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6. 공작 부인이 되기 위해서라면(16/192)
#16. 공작 부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2023.12.16.
노을이 져 가는 저녁이었다.
식사 후 정원 근처를 산책하던 칼리안은 저택으로 들어오는 마차를 보았다.
가문의 마차, 어머니는 아파 앓아누워 계시는데 누가 마차를 쓴 것인가 생각하는 칼리안에게 하인이 먼저 설명해 주었다.
대부인 대신 티파티에 다녀온 공작 부인이라고.
에시카.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 순간 저번 만남에서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냉대하는 듯한 그 모습과 눈빛에서부터 싸늘하게 불어오던 찬바람.
에시카 클라우스답지 않다.
괴리가 있는 그 행동은 위화감을 증폭시켰다.
남았던 인상은 두 글자로 표현된다.
‘감히’.
버릇을 고치기 위해 관심을 주지 않으려 했다.
에시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이 제 무관심임을 알았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마치 칼리안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늘 뒤를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사라진 듯 묘하게 허전하다.
“…….”
노을을 등지고 마차에서 내리는 에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사치로 어머니께 혼이 난 뒤 허름하게 입고 있던 평소와는 달리, 그녀는 노을과 어울리는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며 드레스 자락이 살랑대는 모습이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따뜻한 느낌의 드레스와 대비되는 푸른 눈동자.
“…….”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에시카가 이런 얼굴이었던가.
칼리안은 눈썹 사이를 살짝 찌푸렸다.
등 중간까지 닿는 은발은 바람에 살랑이고, 둥근 이마와 오뚝한 콧대는 몽환적인 옆모습을 만들어 낸다.
피부 결은 유약을 바른 술잔처럼 곱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칼리안은 처음으로…… 에시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왜 저렇게 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어쩌면 그것이 최근 들어 건방지게 행동한 것에 연관이 있을까?
제 뒤를 따라다니지 않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까?
모름지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부인!”
그때 그녀에게 달려가는 하녀의 모습이 보였다.
저 하녀의 이름이 무엇이었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하녀는 에시카의 앞에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있잖아요…….”
그 말을 들은 에시카의 입술 끝이 옅게 위로 올라간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소녀 초상화의 입꼬리를 잡아 올리듯 오묘한 느낌이다.
에시카는 웃음기를 띤 채 하녀를 보고 있었다.
분명 눈이 차가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아름다운 노을이 그녀의 눈에 담겨 있다.
곧 사라져 버릴 것처럼 찬란하고 아련한 그것이…….
“…….”
칼리안은 눈썹을 짙게 찌푸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제 가슴 부근을 만져 보았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애써 외면하듯 발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칼리안의 자존심이며 오랜 기조였다.
하지만 이토록 불안한 기운이 심장 부근에 밀려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가자, 셀라.”
에시카는 하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래, 에시카의 미소는 원래 저랬다.
그런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저렇게 미소 지은 것이 언제였지?
기억난다.
결혼식 날이었던 것 같다.
**
“요즘 들어서 기분 나쁘게 왜 쳐다보고 난리지?”
에시카의 중얼거림에 셀라는 화들짝 놀랐다.
“……부인?”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셀라는 에시카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확실히, 공작 부인은 너무 많이 변한 걸 넘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신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클라우스 공작을 쫓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저택의 모든 고용인이 뒤에서 고개를 저을 정도로 불쌍하고 가련했다.
그런데 지금의 에시카는 공작의 거취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인다.
“저…… 혹시 공작 전하를 잠시 뵙는 건 어떨까요? 아까, 공작 전하께서 부인을 찾으신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제게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하인들 사이에서…….”
셀라의 말에 에시카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셀라 너는 내가 공작 전하의 총애를 받기를 원하니?”
그 말에 셀라는 망설일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것이다. 클라우스 공작은 공작저의 주인.
지금은 대부인의 하녀들이 대놓고 공작 부인을 무시하지만, 공작 부인이 공작과 사이좋은 부부가 된다면 누구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시카의 입술이 뒤틀렸다.
“나는 말이지. 한번 기대를 저버린 자는 용서해 줄 수 있어.”
영령이었을 적, 윗선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악행을 했던 부하를 떠올렸다.
“두 번까지는…… 그래, 내가 꽤 좋아하는 자들이면 용서해 줄 수도 있겠어. 물론 아직 그래 본 적은 없지만.”
“부인…….”
“하지만 세 번부터는 끝이야.”
셀라는 눈을 끔뻑였다.
에시카가 차가운 눈빛으로 셀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눈빛이었다.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지. 그리고 공작은 열 번 스무 번 내 기대를 저버렸어.”
영령으로서의 기억을 되찾기 전, 에시카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평생 함께하겠다는 혼약을 한 그가 자신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
“이쯤 되면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
멍하니 에시카를 보던 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전하는 결코, 부인께 용서받지 못하시겠구나.
유리 아네시스. 그 여자도 말이다.
그리고 셀라는 생각했다.
이미 한 번 그녀의 음식에 독을 넣으려다 들켰던 그녀였다.
두 번 실망시켜 드린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수 있겠구나.
오랜만에 속으로 군기가 바짝 드는 그녀였다.
**
“결혼을 후회하시나요?”
반지 상점에 갔던 칼리안을 뒤따랐을 때, 유리는 그렇게 물었었다.
그 말에 칼리안은 흠칫하더니 쓸쓸한 표정으로 유리를 돌아보았다.
유리는 칼리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알렛 반지를 들어 올린 칼리안은 손을 뻗어 유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약지에 부드럽게 반지를 끼워 주었다.
말로는 나오지 못한 그의 관심이 전해졌다.
“많이.”
그날의 목소리가 여전히 유리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노을이 지던 하늘도, 가슴 속 피어나던 작은 희망의 새싹도…….
그녀를 집어삼키던 욕심도 말이다.
‘에시카, 너만 나가면 공작 부인 자리는…… 틀림없이 내가 차지할 거야.’
유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에시카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허울만 하위 귀족이지 어지간한 평민들보다 가난한 아네시스의 딸이었던 그녀에게, 에시카는 인생의 불공평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애일 뿐이었다.
멍청하고 순진한 그 여자애는 부잣집인 브리기트 가문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랐고, 프리하츠를 주름잡는 브리기트조차 별거 아니게 여기는 수도 토레스의 명문가 클라우스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만약 유리 자신이 아네시스가 아니라 브리기트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은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에시카였다면 분명 클라우스 공작을 만족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에시카. 넌 끝났어……. 네가 역전할 수 있을 리가…….’
쿵쿵쿵-
이를 으득 갈고 있는데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하녀 에밀리아가 보였다.
“무슨 일이지?”
유리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대부인의 병간호를 하느라 며칠간 잠을 못 잤다는 핑계로 휴가를 낸 차였다.
사실은 칼리안의 동선에 대한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그를 쫓아 그와 마주칠 요량이었고 말이다.
“대부인께서 부르셨어요.”
피곤하다는 핑계로 거절할 수는 없는 명령이었다.
“……대부인께서?”
“네. 아무래도 저번에 겪으셨던 배탈과 관련해서…… 여쭐 것이 있으신가 봐요.”
에밀리아의 말에 유리는 속으로 흠칫했다.
대부인이 며칠을 끙끙 앓던 이유는 주방에서 훔쳐 온 그 약 때문이었다.
“그건 의사와 이야기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기는 했는데,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신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심하게 앓으신 적은 없었는데…….”
“뭐,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마샬 부인의 파티에 갔던 공작 부인이요……. 거기에서 기가 죽기는커녕, 위세를 잔뜩 부리고 오셨대요. 그 일로 대부인의 심기가 매우 안 좋으세요.”
유리의 손이 움찔했다.
아픈 대부인 대신 그 자리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비웃었었다.
볼란과 마샬, 그 심술궂은 부인들은 에시카를 괴롭히는 천적과도 같았으니까.
그곳에서 있을 일은 안 봐도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거기에서 에시카가 위세를 부렸다고?
설마 그 고약한 부인들의 콧대를 내리눌렀다는 건가.
“……그래……?”
유리는 태연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의 뒤를 에밀리아가 따랐다.
유리의 속이 복잡했다.
그렇다면 지금 리오나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는…….
‘나를 의심해서보다는…….’
“…….”
유리의 꼭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뒤집어쓸 것을 요구하겠지. 내가 에시카의 사주로 자신에게 배탈약이라도 먹였다고…….’
리오나에게 유리는 그저 체스의 폰 정도일 뿐이다.
목적을 위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가치 없는 것.
요즘은 보석조차 바치지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여길 것이다.
‘내가 약을 먹인 것은 맞지만……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
유리의 앞에 계단이 보였다.
자신을 이러한 상황으로까지 떠민 것이 에시카 같아서 그녀에 대한 분노가 더 치솟았다.
유리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