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6. 이파르 펠레그리노(146/192)
#146. 이파르 펠레그리노
2024.04.19.
사냥제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마법사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할 에시카가 아니다.
가면 안을 꿰뚫어 볼 수는 없어도 그녀는 무기점 안 제게 말을 걸던 청년에게서 흘러들었던 향기를 기억했다.
그것은 독특하였으나 불쾌한 느낌은 아닌 이국의 꽃에서 나는 듯한 향기였다.
그렇다면 그때 무기점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 것도 사전 조사의 일환이었을까, 생각하기에…….
“곤란하네요, 유부녀라니.”
남자의 목소리에는 의외의 상황이라는 듯한 불평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맨들맨들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제 앞에 다시 와 있었다.
에시카는 남자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날 죽이러 온 건가?”
생각해 보니 사냥제에서 살려서 보낸 것이 문득 후회되었다던지.
“…….”
남자는 대답 없이 빤한 눈을 빛내며 에시카를 보았다.
그 눈에 담긴 것은 적어도 악의와 살의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에시카는 제가 파악할 수 있는 실력 이상인 그의 민낯은 믿지 않았다.
그는 분명 황후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죽이려 했을 터, 진의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글쎄요, 왜일 것 같습니까?”
남자는 목에 칼이 닿은 와중에도 마냥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에시카를 떠보듯 되물었다.
눈썹을 움찔한 에시카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남자의 목에 아슬아슬 닿아 있던 검날이 남자의 목을 꾹 눌렀다.
잘 벼린 검날이 피부에 닿자 생채기가 나며 피가 흘러나왔다.
“내가 못 죽일 것 같아?”
“설마요. 여자를 얕보는 못난 남자는 아니랍니다, 오늘의 꼴은 썩 보기 좋지 않아도.”
그는 눈썹 끝을 살짝 내리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에시카는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냥제에서 봤던 그의 실력이라면, 다리를 문 사냥개 따위는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척추를 접어 죽여 버릴 수 있다.
대마법사란 소드 마스터만큼이나 희귀하고 강력한 존재이니까.
“내가 레이디를 믿는 만큼, 레이디도 나를 믿어 줬으면 좋겠는데.”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믿으라고?”
“마음이 바뀌었다니까요. 레이디가 너무 아름다워서.”
남자의 유들유들한 말에 에시카의 눈썹이 움찔 움직였다.
지금 죽여 버릴까? 하지만 대마법사인 그가 쉽게 죽을 리가 없다.
손에 더 힘을 주는 순간 마력을 폭발해 바로 반격에 들어가겠지.
누군가 보기에는 에시카가 일방적으로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댄 상황이었지만, 이미 그의 실력을 아는 에시카는 팽팽한 긴장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난 정말 무력하답니다.”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에시카의 뒤편을 가리켰다.
“튜레시안의 황궁에는 타메론 신전이 있죠. 아시다시피 타메론의 신성한 힘이 마법을 싫어해서…….”
“…….”
“이곳은 꽤나 방해가 되는 환경이랍니다.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 주시겠어요? 검을 쓰는 사람에게는 기사도가 있잖아요.”
그가 입꼬리 끝을 올리며 찡긋 한쪽 눈을 윙크했다.
에시카의 미간은 더욱 구겨졌지만, 생각은 복잡했다.
신전이 마법의 구축에 방해가 된다라. 아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로 상충하는 힘이라면 기세를 약해지게 만들 수도 있으니.
하지만 순진하게 봐줄 생각은 없다.
“……미안하지만 난 기사가 아니야.”
“…….”
“정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당신이 무력한지 따위는 알 바 아니고, 죽기 싫으면 진실이나 말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여전히 검을 치우지 않는 에시카의 물음에 그는 웃음기를 담고 에시카를 보았다.
무기점에서와 마찬가지로 제게 영문 모를 호의를 내비치는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세자 전하!”
그때였다. 급히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검을 들고 돌진했다.
제게 향해 있는 다급함이 섞인 살기에 에시카는 남자의 목에서 검을 떼고, 외국 기사복을 입은 습격자를 향해 검을 세웠다.
챙-
검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풀이 파동에 살랑였다.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도 미미하게 흔들렸다.
외국 기사복을 입은 남자의 실력은 대단했다. 소드 마스터 급은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가까운 경지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에시카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역시 검을 맞댄 순간 느껴진 에시카의 무력에 굉장히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레온, 그만.”
“하지만…….”
“오해야. 오해.”
마법사 미청년이 피가 나는 목을 스윽 문지르며 일어서자, 레온이라고 불린 기사는 검을 회수했다.
에시카 역시 검을 내렸다.
“여기 레이디는 저 멍청한 개에게서 나를 구해 준 내 생명의 은인인데.”
미청년은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레온에게 말했다.
“내가 조금 무례하게 대해 화가 났거든.”
“하지만…… 검으로 전하의 목을…….”
“스읍.”
“……알겠습니다.”
기사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에시카는 차가운 눈으로 미청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카모스의 왕세자 전하라.”
카모스에서 사절이 오기로 한 일에 대해 에시카도 알고 있었다.
황후는 아스타와 에시카에게 몇 가지 일을 분배했고 말이다.
카모스는 동쪽 해상에 있는 섬나라인데, 튜레시안 제국 정도의 영토 크기에 인구수도 많다.
대륙을 피로 물들인 대해적들의 후손답게 그들은 호전적이었고 강했다.
그리고 인구 대부분이 무신론자였으며 최근에는 마법이 강세를 보이는 국가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왕국은 제국보다 국력이 작은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카모스는 국명만 왕국으로 불리우지 제국급의 병력을 가진 국가였다.
“본인이 얼마나 무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군요.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으셔서 모를 줄 알았는데.”
그리고 눈앞의 이 남자는 필시, 카모스의 왕세자이자 사절단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레온이라 불린 기사는 왕자를 보필하는 자들 중 하나겠지.
“그럴 리가요. 깊이…… 반성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빤한 흥미를 가진 저 눈은 진심이 담겼다고는 볼 수는 없다.
그는 매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태자비 전하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청록색 눈을 빛내며 화사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마법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한편 기사는 그의 말에 움찔 놀라 에시카를 보았다.
제 주인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던 여자가 황태자비인지는 짐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카모스의 왕세자, 이파르 펠레그리노입니다.”
남자는 손을 뻗어 에시카의 손을 잡았다.
이파르, 그게 이 남자의 이름이구나. 펠레그리노는 확실히 카모스 왕조의 성이기는 하다.
맨들맨들한 얼굴과는 정반대인 차가운 손이 손 끝 피부를 타고 전해진다.
그는 느릿하게 에시카의 손을 들어올리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도, 손만큼이나 차갑다.
“…….”
에시카는 이파르를 응시했다.
그는 분명 사냥제에서 에시카를 공격하려 했던 그 마법사였다.
아마도 황후의 사주를 받았을 그자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따지는 것은,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에시카에게는 증거가 없었고 그는 발뺌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반갑습니다. 왕세자 전하.”
에시카는 딱딱한 입술의 끝을 올리며 이파르에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그를 향한 강한 경계가 담겨 있었다.
**
일정보다 이틀 이른 카모스 사절단의 방문으로, 환영 무도회의 일정도 오늘 저녁으로 급하게 당겨졌다.
황제는 황후에게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고, 아스티아와 에시카도 그것을 전달받았다.
에시카가 맡은 일은 그들의 잠자리와 선물에 관한 일이었다.
‘베개에 가시를 잔뜩 집어넣을까.’
에시카는 하녀들의 치장을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면 독을 묻혀 놓는다던지, 이곳저곳.’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짓는 왕세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에시카의 눈썹이 조금 떨렸다.
‘아니면 악몽을 꾸게 하는 약초가…… 성분이 뭐였더라.’
영령이었을 적의 경험을 떠올리자면, 위협이 되는 적은 일찍 제거하는 것이 좋았다.
사절단이 제국 황궁에 머무르는 기간은 적어도 7일에서 보름.
그가 황후와 손을 잡았다면 적이다.
그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헛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에시카는 제게 그토록 위압적인 살기를 드러냈었던 남자를 믿지 않았다.
그 기운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다 되었습니다. 황태자비 전하.”
치장을 마친 하녀들이 물러서자, 에시카는 거울 속 자신을 힐끗 보았다.
늘어뜨린 은빛 머리카락은 우아하게 위로 틀어 올렸으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은빛의 드레스는 그녀에게 참으로 잘 어울렸다.
선명하고 선이 고운 눈썹과 푸른 눈동자, 오뚝한 코와 풍성한 속눈썹…… 그 모든 곳에서 한 나라의 황태자비에 걸맞는 기품이 드러났다.
“저…… 황태자비 전하.”
에시카가 발을 옮기려던 때였다.
구석에 서 있던 하녀 하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에시카에게 뭔가를 건네었다.
에시카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하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하녀는 조금 발끝을 들어 에시카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까 바깥에서, 칼리안 클라우스 자작께서 꼭 황태자비 전하께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거절했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해서 혹시 몰라서…….”
칼리안이라는 말에 에시카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이혼 이후에는 저를 쫓아다니지 않던 칼리안이었다.
황궁에 올 때마다 일부러 제 얼굴을 보기 위해 깔짝대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쪽지라니…… 에시카는 그냥 태워 버릴까 망설이다가 그것을 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