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7. 엉망진창이 된 유리(17/192)
#17. 엉망진창이 된 유리
2023.12.17.
쿠당- 쿠다다탕-
유리가 계단에서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계단에 막 발을 디딘 에밀리아가 놀란 채, 저 바닥까지 데굴데굴 굴러서 쓰러져 있는 유리를 내려다보았다.
“시녀장님!”
지나가던 하녀 몇이 멈추어 놀란 표정으로 유리를 보았다.
“……흐윽…… 으윽…….”
계단에서 거침없이 제 몸을 내던진 유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부딪혔는지 머리에는 피가 나고 있었고…….
“……헉, 시녀장님.”
하녀 하나가 입을 막으며 소리를 죽였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 유리는 이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발을 헛디디신 거예요?”
이내 유리는 경악한 에밀리아를 보며 손을 들어 코를 닦았다.
축축한 그곳을 닦자 손에 피가 가득 묻어 나왔다.
“시녀장님이 쌍코피를 흘리고 계셔……!”
눈치 없는 하인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뭐? 쌍코피?”
“시녀장님의 코가 피범벅이 되었다고?!”
당장이라도 저놈들의 머리통을 깨 버리고 싶었지만, 유리는 참았다.
그리고 아픈 듯 흐느껴 댔다.
“흑……흑…… 아야…… 너무 아파……! 도와줘!”
유리의 울음소리에 하나둘, 고용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에밀리아는 당황한 채 유리를 부축하며 일으키려 했지만 유리는 일어나지 않고 구슬프게 울어 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가락으로 에밀리아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 나쁜 년!”
**
“말도 안 돼요, 대부인. 제가……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에밀리아가 저를 계단에서 밀었어요. 저년이 대부인께 배탈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제가 알아챘거든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유리의 말은, 확실히 에밀리아의 멀쩡한 모습보다 호소력이 있었다.
설마 아무리 독하다고 해도 저런 몰골을 만들면서까지 거짓말을 할까?
리오나는 제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둘을 번갈아 보았다.
“시녀장의 말은 거짓이에요. 그래요, 분명 시녀장이 대부인께 배탈약을 먹인 것이 틀림없…….”
“다른 하녀들에게 에밀리아의 방을 조사하라고 했어요.”
“내 방을 조사해서 뭐 할 건데! 이 마녀 같은 여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랗게 질린 하녀들이 빈 약병을 들고 들어왔다.
유리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리오나에게 말했다.
“보세요. 저 안의 내용물을 조사해 보면 누가 대부인께 감히 못된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리오나의 표정은 뾰로통했다.
“대부인! 다 거짓이에요! 유리가 얼마나 간악한 계집인지 아시잖…….”
“닥쳐라.”
리오나의 차분한 일갈이 들려왔다.
“대부인…… 저는 십 년 동안 대부인을 모셔 왔어요.”
“저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나는 의심의 싹을 곁에 키울 만큼 태평하지 못해.”
“대부인!”
에밀리아의 낯빛은 하얗고,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것을 끌어내.”
대부인의 가차 없는 명령에, 바깥에서 하녀 몇이 들어왔다.
“대부인! 제가 아니에요! 유리…… 유리 저년이……!”
“에밀리아의 말은 믿지 마세요. 대부인께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때리신다며 제게 대부인의 욕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너희도 들었지?”
유리는 두 하녀에게 강한 눈빛으로 물었다.
자신들 또한 대부인의 뒷담을 한 것은 같기에 그들은 떨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끌려갔다.
앞으로 누구도 클라우스 저택에서 에밀리아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맞아요. 에밀리아는…… 뒤에서 대부인을 험담했어요.”
“시녀장님의 말씀이 옳아요.”
다른 하녀들의 말에 리오나는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썹 끝은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영문 모를 배탈에 대한 원인은 찾았다. 에밀리아 그 천한 년이 감히!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이왕이면, 유리 아네시스가 자기에게 약을 먹였다고 실토하게 하고, 그를 에시카의 사주로 몰아가면…….
그게 리오나에게 제일 유리한 한 수가 되었을 것이다.
진범인 에밀리아는 따로 조용히 처리하면 되었겠고.
하지만 유리는 온 집안을 들썩이게 하며 소란을 떨었다.
그래서 저택의 모두가 배탈 사건의 진범이 에밀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저것이 설마…….”
거기까지 읽어 내고 저렇게 계단에 구른 것은 아니겠지?
리오나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떠 유리를 보았다.
유리의 이마를 동동 맨 붕대는 더러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리오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저는 항상 대부인께 충성을 다하며, 감히 대부인을 해하려는 자들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시끄럽다.”
리오나의 말에 유리가 흠칫했다.
바싹 얼어 서 있던 하녀들 역시 몸을 더욱 굳혔다.
“흉한 몰골이 보기 싫으니, 들어가거라.”
리오나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되었다.
적어도 리오나의 계획대로, 배탈 사건의 진범으로 에시카의 발목을 잡고 함께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은 면했다.
만약 그랬다면 리오나가 사면해 주더라도 칼리안의 호의는 영영 바라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리는 제 목표를 위해서라면 더 가파른 계단에도 구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부인.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유리는 인사를 한 뒤 절뚝거리며 돌아서서 나왔다.
당연히 그녀의 머릿속에 에밀리아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위기를 잘 헤쳐 나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어떻게 해서든 목적을 이뤄 내겠다는 처참한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더럽게 아프네……. 에시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리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
갓 딴 신선한 황금과와 개구리 엑기스, 도마뱀 꼬리 일곱 개를 배합해 만든 영약은 내공의 증진 속도를 높여 주었다.
‘이래 봬도 영약 제조에는 도가 텄으니.’
어린 시절 노마들의 가르침을 직접 받아 그녀는 여러 영약의 배합 절기를 배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유효 성분이며, 어떤 음식에 무림의 것과 비슷한 유효 성분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눈썰미가 좋은 그녀에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이전처럼 헤모스가 대충 재료를 배합한다거나 다른 재료를 써서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썩 괜찮은 영약이 되는 법이다.
‘당분간은 이 정도면 무공을 수련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방에서 가부좌를 튼 채 에시카는 운기조식을 했다.
영약을 마시기 전과 비교해 내공의 흐름이 더욱 원활하다.
“이 대체 무슨 효능이 있길래…… 귀하고 기이한 재료로 이런 걸 만드는 겁니까.”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눈치였으나, 그는 이제는 성심성의껏 에시카가 가르쳐 준 대로 약을 만들었다.
헤모스는 이제 그녀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똑, 똑.
운기조식에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셀라의 것과는 다른 조금 둔탁한 소리였다.
눈썹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켜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문을 열었다.
“…….”
흰 제복을 입은 클라우스 공작. 큰 키는 장대만 한 그림자를 방 안으로 드리웠고 음영에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 보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의 갈색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밤하늘을 닮은 보랏빛 눈동자만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영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눈을 마주친 순간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다.
원치 않았던 불청객의 얼굴을 본 것처럼.
“…….”
뚜벅, 뚜벅.
칼리안은 말없이 에시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에시카와 마주 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술 냄새.’
칼리안의 딱딱하게 굳은 눈썹과 조금 일그러진 듯한 입매, 영 사나운 눈빛에 에시카는 눈썹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나가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쉬고 싶어서요.”
그리고 그때, 칼리안은 에시카의 손목을 잡았다.
싸늘한 에시카의 눈빛을 마주하며 칼리안이 이를 으득 물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혹은 들끓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화가 났다, 이건가.”
대뜸 시비를 거는 듯한 칼리안의 말에 에시카는 어이가 없었다.
“도통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게 일부러 이러냐고 묻는 거야.”
“…….”
눈썹을 찡그리고 이상한 사람 보듯 저를 보는 에시카의 태도에 칼리안은 화가 났다.
에시카 클라우스는 단 하루도 칼리안을 좇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는 제가 어떤 말로 상처를 줘도 잠시 눈물을 글썽일 뿐, 다음 날 생각 없이 밝은 낯으로 나타나는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의 에시카는, 계속해서 칼리안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조금의 관심도 없었던 것처럼 돌변하여 마냥 이리 싸늘한 표정으로…….
게다가.
탁-
손목을 잡은 힘이 강했는지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에시카는 칼리안의 손목을 움직여 칼리안의 손을 털어 냈다.
제게서 벗어나는, 일말의 미련도 없는 단호한 거부의 손짓에 칼리안의 눈동자에 격랑이 일었다.
“저야말로 공작 전하께서 제게 왜 이러시는지 알 수가 없군요.”
“……뭐?”
“애초에 제게 일말의 관심도 없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제 골방까지 찾아와 굳이 말장난을 거는 것을 보면…….”
달싹이는 붉은 입술에 칼리안은 순간 목이 탔다.
“설마, 제게 관심이라도 생기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