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3. 사냥제(133/192)
#133. 사냥제
2024.04.11.
“유리 아네시스요? 아, 그…….”
눈 밑에 그늘이 진 칼리안은 사냥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 리오나가 20링을 주고 중고 시장에서 사온 형편없고 빳빳한 옷이었다.
“당신이 유리 아네시스의 심문을 맡았었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그녀를 알 텐데요.”
“……모…… 모릅니다. 그러니까, 뭐, 심문하기는 했지만 맡은 죄인이 한둘도 아니고 그런 여자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조사 기록을 본 뒤 그를 무작정 다시 찾아가 유리 아네시스에 대해 물어봤는데, 눈이 커지더니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유리 아네시스와 무슨 관계였습니까.”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저는 잠깐 볼일을 좀!”
그리고 감히 하급 귀족 주제에 제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렸다.
“…….”
이른 아침, 칼리안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일 때와 달리 제 모습은 형편없이 보였다.
갈색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흐뜨러져 있었다.
수염을 깎았지만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고 자신의 자랑이던 보랏빛 눈동자 역시 탁해 보였다.
응애-
멀리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칼리안은 그것을 돌아보지도 않고 낡은 거울 속의 옷깃을 바로 세웠다.
아기의 얼굴을 보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그 콧잔등의 점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릇된 것을 의심하게 했다.
“어이구, 아론. 오늘 일찍 깼구나.”
한숨 자지도 못한 리오나가 엉금엉금 와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아기 침대 속의 아론을 들어 안았다.
“간밤에 잘 잤어요, 칼리안?”
그리고 잠이 덜 깬 얼굴로 차려입은 칼리안의 위 아래를 흝어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런, 오늘 사냥제 날인데 깜빡했네요…… 아침을 얼른 챙겨야겠어요.”
집 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빨지 않은 빨래가 널려 있었고 집 안 곳곳에는 처리되지 않은 음식물 때문에 악취가 났다.
“든든히 먹어야 황금 사슴도 사냥해 우승하죠. 황제 폐하의 눈에도 띄어서 다시 작위 복권을…….”
칼리안은 묵묵히 입을 닫은 채 옷매무새를 다듬는 데만 열중했다.
리오나는 아기를 업은 채, 쌓여 있는 식료품을 뒤적였다.
그것들은 한때 골방의 에시카에게나 제공되었던 말라비틀어진 빵과 식료품들이었다.
“그런데 칼리안.”
딱딱한 그것을 빵칼로 어렵게 잘라내며 리오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유리 말입니다.”
리오나의 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마음을 바꿔서 유리와 잘 살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리가 과거에 칼리안에게 에시카에 대한 못된 투서를 썼던 일로, 칼리안은 유리를 향한 소송을 걸었다.
아론이 태어나서 클라우스로 입적하며 유리는 자연스럽게 칼리안의 비어 있는 아내 자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것이 박탈되게 말이다.
“이러다가 내가 골병이 들겠습니다, 하아. 유리 그년이라도 있어야 집안일을 시키지…….”
리오나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억울한 듯 투덜거렸다.
“며느리를 두었다 어디에 쓰겠습니까. 나도 부려 먹을 사람이 있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아요.”
제일 좋은 것은 에시카가 정신 차리고 다시 칼리안과 재결합하는 것이었지만, 에시카는 이미 황태자비가 되었기에 그것은 물 건너갔다.
결국 못 배워 처먹은 유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유리 역시 2황자의 결혼 이후 집에 들어오고 있지 않는 중이다.
가장 유력한 이유가 현재 그녀에게 걸려 있는 소송이리라 생각했기에 리오나는 칼리안의 인장을 가져가 그것을 몰래 취소하고 왔다.
유리 년은 싫었지만 이대로 육아와 살림을 떠맡기는 싫었으니.
“그것이 비록 쓸모는 없고 못되고 천박한 년이지만, 시녀장일 때도 일은 잘했으니…….”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어머니.”
“앗, 칼리안. 아침은 먹고 가야죠.”
하지만 리오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칼리안은 문을 열었다.
리오나가 황급히 외쳤지만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리오나는 눈썹 끝을 축 늘어뜨린 채 한 손을 들어 제 배긴 어깨를 쿵쿵 때렸다.
“어휴, 어깨 아파.”
**
맑고 화창한 어느 봄날, 튜레시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사냥 축제가 열렸다.
사냥 실력을 뽐내려는 귀족들과 황실의 모든 인원이 모였으며 사제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황제와 황후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아스티아 황녀와, 새 황자비, 그리고 레스반과 에시카가 배석해 있었다.
갑옷과 무기를 잘 챙겨든 다른 사제들과 다르게 사제복만 입고 있는 에릴 퓨즈는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잘 지킬 것을 명렁하는 것이겠지.
그는 이 불길한 사냥터에 입성해야 하는 운명이니 말이다.
사제의 축사가 끝나고 모두가 황제와 황후의 앞에 서서 입성의 허락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황태자비, 정녕 괜찮겠느냐.”
보호대도 차지 않은 에시카를 보고 황제가 눈썹을 굳혔다.
황후는 황제의 곁에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퓨즈 사제에게 들었는데, 이번 사냥 대회에서 타메론의 가호를 증명하고 싶다더군요. 퓨즈 사제도 맨몸으로 함께 가호를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무리 중 크게 움찔거리는 이가 있었는데, 말할 것도 없이 긴장한 에릴 퓨즈였다.
한편 에시카는 차분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말했다.
“지난번 폐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이후로 타메론께 기도하며 반성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때의 죄를 씻고 타메론께서 제 뒤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에시카의 목소리에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브레이튼이 여자를 죽였다는 것이 사실이 된 이상, 그녀의 말은 억울했던 당시의 상황을 끄집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던 황후를 비난하는 것이다.
“…….”
황제는 에시카를 질책했던 일에 대해 미안해하며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공식적 자리에서 황후를 비난할 수 없었기에, 황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황후를 한 번 바라본 뒤 따뜻하게 에시카에게 말했다.
“타메론께서 네 뒤에 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 그러니 단단하게 채비하거라.”
“송구하지만 폐하. 윤허해 주십시오. 저는 정말 타메론의 가호를 보고 싶습니다.”
“허어…….”
“자신이 있습니다. 무엇도 저를 해치지 못하리라는 것을요.”
에시카를 죽이려 했던 황후는 그녀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 에시카를 납치했을 때 기사들처럼 검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것도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강해도 검이나 화살 앞에서 인간의 맨살은 유약하다.
겁 없는 에시카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네년이 뭘 잘못 먹었나 보구나. 혹은 사냥제를 얕잡아 보고 있던지.’
매년 사냥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의 인원이 죽어 나갔는데, 동물을 잡다 생긴 사고는 그중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귀족들 간에 원한이 있는 자나, 정적을 제거하는 합법적인 음모의 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냥제에서 희생된 이들은 타메론의 품으로 돌아간 것으로 간주되며 신전에서 합동 장례식이 치러진다.
에시카는 필히 직감했어야 했다. 이 사냥제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네 뜻이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황제는 에시카 옆의 레스반을 보았다.
아무리 그녀가 맨몸이라고 해도 제 남편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황제는 아들을 믿었다.
“혹시…….”
에시카가 다시 황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이번 대회에서 신념을 입증하고, 최고의 성과를 올린다면 폐하께서 제게 상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에시카의 말에 황후의 손이 움찔했다.
황제는 눈썹을 굳혔다.
“최고의 성과라면 황금 사슴을 잡아오겠다는 것이냐.”
황금 사슴은 뿔에 금칠을 한 사슴으로, 사냥제에서 그 사슴을 잡는 자가 우승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튜레시안 제국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슴에 대한 경쟁은 치열했고 그것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황태자비가 직접 사슴을 잡는다면 내 무슨 소원이든 못 들어주겠느냐. 하지만 레스반의 힘을 빌려 놓고 직접 잡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당연히 스스로 잡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황태자 전하의 도움 없이.”
황제의 미간이 움찔했다.
“네가 직접?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더냐.”
“타메론의 가호가 제게 임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꼭…… 제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사냥제에 여성 참여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사냥제에 황태자비와 같이 고귀한 여인이 참여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고.
이는 참가자들의 사기를 돋울 하나의 요소였다.
황금 사슴의 주인을 기다리는 제국민들에게, 황실이 제국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보이는 성의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결과가 어찌되었든, 황제는 에시카를 칭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금 사슴까지 잡아온다니…… 그녀는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는 것 같았다.
“그래, 만약 황태자비의 힘으로 황금 사슴을 잡는다면, 아주 큰 상을 주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들어주겠다.”
황제는 에시카에게 말했다.
그리고 레스반을 보고 눈빛으로 말했다.
황태자비가 다치지 않도록 잘 챙기라고.
그녀는 어렵게 들인 아들의 부인이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하지만 황후는 입꼬리를 비틀며 생각했다.
‘타메론의 가호는 내게 있으니, 너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사재까지 몽땅 털어 마련한 함정은 아가리를 벌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