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3. 적과 아군 사이(143/192)
#143. 적과 아군 사이
2024.04.18.
에시카가 나간 뒤 황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에시카, 그 망할 년이 뭔가 알고 있다. 그리고 눈치챘다.
자신의 실패한 계획에 대해서 말이다.
그 남자에게 의뢰금이랍시고 50만 링의 비자금을 털어 넣었는데, 에시카, 그년 하나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아악!”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황후는 남겨진 찻잔을 몽땅 바닥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쨍그랑, 찻잔 부서지는 소리에 시녀와 하녀들이 벌벌 떨었다.
“허억, 허억…….”
찻잔들을 다 깨부수고 나서야 황후는 의자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헤노모스의 약효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 헤노모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안 클라우스 경께서 방문하셨습니다.”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가문이 패망한 뒤 칼리안은 패잔병처럼 살고 있었다.
고모인 제가 인사를 오라고 해도 한 번밖에 오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들어오라고 해라.”
잠시 후 칼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옷차림은 공작 시절과는 달리 평범했으며, 구두는 조금 헤져 있기까지 했다.
황후는 칼리안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리를 꼬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더냐.”
아들도 체스의 말 정도로 생각하는 그녀가, 칼리안의 몰골이 남루하다고 해서 안쓰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저 스스로 쓸모를 잃어버린 말은 바깥에 내버려 둘 뿐.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오늘 제가 황후 폐하께 찾아온 이유는…….”
칼리안의 눈 밑은 어두웠지만 그의 눈은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제 전처인 에시카 클라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황후의 입꼬리가 조금 비틀렸다.
전에도 칼리안에게 에시카의 약점에 대해 물었지만, 칼리안은 마치 다 자신의 죄라는 듯 입을 열지 않아 답답해했었다.
하지만 지금 칼리안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앉거라.”
칼리안은 조금 전까지 에시카가 앉아 있던 자리로 발을 움직였다.
파편 난 찻잔 조각이 구두 아래에서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털썩 의자에 앉은 그의 등은 똑바로 펴져 있었고 어깨는 늠름해 보였다.
“저는 사냥제에서 에시카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물이 넘는 고강한 귀족들이 그녀를 공격했지만, 에시카에게는 속수무책이었죠.”
“…….”
황후는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
“황태자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건가?”
“네, 찰나였지만 황태자 전하에 근접하는 무력으로 보였습니다.”
“그럴 리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황후는 턱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이전에 그녀를 납치했을 때, 기사들은 에시카가 자신들보다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소드 마스터급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라면, 당시에 자신이 부리던 중급 마법사 정도의 결박은 뚫고 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
갑자기 실력이 그렇게 늘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된 것이지?
“황후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았었는데, 변하기 전 에시카는 검이라고는 아예 모르는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
황후의 눈썹이 더욱 굳었다.
유리에게도 에시카가 다른 사람에 씐 것처럼 변했다는 진술은 받았다.
리오나에게도 같은 증언을 받았고 말이다.
그런데 조카인 칼리안조차 같은 증언을 하다니.
“저는 그저 그녀가 저에 대해 너무 실망해서, 사랑을 잃은 줄 알았습니다. 차갑고 매섭게 변해 버린 태도가 저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죠.”
칼리안은 주먹을 꽉 쥐고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배신 당해 화가 났구나…… 나를 싫어하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칼리안은 신실한 사람이 아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으나 생각이 달라졌다.
“에시카의 몸에 뭔가 사악한 것이 씌었다는 것을요.”
칼리안의 보랏빛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분노와 애욕, 갈망이 담겨 있었다.
“에시카, 그녀는 원래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여자입니다. 그래, 그녀가 저를 버리다니…… 사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죠. 비록 제가 유리와 잠시 외도를 했다고 하더라도요.”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원래의 에시카라면 유리와 바람을 핀다는 사소한 이유로 칼리안에게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악한 것에 씐 에시카의 순수했던 영혼이 그 안에 갇혀 있다면, 악마가 제 몸을 움직이며 제멋대로 말을 하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거죠.”
칼리안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에시카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녀를 뒤덮은 사악한 악마에게서요. 그리고 저는…….”
칼리안은 눈썹을 일그린 채 황후에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강한 욕망이 차 있었다.
“황태자로부터 꼭 그녀를 되찾을 겁니다.”
칼리안이 말하는 내내, 황후는 단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칼리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뒤 수 분 뒤 황후의 입가가 비틀렸다.
그녀는 웃음기를 띤 채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칼리안. 내가 앞으로 칼리안을 돕겠습니다.”
그 말에 칼리안은 충성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하나의 상의할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는 칼리안의 인생에는 중대한 것이었으나, 황후에게는 하찮은 일이었다.
**
해가 져 가는 저녁.
부하의 보고에 레스반은 입술을 달싹였다.
“작위 복권은 불가하더라도, 재력을 실어 주겠다는 건가.”
브레이튼은 에우니브스의 신전에 유폐되어 있었고, 이제 황후를 지켜 줄 사제들은 없었다.
2황자파의 귀족 세력조차 거의 궤멸당하다시피 했고 말이다.
황후에게 새로운 말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짐작했으나 곧바로 찾을 줄이야.
칼리안에게 황궁 편자 납품 사업의 사업권이 넘어갔다고 한다.
물론 칼리안은 말 편자는 제 말에 달려 있는 것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권 하나가 넘어간다는 것은 꽤 짭짤한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
황후는 사업을 위해서라며 2층 저택으로 칼리안과 리오나를 이사시켰다고 한다.
그곳은 클라우스 저택에 비하면 여전히 헛간이나 다름없지만, 칼리안이 황후의 명령에 따라 뭔가를 하기에는 적절한 규모일 것이다.
“철저히 감시하도록.”
“명령 받들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레스반의 명령에 부하가 고개를 숙인 뒤 사라졌다.
레스반은 긴 회랑을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밤을 닮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흔들렸고, 그의 금안은 노을빛을 받아 조금 붉게 보였다.
조각 같은 코는 날이 어둑해질수록 그의 얼굴에 짙은 음영을 만들었다.
“마법사가 저를 공격했어요.”
황궁에 돌아온 뒤 에시카는 그런 말을 했었다.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고, 강했어요. 저보다도 더. 어쩌면 황태자 전하에 필적할 만큼.”
“…….”
“그런데 저를 죽일 수도 있었는데, 한숨을 쉬더니 풀어주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에시카의 말을 떠올린 레스반의 눈썹 끝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는 오늘 에시카의 방으로 향하는 대신 연무장으로 갔다.
에시카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레스반이 떠올린 누군가가 있었음을.
만약 그가 왔다면…….
쿠과과과광-
연무장에 선 레스반이 검을 휘두르자 먼 곳에 있는 목각 인형들이 폭발했다.
강력한 일격에 흙먼지는 번개 뒤 천둥처럼 느리게 뒤따랐다.
그의 등에 찬 푸른 망토가 펄럭, 한 번 휘날렸다.
“……조금 복잡해질지도 모르겠군.”
레스반의 입술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다시 검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도약하듯 앞으로 거칠게 돌진했다.
그가 전쟁에서 적들의 대형을 한번에 파훼하고 무너뜨리는 방법이었다.
콰직- 콰직-
돌진한 그가 남은 목각 인형들을 향해 날카롭게 검을 내지르자, 이번에는 폭탄 터지는 소리가 아닌 그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우둑- 투두둑-
무력한 그것들은 그가 죽인 조각들처럼 토막난 채 아래로 무너졌다.
레스반은 천천히 검을 바로 한 뒤 그것을 검집에 넣었다.
예리한 검날에 검집 안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이 어둠에 파묻히며 밤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어둠 속 그의 금안만이 살기에 찬 달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
오늘은 리하임 백작이 조사한 사교 사건에 대한 전말이 밝혀지는 날이었다.
웅장한 정전 안 황좌에 노쇠한 황제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황후가 앉았다.
그리고 레스반과 에시카도 옆의 의자에 앉았다.
많은 신하들이 엄숙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중앙의 푸른 카펫을 걸어 리하임 백작이 보고 문건을 들고 섰다.
그의 뒤에는 황실 조사단원들이 각이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정전에 개방감을 주는 크고 긴 창문들에서는 아침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 사교의 반역 사건의 조사를 마쳤음을 보고드립니다.”
모두의 시선이 리하임 백작에게 쏠려 있었다.
“또한, 에릴 퓨즈의 자결을 막지 못했음을 사죄드리옵니다.”
에릴 퓨즈가, 끝내 독약을 먹고 사체로 발견되었다.
황후의 입꼬리가 움찔 떨리더니 제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