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외전 10화. 육아물 (10)(189/192)
#외전 10화. 육아물 (10)
2024.05.03.
그가 황녀의 마법 선생으로 황궁에 온 일은 그저 인생의 유희거리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왕은 여전히 정정하고 왕세자 역할은 제 그림자를 세워 놓으면 되는 것이니, 더 놀지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레스반과 에시카의 딸 엘레나는 나이에 비해 매우 영특했다.
그리고 레스반과 에시카처럼 보통 사람들과는 영혼의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성생님 앙녕하데요!”
귀여운 꼬마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누군가의 스승으로서 보람을 느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엘레나는 마치 제 제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보였다.
“성생님이 안녀 준 거를 이러케 바꾸어 보아써요!”
똑똑했고 막히는 구석이 없었으며 창의적이었다.
어려운 수식도 설명해 주면 척척 알아먹으니, 카모스 왕궁의 덜떨어진 마법사들과 비길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대마법사감이다. 물론 이파르 자신보다는 성취가 조금 늦겠지만 언젠가 이 애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를 미래는 확정적이었다.
‘그냥 여기 눌러앉을까요. 레이디.’
고민하고 있던 때 그 일이 터졌다.
두 아이를 낳은 에시카가 오러 역행으로 혼수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어지간한 황의나 마법사 따위는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심각한 상태였으며 만약 이파르 자신이 곧장 레스반과 엘레나를 설득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에시카는 절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몸과 정신을 붕괴시키고 있는 오러 역행의 틈에서 에시카를 찾아 엘레나와 연결시키는 것은 대마법사 이파르에게도 상당한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엘레나는 용감하게 성공했고, 이파르는 다시 한번 보람을 느꼈다.
엘레나가 고맙다며 자신을 끌어안았을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한때 에시카와 레스반을 도와 폐황후를 몰아냈을 때도 그저 하나의 유희였을 뿐이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제 인생은 공허와 광기로 찬 빈 껍데기 같았으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엘레나의 마법 선생으로 지내며 튜레시안의 황궁에서 겪은 사건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들은 제가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 숨쉰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스스로, 마법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아아, 진짜 눌러앉을까요.’
그렇게 두 번째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던 요즘이었다.
카모스에서 레온이 다소 급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카모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보고했다.
“전하께서 메그너라이트 확보를 위한 전쟁을 준비 중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해상 병력이 준비되었고 마법사들 역시 왕군 병력으로 차출되었습니다.”
“튜레시안에 선전 포고를 하겠다는 것인가.”
“지난번의 우호 조약 후 튜레시안의 카모스에 대한 경계가 낮아진 틈을 타 기습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카모스의 정치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이파르였지만 이번만큼은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터질 것 같은 욕심이더니, 기어코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카모스의 군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튜레시안을 점령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피해를 끼쳐 튜레시안을 황폐화시킬 수는 있겠지.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자 엘레나의 얼굴이 울상이 될 것이다.
마법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이 시기에 그건 안 될 일.
그는 왕이 제 꽃밭을 망쳐 놓지 못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레온. 이제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불쑥 말을 던지는 이파르에 레온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왕이 살아 있는데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는 말은 반역을 뜻한다.
그는 멍하니 이파르를 바라보다가 급히 몸을 숙여 이마를 땅까지 대었다.
새 왕이 옥좌에 오르리라는 뜻을 밝혔으니 이제 그는 따를 뿐이다.
어차피 카모스의 왕과 이파르 사이에 부자의 정 같은 것은 없었다.
왕은 학대 당하던 어린 시절의 이파르를 방치했으니, 악감정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
이파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언제부터 알아채셨습니까?”
“에시카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
이파르는 이제 막 상급이 된 마법사의 신분으로 위장해서 황궁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웰과 아벨의 출산 후 에시카가 혼수 상태가 되었을 때 급박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끼어들었다.
그때 레스반의 눈에는 그가 조종하는 오러가 얼마나 정밀한지 똑똑히 보였다.
그것은 마법을 모르는 레스반이 보아도 결코 보통의 마법사가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더군.”
“뭐…… 그때는 급했으니까요.”
이파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티가 날 정도였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대로 죽을 만큼 힘든 척을 했는데, 레스반 눈에는 다 보였다니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저를 황궁에 그대로 두셨죠?”
하지만 이파르는 뻔뻔했고 이미 시간이 지나간 일에 부끄러워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저 더는 연기할 것도 없다는 듯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물었다.
“쫓아내시지 않고요. 제가 혹시나…….”
순한 인상의 얼굴에 파스슥 금이 가고 빛의 재가 휘날리더니 화려하리만큼 잘생긴 본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평범한 갈색 눈은 광기가 번뜩이는 청록색의 눈으로 변했고 말이다.
“……황후 폐하라도 유혹하면 어쩌려고.”
레스반은 대답하지 않고 이파르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이파르를 응시했다.
둘의 키는 레스반이 약간 컸지만 거의 비슷했고 시선이 맞닿아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했다.
“에시카의 눈을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이내 레스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파르는 눈썹을 움찔하다가 풋 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기 하나 묻어 있지 않는 레스반의 진지한 목소리에는 마치 이파르가 에시카의 눈을 모독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찮은 경멸이 깔려 있었다.
뭐…… 레스반의 말대로 이파르가 변장한 가죽이 미형은 아니었지.
“그리고 이제 너는…….”
레스반은 말을 이었다.
“에시카를 보고 있지 않더군.”
“…….”
“그런 기미라도 보였다가는 당장 베어 버리려고 했지만 말이다.”
킬킬 웃음을 뱉던 이파르는 레스반의 말에 천천히 웃음소리를 멈추었다,
그리고 웃는 인상으로 레스반을 보았다.
“그건 분명 선생의 눈이었다. 네게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너는…….”
“…….”
“그 애에게 좋은 선생으로 보였다.”
레스반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제가 본 것을 인정했다.
이파르는 엘레나에게 열의를 다해 가르쳤다.
이파르가 에시카를 살렸을 때 그의 정체를 알아본 레스반는 이파르의 진심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엘레나를 가르치며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좋은 선생으로서의 그는 엘레나에게도, 튜레시안 황실에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에시카를 살릴 만큼 도움이 되었고 말이다.
“엘레나는 뛰어난 자질이 있습니다.”
이파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제 마법 선생이 왜 저를 가르치다가 자신이 좋아서 펄펄 뛰는지 몰랐는데, 가르쳐 보니 알겠더군요. 잘 따라오는 제자를 교육하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는 것을.”
“…….”
“형님 말이 맞습니다. 레이디는 여전히 아름다우시기는 하나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형님의 것일 테고.”
그 말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저는 선생으로서 엘레나 황녀를 즐겁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떠나야 하고요.”
“떠나는 이유는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서인가.”
“흐흐, 이제 편하게 살 때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선생 노릇도 좋기는 하지만 애로 사항이 있지요.”
이파르는 팔짱을 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조의 말이 입술 새에서 흘러나온다.
“학생 아버지가 툭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
“더 가르치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서.”
“잘 가거라.”
불쑥 끼어든 레스반의 목소리에 이파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를 바라보는 레스반의 황금안은 짙었고 그 눈동자 안에는 무겁고 확실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
“엘레나에게는 전해 주겠다. 다음부터는 카모스의 왕이자, 삼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말에 이파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삼촌이라니. 심장을 달콤한 칼로 푹 쑤신 듯 기분 좋은 느낌이다.
레스반은 훅 돌아섰고 바람이 레스반의 망토를 살랑거리게 했다.
이파르는 웃음기를 띤 멍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레스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가족이 생긴 기분이다.
“그래요. 형님.”
웃음을 띤 채 돌아선 이파르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레스반을 만나기 전보다 몇 배는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에게는 콧노래가 흘렀고 하늘은 점차 어두워졌다.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세요. 엘레나. 그래서 이 대마법사 삼촌이 놀랄 만큼 강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