해 그것을 반토막을 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스티아만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했다.
전에 시체를 바꿔치기 한 일로 아스티아 역시 황제에게 불려가 문책을 당했기에, 황후는 아스티아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제가 그러더군요. 타메론 경전보다 더 강력하고 진실된 경전이 있다고요.”
“감히 그런 말을!”
황후는 눈썹을 세우고 버럭 화를 내듯 말했지만 아스티아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역경전은 제국에서 금지된 물건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부정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황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금색 눈동자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눈썹을 굳힌 채 아스티아를 바라보던 황후의 눈가가 잠시 파르르 떨렸다.
이내 그녀는 입을 꾹 닫고 차를 마셨다.
이어지는 정적은 아스티아의 다음 말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아스티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몇 년 전 제국에 퍼지기 시작한 역경전은 타메론의 위대한 선지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알고 있어요. 타메론 경전이 구 경전이라면, 역경전은 신경전이라고 할 수 있죠. 둘 다 타메론의 가호를 받아 쓰인 것인데 하나는 인정받고 하나는 인정받지 못한다면…….”
“…….”
“이보다 말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아스티아는 끝에 작은 한숨을 내어쉬었다.
“지금 사제님이 가르쳐 주시는 타메론 경전도 좋지만, 저는 차후의 예언과 현 세태를 반영한 역경전을 공부하고 싶어요. 황후 폐하.”
황후는 찻잔을 내려놓고 아스티아를 응시했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역경전을 배운다는 것이 알려지면 처벌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테죠?”
“물론이죠.”
아스티아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메론에 심취하여 역경전을 찾는 황녀라, 황자가 유폐된 지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황녀에게 그것을 세뇌시킨다면 충실한 자신의 종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미 황후의 발밑은 그 사건 이후로 크게 흔들렸다.
“…….”
황후는 다시 찻잔을 들어 식은 차를 들이켰다.
어려운 문제였다.
“황후 폐하. 부탁드려요.”
황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황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죽어가는 아기 때문에라도 더 그럴 것이다.
그리고 황녀는 이미 에시카를 배신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몇 분 동안 깊게 고민하던 황후는 결정을 내렸다.
‘에시카 그년의 목숨은 며칠 뒤의 사냥제에서 거둘 것이니.’
그녀의 눈이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지나치게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좋습니다.”
**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는 에시카의 몸은 땅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바닥에서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에 들어온 레스반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에시카의 속눈썹은 길었고 그 아래 그림자가 져 있었다.
흰 이마에 땀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주변을 오러가 휘감고 있었는데, 창문이 닫혀 있었음에도 오러 때문에 잔바람이 불었다.
운기 조식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녀의 모습은 산들거리는 흰 꽃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눈을 뜬 에시카가 레스반을 보았다.
“…….”
그늘이 진 공간, 단단한 다리를 어깨 넓이로 살짝 벌리고, 의자에 등을 받친 채 자신을 보고 있는 레스반의 얼굴이 보였다.
영령이었을 적 책을 보며 상상했던 황태자의 얼굴보다도, 잘생긴 얼굴이다.
그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은 알고 있음에도 굳이 기운을 갈무리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을 보는 것이 좋았으니까.
빤히 그를 보자, 입가를 살짝 비튼 레스반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땀에 젖은 에시카에게 다가왔다.
그가 마른 손을 뻗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셀릭서를 복용하기 전과 완전히 다르군.”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움찔 어깨를 움직였다.
그리고 몇 초 뒤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에서는 자연에서만 생성되는 공청석유이지만, 이곳에서 세상에 얼마 없는 재료로 배합한 셀릭서는 아마 그만큼이나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이제 두 번째 불을 붙일 거예요.”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이며 또렷한 발음을 뱉었다.
그녀는 자신이 당초에 결심했던 첫 번째 목표를 완벽히 달성했다.
이전의 힘을 되찾는 것. 그리고, 세 번째 목표도 거의 달성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적을 향한 완벽한 복수만이 남았다.
그것은 가장 어렵고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목표였다.
“이번 불은 얼마나 크게 타오를까.”
그는 건조한 손가락으로 에시카의 볼을 쓸어올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곧 사냥일이었다.
“글쎄요,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에시카는 기운을 피부 표면으로 밀어내, 입고 있던 아슬아슬한 흰 드레스를 태워 버렸다.
어차피 땀과 노폐물에 젖어 더 쓸 수 없는 옷이었다.
레스반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이번엔 팔다리가 아닌 심장에 검이 꽃힐 거예요.”
레스반은 힘을 주어 에시카의 어깨를 밀어 눕혔다.
악의를 빛내는 그 눈빛을 마주하던 레스반은 그녀의 목에 코를 묻었다.
에시카는 알까, 제 혈기를 들끓게 하는 그 투지조차 매혹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럴 떼면 오히려 더 눈을 떼지 못한다. 불꽃에 시선을 빼앗기듯.
“그보다 먼저.”
“전하, 읏.”
“사기를 복돋아 줘.”
아찔하고, 다소 거친 레스반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