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52. 사내들의 해결방식(152/192)
#152. 사내들의 해결방식
2024.04.21.
우르르- 콰광-
구름이 낀 하늘에 번개가 번쩍인 뒤 우레와 같은 천둥 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는 제법 도심으로 이사를 온 칼리안 클라우스 자작의 집.
황후의 도움으로 새로운 일을 맡으며 칼리안의 월봉이 천 링까지 늘어난 덕에 이제는 하녀를 하나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작가의 풍요를 누리던 리오나의 눈에 이 생활이 찰 리가 없다.
전의 거지 같은 생활보다야 조금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도 예쁜 드레스 하나 마음껏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후 폐하께서도 이제 한 물 가신 거지.’
로벨리아 샵의 회원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우편이 왔다.
이제는 카탈로그조차 받아볼 수 없었다.
‘그게 다, 그 마녀, 에시카 때문이야.’
리오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 창밖을 보며 차를 마셨다.
이제 아론은 하녀가 전담하고 있어서 팔 아프게 하루종일 안고 있지 않아도 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인적이 거의 사라진 어두운 길거리, 문득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남자가 들고 있는 회색 자루였으며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리오나는 그가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칼리안!”
다 젖은 옷을 입고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제 아들 칼리안이었다.
리오나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1층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고는 발 끝을 세워서 급히 들고 온 담요를 칼리안의 머리 위에 덮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칼리안은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고, 리오나는 타오르는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칼리안의 젖은 몸을 닦으며 놀라 물었다.
젖은 옷에 드문드문 핏자국이 보였기 때문이다.
“오, 칼리안! 어디 다친 건 아니죠? 이 몰골이 뭡니까.”
“아닙니다. 다치지 않았습니다. 제 피가 아니에요.”
칼리안은 빛을 잃은 눈으로 벽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시카와 이혼한 뒤로 그의 눈은 늘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얼마 전부더 그런 기운이 더 짙어졌다.
“세상에나, 그럼 이 자루는…….”
리오나는 말끝을 더듬다가 허리를 숙여 칼리안이 가져온 자루를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그 안을 본 리오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피 묻은 황금 뿔이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멍하니 있던 리오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은밀하게 말했다.
“칼리안, 이게 만약 황금 사슴의 뿔이라면 큰일이 난 게 아닙니까. 설마 황후 폐하께서 이걸 시키셨습니까?”
“큰일이 난 게 아니라 제가 큰일을 한 겁니다.”
“……예?”
리오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칼리안에게 되물었다.
“악마에게서, 제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이제 제가 살아갈 이유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칼리안의 말에 리오나는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칼리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루를 남긴 채 휙 돌아서 제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건 들키지 않을 곳에 묻어 주십시오.”
리오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칼리안의 등을 보다가, 자루로 시선을 옮겼다.
칼리안은 최근에 황후로부터 편자 납품 사업을 받아 해내고 있었다.
“……어쩌지…….”
리오나는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황후의 뒤를 따르는 귀족가들이 모두 풍비박산이 났다.
알헤미츠와 팔마니아 백작가의 아들들도 외눈박이가 되었다고 한다.
황후는 리오나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이 같은 어두운 시기에 황후의 일에 너무 깊게 개입하면 그들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황후는 제 아들조차 잘못을 뒤집어씌워 신전에 유폐시킬 만큼 잔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적당히 황후의 호의를 받아 혜택만 챙기는 것이 좋은데, 칼리안은 이미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근 것 같았다.
**
황금 사슴을 묻었다. 사슴의 뿔은 범인이 가져갔는지 찾을 데가 없었다.
사슴을 묻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에시카에게, 헤모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황태자비 전하, 그러니까…… 예전에 셀릭서를 조사하다가 크락톤 일족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봤었는데 그들은…….”
흠, 하고 헛기침을 한 그는 말을 이었다.
“동물이 죽으면 하늘숲에 간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죄가 많아 끝없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죄를 씻어내고, 또 죄를 짓고 살아가는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에시카의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깨끗한 영혼을 가진 동물은 단 한 번 태어나 죽으면 하늘숲에 가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산다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형벌이라는 관점이군.”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는 필히 고통이 수반되고, 어쩌면 삶은 고통이 기쁨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업화에 빠져 허우적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죄를 쌓고 속죄가 반복된다라…… 에시카에게는 썩 마음에 드는 이론이었다.
에시카는 황금 사슴의 무덤을 보며 읇조렸다.
“하늘숲에서는 행복하게 지내려무나.”
에시카의 말에 헤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금 사슴의 내세를 함께 빌어 주었다.
무덤에 사슴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헤모스가 말했다.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정말…… 이런 말은 실례이지만 알수록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헤모스의 말에 에시카는 눈썹을 씰룩했다.
“처음 저를 만났을 때는 손목을 뎅강 베어 버릴 것처럼 하시더니, 그리고 어떤 자들에게는 야수처럼 무서우시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정이 많으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늘 그랬어, 누군가에게는 악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인 취급도 받았지.”
에시카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단면이야. 노상강도가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일 수도 있는 것처럼 사람의 본질을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지. 자네는 내 부하로서 조금 더 많은 내 단면을 접했을 뿐이고.”
‘부하’라는 말에 움찔한 헤모스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뿌듯함이 가득 차 있는 미소였다.
“사실 사람들은 다 그래. 그래서 서로에게 어떤 단면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다른 상호 작용을 하게 되지. 좋은 인연과 악연이 결정되기도 하고.”
“그렇군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내 평생 동안 그렇게 새카만 단면만 존재하는 자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야.”
“예…… 예……?”
멈추어 선 에시카의 푸른 눈이 서늘한 한기에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건조하게 달싹였다.
“지독한 악의로만 구성된 그 사악한 영혼 말이다.”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헤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 대상이 황후를 향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보기에도 황후는 악귀 그 자체였다.
“잘 버티게, 내가 말한 대로 항상 주의하고.”
“예. 알겠습니다.”
“까딱하단 황금 사슴처럼 하늘숲에도 가지 못할 테니.”
에시카는 다시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자도 잘 감시해.”
**
비가 내리는 바람에 저녁에 있을 야외 만찬이 내일로 연기되었다.
“이파르는.”
덕분에 레스반과의 단둘만의 저녁 식사를 즐기는 중,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관망하겠다고 하더군.”
그의 말에 에시카는 옅게 입꼬리를 올리며 레스반을 보았다.
레스반의 고운 턱선에 생채기 하나가 나 있었다.
아까, 연무장이 반파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파의 이유는 황태자 레스반과 카모스의 왕세자 이파르가 전력을 다해 대련했기 때문이었다.
검술과 마법이라는 희대의 대결을 펼쳤다.
“사내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란 거칠다니까요.”
에시카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세상에서 가장 거친 여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 움직인 레스반은 말없이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한 마디 했다.
“이겼으니 체면은 세운 것이지.”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지만 근접전에서는 마법이 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레스반은 두 차례의 선공을 이파르에게 허용하였었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은 레스반의 승리는 명확했다.
“제기랄.”
쓰러지지 않은 채 서 있는 레스반을 보며 입꼬리를 올린 이파르가 중얼거렸었다.
그것이 그가 레스반의 공격에 기절하기 전의 마지막 말이었고 말이다.
“크게 다치면 어쩔 뻔했어요.”
에시카는 타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레스반에게 말했다.
사냥제에서 그녀가 겪었던 이파르의 마법은 소드 마스터라도 한 번 걸리면 속절없이 당하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레스반이 에시카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얼굴에 생채기까지 날 정도였으면 위험했음은 틀림이 없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에시카의 모습에 레스반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파르는 레스반을 도발했지만 레스반은 도발을 넘기고 내기를 걸었다.
이긴 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그 녀석이 감히 그대를 언급했을 때는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
“이렇게 그대가 나를 걱정하는 것을 보니…….”
에시카는 고개를 저었지만 레스반은 손을 올려 그녀의 턱선을 매만졌다.
그의 선명한 눈빛에 에시카는 또 마음이 울렁였다.
“보람이 있군.”
그의 말에 에시카는 레스반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지만 그 단단한 어깨가 뒤로 밀릴 리 없었다.
식사는 끝났다.
“걱정은 마쳤으니, 이제 칭찬할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