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18. 아내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18/192)
#18. 아내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2023.12.18.
칼리안의 눈동자에 격랑이 일었다.
제 깊은 곳을 찌르기라도 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칼리안은 가슴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부정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내가 에시카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그녀의 친정 브리기트는 천박하고 돈만 밝히는 그저 그런 남작 가문이다.
어머니의 말대로 클라우스 공작가와는 ‘격’이 맞지 않는 가문에서 온 여자.
“클라우스 공작은 결혼 시장에서 큰돈을 받고 팔린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위세 높던 클라우스도 이제 별거 아닌가 봐.”
에시카와의 결혼 이후 사람들은 뒤에서 지겹게도 수군거렸다.
그러나 눈치가 없는 것인지 머릿속이 청순한 것인지, 그녀는 한결같이 해맑았다.
파티를 하고 싶다고 징징대었고, 친정에서 가져온 사치스러운 드레스와 보석으로 제 부를 뽐내었다.
가문을 오랫동안 지켜 온 고용인들을 괴롭힌다는 말도 속속 들려왔고, 마치 돈으로 클라우스 전체를 산 것처럼 오만방자한 태도에 모두가 혀를 내두른다고 했다.
그러니 어머니가 그녀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천박하고 가벼운 행태는, 그녀 자체를 진절머리 나게 했다.
늘 저만 쫓아다니고 제게 매달리는 모습조차 보기 싫어 칼리안은 그녀를 피했다.
속으로는, 에시카가 병이라도 걸려 죽어 버렸으면 하고 바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
칼리안의 마른 입술이 달싹였다.
그의 머릿속에, 방금 에시카가 물었던 말이 계속 반복해서 맴돌고 있었다.
“설마, 제게 관심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
에시카의 입꼬리 끝이 올라간다.
어느 순간부터 에시카는 그를 보고 웃지 않았다.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 의미의 말을 들은 에시카는 너무도 즐겁다는 듯 미소 짓는다.
원인 모를 진득한 불쾌감이 뇌리를 뒤덮는다.
“그럼 이만 가 주세요. 관심 없는 여자에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받은 에시카의 푸른 눈은 차가웠다.
“시간 낭비해 보았자 좋을 것이 뭐가 있겠나요?”
“…….”
칼리안은 발에 못이 박힌 듯 서서 에시카를 응시했다.
에시카의 겉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저 무정하고 무관심한 눈빛과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말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이 여자는 에시카다.’
칼리안은 잠시 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썹을 찌푸리더니, 뒤돌아섰다.
아릿한 통증은 머리에서 느껴지는지 가슴에서 느껴지는지 알 바가 없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깊은 혼돈이 감돌고 있었다.
**
“저…… 부인, 방을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에시카에게 셀라는 조심스레 말했다.
주근깨가 난 그 얼굴에는 화색이 돌아 있었다.
“전에 기거하시던 방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있으셨어요.”
샐러드를 먹던 에시카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대부인이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대부인이 아니라…… 공작 전하의 명령이세요.”
태연히 포크질을 하던 에시카의 손이 멈추었다.
‘칼리안의 명령이라고?’
칼리안 클라우스는 지독히도 무정한 남편이었다.
영령의 기억을 되찾기 전에는 몰랐지만 그는…… 에시카를 창피해했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부를 맞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칼리안은 그런 것들에 신경을 썼었지.
제격에 맞지 않는 여자와 억지로 결혼했다고 생각했으니 에시카를 존중할 리가 없었다.
그는 대부인의 제 아내에 대한 학대를 방치했다.
에시카와 고용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고용인을 감쌀 정도이니, 고용인들이 모두 그녀를 무시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에시카의 결혼 생활은 지독히도 불행했다.
“…….”
에시카는 포크질을 계속했다.
어쩌면 이건 최근에 있었던 다툼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가 영령의 기억을 되찾지 못했더라면, 사랑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에시카였다면 그녀는 분명 감격했을 것이다.
칼리안의 호의라면 썩은 빵조차 기꺼이 먹을 정도로 에시카는 칼리안을 사랑했으니까.
그 사랑의 감정은 에시카의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부인…… 포…… 포크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포크가 반으로 접혀 있었다.
저도 모르게 내력을 실은 모양이었다.
셀라의 얼굴은 놀라 굳어 있었지만, 에시카는 다시 포크를 반듯이 폈다.
그리고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네.’
지금의 에시카는 전과는 달랐다.
제게 죄를 지었으니 마땅한 벌을 받게 할 것이다.
거만하게 위에서 내려다보며, 힘없는 자를 짓밟았으니 저도 짓밟히게 될 것이다.
실컷 사람을 패 놓고 과자 몇 개나 사탕 몇 개로 그러한 죄를 용서받을 수는 없다.
‘당신은 여전히 착각하고 있구나, 칼리안.’
영령은 복수의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개에게 밥을 던져 주는 듯 같잖은 호의는 그녀의 의지에 더욱 활력을 주었다.
“나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으니 짐을 옮겨 놓거라.”
식사를 마친 에시카는 셀라에게 말했다.
곧장 하녀복으로 갈아입는 에시카를 보며 셀라는 빠릿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인.”
**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유리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하녀를 다그쳤다.
어린 하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공작 전하께서 원래 쓰시던 방으로 다시 옮기시라고…… 지위에 맞지 않은 방은 공작가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하셨어요…….”
클라우스의 가장 넓은 침실은 칼리안의 것이었고, 그다음으로 넓고 위치가 좋은 곳은 대부인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큰 침실…… 그곳은 원래 에시카가 사용했었다.
유리는 에시카의 부름을 받고 클라우스 공작가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유서 깊은 자택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넋을 잃고 들어가자 에시카가 쓰고 있는 드넓고 고급스러운 방이 보였었다.
멋들어진 저택의 아름다운 방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미소 짓는 에시카의 모습에 유리는 결심했었다.
저 애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야 말겠다고.
대부인의 미움을 사 에시카가 골방으로 방을 옮기게 되었을 때, 유리는 속으로 웃었다.
그 애의 시중을 드는 저도 불편해진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공작 부인의 방이 비었다는 것은 훗날 제가 그곳에 들어갈 미래를 꿈꾸게 했다.
“말도 안 돼! 공작 전하께서 왜!”
유리는 눈을 부릅뜨고 어린 하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시녀장님…… 무서워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공작 전하께서는 에시카에게 신경 쓰실 분이 아니시라고! 에시카를 얼마나 미워하시는데!”
“아.”
그제야 어린 하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부인의 침실에 다녀가셨어요.”
“그 골방에?”
유리의 눈썹이 굳었다.
에시카가 골방으로 옮기기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칼리안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방을 찾은 적이 없었다.
칼리안은 에시카에게 철저하게 무심한 남자였으니까.
에시카의 손이 닿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말이다.
“말도…… 안 돼…….”
그런데 칼리안이 제 발로 에시카의 방을 찾았다고?
유리는 창백한 얼굴로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치를 보던 하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뒤돌았다.
“에시카,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유리의 눈이 질투와 분노로 번뜩이고 있었다.
둘의 사이가 좋아지기라도 하면 자신이 꿈꾸는 미래는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어떻게 에시카의 평판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시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
유리는 주먹을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머리를 부딪혀 난 상처가 화끈거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
“길이는 이 정도, 검신은 조금 더 뭉툭하게 해 주세요.”
“아가씨가 참으로 까다롭구먼. 뭐, 주문은 확실한 것이 좋지.”
오늘 에시카는 하녀복을 입은 채 무기 상점에 들렀다.
자신이 쓸 검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저번에 마샬의 티파티에 갈 때 길을 보아 두어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천영령이었을 때 썼던 흑비와 같은 크기, 같은 모양……. 기대되는군.’
물론 무기 상점 주인은 눈앞의 여려 보이는 하녀가 직접 단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에시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필기를 마친 무기 상점 주인이 말했다.
“사흘 뒤 찾으러 오시오.”
검의 제작비는 진주를 판 돈으로 지불했다.
오랜만에 검이 손에 들릴 감각을 떠올리니 에시카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입에 맺혔다.
그렇게 웃으며 가게를 나오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앞에서 들렀다.
“……무기 상점이라.”
“……!”
“클라우스에는 대장장이가 여럿 고용되어 있을 텐데, 재미있군.”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황태자 레스반이었다.
그는 원래의 검은 정복과 다른 기사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고, 아마도 신분을 숨긴 채 어떤 일을 하러 나온 것 같았다.
황태자가 바깥 외출을 할 시에 늘 따라다녀야 할 기사들조차 없었으니.
그리고 하필 이 순간에 그를 만난 것은 빌어먹을 우연이겠지.
“……저번에 뵈었던 기사님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에시카는 당혹스러운 속내를 숙이고 하녀인 척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천천히 눈을 들자, 자신을 응시하는 레스반의 눈과 마주쳤다.
“애인에게 줄 단검을 고르려 잠시 상점가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