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49. 레스반의 질투(149/192)
#149. 레스반의 질투
2024.04.20.
그는 황후의 차를 받지 않았다.
대신 비스듬히 다리를 꼬며 몸을 뒤로 기대었다.
야만족들처럼 격식에 맞지 않은 태도에 황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삼 분의 일이라, 제가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
“타국의 반역에 개입하는 대가로는 너무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에 황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튜레시안 제국 영토의 3분의 1이 미약하다고?
한낱 섬나라의 왕세자 주제에! 하지만 버럭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왕세자께서는 첫 번째 단계부터 실패하셨지만, 저는 이에 대해 묻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참고 있던 지난날의 실패를 꺼내었다.
그 사냥제에서 에시카를 죽였다면, 황태자는 실의에 빠져 앞뒤 안 가리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을 테고 이는 황태자의 목을 죌 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황후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신정의 주관권이 에시카에게 넘어가는 일은 없었겠지.
아직도 뒷줄을 통해 몇몇 신관들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팔다리가 다 잘린 형국이었다.
사재마저도 탈탈 털어 이자에게 주었으니 가진 것이 없다.
“그러니 왕세자께서도 신의를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후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구석이 없었다.
제 입지를 먹어 치우기 시작한 그 마녀는, 한때 클라우스를 뒤엎었듯 이 황궁을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타메론께서는 이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시킨 것이리라, 황후는 그렇게 믿었다.
“신의라…….”
이파르는 잔잔히 고인 찻잔 안을 바라보았다.
문득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가 떠올랐다.
황태자와 한 여자를 공유하는 삶을 꿈꾸었다고 말하자 미친놈 보는 눈빛으로 보았었지.
사실 그런 매력적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카모스인들은 그런 시시한 대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저울에 올려놓을 뿐이죠. 어느 쪽에 붙는 것이 더 이득일지.”
“그렇다면…… 황태자와도 협상을 했단 말입니까! 내 돈을 그렇게나 가져가 놓고!”
왕세자의 말에 황후의 목대에 핏발이 섰다.
당장이라도 이 야만인 왕세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
“황태자는 무엇을 제시했습니까!”
황후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편지에 꽤 흥미를 보이던 왕세자의 태도가 저렇게 변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황태자는 더한 조건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가령 튜레시안 영토의 절반…….
그렇다면 정말 빌어먹을 악마가 아닌가.
영토의 절반을 대가로 황권을 노리다니.
황후 자신은 타메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만, 황태자는 개인의 영달과 욕심에 눈이 먼 악마일 뿐이었다.
“어쨌든, 저는 더 이상 끼어들지 않고 관망할 생각입니다.”
왕세자의 말에 황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제게 주신 돈은, 황후 폐하의 계획에 대한 비밀 엄수 비용으로 생각토록 하죠.”
“젠장할! 왕세자!”
당초에 약속한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
황후는 머리 끝까지 열이 뻗쳐서 씩씩대다가 겨우 숨을 골랐다.
그리고 화를 다스리며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세자. 나도, 나도 제국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
“다루기 힘든 황태자와는 달리, 내가 이 제국을 갖게 되면 무리없이 제국의 절반을 받게 될 겁니다. 튜레시안의 기름진 땅은 카모스를 부유하게 할 테고, 카모스는 언제나 대륙으로의 진출을 원하지 않았습니까. 새 튜레시안의 땅이 카모스의 미래를 향한 발판이 될 겁니다.”
대륙으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섬나라 왕국들의 염원이다.
설령 반쪽자리 제국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황후는 황태자에게 황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황후의 부들대는 표정을 감상하다가 입꼬리를 올린 이파르는 들지 않고 있던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식은 찻물을 넘겼다. 툭 튀어나온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황후는 기대하는 눈으로 이파르를 바라보았다.
이파르는 입술을 달싹였다.
“참으로 매혹적인 제안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그 말에 황후의 눈썹이 다시 일그러졌다.
관망하겠다는 아까의 말보다는 나은 방향이었지만, 이래서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황후는 왕세자의 완벽한 조력이 필요했으나 그는 황후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이내 이파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를 뜨는 이파르의 뒤에 대고 황후가 절박하게 외쳤다.
“왕세자가 원하는 무엇이든, 내가 해 주겠습니다.”
그 말에 그의 발이 멈칫했다.
**
발코니에 앉아 빈 잔을 들고 서 있는 에시카에게, 레스반은 와인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잔에 그것을 기울여 채웠다.
와인병의 바닥이 유리 테이블에 달각거리며 닿는 소리가 들렸다.
레스반은 자리에 앉으며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에시카의 손에 들린 와인잔이 흔들리며 잔 안의 와인이 드러난 어깨의 맨살에 튀었다.
레스반은 그녀를 안은 채 어깨에 튄 와인을 할짝거렸다.
“…….”
부드러운 자극에 에시카가 간지러운 듯 허리에 힘을 주었다.
그것을 핥은 뒤 그녀의 어깨에 한 번 입 맞춘 레스반이 속삭였다.
등에 레스반의 몸이 닿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불쌍한 꼬맹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의 전하는 노예였고, 이파르는 그때에도 왕세자였는데도요?”
“그 결핍된 눈은 전쟁터의 고아들과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
레스반의 말이 맞았다.
어른이 되면 결핍을 숨기는 법을 배우지만, 아이들은 제가 겪은 불행을 얼굴에 빤히 티 낸다.
“우습게도 진정한 고통을 겪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 태생적으로 그렇게 결핍된 꼬마였어. 그래서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는데.”
“…….”
“귀신처럼 따라붙고 집착하더군. 내가 저를 학대하는 어미로부터 몇 번 막아 주었다는 이유로.”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레스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때도 눈을 뗄 수 없게 잘생겼었고, 상처 받은 어린 야수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것이 이파르가 보기에 친해지고 싶을 만한 요소였던 모양이다.
“제 어미가 두 명의 남자 노예와 잠자리에 든다며, 장차 나와도 그렇게 지내자고 했었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 씹어 넘겼는데 그대에게 그런 말을 했다니.”
에시카의 허리를 휘감은 레스반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카모스의 왕세자가 온다는 말에 그가 심상찮은 짜증을 느꼈던 이유였다.
저를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의 그 녀석은 넋이 빠진 듯한 광안을 가지고 있었다.
황태자로 복위한 뒤에도 어떻게 알고 여러 번이나 편지를 보내왔었고 말이다.
물론 레스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복 전쟁에 바빴고, 그저 잠깐의 인연으로 만난 꼬맹이에게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황후와 손을 잡고 있고요.”
“어릴 때 죽여 버렸어야 했나, 후회되는군.”
레스반의 짜증 섞인 말에 에시카는 피식 웃었다.
“영 거슬리는 존재는 맞지만 아직 우리의 완전한 적이라고는 판단할 수 없어요. 우선 사냥제에서…….”
에시카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를 죽이지 않고 보내주었고, 무도회에서의 태도만 보아도 황태자 전하에 대한 적의는 보이지 않았죠.”
이파르의 속을 알 수는 없었지만 레스반과 에시카를 적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인형극을 보는 듯한 눈으로 튜레시안 황실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황궁의 구도를 빤히 보며 관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쪽이 제게 이익을 가져다줄까, 싱긋 웃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파르는 카모스의 왕세자이자 대마법사이다.
황후의 제안이 왕세자로서의 그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쩌면 이쪽에서는 대마법사로서의 그가 원하는 것을 제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마법사계에서는 꿈의 원료로 불리우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해악만을 주는 어떤 것.
“그러니까 다음번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어요.”
“아니, 왕세자가 무엇을 말하건.”
레스반이 에시카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그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꼬마의 상대는 내가 할 테니 그대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린 에시카의 입술 옆에 그는 키스하며 말했다.
“그를 무시한 채 그저 내 옆에 있으면 돼. 이파르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어쩐지 평소와는 태도가 달랐다.
에시카가 황후를 상대할 때는, 직접 나서겠다는 그녀의 뜻을 뒤에서 지지해 주는 레스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에시카가 이파르를 피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춤을 추지도 말고 손을 잡지도 말고.”
그는 에시카의 어깨를 돌리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의 눈썹은 굳어 있었고, 그의 호흡이 밀물처럼 에시카를 집어삼키며 들어왔다.
조금은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을 마주치지도 마.”
어기전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레스반의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호흡이 힘들 정도로 깊은 키스였다.
키스를 마친 그는 에시카를 안아 들었다.
그의 눈이, 화가 난 야수처럼 다소 격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질투하는 거야……?’
레스반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전에 칼리안과 이혼 전에, 칼리안이 제 어깨를 끌어당겼을 때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는데 지금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제 암컷을 노리는 어린 숫사자가 나타났을 때 경계하는 사자 같은 느낌.
“레스반.”
발코니에서 그녀를 안고 곧장 침실로 들어간 레스반이 침대에 에시카를 눕혔다.
어깨가 드러난 옷은 그가 강하게 그것을 아래로 잡아끌자 곧장 내려갔다.
에시카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스반…….”
“나만 그대를 가질 수 있어, 에시카.”
그가 입술을 움직이며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