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외전 9화. 육아물 (9)(188/192)
#외전 9화. 육아물 (9)
2024.05.03.
우당탕탕-
동생들을 처음 봤을 때 귀엽다고 했던 거 취소야!
“엘레나 누님 어디써요?”
“누니임!”
나는 지금 정원에서 숨바꼭질…… 아니,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숨고 있다.
지금의 나는 열 살이고 조웰과 아벨, 그러니까 장난꾸러기에 말썽꾸러기인 내 동생들은 일곱 살이다.
“아벨, 그거…… 그거 써 봐. 검풍. 그거 쓰면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누님이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야. 조웰 네가 탁월한 머리로 분석해 봐.”
이 두 녀석들은 나와 분야가 다르다.
조웰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불세출의 천재 꼬마로 자라고 있었고, 아벨은 아빠와 엄마처럼 엄청나게 검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우 골치 아프게도…… 둘 다 귀찮아 죽을 정도로 나를 쫓아다녔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불러 볼까? 좋은 협상안을 제시하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누님~ 놀아 줘어!!”
“그렇게 단순하게 부르면 안 되지. 세 시간만 더 놀아 주면 앞으로 열 시간 동안 귀찮게 안 할게, 응?”
이봐, 조웰. 그건 좋은 협상안이 아니잖아.
지금은 오후 네 시였고 어차피 일곱 시는 저녁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깨어 있는 동안 계속 놀아 달라는 이야기이다.
너희랑 그렇게 놀았다가는 지쳐서 녹초가 되고 말 거라고!
이 독한 녀석들, 하고 주먹을 꽉 쥐었을 때였다.
“어? 저기에서 방금 바스락 소리가 난 거 같은데?”
제기랄, 나는 몸을 낮추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살 난 아벨의 속도는 내 달리기보다 훨씬 빨랐고 결국 나는 눈앞에 아벨을 맞닥뜨렸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벨은 싱긋 웃으며 사악하게 말했다.
“누니임, 놀자!”
“…….”
눈썹이 일그러진 채 아벨을 보고 있는데 조웰의 그림자도 다가왔다.
엄마 아빠를 닮아 대책없이 잘생긴 악동들.
조웰 역시 얼굴에 사악한 그림자가 진 채 웃고 있었다.
“나…… 그거 하고 싶어. 숫자 게임.”
**
“엘레나는 어디에서 저런 놀이를 배운 걸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사방치기를 하고 있는 엘레나와 조웰, 아벨을 보던 에시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튜레시안 황실에서 본 놀이는 아니다.
프리하츠에 있을 때도 아이들이 저런 놀이를 하지는 않았었고.
“스스로 만든 거겠지. 엘레나는 머리가 좋으니.”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레스반이 말했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지 않아 선을 밟고 ‘윽!’ 하고 소리를 지르는 조웰의 모습에 에시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즐거워 보이네요.”
“아이들의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군.”
엘레나를 낳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에시카의 미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레스반의 잘생긴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원래 마교에서도 극마 이상의 경지에 오르면 나이 많은 자들이라고 해도 반로환동하여 젊은 외모를 가지게 되며 그 외양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거의 그대로이다.
이곳의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보면 정말로 아이들을…… 낳기 잘한 것 같아요.”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의 눈썹이 미미하게 움찔했다.
에시카는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하나 정도 더 있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어떻게 생각해요?”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했다.
갸름한 턱선과 오똑한 콧대는 햇볕에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말을 더 잇지 않은 에시카가 웃음기를 띠며 시선을 배 쪽으로 내렸다.
딸이 하나 더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엘레나에게도 자매가 있으면 좋을 것 같고.
하지만 레스반은 쌍둥이들을 낳고 나서는 철저하게 피임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출산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밤의 활동은 왕성했지만 말이다.
“나는…… 셋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문득 레스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는 시선을 들어 레스반을 보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레스반의 눈동자는 무거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폐하.”
“이 정도의 행복이면 과분해. 더 큰 행복을 얻으려다가 발을 잘못 디딜 생각은 없다.”
나직하게 덧붙이는 말에야 에시카는 눈썹끝을 움찔했다.
레스반이 아기를 더 가지는 일에 왜 회의적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조웰과 아벨을 낳았던 날 에시카는 지옥에 다녀왔다.
하지만 지옥에 다녀온 사람은 에시카만은 아니었다.
엘레나가 위험을 무릅써야 했으며, 그동안 레스반은 더한 지옥에 있었다.
딸과 아내를 동시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 괴로움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이 결혼하고 최초로 가정이 위태로이 흔들렸던 날이다.
“…….”
한참 동안 레스반의 얼굴을 보던 에시카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스반에게 말했다.
“맞아요. 셋이면…… 충분하죠.”
레스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한 모금 마셔서 목을 축인 에시카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제 들려온 소식이요. 카모스의 왕이 위중하다는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이가 들었으니 갈 때가 된 거지.”
“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악화되다니. 꼭 뭔가가 있을 거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외국의 일이야. 우리는 그저 관망자로서 지켜볼 뿐이지.”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반의 말대로 남의 일인데 반역이건 내분이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조웰이 게임에서 이겼는지 만세를 부르며 방방 뛰는 것이 보였다.
엘레나는 꼬마들과 놀아 주기 지쳤는지 입을 쭉 내밀고 땀을 닦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 가 볼래.”
“한 번만 더. 누님.”
“맞아. 딱 한 번만.”
“벌써 한 번이 몇 번째야! 너희들!”
그러면서도 귀찮은 동생들과 잘 놀아 주는 좋은 누나이다.
“오늘 저녁 엘레나의 마법 선생님이 떠난대요.”
문득 입술을 연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카모스로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디에서 다시 그렇게 유능한 마법 선생님을 데려와야 하는지 고민이에요.”
레스반은 대답 없이 찻잔을 기울여 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빈 잔을 테이블에 달그닥 올려놓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복잡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
“으아앙, 선생님…….”
열 살의 의젓한 엘레나지만 오래 정든 이와의 이별 앞에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엘레나의 마법 선생은 그런 엘레나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며 눈을 맞추었다.
“황녀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입니다. 너무 슬퍼 마세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떠나시면 저는…….”
엘레나의 금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지금까지 그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양은 방대하였으며 그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엘레나는 벌써 중급 마법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인내심 있고 온화하게 엘레나를 가르쳤으며 제자의 성취에 매우 보람을 느껴 했다.
그렇기에 이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슬픈 일이었다.
마법 선생은 엘레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도 이 이별이 슬픕니다. 하지만 황녀님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듯, 저도 나아가야 하는 길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꼭 지금의 이별이 완전한 이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훗날 황녀님이 더 성장하셨을 때, 꼭 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약속 드리죠.”
마법 선생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엘레나는 거기에 자기 손가락을 끼워 약속을 받았다.
“정말이죠, 선생님?”
“네. 정말입니다. 황녀님.”
마법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엘레나는 소매로 눈을 닦았다.
그런 엘레나를 보며 마법 선생은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그가 가야 할 길은 멀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법 선생은 황궁 건물을 나서 문으로 걸었다.
어둑해지는 시간이었고 그는 문을 지나기 전 한 번 멈추어 황궁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곳에서 지낸 나날은 그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돌아가는 건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남자의 기척과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움찔한 마법 선생은 제 뒤에 서 있는 황제 레스반을 보고는 놀라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
“연기는 거기까지만 하지.”
레스반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얹혀 있었다.
마법 선생은 얼떨떨한 눈으로 레스반을 바라보았는데, 그 당황의 기색은 이상하게도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잘 빚었던 가면을 벗은 것처럼 지금까지의 순한 얼굴과는 다른 노련하고 날카로운 눈빛이 드러났다.
“알고 계셨군요. 가장 위대한 위장 마법이었는데도.”
“이파르 펠레그리노.”
레스반이 나직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호의도 적의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