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39. 황금 사슴의 주인(139/192)
#139. 황금 사슴의 주인
2024.04.17.
황태자의 부하들이 죄인들을 끌고 나온지 한 시간여가 지났다.
“황태자 전하의 말씀대로 황태자비 전하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었다는 실토를 받았습니다.”
황태자비가 어느 쪽으로 오든 공격하도록 대기하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게 당한 자들도 있었지만 황태자비에게 직접 당한 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들이 황족을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리하임 백작의 보고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 그럴 리가요! 황태자 전하께서 그저 제멋대로 마구잡이로 귀족들을 잡아 죽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반역할 의도가 아니라, 그저 황태자비 전하 하나만을…….”
“증거들을 보고도 감히 변명거리가 남아 있는 것인가!”
에릴 퓨즈의 말에 황제가 노한 음성으로 버럭 외쳤다.
아스티아의 변호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사냥터에서 나오고 있지 않은 황태자는 황후의 매도에 의해 이미 반역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전의 효과는 대단했다. 부상을 입어, 혹은 시체로 나오는 2황자파의 귀족들이 오히려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
튜레시안을 위해 지금껏 수많은 전공을 세웠던 황태자보다는, 황태자비에게 피로 역경전을 필사시키고 죽이려는 세력이야말로 악의 근원답지 않은가.
리하임 백작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사냥제 전에 황태자비 전하께서 타실 말에게 약을 먹였다는 실토도 나왔습니다…… 이를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 할 듯합니다.”
“……허어…….”
“그리고 고작 황태자비 전하 하나를 죽이기 위해 그런 무장을 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혹여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정말 역경전의 내용대로 반역을 꾀했는지도 의심이 되는 상황으로도 보입니다.”
황후는 기가 막혀서 죽을 것 같았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리하임 백작은 이를 철저히 조사하라!”
“명령 받들겠습니다.”
이제 모두가 황후를 의심하고 있었다.
반송장이 되어 사냥터에서 나오는 자들은 대부분 2황자파의 귀족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편지를 보낸 에릴 퓨즈는 분명 황후의 사람이다.
‘제기랄…… 저 망할 것들이!’
황후는 핏기가 사라진 입술을 깨물었다.
마녀 같은 에시카 클라우스의 무력이 고강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철저히 준비시켰을 뿐이었다.
오죽하면 그녀를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그자와 손까지 잡았겠는가.
“바넷! 정신 차리렴!! 어흐흑!”
“어서 의사를 데려와! 제드!!”
“어머니……흑흑…… 앞이 안 보여요!”
병사들이 시체가 되지 않은 부상자들을 거칠게 끌어 일으켰다.
그들은 황궁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바넷 팔마니아와 제드 알헤미츠가 한쪽 눈을 나란히 잃고 나타나자 두 백작 부인은 거의 실신할 지경처럼 보였다.
그들은 리오나 클라우스의 친구들이었으며 황후의 세력 중 하나였다.
“당장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자들의 치료는 황실 조사단에서 차차 시작할 겁니다.”
“이렇게 아파서 죽으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
“이자들은 반역의 혐의가 있는 자들이며, 황제 폐하의 안전 앞에서 불경히 행동하지 마시오.”
리하임 백작이 검을 내뽑으며 말했다.
눈이 벌게진 팔마니아 부인과 알헤미츠 부인은 곱게 키운 제 아들들을 끌어안고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적어도 살아 있었기에, 시체가 되어 돌아온 사람들보다는 나았다.
“이런…… 어찌 사냥제에 이런 고약한 일이 있을 수가!”
빤히 드러난 상황에 황제는 깊이 탄식하며 눈썹을 굳혔다.
그는 황태자비의 피로 쓰여진 불길한 역경전을 리하임 백작에게 건네었다.
이를 쓰게 했다고 고백한 에릴 퓨즈가 불순한 세력임은 확실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애당초 황태자비가 백은의 양 따위일 리가……!”
“폐하. 모든 일의 원흉인 에릴 퓨즈를 즉시 처형할 것을 명령해 주십시오.”
에릴 퓨즈의 말을 끊은 것은 놀랍게도 황후였다.
황제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황후와 눈을 마주쳤다.
황후의 눈동자에는 다소 급하며 치열한 악의가 불꽃처럼 튀고 있었다.
한편 에릴은 당황한 표정으로 황후를 보았다.
“사교의 우두머리인지도 모르고 제 아래 두었다니 비통하며 송구할 따름입니다. 감히 불순한 사교의 일원이 황궁으로 들어와 황실과 귀족 사회를 농락했다면 한시라도 더 살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황후 폐하! 어째서 저를! 제가 사교의 우두머리라니요!”
“어서 즉결 처분을 내려 주시옵소서.”
황후는 곧바로 꼬리를 잘랐다.
이러한 태도는 향후 에릴이 황후에 대해 실토하더라도, 그의 원망 때문에 그럴 뿐이라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황녀가 황후의 말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당장 죽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연류된 세력들을 색출할 때까지는.”
“…….”
“그렇게 해서 이득을 볼 이는 에릴 퓨즈와 관계있는 자뿐이겠죠.”
자신을 칭하는 것이 분명한 어조에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녀는 죽일 듯한 살기를 담고 아스티아를 보았지만, 아스티아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선명하게 말이다.
“황태자비는 어디에 있는가. 황태자는 아직도 사교의 세력을 상대하는 중인가?”
황제가 문득 황태자의 부하들에게 물었다.
황녀의 말을 들어 보았을 때 이 사건의 핵심은, 사교의 세력들이 황태자비를 역경전의 ‘백은의 양’으로 취급하고, 그녀의 피를 흘리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곧…….”
부하가 말을 끝내기 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사냥터 초입으로 향했다.
수풀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고, 황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레스반 데온 루세인, 고귀한 황태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옷은 피에 젖어 있었고 그는 전쟁광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남자답게 강인한 금안을 형형히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황태자비 에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은 백은의 양의 털처럼 보드랍게 살랑대고 있었으며, 푸른 눈동자는 침착하고 초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많이 헤져 있었지만 다친 곳은 없었고 몸가짐은 우아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뿔을 가진 사슴이 함께 걷고 있었다.
**
자신이 앉아 있던 나무 아래 에시카는 다 쓴 단검을 묻었다.
그리고 잠시 기절해 있었으나 정신을 차린 황금 사슴을 보았다.
사슴은 빤한 검은 눈동자로 에시카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뭔가에 홀린 것 같이 혼탁했다.
동물을 길들이는 기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령이었을 적 마교에서 수련할 때 그것들에 대해서도 배웠고 말이다.
뿔이 웅장한 숫사슴은 발정기에 이른 암사슴의 방광 주머니를 다진 뒤 그것을 몇 가지 약재에 섞여 냄새를 맡게 하면 온순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기에 영령은 더 기발한 수를 생각해 냈었다.
약재를 숫사슴의 피에 직접 주사하는 것이다.
냄새를 맡는 것과 혈에 흘려보내는 것의 기전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일종의 실험 정신이었다.
이게 될 리가, 했었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정말 되었다.
“…….”
사슴이 온순해진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고, 에시카는 싱긋 미소 지으며 그것을 쓰다듬었다.
무기 상점에서 산 단검은 독을 묻히려는 것이 아니라 약을 넣으려는 것이었다.
바늘로 주사하는 것도 좋지만 가죽이 질긴 야생 사슴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에시카의 장기대로 단검을 사슴의 엉덩이 부위에 던진다.
사슴은 예상대로 곧바로 쓰러졌고 약효가 충분히 돌 만한 시간이 흐르니 온순해졌다.
“귀엽네.”
에시카는 몇 번 더 사슴을 쓰다듬었다.
금칠한 황금 뿔을 가진 사슴은 에시카의 손길을 원하는 듯 머리를 자꾸 들이밀었다.
그러던 와중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
자욱한 혈향을 풍기고 있는 남자는 레스반 데온 루세인, 황태자였다.
그는 승전보를 안고 귀환하듯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에시카에게 걸어와 마주 섰다.
“……생각보다 늦어졌군.”
에시카가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지으려던 때였다.
황금 사슴이 레스반을 제 뿔로 밀려고 했다.
“…….”
레스반은 눈을 찌푸리며 황금 사슴을 보았다.
적대하는 듯한 짐승의 눈빛이 느껴진다.
“아니야, 괜찮아.”
에시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제야 황금 사슴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마치 주인을 보호하려는 개처럼 행동하는 사슴이었다.
레스반은 하, 하고 숨을 내뱉더니 눈매를 조금 찌푸렸다.
“나를 견제하는군.”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풋 웃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나서 그에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아까…….”
레스반의 몸은 피에 젖어 있었지만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다.
그렇다면…… 역시, 그자를 만난 것은 아니겠지. 그자라면 레스반이라도 혈투를 벌여야 했을 테니 말이다.
“아니에요. 돌아가서 이야기할게요.”
에시카는 고개를 젓고는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내딛자마자 알싸한 통증에 눈을 찌푸렸다.
“아야.”
에시카의 반응에 레스반은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발등에 긴 생채기가 난 것을 발견했다.
괜찮다고 하려 했지만, 레스반은 곧장 장갑을 벗어 던지고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은 뒤 손을 뻗어 그 상처를 가늠하듯 부드럽게 매만졌다.
조금 당황한 에시카는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에시카의 상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쯤은 괜찮…….”
“쉬이.”
레스반이 나직히 에시카를 타이르듯 말했다.
“또 다쳤군.”
상상 이상이었을 전쟁을 벌이고 온 그가 자신의 상처를 중상이라도 되는 듯 눈매를 잔뜩 찌푸린 채 보고 있는 모습에 에시카의 입술에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