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0. 고귀한 백은의 양(140/192)
#140. 고귀한 백은의 양
2024.04.17.
루세인 황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동물 백은의 양. 그것은 타메론의 선지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를 보듯 우러러보는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곁에 걷고 있는 황금 뿔 사슴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황금 사슴을 길들이다니…….”
사슴은 야생동물이며 인간이 사슴을 길들여 저렇게 나란히 걷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신묘하게도 뿔에 금칠을 한 사슴은 에시카에게 붙어 있었다.
그녀의 특별함을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
에시카는 풍요의 상징인 황금뿔 사슴과 함께 황제의 앞에 멈추어 섰다.
“…….”
병사들에게 양어깨가 붙잡혀 있던 에릴은 멍하니 에시카를 보다가 손가락을 들고 삿대질을 했다.
“황태자비는 마녀입니다! 위대한 타메론의 뜻을 거스르는 간악한 여자입니다. 믿지 마시옵소서!”
“끌고 가라.”
정적 속 난입한 대역죄인 에릴의 말에 황제는 인상을 썼다.
병시들은 에릴과, 죄인 신분으로 끌려온 귀족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움은 잠시였고 신음 소리를 흘리던 그들은 금새 안중에서 사라졌다.
황후는 완전히 뒤집혀 버린 이 판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저리도 멀쩡하다니. 사재를 탈탈 털어 일을 맡긴 그 남자조차 제 뒤통수를 친 것이 분명했다.
악재가 겹치고 또 겹쳤다.
“……황태자비에게 있었던 일을 들었다.”
황제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잔잔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간악한 사교의 무리들이 저를 죽이고 황실에 반역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시카의 자세는 꼿꼿했고 그녀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은발과 은은한 그녀의 광채는 마치 그녀가 타메론의 백은의 양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적들의 배후를 명명백백 밝혀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황후의 꾹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한 말이다. 이것은 황권에 대한 도전이며 위협이니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
“레스반. 네게 이 일을 맡기겠다.”
“존명.”
“황녀 또한 레스반의 조사를 돕거라. 지난번의 일로 황녀를 잠시 오해했는데, 오늘은 참으로 큰일을 했다.”
황명이 울려 퍼졌고 이에 연관되지 않은 귀족들의 등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20년 전 반란 사태 후 많은 자들이 레스반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황실에 충성하는 척하고 적들에 가담한 자들도 그중에 있었다.
“조사에는 성역이 없으니 황후도 성실히 임하시오.”
자신을 보며 살벌한 소리를 덧붙이는 황제의 말에 황후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사교, 그리고 에릴과의 연관점을 부인했으나 의심의 시선이 목을 조여 온다.
“또한…….”
황제가 말을 이었다.
그의 눈에는 에시카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사실 에시카를 황실에 받아들일 때만 해도 다소의 우려가 있기는 했다.
레스반의 안목이 정확하다고 믿고 있기는 했지만 과거의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에시카가 엄격한 황궁에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였다.
황후의 성정은 그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모습은, 에시카가 의도한 것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황태자비는 황금 사슴을 잡아왔다. 아니, 잡아왔다기보다는 데려왔다는 말이 정확하겠군.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녀석일 텐데 신기할 따름이구나.”
에시카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얼음 같은 황후의 눈동자 속 불길이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타메론께서 내리신 상서로운 징조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죽은 사냥감을 잡아오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것을 생포해 오는 것이 열 배는 어려운 법.”
누구도 황제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오늘 사악한 이들의 음모로 인해 신성한 사냥제가 반역의 불길에 휩쓸릴 뻔했지만,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이를 지혜롭게 이겨내었다.”
위협을 뿌리치고 황금 사슴과 함께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신성해 보였다.
“황태자비. 내가 약속했던 대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원을 들어주겠다.”
피와 죽음의 냄새가 걷히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
튜레시안의 국교는 타메론 정교이다.
사냥제에서의 일이 퍼져 나간 뒤 신전을 찾는 제국민들의 여론은 들썩였다.
풍요의 상징인 황금 사슴을 최초로 길들인 황태자비.
원래 타메론 경전에서 백은의 양은 가시밭길을 걷는 고초를 겪게 된다.
타메론의 가호를 받아 튜레시안의 루세인 황실을 수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교의 무리들이 황태자비를 백은의 양이라고 여겼대.”
“그래서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거죠.”
귀족들 역시 지난 사냥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이 많았다.
만약 황궁에서 담담하게 황태자비를 ‘백은의 양’이라고 발표했으면 이와 같은 여파는 없었을 것이다.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한다며 뒤로 비웃었겠지.
그러나 사교의 무리들이 그녀를 그렇게 여겨 죽이고 반역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보다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사람들은 정말 에시카가 백은의 양이 아닐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혼한 클라우스 공작가에서의 일은 백은의 양이 겪었던 ‘가시밭길’인 셈이다.
“그리고 황태자비께서 폐하께 빌었다는 소원이…….”
“신전을 정화해 달라는 것이었잖아요.”
황제에게 빌었던 에시카의 소원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것이 사적인 영달을 위한 소원이었더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황권을 위협하는 사교의 무리들이 역경전을 읽고 퍼트리고 있을지 모른다며,
그녀는 황궁 내 신전을 포함해 제국의 모든 신전을 샅샅히 파헤칠 것을 부탁했다.
황후는 더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신전의 도덕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에시카를 맹비난했지만, 황제는 황후의 의견을 묵살했다.
황후가 꼬리를 잘라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에릴 퓨즈의 사건과 연관이 있었다.
황후를 엄히 질책하듯 쳐다본 황제는 에시카를 칭찬했다.
“황태자비에게 제국의 모든 신전 감사 권한을 부여한다. 이는 황제의 뜻이니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녀가 백은의 양이 아닐까요?”
“더 좋은 소원을 빌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황실을 위한 소원을 빌다니…… 황실을 수호하기 위해 나타난…….”
신전에 모인 부인들은 최근의 화제에 대해 열띤 토의를 하고 있었다.
“참, 그 이야기도 들었어요? 황태자 전하와 황태자비 전하의 인연요.”
“네? 그건 무슨 소리에요? 메르힌 부인.”
“20년 전에 황태자께서 죽을 뻔하셨을 때, 황태자비께서 구해 주셨대요. 백은의 양의 신성한 힘으로 말이죠.”
“어머나, 말도 안 돼요. 그때면 황태자비께서도 어리셨을 때였을 텐데.”
“제가 황태자비 전하께 확인한 사실이랍니다.”
메르힌 부인의 말에 다른 부인들이 어머머, 하며 입을 가렸다.
“완벽한 인연이네요! 어머 로맨틱해라!”
“거봐요. 황태자비께서 백은의 양이 맞다니까요. 튜레시안 루세인 황실을 수호하는 타메론의 신성한 빛……!”
**
황궁 축사에는 짚이 깔려 있었고 우리 속에 사슴이 서 있었다.
우리 밖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에시카의 입술에는 미소가 고였다.
사슴은 제자리를 몇 바퀴 돌더니, 혼탁한 눈으로 고개를 털고는 벽에 금칠이 된 뿔을 비볐다.
이제 약 기운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답답하지만 풀어줄 때까지는 참거라. 그래도 목이 베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에시카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작은 창을 통해 그녀의 긴 그림자가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다른 빛에 잠시 먹히는가 싶더니, 새로 들어온 누군가의 발과 끝이 맞닿았다.
남자의 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멈추었다.
“…….”
키가 큰 레스반이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휘감으며 그녀를 안았다.
레스반에게서는 시원한 시트러스 향이 풍겼다.
“사슴을 돌보고 있었나, 백은의 양?”
나직한 목소리가 귀를 따라 흘러든다.
에시카는 살짝 고개를 젖혀 그와 눈을 맞추었다.
어둡지만 쾌적한 축사 속, 서늘한 금안은 에시카를 담고 있었다.
장난 같은 농담에 에시카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부르시니 쑥스럽네요. 절 백은의 양으로 만든 분은 전하셨잖아요.”
감히 에시카에게 피를 내게 해 경전을 필사하게 했던 에릴을 어떻게 죽일까 잠시 고민하던 레스반은, 그가 제 꾀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자의 목 하나 부러뜨리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나, 이왕 죽일 것이라면 고리를 줄줄이 매는 쪽이 더 즐거우리라 판단한 것이다.
사교의 무리. 황후가 이용할 것이 뻔한, 황후에게 줄을 댄 귀족들까지 말이다.
레스반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에시카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생각은 맞았다.
“적지를 그대의 정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그대였지. 대담하게도.”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일 테니까요.”
에시카는 황금 사슴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황후를 무너트릴…….”
황제에게 빌 소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보석이니 보물이니…… 그러한 상들은 레스반이 주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그녀는 황후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원했고, 그녀의 집을 차지하기를 원했다.
황후 세력의 중추는 튜레시안의 국교 속 저들만의 생태계를 형성한 사교의 무리이니 자신이 그곳을 점령한다면 황후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교의 사건으로 2황자파의 귀족들 70퍼센트 가량이 쓸려 나갔다.
그리고 에시카는 신전에 대한 감사 권한까지 받음으로 적의 아킬레스건에 도끼를 박아 넣은 것이다.
“……그런데.”
레스반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쌌다.
그녀의 사파이어빛 눈동자는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대는…… 백은의 양에 대한 역경전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
레스반이 입술을 달싹여 낮은 목소리를 냈다.
“조금 배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