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50. 해괴한 비극(150/192)
#150. 해괴한 비극
2024.04.20.
“……에시카…….”
말을 타고 황궁에 들어온 칼리안은 황궁 건물의 에시카의 방 창문을 바라보며 애절하게 그 이름을 읇조렸다.
“내 사랑, 나의 전부.”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그리운 것을 찾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짐칸에 천을 덮은 짐마차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는 에우니브스에서 온 말 편자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앞으로 한 배를 탄 것이니라, 칼리안.”
황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선명했다.
“지독한 악마에 씐 네 전처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의 손을 잡고 대업을 성취해야 한다. 타메론께서 내게 예언하신 위대한 일을 말이다.”
철 없는 소년처럼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악마에 씐 줄도 모르고 원망했었다.
“대업을 성취하면 내 타메론의 권능으로 에시카를 꼭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주겠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황후 폐하?”
“타메론의 권능 아래에서 못 행할 일은 없다. 만약 악마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황후의 눈은 칼리안의 짙은 심연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네게 중요한 것은 에시카를 돌려받는 일이 아니겠더냐.”
칼리안은 황후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빼앗긴 그녀를 돌려받고 싶다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황후의 대업에 협조하겠다고 말이다.
만약 에시카가 끝내 악마에게서 해방되지 못하더라도 그 손목에 쇠사슬을 채워서라도 그녀를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레스반이 입 맞추었던 곳을 씻긴 뒤 온몸에 입을 맞추고 강제로라도 그녀를 안아 제 여자로 만들 것이다.
매춘부들은 더 이상 그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진짜 아름다운 것을 알아 버린 이상, 어떻게 못난 것들을 안고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좋은 것을 누리며 가장 귀하게 자라온 칼리안이었다.
“그리고, 황후 폐하께 고할 것이 있습니다.”
황후의 충신이 되기로 맹세한 칼리안은 유리가 제게 저지른 짓에 대해 털어놓았다.
에시카와 멀어지게 된 것이 전부 유리의 계략이었으며, 유리가 낳은 아이 아론이 제 자식이 아닌 청사 조사관의 아이라는 것.
그리고 청사 조사관이 사냥제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황후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고, 칼리안은 필시 황후가 유리에게 큰 벌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난 뒤 황후는 칼리안에게 그 일을 덮어놓으라고 했다.
조카에게 그처럼 억울한 일이 생긴 것에 분노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저 귀찮은 일 하나가 흘러들었다는 듯 그것을 시큰둥히 여겼다.
칼리안은 황후의 결정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황후는 클라우스의 온전한 재건을 위해서는 가짜라도 칼리안의 후계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에시카를 돌려받고 싶다면 내 말을 듣거라. 가짜 핏줄이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이득이니. 폐하께 그 아이의 귀족 교육을 위해 지원을 청할 예정이다. 그 돈으로 할 일이 꽤…… 많고…….”
그리고 황망해하는 칼리안에게 손을 뻗어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는 늘 너를 아들처럼 생각한단다. 하찮은 것은 나중에 바로잡고 우선 대업에 집중하자꾸나.”
칼리안은 황후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충신이 되기로 맹세한 이상 그 명령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황후의 뜻이 에시카를 되찾는 길이라면, 아론이 역겨운 유리의 불륜의 결과일지라도 잠시 참아 줘야겠지.
언젠가 에시카를 되찾으면 죄다 내다 버리면 되는 일이다.
“…….”
하녀가 에시카의 방 창문을 요란스럽게 닫았다.
그곳을 줄기차게 바라보고 있던 칼리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자.”
그는 짐마차를 이끄는 마부들에게 명령했다.
이제 짐을 납품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차들이 움직이는 이때, 멀리서 초라한 행색으로 병사들 사이에 서서 걷고 있는 한 남자가 칼리안을 보고 멈추어 섰다.
“공작…… 아니, 자작님!”
반가운 표정을 짓는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칼리안의 옛 친구 가벤 펠로페였다.
얼마 전 재판에서 황족 모독죄로 엄청난 벌금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다.
금요일의 파티는 무기한 문을 닫아야 할 테고, 집안의 가산 반은 벌금 납부를 위해 팔아야 할 것이다.
작위는 정지되었는데, 이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완전히 박탈될 수도 있는 처지라고 한다.
“…….”
칼리안은 말 위에 앉은 채, 오랜 조사로 꾀죄죄한 몰골의 가벤을 눈살을 찌푸리며 내려다보았다.
칼리안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가벤은 마냥 신이 난 듯 칼리안에게 말을 걸었다.
“머릿속 목소리 말입니다. 황태자 전하의 무시무시한 그거……!”
“…….”
“이제 들리지 않습니다. 아, 정말 제가 미친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저는 미치지 않았어요, 이보세요. 멀쩡하잖아요.”
들떠서 생글거리는 가벤의 말에 점점 눈살을 더 험악하게 찌푸리던 칼리안은 가벤을 잡고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끌고 가거라.”
“예.”
병사들이 다시 가벤의 양팔을 잡아끌었다.
가벤은 끌려가면서도 기쁜 듯 소리를 쳤다.
“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가벤 펠로페가 미칠 리가요!”
쯧, 하고 혀를 찬 칼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에시카는 자신의 방에서 황후가 준 영양제를 마셨다.
영양제에는 피임 성분이 있었다. 헤모스의 말로는 영양제를 끊게 되면 일주일 안에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언젠가 이 몸으로 그의 아이를 낳게 되겠지만, 그 시기는 황후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이리니.
전쟁의 중반에 접어든 지금 무고한 하나의 생명을 또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
“황태자비 전하, 말씀하신 대로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래. 생각 같아서는 그 눈깔을 향해 소금이라도 끼얹고 싶건만.”
“예?”
주변의 기운과 시선을 감지하는 에시카와는 달리 하녀는 밖에서 누가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알 리가 없었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에시카는 하늘 중천에 뜬 해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녀들이 곧장 외출 채비를 했다.
그녀가 요즘 들어 하루에 두 번씩은 찾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황궁 축사였는데 그중에서도 그녀의 황금 사슴은 가장 좋은 방에 있었다.
사슴은 가장 좋은 사료를 먹었고 축사 하인들이 털도 빗겨 주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에시카는 그것을 오래 키울 생각이 없었다.
새가 새장 속에서 행복할 수 없듯 동물도 우리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주입했던 약효가 떨어졌음에도 사슴은 그녀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야생성이 제거된 것은 아니니 산에 풀어 줄 생각이었다.
“…….”
“죄…… 죄송합니다. 황태자비 전하. 축사 관리인들이 잠깐 교대하는 사이에 이런 해괴한 일이……!”
하지만 축사에 도착한 에시카는 눈썹을 딱딱하게 굳혔다.
황금 사슴의 뿔이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를 흘리는 황금 사슴의 축사 벽에는 이러한 붉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타메론께서 튜레시안의 타락에 슬피 울고 계시다.’
그 말에 모든 시종들과 하녀들, 고용인들이 모여 겁에 질려 수군대고 있었다.
에시카는 타메론 경전에서 이러한 문구를 본 적 있었다.
타메론께서 룹타의 타락에 슬피 울고 계시다, 라는 구절이었다.
룹타는 고대 왕국이었는데 악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며 국가의 풍속이 극히 타락하게 되자 선지자를 보내 이러한 타메론의 뜻을 알렸으나 선지자는 순교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타메론은 룹타에 불타는 우박을 내리며 강력한 재앙으로 신의 분노를 보여 주는데 이는 일종의 천벌이었다.
그렇게 고대 왕국 룹타는, 타메론을 노하게 한 죄로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황금 사슴은 풍요의 상징, 황금 사슴의 뿔이 잘렸다는 것은…….
튜레시안의 풍요가 꺾일 것을 상징했다.
‘황금 사슴의 주인은 나이니, 나를 공격하는 것이겠지.’
문자적으로 봐도, 상징적으로 봐도 말이다.
에시카는 차가운 표정으로 뿔이 잘린 황금 사슴에게 다가갔는데, 뿔 외에도 상처를 입었는지 가엽게도 숨을 허덕이며 쉬고 있었다.
셀라의 피 묻은 손톱들을 떠올린 에시카의 눈동자에 차가운 분노가 넘실대었다.
그녀는 품에서 검을 꺼내 사슴의 목숨 줄을 끊어 주었다.
사슴은 순한 눈으로 에시카를 보다가 숨이 멎었다.
사람도, 미물도, 악의에 찬 미친 살귀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차라리 너를 곧장 죽일 것을 그랬나 보다.’
에시카는 죽은 사슴을 쓰다듬으며 사냥터에서 살려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살린 채 데려와서 황제의 더 강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갇혀 있다가 잔인한 방식으로 죽는 결말을 맞아야 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식어 가는 사슴을 쓰다듬고 있는데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 오십니다.”
어느새 이 일이 황제에게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황금 사슴의 죽음은 흉하며 상서롭지 못한 징조이니, 필히 널리 알려져야 하겠지.
까득, 에시카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높이 달린 창문에서 빛이 내리쬐는 축사에 황제와 황후가 들어왔다.
그들의 뒤에는 많은 시종과 시녀, 하녀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사슴 곁에 있는 에시카를 본 황제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벽의 글씨는 더더욱 경악할 만한 것이었고, 에시카의 손은 이미 피에 젖어 있었다.
“이게 대체…….”
에시카는 어둠 속 형형한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의 눈썹은 뻔뻔하게도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