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5. 황태자가 찾던 것(15/192)
#15. 황태자가 찾던 것
2023.12.15.
여인들끼리의 기 싸움은 사내들의 것만큼이나 치열하다.
그 자리에 모인 부인 대다수가 확연히 에시카 클라우스를 무시하고 있었다.
에시카는 공작 부인이고 괴롭히려는 저것들은 제 남편의 작위가 낮음에도, 못된 짓이 습관이 된 듯 깔보는 눈빛과 말투였다.
누군가가 버릇을 잘못 들여서이겠지.
“…….”
레스반 데온 루세인, 백작을 겁박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그는 그저 후원의 대화에 흥미가 일었을 뿐이다.
그가 한때 애태워 찾고, 한때는 일개의 환상으로 치부하고, 다시 열병처럼 가슴에 들락거리던 흰나비가 진실로 클라우스에 있었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피 튀기는 전쟁의 관전 외에, 최근에 유일하게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그는 와인잔을 잡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와인이 종종 넘어갈 때마다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움직였다.
잠시 흔들리는 시선 사이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고요했다.
고고한 콧대도, 턱도 그 품격을 나타내었다.
다른 여인들의 얼굴만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가, 하얗게 변하기도 했다.
때로 에시카 클라우스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찻잔을 쥐었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조금 벌려 찻물을 음미했다.
그 손톱의 가지런한 모양에 레스반은 조금 갈증이 생겨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잡초 속의 흰 장미처럼 에시카는 고고하였고 독했다.
손톱으로 찔렀다가 가시로 되돌려받는 상황이 반복되자, 그녀를 비난하고 싶어 안달이던 부인들이 천천히 입을 닫았다.
몸집을 비교해 보다가 겁을 먹는 짐승들처럼, 누구의 아가리가 위험한지는 알아보는 모양이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시시하다고 느껴질 만큼 승패는 뚜렷했다.
“가…… 갑시다.”
“그래요. 허.”
그녀가 손님이라는 것도 잊은 채, 패자들이 먼저 격투장을 빠져나왔다.
‘상대조차 되지 않는군.’
자신이 치루었던 몇 번의 시시한 전투가 떠오른다.
레스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에시카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차분한 푸른 눈동자 속에 숨기고 있던 그 목적을 그녀가 꺼내 보이자, 그는 다시 목이 조금 탔다.
그리고 다음 대화는, 어쩌면 조금 더 흥미로웠다.
어떻게 저 아이의 정체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무슨 목적일까, 대화를 엿듣는 것에 더욱 구미가 당긴다.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는 남자라도, 세월의 힘을 막을 수는 없죠. 황궁에서의 화려하고 따스한 생활을 포기하고 그를 택한다면, 늙어 죽도록 후회할 수도 있어요.”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레스반은 그녀의 음성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입술이 옅게 비틀렸다.
독기가 섞여 있는 처연하게 아름답고 쓸쓸한 그녀의 표식.
오래 찾아 헤매던 그 지문이, 푸른 눈동자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20년 전,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그때의 그 아이가 맞구나.
“화…… 황태자 전하.”
황태자는 알헤미츠 백작에게 군납품의 불량 내역이 자료와 맞지 않다며 정정해서 가져올 것을 명했다.
그리고 한참 뒤 알헤미츠 백작이 허둥대며 종이 뭉치를 들고 황태자 앞에 섰다.
머리가 벗겨진 그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레스반의 서늘한 시선이 향하자 그는 어깨를 움찔하며 시선을 내린다.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알헤미츠 백작은, 다른 귀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젊고 잔혹한 전쟁귀 레스반을 두려워했다.
그는 호전적인 것뿐 아니라 매우 철두철미한 성격이었으며, 국고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귀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경의 가정은 안팎으로 재미있군.”
황태자는 그 허술한 종이 뭉치를 살피며 눈썹을 찡그렸다.
이래서는 비리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질책 같은 그 목소리에 알헤미츠는 다시 몸을 움찔했다.
황태자의 다음 행동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의 비위를 맞출 수 있다면…….
“남편은 백 기의 병장기를 녹슬어 버린 것으로 처리하고 이를 어디에서 채울지 고민하는데, 아내는 손님들을 초대해 격식 없는 티파티라.”
“……저, 전하.”
때가 좋지 않았다. 황태자가 올 줄 알았더라면, 파티를 취소했을 것이다.
제기랄, 그는 하필이면 오늘 부인들을 불러 황태자의 심기를 어지럽힌 아내를 원망했다.
알헤미츠는 몸을 잔뜩 수그리며 자비를 구했다.
“아내를 엄중히 타이르겠습니다. 그리고, 병장기는 제 사저를 털어 넣어서 꼭 복구하겠습니다.”
**
배탈로 이틀을 더 앓고서야 리오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저 평소와 같이 먹었을 뿐이었는데,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배가 아팠었다.
효심이 지극한 칼리안은 하루에 세 번씩이나 와서 리오나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튼 닷새의 투병이 지나고 어찌어찌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기운이 없기는 했다.
의사는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허해져서 소화 불량 증상이 심해졌다고는 하는데,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마샬의 티파티는 어땠다고 하더냐.”
리오나는 핼쑥해진 채로 침대에 앉아 발 마사지를 받으며 물었다.
그녀의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샬의 티파티, 원래는 리오나 자신이 갈 예정이었지만 에시카를 보냈다.
허둥지둥하다 창피를 당했을 일은 뻔하다.
어차피 이제 슬슬 이혼을 시킬 때도 되었다.
‘오래 참아 주었지.’
마샬과 볼란은 제 뜻을 치밀하게 잘 알아채는 똑똑한 친구들이다.
많은 여자들이, 에시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게 되었을 것이다.
클라우스의 여왕은 리오나 클라우스,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클라우스의 이름에 먹칠을 한 에시카를 클라우스에서 쫓아낼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고.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부인에게는 이혼할 때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 점이 리오나가 예리하게 노리는 것이었다.
“저…… 그것이…….”
그녀의 곁에 선 하녀 에밀리아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마샬의 티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마샬과 볼란이 어떻게 굴욕을 당했는지, 그들이 둘 다 에시카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 말이다.
그 일은 부인들의 입을 타고 사교계에 널리 퍼져 나갔다고 한다.
마샬과 볼란에게 비싼 강습료를 주고 딸을 맡기려던 부인들 몇이 일정을 취소했다고 했었고 말이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훈장이 회수된 마샬의 남편인 알헤미츠 백작이 그녀에게 크게 화를 내고, 당분간 손님들을 초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오나의 눈썹이 중간중간 꿈틀 하며 크게 움직이더니,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눈썹 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찰싹-
끝내 분이 난 리오나는 손을 뻗어 하녀의 뺨을 때렸다.
“엉망이 되었다는 말이잖아?!”
뺨을 맞은 하녀는 울먹이며 무릎을 꿇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눈물이 날 만큼 리오나의 손은 매섭다.
그리고 하녀로서 분노한 주인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은 비는 것뿐이다.
“……소…… 송구합니다, 대부인.”
“에시카를…… 아니.”
리오나는 제 핏기 없는 손등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의사가 말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화가 빨라진다고.
그 볼품없고 멍청한 계집애의 얼굴을 보면, 그러잖아도 막 회복된 몸이 더 상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이렇게 급격히 배탈이 난 이유부터 소명시켜야겠다.
“유리를 데려와라.”
“네?”
“시녀장 말이다! 유리 아네시스! 귀가 안 들리느냐?”
리오나는 제 뜻에 거슬리는 이들에게 매우 잔혹하고 가차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대부인.”
하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에게는 유리의 등장이 구원 줄이었다.
리오나가 유리에게 에시카를 괴롭힐 것을 명령하건, 혹은 유리에게 화풀이를 하건, 그녀는 벗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곧바로 리오나의 방을 나서 유리를 찾으러 가던 하녀는 제가 들었던, 티파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공작 부인이 그들에게 맞섰다고?’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에시카가 할 수 없는 언행이었다.
에시카 클라우스, 초라하고 불행한 공작 부인. 하녀들보다 못한 신세의 그녀가 어떻게 악독한 두 백작 부인을 이겼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때 그 눈빛…….’
유리와 함께 에시카에게 찬물을 부으러 갔을 때, 에시카의 눈빛은 정말이지 섬뜩했다.
그녀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얼음으로 된 날카로운 송곳이 심장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뭐였지?’
하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래 보았자 공작 부인은 대부인의 발아래 있다.
남편의 사랑조차 받지 못하는……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가련한 여자.
“에시카는 지금 어디 있지?”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에 하녀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시선을 돌리자 코너 쪽에 서서 하인과 대화하고 있는 클라우스 공작이 보였다.
수년간 근무했던 하녀들이라도 그의 얼굴만 보면 뺨을 붉게 물들일 만큼 잘생긴, 완벽하고 훌륭한 주인,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
저번 충돌 이후로 그러잖아도 냉대하던 공작 부인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이유일까.
“부인 말이다.”
그가 하인에게 에시카가 있는 곳을 묻고 있었다.
다소 초조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