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5. 반갑지 않은 재회(145/192)
#145. 반갑지 않은 재회
2024.04.19.
리하임 백작의 주장은 많은 이들이 듣기에 온당했다.
황후의 반발이 있었으나 레스반의 말은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백은의 양’으로서 불리기 시작한 에시카는 황후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까지 닿았다.
황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녀의 입술은 파들파들 떨렸다.
“이는 황후에 대한 악소문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오.”
황제가 그녀에게만 들릴 만한 낮은 목소리로 황후에게 말했다.
황후가 아무리 꼬리를 잘랐다고 하지만 사교 반역 사건의 에릴 퓨즈가 황후와 연관이 있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
사실 에릴 퓨즈가 죽고 2황자파 다수를 감옥에 잡아넣는 것으로 끝난 것도 황제의 배려였다.
“…….”
“……또한 오늘부터 황태자비에 대한 예산을 증대한다.”
황제의 말에 신하들이 술렁였다.
황궁에 들어온 여인이 예산을 올려받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예산 증대 명령이 떨어지다니.
“새로운 역할을 맡아 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황태자는 황태자비의 경호 병력을 살펴 누구도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라.”
“존명.”
“또한 황태자비의 신전 개혁 사업을 지원하도록 하라.”
황후의 눈썹 끝이 움찔 움직였다.
신전 개혁 사업이라.
이야말로 황태자와 에시카가 가장 바라는 일일 것이다.
솎아 내지 못한 사교의 사제들을 풀뿌리 뽑듯 잡아 뺄 수 있을 것이니.
지금까지 그 위로 쌓아온 황후의 기반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레스반의 낮은 목소리가 웅장한 정전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튜레시안에 부는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는 듯했다.
**
정무 회의가 끝나고 난 뒤 황제는 따로 레스반과 에시카를 불렀다.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필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눈썹을 굳힌 채 엄숙하게 말하는 황제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는 에시카와는 달리, 레스반은 잠시 손을 올려 미간을 만졌다.
황제의 앞에서 하기에는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황제 폐하. 그 일은 충분히 준비가 된 뒤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에시카는 레스반을 보았다.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필히 해야 할 일……?
“너희가 결혼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어가지 않더냐.”
“석 달은 짧은 시간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오래 사신다고 빈말은 할 수 없겠지만 일 년 안에 변고가 생기지는 아니할 듯합니다.”
황제와 레스반의 대화는 피장파장이었다.
몇 번의 말이 옥신각신 오고 간 후에야 에시카는 황제가 제게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회임 말씀이십니까, 폐하?”
에시카의 말에 황제는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황제가 지금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레스반의 후사에 대한 소식이었다.
“손주라도 보고 죽어야, 네 할아버지 뵙기에 부끄럼이 없지 않겠느냐.”
황제는 꽤 엄숙한 눈빛으로 레스반에게 말했다.
에시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술 끝을 움찔했다.
황제는 레스반의 말대로 ‘균형의 편’이었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보통의 아버지 같았다.
‘신경 쓰지 마.’
레스반의 어기전성에 에시카는 레스반을 보았다.
늘 밤을 함께하는 그의 선명한 금빛 시선이 에시카를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의 아기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에시카는 생각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황후는 ‘영양제’를 핑계 삼아 회임에 방해가 되는 성분의 약을 보내고 있었다.
그 약은 몸을 튼튼해지게 하지만 월경을 불순하게 한다.
만약 아기가 생긴다면…….
에시카는 제 배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영령의 아기들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렇게 무력하게 잃지 않으리라.
완전히 그 여자가 뿌리 뽑힌 뒤에야 마음 놓고 아이를 가질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그녀는 입술을 달싹여 소리를 내었다.
굳이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정할 수는 없으니, 노력하겠다는 티를 내면 될 것이다.
그러자 황제가 만족스럽다는 듯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들은 황제의 안전에서 물러나서 함께 회랑을 걸었다.
레스반이 입술을 달싹이며 나직한 목소리를 냈다.
“황후의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날씨가 좋았다. 흰 나비가 팔랑대며 화원의 꽃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는 길마다 하녀들과 시종들이 멈추어서 허리를 숙였다.
“그대가 생각하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 중 하나인가?”
“어쩌면요.”
황후가 피임 성분이 포함된 영양제를 보낸다고 하면 황제는 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의 부성분에 피임 효과가 있으며 영양제인 것은 맞고, 황후는 제 실수라며 약사의 목을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그녀는 언제나 퇴로를 만들어 놓고 안전 범위 내에서 일을 벌였다.
사냥제에서처럼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고 말이다.
이제 쥐구멍을 전부 없애 버리고 마지막 불을 지르려 한다.
첫 번째 불과 두 번째 불로 그녀의 주변의 것들은 태워 없애 버렸으니.
“축포는 성대하게 터뜨릴수록 좋으니까요.”
그 생각들을 갈무리하며 에시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동쪽 폐허에서 레스반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그녀에게도 약간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전에는 잔인무도한 계획이라도 격없이 말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는 뭐랄까, 내외하게 된다. 어울리지 않는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생겼다.
“그것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레스반의 입에는 싱거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뭔가 구체적인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다소, 섭섭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검은 주인이 휘두르는 대로 있어야겠지.
레스반은 그녀에게 더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계획이, 자신에게는 자신의 계획이 있는 법.
“황태자 전하, 잠시 드릴 말씀이.”
문득 나타난 부하의 모습에 레스반은 멈추어 섰다.
몇 발작 더 가서 멈춰 선 에시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저는 혼자 들어갈게요.”
레스반이 고개를 까딱했다.
시선을 맞추는 것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지만, 에시카는 그의 선명한 금빛 눈을 마주할 때마다 깊은 신뢰와 호의를 느꼈다.
레스반이 가고 에시카는 혼자 걷기 시작했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다.
그녀는 ‘백은의 양’으로 간주되어 신정의 주관자로서 나아가게 되었다.
자신의 마지막 권력까지 빼앗기는 처지가 된 황후가 반대했지만 레스반은 기꺼이 앞으로 나가서 에시카가 그러한 권력을 가져야 할 이유를 설파했다.
신전은 황후의 가장 핵심적인 곳이다.
신관들이 그녀의 혈구라고 하면 신전은 심장 그 자체이겠지.
황후는 포기하지 않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테지만 큰 흐름은 절대 막지 못할 것이다.
“읏, 누구 없습니까? 제기랄…….”
에시카가 회랑의 끝 부분에 거의 도달했을 때였다.
옆쪽 정원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간을 옅게 찌푸린 에시카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키만 한 정원 덤불을 한 번 헤치고 나아가자 어떤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
그를 마주하자마자 에시카의 눈썹이 흠칫 움직였다.
잘 차려입은 귀족 복식을 한 남자는 그녀가 언젠가 본 적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금 흐트러진 금발과 녹색과 푸른색이 섞인 듯 영롱한 빛의 눈동자를 가진 굉장한 미남.
사냥제 전에 무기점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으르렁-
황궁에서 키우는 개들 중 하나가 남자의 다리를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개는 사냥견이었는데 덩치가 컸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도망치지 못하게 잘 묶어 두는데, 목줄이 끊긴 것을 보니 탈출한 모양이었다.
“아야, 아아아! 사람 죽네!”
그는 아프다는 듯 외치다가 에시카와 눈이 마주쳤다.
“어어, 반가운 레이디. 얼른 개 좀 떼어 내 줘요. 도와줘요!”
으르렁-
남자의 다리를 문 개는 눈을 사납게 뜨고 으르렁댈 뿐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나무 옆 빗자루를 가리켰다.
“그걸로 후려치면…….”
앞에서 사람이 물리고 있는데도 그저 차분하고 느긋한 표정으로 다가간 에시카는 남자와 개에게 가까이 갔다.
개가 남자를 문 채 흰자를 보이며 에시카를 보았다.
까딱하면 남자를 놓고 이번에는 에시카를 공격할 만한 상황이었다.
에시카는 말 없이 몇 초간 개를 보더니 억누르고 있던 기운을 방출시켰다.
……!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그녀는 레스반이 그렇듯 기운을 갈무리하고 다녔다.
그들 같은 경지의 사람이 그 기운을 흘리고 다녔다가는 심약한 시종들은 위압감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말 것이다.
개는 엄청난 기운에 놀라 동공이 확장되는 듯싶더니 천천히 남자를 문 입을 뗐다.
“아야야…….”
남자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울상을 지은 채 쭈그려 앉아 개가 문 다리를 끌어안았다.
에시카가 개에게 기운을 드러내자 개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한낮 미물이 어떻게 호랑이에게 감히 덤빈단 말인가.
“사람을 물었으니 벌을 받아야겠구나.”
마교에서도, 길들인 짐승이 주인의 허락 없이 사람을 공격하면 즉시 살한다.
에시카는 겁에 질린 개에게 손을 뻗었다.
이내 그녀의 공력이 실린 검지가 개의 미간에 닿았다.
개는 눈을 뒤집고 기절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깨어나면 제 집에 돌아와 있을 것이다.
“와아.”
다리를 물린 미청년은 아픈 와중에도, 외상 없이 깔끔하게 정신만 잃은 개를 보고 감탄했다.
에시카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고,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에시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대단한 레이디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
남자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
에시카가 품에 지니고 다니는 검을 뽑아 들어 남자의 목에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서늘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남자는 흠칫하더니, 호기심과 즐거움이 어린 빤한 눈으로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