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8. 반역의 전말(138/192)
#138. 반역의 전말
2024.04.16.
날뛰며 폭주하던 기운이 안정된 것은 삼십 분은 지난 후였다.
에시카는 고르게 숨을 내어 쉬며 가부좌를 풀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
저보다 더한 강자가 목 가까이 칼을 들이대고 관찰하는 듯한 그 기분, 더러웠지.
“…….”
영령이었을 적도 자신감 넘치는 무림고수이기는 했지만,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마교주인 아버지나 독영은 영령의 하늘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레스반에 필적하는 고수가 하나 더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
자신을 죽일 뻔한 남자를 잠시 떠올린 에시카의 미간은 잔뜩 찌푸러져 있었다.
어쨌든 황후가 외부에 도움을 청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계획은 에시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철저했고 말이다.
어쩌면 방심한 쪽은 에시카였다.
한 번의 승리로 황후를 얕보았던 것에 대해서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제 위험을 감수하고 그처럼 강한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일만큼 황후 역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으니, 까딱 놓쳐다가는 벼랑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노라, 에시카는 되뇌었다.
그런데 황후의 사주를 받았을 자가 자신을 살려 준 이유는 잠깐의 변덕일까?
“곤란하네요.”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드는 순간이 생생했다.
“유부녀라니.”
어떤 단락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선 그의 정체부터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그가 이번 일로 끝나게 될 인연이 아니라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에시카는 눈매를 일그린 채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애꿎은 돌을 걷어찼다.
그리고 사슴의 상태를 한 번 본 뒤 사슴의 뿔에 손을 올렸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우선 사냥제가 끝난 뒤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
에릴 퓨즈는 찢어진 옷 새 너덜거리는 철판들이 보이는 채, 정신없이 말을 달려 겨우 사냥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 댔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 큰일입니다. 큰일!”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황후는 눈썹 끝을 올렸다.
누더기 같은 차림새와 어디 얻어맞은 듯 부어 있는 얼굴.
황제는 엉망이 된 에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반역을……!”
그 말에 황제의 눈썹이 굳었다.
“귀족들을 죄다 죽이고 있습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폐하!”
황후는 재빨리 일어서서 소리 높여 말했다.
“어서 폐하를 보호하라!”
황후의 말에 황궁 기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전병들은 에릴이 나온 사냥터 입구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황후는 이렇게 될 것까지 예상하고 판을 짠 것이다.
제 명을 받은 2황자파의 귀족들이 에시카를 죽이려 하면 황태자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귀족들을 죽이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전쟁터에서처럼 날뛸 것이다.
“폐하! 황태자가 반역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피하시지요!”
“그럴 리가 없다.”
“욕심에 눈이 먼 것이 분명합니다. 저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폐하의 신하들입니다!”
그럼 그 순간을 빌미로 삼아 반역의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이곳에 황태자의 편은 없으며, 2황자파의 귀족들조차 황후에게는 오늘을 위해 준비될 희생말일 뿐이었다.
‘그자’가 황태자비를 죽이고, 이렇게 황태자까지 처리하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아스티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예상치 못한 아스티아의 참견에 황후의 눈썹이 움찔했다.
황제는 아스티아를 보았고, 그녀는 천천히 걸어 황제에게 다가가 예를 표했다.
급박한 이 상황과는 맞지 않는 단정한 몸짓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절대 반역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아스티아 황녀의 말에 에릴 퓨즈의 눈이 커졌다.
황녀는…… 분명 황후의 편일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제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오히려 반역을 막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의 일 물밑에는 지독한 음모가 깔려 있습니다.”
황제의 창백해진 얼굴의 눈가가 움찔 움직였다.
황태자의 반역이라니, 레스반의 반역을 믿고 싶지 않은 그는 황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황후는 눈을 부릅뜬 채 갑자기 재를 뿌리는 아스티아를 보았다.
아스티아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폐하께 가져다드리거라.”
황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시종들이 천에 싸인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것을 본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궤짝 안에서 나온 수십 권의 책들은 ‘역경전’이었다.
수년 전 유행했으나 엄격한 황명에 의해 전부 불태워지고 금서가 된 그것.
그리고 아스티아가 황후에게 배워 보고 싶다고 요청한 그것이었다.
역경전은 타메론의 선지자가 헤노모스를 복용하고 썼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무아지경으로 타메론을 찬양하면서 현 황실에 대한 저주를 내리고 있다.
루세인 황실의 피가 끊어진 뒤 진정으로 타메론의 가호를 받은 새 황실이 들어설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말이다.
“역경전을 믿는 사교의 잔당들을 반역죄로 간주한다던 황명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이렇게 많은 역경전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황궁에서 발견했고요.”
황제의 눈썹 사이 주름이 깊어졌다.
“그게 진실이더냐.”
“그렇습니다. 황후 폐하께 역경전에 대한 말씀을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사제가 제게 역경전을 가져다주더군요.”
황녀 아스티아의 말에 이를 듣고 황제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황후는 당황하며 아스티아의 말을 끊으려 했다.
“황녀, 대체 무슨 말을……! 그리고 이 급박한 상황에 역경전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저 역경전은 황녀에게 나타낸 믿음의 증거이자 그녀를 종교 안으로 끌어당길 밧줄이었다.
혹여 제 발목을 잡을까 하여 직접 건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저는 사람들을 시켜 사제를 추적하게 했고 역경전이 보관된 창고를 알게 되어 이렇게 그것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제는……”
“황녀!”
“에릴 퓨즈! 저자입니다!”
황녀가 손가락을 들어 에릴 퓨즈를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에릴 퓨즈는 창백해진 얼굴로 멍하니 굳어 있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황녀, 지금은 황태자가 반역한 급박한 상황이오! 그게 이 상황과…….”
“관련이 있지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지금 사교의 반역을 제압하고 계시는 거니까요. 반역자는 황태자 전하가 아니라 황후 폐하와 에릴 퓨즈입니다!”
아스티아가 강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치자 황제의 눈동자가 다시 격하게 흔들렸다.
“황녀, 지금 감히 내게…….”
황후는 분노로 파들파들 떨며 외쳤지만 아스티아는 대꾸하지 않고 시종에게 명령했다.
“맨 위의 것을 폐하께 가져다드려라.”
아스티아의 말에 시종이 역경전 중 하나를 황제에게 가까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황제의 눈썹이 굳었고 곁눈질로 본 황후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황제가 들고 있는, 기괴하게도 피로 쓰여진 그 책에는 에시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황후 폐하께서 붙여 주신 사제 에릴 퓨즈가 황태자비 전하께 요청한 과제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에릴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에시카에게 시켰던 과제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황급히 변명했다.
“그…… 그건…… 황태자비 전하의 교육을 위해 제가 쓰라고 했던…… 필사 과제일 뿐입니다. 왜 갑자기 그것을.”
황녀 아스티아는 입술 끝을 비틀며 그의 말을 끊었다.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가소롭고 역하군요.”
에릴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분 나쁜 여자의 피로 쓴 저 과제는 몇 장 펼쳐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에릴 퓨즈는 황태자비 전하께 역경전을 피로 필사하도록 시켰어요.”
“……!”
피로 쓰인 책장을 넘기던 황제의 눈썹도 서늘하게 굳었다.
타메론 경전이 아닌 역경전이 맞았다.
“폐하……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화…… 황태자비께서 왜 역경전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도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황태자비의 교육을 위해 자네가 쓰라고 했다고.”
“하지만 역경전은 아닙니다! 제가 쓰라고 했던 것은 분명……!”
“황제 폐하. 황궁의 사제들은 모두 사교의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귀족들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고, 아마 역경전대로라면 필히 황태자비 전하와 황태자 전하를 죽이려 했을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아스티아의 배신에 에릴의 낯빛이 더욱 하얘졌다.
‘서…… 설마…… 그 마녀가 일부러 역경전을 쓰고 함정을……!’
“저는 억울합니다! 폐하!”
“역경전에는 그러한 구절이 있더군요.”
황녀 아스티아가 또렷하고 낮은 목소리로 구절을 읊었다.
“백은의 양의 피로 우리의 역사가 쓰일 때 타메론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
에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타메론 경전에는 백은의 양이 황실을 수호하는 신성한 존재로 등장한다.
백은의 양이 나타나는 곳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역경전에 나온 피를 흘리는 백은의 양…… 이것은 마치 역경전을 문자 그대로 제 피로 써야 했던 에시카를 뜻하는 것 같았다.
어쨌건 에시카에게 피로 필사를 하게 한 것은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경전의 내용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꼿꼿한 태도의 새 황태자비를 죽고 싶어 할 만큼 괴롭히라는 황후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황후는 손끝을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스티아, 망할 종자 같으니라고. 네년이 감히 네 뒤통수를 쳐?
아니, 아니었을 것이다. 설마 처음부터 에시카의 편……?
황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처음에 코르티잔의 시체를 바꿔치기할 때부터 그녀가 에시카의 편이었다면 대체 에시카의 계획은 언제부터 뻗어 있던 것이지?
“에릴 퓨즈는 역경전에 나오는 ‘백은의 양’이 황태자비 전하라고 생각하여 그 피로 이 역경전을 쓰게 했으며, 사냥터 안에 들어간 일부 귀족들은 에릴 퓨즈가 계획한 판대로 사냥제에서 황태자비 전하의 피를 흘릴 생각이었습니다.”
“……!”
“제게는 그에 대한 증거가 또 있습니다. 가져오거라!”
2황자파의 귀족들이 사냥제 참여를 위해 집을 나섰을 때, 에시카는 하인즈 공녀의 노트를 참고하여 조사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메르힌 부인에게 전달하여 케이크 배달을 핑계로 가장 말단에 있는 자들의 집을 뒤지게 하였다.
그들은 2황자파의 주요 인물이 아니었기에 방비가 시원치 않으리라, 예상했던 것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에릴 퓨즈의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황제는 그것을 읽었다.
“사냥제에 마녀 사냥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명단은…….”
에릴 퓨즈의 세력이 황태자비를 죽이려 했다는 말에 귀족들이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니 황태자 전하께서는 반역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교의 반역 세력에 맞서 싸우고 계신 것이죠. 전쟁터에서 튜레시안을 위해 싸우셨듯 말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이때 사람들의 시선이 사냥터 입구 쪽으로 쏠리더니 황태자의 부하들이 부상당한 죄인들을 끌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죽은 자도 있었다.
살아 있는, 손이 묶인 귀족들 역시 몸의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만약 아스티아가 황태자의 무고를 주장하지 않았으면 그들은 곧바로 반역의 혐의로 공격당했을지도 모른다.
황제는 엄중히 명령했다.
“황명이다. 검을 거두고 저들을 맞아라!”
곧이어 웅성대던 귀족들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아아아악!”
“제드! 이게 무슨 일이야!”
팔마니아 백작 부인과 알헤미츠 백작 부인을 포함한 몇몇 귀부인들은 자신의 남편, 혹은 아들의 부상과 죽음에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황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타메론과 종교는 그녀에게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에시카 그 망할 마녀는 지금 자신의 심장에 못질을 하려 하고 있었다.
2황자파를 몽땅 사교의 혐의로 묶어 절벽에서 밀어 버리려는 것이다.
그녀의 손은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