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 큰 그림, 그리고 동경(14/192)
#14. 큰 그림, 그리고 동경
2023.12.14.
“공작 부인께서 오늘 꽤나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이건 그저 사교를 위한 자리일 뿐인데요.”
마샬은 에시카를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여자로 몰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에시카는 마샬의 생각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사교를 위한 자리이지만, 서로를 향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누군가 스푼을 떨어뜨렸다.
화기애애하던 티파티장에는 차갑고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이를 악물던 마샬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무례와 실수는 차이를 둘 필요가 있죠. 팔마니아 부인께서는 그저 착각으로 실수하셨을 뿐인데, 너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시네요. 공작 부인께서…… 사교계에서 활동하신 적이 별로 없으셔서 이런 자리에 익숙지 않은 모양입니다.”
명백히 에시카의 부족함을 드러내며 그녀를 배제하는 말투였다.
마샬은 이쯤 되면, 에시카가 꼬리를 내리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녀가 아는 에시카라면 아까 감히 볼란의 말에 반박해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대로 흘러간다.
“파티의 분위기를 흐렸다면 죄송합니다.”
곧장 흘러드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사과의 목소리.
“제가 백작 부인 두 분께 배웠던 사교 예법에서는, 파티를 주최할 때 배석은 작위가 높은 귀족의 부인들부터 상석에 배정하라고 하였는데…….”
볼란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사실 자리를 안내받을 때부터 클라우스 공작가를 무시하는 것인가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감정이 섞이고 말았군요.”
마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에시카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지금 에시카가 앉은 자리는 남작 부인과 자작 부인의 사이.
상석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만약 리오나가 참여했다면 지금 마샬이 앉은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더라도 에시카는 공작가의 부인이다.
예법상으로라면 마샬은 지금 큰 실례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공작 부인이 이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공작 가문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제가 백작 부인 두 분께 엉터리를 배운 것이었던지, 혹은 백작 부인께서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에시카는 차가운 미소를 옅게 흘렸다.
어느 쪽을 인정하더라도, 마샬은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상황이 왔다.
‘제기랄…… 저 망할 년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물론 에시카 따위가 바닥에 앉는다고 해도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항의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정석적이었기에 마샬로서는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무례와 실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죠? 부인께서 하신 것이 둘 중 무엇일까요?”
클라우스의 집안 사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인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두 백작 부인에게서 예법을 배우는 소녀들이 꽤 있었다.
부인 중에서는 그녀들의 엄마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대고 에시카 저 계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속이 타는 마샬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늘 범한 실례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공작 부인.”
결국 마샬도 에시카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에시카는 제게 사과하는 파티 주최자의 정수리를 보며 태연히 차를 마셨다.
사과 향을 담은 차가 꽤나 향긋했다.
**
마샬과 볼란은 파티 도중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양해를 구하고 먼저 들어갔다.
어지간히도 자리가 불편해졌던 모양이다.
“혹시 헤레미야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가,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티파티가 끝난 뒤, 에시카는 가장 늦게까지 앉아 차를 홀짝이다가, 테이블을 치우는 하녀에게 질문했다.
주근깨가 많이 박힌 하녀는 손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름의 하녀는 없습니다, 부인.”
에시카가 이 티파티에 오고 싶어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언젠가 이용할 강력한 이점 중 하나가 될 테니까.
원작 속에서 모든 비극은 이십 년 전, 악몽 같은 내란에서 시작한다.
황제와 레스반을 제외한 모든 황족이 붙잡혀 단두대에 끌려갔다.
하지만 황녀들 사이에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티아 루세인, 레스반보다 일곱 살이 어린 아기였고 유모가 용케 빼돌려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스티아는 자신이 황녀라는 것을 모르고 시골 마을에서 선머슴처럼 자라다가 열다섯 살쯤에 알게 된다.
새로 생긴 이름은 헤레미야, 스무 살쯤에 볼란 백작가의 하녀로 일하게 된다.
“……흠…….”
지금은 움직임이 필요한 때이다.
에시카는 더 멀리,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열중해서 테이블을 치우던 하녀를 보며 에시카가 입술을 달싹였다.
“동쪽 국경은 허술하고, 국경을 지나 사흘쯤 가면 마로운 평원이 있어요.”
“…….”
하녀가 접시를 치우던 손을 멈칫했다.
“신혼부부가 터전을 꾸리기에 좋은 곳이죠. 제가 마로운 평원을 추천하는 이유는 브리기트의 친척이 그곳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어서예요. 제 추천장이 있으면 적당한 집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에시카의 말에 하녀는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제게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에시카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눈빛으로 전해 줄 뿐이었다.
‘그건 당신이 황녀 아스티아이니까.’
원작에서 아스티아는 주요 인물도 아니었고, 대단한 에피소드도 없었다.
단지 에시카는 그녀의 황궁 생활이 평온치만은 않았을 것임을 짐작했다.
친오빠인 레스반은 늘 전쟁터를 떠돌았고, 이복동생인 브레이튼은 질이 좋지 않았으며.
황후는……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
에시카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원작을 읽었던 에시카는 아스티아가 황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그 이유는, 넷째 손가락에 낀 알렛 반지 때문이겠지.
“모름지기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는 남자라도, 세월의 힘을 막을 수는 없죠. 황궁에서의 화려하고 따스한 생활을 포기하고 그를 택한다면, 늙어 죽도록 후회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접시에 남은 체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스티아가 에시카에게 물었다.
“그건…… 부인의 경험이신가요?”
에시카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글쎄요. 그저 경고하는 거랍니다. 그 남자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저는 판단할 수 없지만요.”
“가치가 있어요.”
아스티아의 갈색 눈동자가 일렁였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이었다.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헤레미야 씨의 사랑을 응원하겠어요.”
**
준비해 두었던 신분 증명서와 추천장 두 장을 헤레미야에게 건네주었고, 파티를 빠져나갔다.
오늘 그녀에게 베푼 도움이 이득이 되어 돌아오는 날이 있으리라.
마차를 타기 위해 걷던 에시카의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공작 부인!”
잠시 발을 멈추자, 뛰어온 그녀가 헥헥대며 에시카의 곁에 다가왔다.
헬레니아 메르힌 남작 부인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헬레니아는 에시카의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약간 아래를 본 채 말했다.
에시카에게 말을 걸어 놓고, 다른 부인들의 눈치 때문에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한 일을 말하는 것이겠지.
한 사람을 노골적으로 따돌리던 그 자리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헬레니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까 하녀와 하는 이야기, 엿듣고 말았어요. 아, 일부러 엿들은 것은 아니에요. 저도 두고 나간 것이 있어서 잠시 찾으러 왔다가…….”
엿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를 엿들은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에시카에게 헬레니아는 순수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하녀의 사랑을 빌어 주셨잖아요. 저는 정말…… 감동했답니다.”
헬레니아는 두 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였다.
“사랑과 낭만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랑을 믿는 여인은 드물잖아요. 사실 저도 그 드문 부류 중 하나지만요.”
에시카는 경계를 풀었다.
순진한 헬레니아의 눈에는 마냥 하녀의 사랑을 응원해 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두 부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드시는 것을 보고 정말 무서우신 분인 줄 알았는데, 제 오해라는 걸 깨달았어요. 부인께서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구나. 저런 분과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시간이 괜찮으시면 제가 언젠가 부인을 저희 집에 초대해도 될까요?”
그녀가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절하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헬레니아는 에시카의 매력에 빠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에시카는 그녀가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헤레미야가 보통 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면 그녀의 입을 막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마 그녀는 에시카의 머릿속에 얼마나 살벌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렇게 하죠.”
헬레니아처럼 순진하고 솔직한 유형은 에시카로서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에시카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다시 만나요.”
아까 두 백작 부인을 상대할 때처럼 위압적인 기운이 흐르지도 않았고.
헬레니아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였다.
그녀는 원하던 것을 얻은 아이 같았다.
천천히 시선을 올려 저와 눈을 맞추며 감동하는 헬레니아를 바라보던 에시카는 뒤돌아섰다.
“……꼭 연락드릴게요!”
뒤에서 들려오는 헬레니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에시카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출발하고 멀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헬레니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 멋진 분 같아. 이것은 마치 사랑과 전쟁!”
한편 마차를 타고 백작가를 떠나던 에시카는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더니 피곤하다.
본래의 용건은 아스티아였지만, 굳이 길목에서 달려드는 살쾡이들에게 할큄당해 줄 생각이 없어서 상대해 주었더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까 나를 보고 있었던 사람이…….’
내내 누군가의 눈빛을 얼핏 느꼈던 것 같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헬레니아였다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에시카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