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4. 신정의 주관자(144/192)
#144. 신정의 주관자
2024.04.18.
“제기랄, 악! 이게 뭐야?”
브레이튼은 진저리를 치며 제 몸에 달라붙었던 벌레를 떼어내었다.
그것은 창을 통해 부웅- 날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는 정말 질린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제기랄. 하루하루가 고역이군. 이런 시골구석에는 즐길 것도 없고 놀 곳도 없고…… 어휴…….”
그리고 비스듬이 눕혀진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푸른 하늘에는 멍청해 보이는 구름만 둥둥 떠 가고 있었다.
지금쯤 황궁에는 마실 술도 풍부하고 음식도 많고, 무엇보다 여자들…… 같이 놀 여자들이 있지 않는가.
펠로페가 주최하던 금요일의 파티도 그리웠다.
그곳의 매춘부들은 정말 보기 좋았는데 말이지.
“허튼짓할 생각 말고 조용히 계세요.”
눈썹을 굳히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기랄. 난 이제 어머니도 못 믿습니다!”
“황자 전하.”
대낮부터 누우려는데 시종이 그를 불렀다.
“왜.”
불러도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
“저, 그것이, 클라우스 공작…… 아니, 자작님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전하를 꼭 뵈어야겠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클라우스 자작이라고?”
누우려던 브레이튼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칼리안 클라우스 말이냐?”
그는 자신의 사촌 형이었다.
얼마 전 취헨 투자 실패로 큰 돈을 잃고 저택을 빼앗겼다고 들었고, 칼리안 클라우스의 전 부인이 황태자비가 되었지.
그런 칼리안 클라우스의 현 부인이라면 아네…… 뭐였지, 아무튼 황태자비의 친구였다던 그 여자인가?
“들어오라고 해.”
브레이튼은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가 무슨 일로 에우니브스까지 자신을 쫓아온 것일까?
잠시 후 한 여인이 나타나서 그에게 인사했다.
“유리 클라우스, 존귀하신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흔한 금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하지만 미녀를 질리도록 안으며 살아온 브레이튼에게 큰 감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대는……?”
“…….”
브레이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갓 성인이 된 그는 유부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유부녀 아니더라도 예쁜 여자들이 많은데 굳이 유부녀를 건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형수처럼 아름다우면 모르겠지만…… 눈앞의 유리는 잘 봐줘도 그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 부인인 힐레스 공작의 질녀는 그보다도 아래 등급이지만.
“황자 전하를 만나뵙기 위해 먼 길을 여행했습니다. 이렇게 만나뵙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왜 나를 만나고 싶어 했지?”
브레이튼의 말에 유리의 붉은 눈동자가 일렁였다.
“저는 제 명예를 비롯한 모든 것을 황태자비, 그 악독한 여자에게 빼앗겼어요. 그 마녀는 황태자의 손을 잡고 황자 전하를 위협하고 있죠. 그 여자가 황후 폐하를 이용해 황자 전하께 어마어마한 누명을 씌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흠, 황태자비에게 격한 복수심과 분노를 가진 여자라.
유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황자 전하께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브레이튼의 눈동자에 흥미로운 빛이 감돌았다.
“그 여자의 만행에 당한 같은 피해자로서, 황자 전하를 돕고 싶어요.”
**
에릴 퓨즈가 죽었다.
차갑게 식은 그의 시체는 곧장 수레에 실려 공동 묘지로 보내졌다.
리하임 백작은 간수병들을 엄히 문책했으나, 누구도 독약의 반입 경로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에릴 퓨즈가 처음부터 독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럼 지금부터 조사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에릴 퓨즈가 사교를 결성하고 귀족들을 포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던 귀족들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제 백작이 된 슈페르트 브리기트도 있었다.
한편 황후는 제 꼬리 자르기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옅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교에서의 모든 거취를 에릴의 이름으로 행했기에, 이번에도 어떻게든 빠져나온 것이다.
“그들은 황태자비 전하를 타메론 경전의 ‘백은의 양’으로 여겼고, 사냥제를 틈타 황태자비를 시해하여 백은의 양의 피를 흘리게 한 뒤 폐하를 습격하여 반역하려 하였습니다.”
“…….”
“물론 혐의를 인정하는 자는 없었지만, 모든 것은 증거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에릴 퓨즈의 집에서 실제로 역경전 여러 권이 발견되었으며 죄인들의 집에서도 역경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엄중한 국법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정말 그들의 집에서 역경전들까지 발견되는 것은 에시카로서도 의외의 수확이었다.
“사교도들은 황가와 폐하께 반역하려는 역심을 가진 자들로서, 이 사건의 가담의 정도에 따라 교수형에 처할 것을 간청드립니다. 정교의 원로 사제들 역시 교단 안에서 세력을 불리는 사교의 징조를 일찍부터 느꼈다며 엄중한 처벌을 청했습니다.”
“허어…… 그런 일이…….”
“또한 그들이 청하였으니, 황태자비 전하를 새로운 신정의 주관자로 대체하여 주시옵소서.”
모두의 시선이 황태자비에게 향했다.
황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신전과 황실을 잇는 매개자를 ‘신정의 주관자’라고 칭하며 이는 오랫동안 황후가 가진 가장 주요한 권력이었다.
아무리 고위 신관이라고 하더라도 황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황후는 지금껏 신전을 주물러왔다.
“사교도들은 황태자비 전하를 백은의 양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황태자비 전하야말로 신정의 주관자로서 가장 적합한 자질을 지니셨다는 증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에릴 퓨즈에게 사교의 죄를 뒤집어씌울 때, 이미 제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황태자비를 백은의 양으로 못 박아서 그녀를 신성시하리라는 것은 상상치 못했다.
감히 사교의 사건을 역이용하고 있는 것인가, 치가 떨렸다.
잠잠히 있던 황후는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백은의 양이라니요, 리하임 백작, 그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황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황후는 황제에게 청했다.
“비록 사교도들이 황태자비를 죽이려고는 했으나, 지고하신 황권을 앞에 두고, 황태자비를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게다가 신정은 황정에 개입할 수 없는데, 아무리 원로 신관들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이 직접 신정의 주관자를 지정하다니, 이는 주제넘는 일이 아닙니까.”
황후와는 어울리지 않는 언사였다.
그는 늘 황정보다 신정을 더 칭송했으니 말이다.
“원로 사제들의 의견은 묵살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후의 말이 맞긴 하구려.”
그러나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위대한 튜레시안의 지배자이시며, 균형의 수호자이십니다.”
그는 다름 아닌 황태자 레스반 데온 루세인이었다.
그가 정전에서 입을 여는 일은 전쟁에 관한 일 말고는 드물었기에 사람들이 웅성이며 레스반을 보았다.
레스반은 차가운 눈빛으로 리하임 백작의 앞으로 나아가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어깨는 넓었고 장신의 키와 단단한 몸은 그의 존재감을 배가시켰다.
“…….”
황제가 레스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반은 형형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황태자비는 실존하는 위협을 겪었습니다. 균형이란 저울에 올라갈 사람이 있어야 맞춰지는 것, 즉 누군가가 저울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차가운 정적이 정전 내에 감돌았다.
황후는 제 뜻을 방해하는 황태자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보았지만, 레스반의 입술은 건조하게 달싹였다.
“그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더 큰 피를 흘려야 할 것입니다.”
레스반의 의미심장한 발언은 황제의 속에 와 닿았다.
황태자비에게 더 많은 권력과 권한을 주더라도 저울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위협을 무시해서 황태자비가 죽는다면…….
“…….”
생전 누구도 마음에 품어 본 적 없는 레스반, 저 녀석이 저울을 부수어 버릴지도 모르겠지.
20년 전 황제도, 레스반도 씻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가족이 죽는 것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황제가 레스반에게 브레이튼의 목숨을 부탁했듯, 레스반은 황제에게 묻고 있었다.
다소 괘씸하지만 와닿는 방법으로, ‘균형’을 언급하며 말이다.
“황후의 말이 맞으나.”
오랜 정적 끝 황제가 입을 열었다.
황후와 황태자, 에시카, 황녀, 그리고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황제를 향하고 있었다.
“황태자의 말도 옳다.”
“……!”
황제의 결정에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에시카는 앞에 나선 레스반의 등을 보았다.
그것은 바위처럼 단단하며 든든하게 느껴졌다.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는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황태자비를 오늘부터 신정의 주관자로 임명하며, 황후는 권한을 이양하도록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