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2. 모른 척하는 황후(142/192)
#142. 모른 척하는 황후
2024.04.18.
“황태자비 전하께서 타메론 경전의 ‘백은의 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특히 레블론 상단의 상단주께서 직접 집사님을 만나뵙기를 바라더군요.”
“레블론 상회에서……?”
그곳은 범대륙적 상단으로,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포함한 여러 품목을 공급하고 있었다.
“네. 가네스 상단과 운 상단에서도 접촉의 움직임이 보이니, 아마 저희 생산품을 먼저 선점하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상단들은 제국뿐 아니라 외국과도 교역을 하고 있었다.
현재 에시카는 황태자비로서의 의무에만 충실할 뿐 사업체 운영은 전적으로 한스와 메르힌 부인에게 맡기고 있었다.
“메르힌 부인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메르힌 부인의 의견이야 뻔하다.
레블론 상단은 제국의 어느 곳과도 거래를 트지 않은 상단으로 메르힌에서도 그들과 협업하게 된다면 이곳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주문 폭증이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이걸 어떻게 다 처리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아요.”
“이게 다 사냥제에서의 일 때문이겠지.”
한스는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에시카의 이혼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드넓은 저택은 그녀의 소유가 되었고, 치즈 케이크와 와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메르힌 부인의 도움으로 그들의 사업은 제국의 유행을 생산해 냈다.
그녀가 황태자비가 되고 난 뒤, 황후의 눈치를 보느라 부인들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질까 했을 때 사냥제에서 에시카의 존재감이 멋지게도 폭발했다.
타메론 경전의 백은의 양, 그리고 그녀의 사업체에서 만드는 음식이라…….
아마 이번 유행은 저번 유행보다 강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맞아요. 황태자비가 되신 뒤에도 클라우스 공작가의 이혼녀라고 뒤에서 수근대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이제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하인은 완전히 바뀐 분위기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한스는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생산 라인을 넓히기 위해서는 인력을 더욱 많이 고용해야겠군.”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신문에 인력 구인 공고를 올리겠습니다.”
“새로 들어올 인력의 면접은 내가 직접 보도록 하지.”
“예? 직접 말씀이십니까?”
한낱 하급 인력일 뿐인데 그럴 필요 있냐는 듯한 하인의 눈치에 한스는 피식 입술을 비틀었다.
아마 어제 에시카의 언질을 받지 않았으면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를 흉내낸 가게들이 늘고 있다는 건, 사업 모델을 욕심내는 자들이 증가한다는 증거이지.”
“그렇다면…….”
“레시피와 경영 방법을 빼 가기 위해 입맛을 다실 거야. 인력 채용은 그들에게 좋은 기회일 테고.”
그녀의 말에 한스는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에시카는 첩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을 한스에게 알려 주었고, 한스는 면접장에서 이를 통해 인재와 도둑을 걸러낼 것이다.
“본래 공격만큼 중요한 것이 방어인 것일세.”
“……예?”
하인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긁적였지만, 한스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분의 사업은 독보적이어야 해.”
**
동쪽 섬의 왕국 카모스에서 왕실 사절단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의 해상 전력은 대륙의 어느 국가도 이겨내지 못할 만큼 강력했으며, 다섯 바다의 위대한 해적들이 세웠다고 하는 국가답게 국민 대부분이 호전적인 성향의 나라였다.
튜레시안 제국과의 관계는 깊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지도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내는 정도의 사이라고 할까.
하지만 20년 전 튜레시안의 패망에 관여했다가 적국이 되어 버린 주변국들에 비해서는, 그 정도의 사이라고만 해도 우호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스티아 황녀는 귀빈의 식사를 책임지도록, 그리고 황태자비는…….”
황후는 서늘한 눈으로 아스티아에게 명령하고는 에시카를 보았다.
“그들의 잠자리와 선물을 신경 쓰도록. 본후는 그들에 대한 포괄적인 편의를 신경 쓸 것이오.”
간간이 사냥제에서의 사교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었음에도 황후는 절대 권력을 놓지 않았으며, 남은 권력을 손가락으로 싹싹 훑어모아 꼭 쥐고 있었다.
브레이튼이 잘려 나가고, 사제들조차 심문을 받고 있는 지금 제대로 된 수족이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서도 말이다.
아스티아는 차가운 눈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에시카도 서늘한 웃음기를 띤 채 답했다.
“명령 받들죠, 황후 폐하.”
그녀들의 존재는 황후가 보기에 자신이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목을 물어뜯기 위해 으르렁대고 있는 하이에나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위기는 나를 쓰러트릴 수 없어.’
황후는 손을 들어 차를 마셨다.
‘굴러 떨어지는 것은 네년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황후 폐하.”
에시카가 입을 열어 흐르던 정적을 깨트렸다.
그녀는 다소 형형한 눈을 빛내며 황후에게 말했다.
“제가 사냥제에서 이상한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폐하께는 보고드리지 않았지만요.”
그 말에 황후의 눈동자 속이 잔잔히 떨렸다.
“이상한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사람은 저를 죽이기 위해 온 것 같았습니다.”
“사냥제에 불순한 사교의 세력이 개입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황태자비를 죽이려 한 자가 한둘도 아니고…….”
“그 사람은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에시카의 말에 찻잔을 든 황후의 손이 미미하게 움찔거렸다.
에시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황후는 뻔뻔하게 눈썹을 굳히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달그닥대는 소리가 크게 났다.
“혹시 황후 폐하께서는…….”
에시카는 황후의 표정을 관찰하듯 보며 말했다.
“마법을 쓰는 남자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타메론의 충성스러운 신도입니다. 황태자비도 알다시피 국교에서는 마법을 금하고 있죠. 제국 그 누구도…….”
황후는 눈썹을 일그린 채 에시카에게 말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
에시카는 황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거짓말이군. 알고 있는 눈빛이야.’
“만약 그런 것을 봤다면 황태자비가 헛것을 본 것이겠죠.”
황후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에시카를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일전에 황후의 세력에게 납치되었을 때, 이미 황후가 부리는 마법사에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마법사에게 당할 뻔했고 말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자에게 사주한 것인가 신기할 정도로 강했지.’
“…….”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는 에시카가 보기에, 황후가 그 일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한 거짓이었다.
‘누구와 손을 잡았던 거지?’
황후는 어림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차를 홀짝였다.
**
“유리 그년은 대체 언제 집에 들어올지…….”
리오나는 투덜거리며 아기에게 우유를 먹였다.
이제 제법 앉아서 놀 수 있게 된 아기는 스스로 젖병을 잡고 우유를 쪽쪽 빨아 먹었다.
칼리안은 구석에 등을 기댄 채 쭈그려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냥제에서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청사 조사관의 얼굴.
그리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아론의 출생 비밀.
포위당해서 죽음을 목전에 둔 에시카와, 마치, 세상에는 없는 움직임으로 그자들을 베어 죽이던 그녀의 모습.
에시카……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에시카가 아니었다.
확실하다. 자신을 따라다니던 멍청한 에시카는 벌레 하나에 기겁을 하는 여자였다.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칼리안, 요즘 마음이 힘든 건 알겠지만…….”
아론이 우유 먹는 것을 보다가 리오나가 투정하듯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 후원도 안 해 주시는 지금, 일이라도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결근을 하면 월봉이 많이 깎일 텐데.”
“…….”
“우리도 빵은 먹고 살아야죠. 그리고 칼리안이 성실하게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여야, 황후 폐하께서도 믿고 칼리안을…….”
“가 봐야겠습니다.”
황후를 언급하는 리오나의 말에 칼리안은 무언가 결심이 섰다.
그래, 이대로 손 놓고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펠로페가 했던 영문 모를 말, 이혼 전 느꼈던 이상함,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
아기에 대한 진실은…… 그래, 다녀와서 리오나에게 이야기하자.
칼리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리오나가 화색을 띠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복잡한 생각도 다 잊어버릴 겁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칼리안의 옷깃을 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녀는 칼리안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있잖아요, 칼리안. 청사에서 일하는 여자들 중 적당히 일도 잘하고 순한 여자가 있으면, 한 번 교제해 보는 것도 어떻겠습니까?”
리오나의 손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주름이 보였다.
“어차피 유리 그년도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애 봐 주고 살림할 여자도 필요하고, 칼리안도 알다시피…….”
리오나가 입술을 비틀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 아들은 피부가 거칠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잘생겼고, 여자들이 죄다 에시카처럼 똑똑하거나 유리처럼 약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 순진한 계집들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