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7. 예상치 못한 습격자(137/192)
#137. 예상치 못한 습격자
2024.04.15.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에우니브스의 건축물은 잘 지어진 별장처럼 보였지만 황궁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신전 건축이 완료되기까지만 머물 계획이었는데 이제 기약 없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오늘이 사냥제 날이군…….”
브레이튼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사냥제에서였던가, 지지난번이었던가, 어떤 얼빵한 놈을 죽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몇 놈이나 죽어 나갈까 궁금하다.
늘 바깥으로만 돌던 황태자가 출전하니 더 많이 죽게 될지도.
방에는 에우니브스의 특산품인 과일들과 진귀한 음식이 쌓여 있었지만 브레이튼은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단둘, 술과 여자였다.
황궁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가 이곳에 보내진 이후로 하루하루가 너무도 지루했다.
얼마 전 들려온 소식은 그를 더욱 좌절하게 했다.
‘황명으로 브레이튼 루세인 황자를 에우니브스 신전에 종신 유폐한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다면 에우니브스에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그 여자들을 죽인 줄은 몰랐다.
그냥 애를 떼고 쫓아 낸 줄 알았지…….
게다가 몽땅 그걸 제게 뒤집어씌우시다니. 기분이 참으로 더럽기 그지없었다.
“후우…….”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짓다가 물컵만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물은 마셔도 마셔도 목이 탄다. 술이 있어야 좋은데.
하지만 어머니는 제 팔다리를 자르기라도 할 요령인지, 술과 여자를 엄금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시종들을 때려도 그들은 그 어느 것도 브레이튼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음식을 만드는 자들까지 모두 남자로만 배치했다.
건드릴 여자가 없다니, 이건 재앙이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네놈들 다 죽여 버린다.”
브레이튼이 이를 갈며 혼잣말을 하자 문가에 서 있던 시종들 몇이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도 개 같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야겠지, 생각하며 브레이튼이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우려던 찰나였다.
“황후 폐하의 서신이 왔습니다.”
시종 하나가 들어와 브레이튼에게 고했다.
그는 시종들 중 가장 높은 위치였으며, 그의 손에는 빳빳한 고급 종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시종은 브레이튼에게 그것을 내밀었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시종에게 명령했다.
“네가 뜯어서 읽어 봐.”
그러자 시종이 당황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특수 기밀이라고 하셨는데…….”
“제기랄,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브레이튼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시종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렇잖아도 어머니에 대해 굉장한 유감을 가지고 있는데 짜증나게 하다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 그럼, 다른 시종들이라도 물리겠습니다.”
자신을 죽일 듯한 브레이튼의 패악에, 시종은 덜덜 떨며 말했다.
브레이튼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렸고 곧 시종들이 물러났다.
브레이튼은 나른한 표정으로 목 주변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읽어.”
“화…… 황자 전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걸 제가 읽기에는…….”
시종은 자비를 구걸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브레이튼은 눈썹을 구기며 말했다.
“읽으라고. 나 글 못 읽으니까, 어차피 네가 읽어야 해.”
“……네?”
브레이튼의 말에 시종은 흠칫했다.
튜레시안 제국의 문맹율은 3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이는 주변의 왕국들 중 현저하게 낮은 수치였다.
그런데 황제의 아들인 황자가 글을 읽지 못한다니…… 대체 뭐지?
“난독증이 있다고. 글자 자체를 못 읽는 게 아니라, 아무튼.”
황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아, 아…… 알겠습니다.”
시종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독증이라, 아주 문맹은 아니더라도…… 황자로서는 엄청난 약점이다.
이런 게 있다고 알려지면 2황자파나 황후 세력에 큰 파장이 일겠지.
제게 솔직히 말해 주는 것을 보면, 브레이튼 황자는 어쩌면 자신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질이 더럽기는 하지만 황태자처럼 잔혹해 보이지는 않았다.
“황후 폐하께서 쓰신 서신을 낭독하겠습니다.”
시종은 편지를 펴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네가 나에 대해 화가 났다는 것은 알지만 믿어 다오. 당연히 널 거기에 평생 유폐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브레이튼. 그년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을 파 놓았으니까 말이다. 곧 일어날 일은 분명 우리에게 기회가 될 거란다. 카모스가 우리를 도울 거야.”
동쪽 섬 카모스라, 그곳의 영토는 튜레시안만큼이나 넓다고 알려져 있었다.
마법과 해상전에 특출난 그들은 매우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다리가 꺾였어도, 폐하께서는 너를 필히 다시 부를 것이며.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공부에 정진하고 있으렴. 사냥제의 비보를 곧 알리도록 하마.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시종을…….”
시종은 글을 읽다가 멈추었다.
그다음 내용에 눈이 커지고 손이 벌벌 떨렸지만 때는 늦었다.
푹- 하고, 브레이튼의 검날이 심장에 들어온 것이다.
시종은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브레이튼은 잔혹히 웃으며 시종의 몸에 박힌 칼을 뽑았다.
풀썩- 시종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고 바닥에 피가 고였다.
동쪽 폐허에서 발견된 열한 구의 시체 중 여덟 구는 여자의 것이었고 세 구는 남자의 것이었다.
남자 시체들은 브레이튼의 짓이었다.
**
에시카는 축 늘어진 황금 사슴을 내려다보았다.
몸통에 단검이 꽃힌 그것은 가련하게 목을 늘어뜨리고 있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혈이 한 바퀴 돌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 멀리서도…… 무수한 혈향이 풍겨오는 것 같다.
그것은 짐승의 것이 아닌 사람의 것이었다. 사람 사냥이 진행되고 있다.
멀리 있어도, 그녀는 레스반을 느낄 수 있었다.
에시카는 사슴에게 약효가 도는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았다.
해가 중천에 뜨니 날이 더워졌다.
구름이 흘러가며 잠시 그늘을 만들었으나 그것은 곧 스쳐 지나가며 사라졌다.
황후는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에시카가 검을 잘 쓰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최근에 에시카가 어떤 성취를 이룬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상승이었으니까 말이다.
에시카는 과거의 지식을 가지고 꾸준히 수련해왔던 데다가, 셀릭서를 복용했기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성취 이전이라면 그들에게 당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전의 힘을 되찾은 지금에 스무 명의 기사급들이야 쉬운 일이지.
그리고 황후의 계획을 역이용해 더 큰 판을 짜 놓았다.
황후는 나중에야 제 계획이 실책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잠시 쉬며 생각에 빠져 있던 에시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때,
“……!”
에시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림자처럼 자신을 향해 뻗어 있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것이다.
방심한 새 다가온 그것은 사슬처럼 에시카의 몸을 얽어매고 있었다.
언젠가 황후에게 납치당했을 때 같은 기운이 위협적으로 넘실거렸다.
‘마법!’
그런데…….
‘그자가 아니야. 이건…….’
마법의 힘은 분명하지만, 어지간한 뜨내기 정도가 아니었다.
검술을 중시하는 튜레시안 제국의 정상에 소드 마스터가 있다고 하면, 마법을 중시하는 국가의 정상에는 대마법사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문 없이도 마법을 운용하며, 그 능력은 소드 마스터에 비견된다.
그러니 지금의 에시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힘은…… 필시 그런 엄청난 자의 것이었다.
‘대체 누가!’
에시카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이건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푸른 눈동자가 당황에 물들어 흔들리고 있었다.
황후가 그런 거물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
아니, 돈만으로 의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날 잡을 덫으로 이런 걸 놓았다고?’
저벅, 저벅, 누군가가 에시카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에시카는 겨우 정신을 바로 하고 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강력한 마법의 힘이 사슬이 되어 몸을 압박하고 있었고 몸 안의 오러를 있는 힘껏 일으켜도 그것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
그는 에시카의 앞에 멈추어 섰다.
검은 가면을 쓴 자였는데 키는 레스반만큼 컸고 기사처럼 어깨가 넓었으며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뚫린 눈 부분으로 어두운 녹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과 마주한 순간 몸을 누르는 압박감이 더욱 무거워진다.
“……이런.”
남자에게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는 듯 약간의 당황이 섞인 목소리였다..
“당…… 신…… 황후의…….”
에시카의 무거운 입술이 겨우 움직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하기 힘들었다.
마치 만근추가 몸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이다.
자신이 이 경지의 고수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몸이 짓이겨져 바닥의 돌맹이처럼 변했을 것이다.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에시카는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복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레스반이…….
“후…… 곤란하네요. 유부녀라니.”
문득 가면 속 남자에게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난생 처음으로 마음에 든 레이디였는데요.”
그는 뭔가를 고민하듯 에시카를 바라보았는데 에시카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놓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남자에게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지, 살려 줄까요?”
에시카는 대답 없이 그를 노려보았고 그는 에시카의 반응을 관찰하듯 한참 동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1초가 10초처럼 길었고 땀이 비오듯 온몸에서 흘렀으나 에시카의 부릅뜬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덫에 잡힌 토끼를 관찰하듯 보던 그의 녹푸른 눈이 순간 옅게 일렁였다.
“역시 안 죽이는 게 좋겠어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입술이 달싹이는 모양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휙 뒤돌았다.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강력한 마법의 기운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어깨 위에 얹힌 바위가 갑자기 깃털로 변한 느낌이었다.
에시카는 그 엄청난 충격에 바닥에 넘어지며 몸을 꿈틀거렸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내력을 집중하기 위해 참았던 숨이 가쁘게 튀어나왔다.
에시카는 주먹을 꽉 쥔채, 가물거리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저놈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