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외전 5화. 육아물 (5)(184/192)
#외전 5화. 육아물 (5)
2024.05.02.
날은 화창했고 푸른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크게 부푼 배를 안고 정원을 거닐던 에시카에게 시녀가 다가왔다.
“엘레나 황녀님께서 마법 구현화에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노란 꽃을 만지고 있던 에시카의 손이 멈칫했다.
에시카는 자세를 똑바로 펴고 황궁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 애가 잘 해낼 줄 알았어.”
에시카의 은발과 레스반의 금안을 빼다 박은 황녀 엘레나는 영특한 아이였다.
아기 때는 오러 예민 증상 때문에 에시카와 레스반을 무서워해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은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
레스반의 품에서 엘레나가 기절했던 일은 두 사람에게도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구현화에 성공하였으면 이제…….”
에시카의 입꼬리가 기쁜 듯 올라가 있었다.
“스스로 오러를 제어할 수 있겠구나.”
그 말은 오러 예민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물 공포증에 시달리지는 않듯, 혹은 날 수 있는 새가 고소 공포증에 시달리지 않듯…….
오러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 더는 에시카와 레스반과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에시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에서 반가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는 시선을 돌려 그곳을 보았고, 풍성한 은발을 양 갈래로 묶고 달려오는 엘레나 황녀의 모습이 정원 언덕길 위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라색 프릴 드레스를 입은 엘레나의 모습은 어느 인형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헉…… 헉…….”
에시카의 앞까지 열심히 뛰어온 엘레나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엘레나의 뒤에서 같이 뛰던 시녀들이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에시카에게 예를 갖추었다.
숨을 고른 엘레나는 고개를 올려 에시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엘네나! 마법꾸혀나에 선공해써요!”
세 살배기 아기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은 에시카는 차분한 얼굴로 손을 뻗어 엘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여 격려했다.
“잘했어, 엘레나. 마법사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을 축하한다.”
에시카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듣는 칭찬은 그 어떤 선물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엘레나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명심하렴. 엘레나.”
에시카는 칭찬에서 끝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녀의 어조는 약간은 딱딱해서 엘레나는 천천히 미소를 거두었다.
이제는 마냥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 엄마의 푸른 눈이 유달리 짙어 보였다.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는 거야.”
“…….”
세 살배기 엘레나가 그 의미를 이해할 리 없었지만 에시카는 바랐다.
비록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문장이 그녀의 가슴에 박혀 오래 남기를.
엘레나는 일렁이는 눈으로 한참 동안 에시카를 올려다보다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시카는 피식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럼 이만 가 보거라.”
“네! 엄마!”
에시카의 미소에 다시 얼굴이 환해진 엘레나는 신나게 뒤돌아섰다.
작은 몸으로 콩콩거리며 뛰어가는 귀여운 엘레나의 모습에 에시카의 입가에 웃음기가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것에 약간의 균열이 간 때는 엘레나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서이다.
에시카는 천천히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배는 보통 임산부의 배보다 더 컸다.
수축이 오고 있었다.
**
나는 초조하게 엄마의 방 밖에 서 있었다.
내 옆에는 아빠가 눈썹을 굳힌 채 서 있었고, 꾹 닫힌 방 안에서 분주하게 시녀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마니 아프까요?”
드레스 자락을 쥔 나는 걱정에 가득 차서 중얼거렸다.
“어떠케요. 마니 아파서…… 아프면 안 대는데…….”
황의가 그러는데 엄마의 배 속에는 아기가 둘 있다고 한다.
내 동생들이다.
그리고 지난 생에서 본 책에서는 쌍둥이 출산은 꽤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현대에 와서는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위험도가 많이 줄었지만 옛날에는 죽는 산모들도 많았다고…….
“엄마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정도로 불안했다.
아빠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작은 한숨을 쉬며 무릎을 바닥에 대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빠의 짙은 금안이 나를 담고 있었다.
“…….”
움찔.
이제 오러 예민증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아빠랑 마주치면 무서운 호랑이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빠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오러 때문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전처럼 기절할 정도는 아니다.
“엘레나.”
아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잘생기기만 하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지만, 엄마의 이름을 부를 때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직한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는 것도 같았다.
“네 엄마는…… 고통과 싸우고 계실 거다.”
“어떠케요…… 많이 아프면…… 히끅…….”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엄마를 조금 무서워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이 좋아한다.
엄마는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랑 이별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건 절대로 정말정말 싫어!
내 반응에 아빠는 입꼬리 한쪽 끝을 살짝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너를 낳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큰 고통을 인내해야 했지. 하지만…….”
아빠의 말이 귀를 타고 가슴 속으로 흘러들었다.
“너를 낳고 매우 기뻐했다. 고통은 전부 잊어버린 것처럼.”
그 말에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갓 태어난 나를 엄마가 어떤 얼굴로 바라보았을까.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어떤 이별들처럼, 어떤 만남은 고통을 수반한단다.”
“…….”
“하지만 엄마의 말로는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어.”
아빠는 천천히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머리 위에 묵직하게 올리며 말했다.
“나는 겪어 보지 못했지만, 네 엄마가 하는 말은 뭐든지 믿으니…….”
아빠의 목소리에는 엄마를 향한 사랑과 절대적 신뢰가 담겨 있었다.
“……너도 엄마를 믿거라.”
아빠의 말에 한참 동안 눈을 일렁이던 나는 입을 열었다.
“네!”
그리고 살짝 젖은 눈가를 소매로 쓱쓱 문질렀다.
꿋꿋하게 기다리자, 엘레나!
엄마는 강한 사람이니까 잘 해내실 거야!
그리고 몇십 분이 흐른 어느 때였다.
아기들의 우렁찬 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눈을 크게 떴고, 아빠의 입에서 작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들었다.
나 역시 긴장했던 것이 서서히 풀리며 실없이 웃음이 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니, 안색이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
“다시 말해 보거라.”
아빠의 살기가 엄마의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시녀들은 덜덜 떨고 있었고 황의 역시 죽을 듯 몸을 숙이고 있었다.
만약 오러를 제어하지 못했으면, 기절해 버릴 정도로 아빠의 기운은 거셌다.
“엄마아…….”
내 턱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엄마 옆에 두 동생들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지만 그런 건 소용없었다.
엄마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소……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생명 징후가 계속 약해지고 계셔서…….”
이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나를 낳을 때보다 난산이기는 했지만 엄마는 두 남동생을 무사히 출산하셨다고 한다.
산파와 시녀들은 기뻐하며 아기를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에 푸른빛이 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피곤하구나’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고…….
황의는 다급하게 엄마의 상태를 보았고, 출혈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보통 산모들과 몸 상태는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평소보다 심장이 늦게 뛰고 몸의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생명 징후가 꺼지고 있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황후 폐하, 눈을 뜨시옵소서. 황후 폐하!”
황의가 몸을 흔들어 엄마를 깨워 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아…… 으앙…….”
나는 눈물을 터뜨리며 엄마의 차가운 손을 꾹 잡고 그것으로 내 통통한 얼굴을 문질렀다.
이렇게 엄마를 잃을 수는 없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그리고 그때, 열린 방문으로 한 남자가 들어와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황후 폐하의 상태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비통한 정적을 깨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
나는 눈물이 찬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사람들을 몽땅 떨게 할 만큼 강한 살기를 내뿜던 아빠도 굳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내 마법 선생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