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외전 12화. 에시카 (2)(191/192)
#외전 12화. 에시카 (2)
2024.05.04.
“황후 폐하! 피하십시오!”
“제기랄!”
에시카는 느긋한 시선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 달려오는 기사들의 표정은 꽤 다급해 보였다.
하지만 기사들이 여기 도착할 때면 이미 늑대의 송곳니가 목 깊숙한 곳에 박히고도 남을 시간이다.
커흥-
에시카의 이마 위로 늑대의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그녀는 피식 미소 지으며 태연히 새총을 당겼다.
그 손길은 정확하고 재빨랐다.
휭-
공력이 실린 장난감 탄환은 늑대의 턱을 꿰뚫며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늑대는 끝내 에시카를 덮치지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퀴에엑-
늑대의 고통 섞인 비명이 울려 퍼졌다.
“헉…… 헉…….”
해리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고귀하신 황후 폐하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장난감 새총이었다.
일곱 살 난 황자 전하께서 가지고 놀기 좋아하시는…… 아동용 새총 말이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사냥당한 늑대는 에시카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여전히…… 정말 대단하시군.’
그는 에시카와 처음 검을 맞대었던 그날을 잊지 못했다.
그날은 해리 인생의 기점 중 하나가 되었다.
해리는 에시카의 속도를 떠올리며 열심히 수련했고, 덕분에 지금껏 많은 정진이 있었다.
“울타리 점검을 더 신경 쓰라고 해야겠군. 아카데미에 다니는 어린 귀족들도 있는데 까딱하다가는 크게 다치겠어.”
에시카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가뿐한 몸짓으로 말에 올라탔다.
“……존명.”
해리의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는 마치 괴물이라도 보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기사들을 보며 태연히 말했다.
“나를 쫓아다니는 것은 자네들의 의무라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방해하지는 말도록. 간만에 얻은 자유이니까.”
“……존명.”
해리를 제외한 기사들은 넋을 잃은 얼굴로 헤벌레 입을 벌리고 있었고, 에시카가 눈썹을 굳히고서야 어깨를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존명!”
“조…… 존명! 황후 폐하!”
에시카는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다시 힘차게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오며 에시카의 귀 곁의 잔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했다.
“즐겁구나. 이런 나날도.”
튜레시안 황궁에서의 생활은 전생의 황궁보다야 백배 자유로웠다.
그러나 역시 철 모르던 시절 마교에서의 생활만큼 날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후는 황제의 아내이자 황녀와 황자들의 어머니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일정 부분의 자유를 헌납해야 하는 것.
삶의 형태에 따라 헌납의 형태도 다르겠지만 아마 구속은 만고불변의 이치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오늘의 자유는 에시카에게 더욱 소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로 돌아가서 신나게 말을 타는 기분이었다.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검을 잘 다루시는 것은 알지만, 이런 것에까지 오러를 실을 수 있다니…….”
“다들 잘 봐두고 목표로 삼거라.”
해리는 자신의 기사단원들에게 에시카의 무위를 교보재로 삼으라고 가르쳤다.
목표가 높이 있을수록 힘차게 뛸 수 있으니.
“황후 폐하께서는, 하늘이시다.”
**
어느덧 하늘 중천에 뜬 해가 내려가기 시작하며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사냥제 행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대다수의 귀족들이 사냥을 종료하고 물을 마시거나 자신이 잡은 사냥감에 대해 자랑하고 있었다.
사냥제가 있을 때마다 한두 명이라도 사망자가 나오곤 했었는데 오늘만큼은 누구도 죽지 않았다.
다리나 팔이 부러진 귀족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사고 없는 사냥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복귀하지 않은 소수의 이들도 있었다.
“너무 늦어지시는 거 아니에요……?”
엘레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냥터를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
사냥터에 들어간 지 수 시간인데 아직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반나절이나 기다리던 엘레나는 울상을 지으며 입을 쭉 내밀었다.
‘보고 싶어요. 엄마…….’
“오고 있다.”
레스반의 말에 엘레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어디요.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어.”
내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레스반의 미간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 눈에 불신은 없었다.
잠시의 분리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선사했다.
말을 타고 사라지는 에시카의 모습은 지금껏 오랫동안 억눌러 왔을 찬란한 생기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가끔은 온전한 자유가 필요하겠군.’
처음에는 간만에 말을 타고 사냥제에 나간 그녀의 모습이 물가에 나간 아이처럼 위태로웠는데,
문득 자신의 우려가 너무 그녀를 가두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에시카가 많이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과 함께, 아이들에게 매여 있던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더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레스반이었다.
“어디에 계시다는 거지…….”
레스반의 눈에만 보이는 에시카를 찾기 위해 엘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힘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가 보일 리가 없었다.
한편 옆에 있던 조웰과 아벨은 곰 잡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 중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검을 휘둘러서 곰을 정신 못 차리게 한 뒤에, 어깨를 휙 밟아서 검을 꽃는 거야. 그럼 곰이 빠악- 하고 넘어지는 거지.”
“손이 많이 가고 위험한 사냥법보다는 군용 쇠뇌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는 가죽이 상해서 경제적 효용이 떨어져.”
조웰과 아벨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화였다.
레스반과 에시카의 세 자녀들은 커 갈수록 특성과 분야가 뚜렷해졌다.
첫째인 엘레나는 마법, 둘째 조웰은 정치경제학, 셋째 아벨은 검술.
그들은 아마 장차 튜레시안의 발전을 이끌 나라의 큰 기둥들이 될 것이다.
“어, 어머니네.”
“정말이네? 어머니!”
아벨이 먼저 에시카를 발견하자 조웰도 그녀를 불렀다.
엘레나 역시 풀쩍 뛰어 단상에서 내려간 뒤 에시카에게로 달려갔다.
레스반 역시 천천히 황좌에서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말에서 내린 에시카의 몸에는 당연하게도 생채기 하나 없었다.
빠르게 뛰어 가장 먼저 에시카에게로 도착한 아벨은 헤헤 웃더니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 황금 사슴을 잡아오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랬었다. 에시카는 분명 황금 사슴을 잡겠다고 했었고 오늘은 어느 귀족들도 황금 사슴을 잡아 오지 못했다.
아무도 황금 사슴을 잡지 못한 해에는 흉년이 든다는 미신이 있기에 귀족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황후와 황궁 기사들이 늦길래 황궁 기사들이 황금 사슴을 잡을 줄 알았는데…… 에시카의 뒤에 따르던 기사들도 빈손이었다.
이래서는 민심이 동요할 것이다.
에시카는 제게 다가온 레스반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금칠을 한 얇은 나무껍질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황금 사슴을 만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에시카에게로 쏠렸다.
선황 재위 중 여인의 몸으로 황금 사슴과 함께 나타나 백은의 양으로 불리웠던 황후였다.
“하지만 살생을 할 필요는 없어서 이렇게 전리품만 받았습니다.”
레스반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분명 황금 사슴의 뿔을 살짝 벗겨낸 껍질이었다.
“살아 돌아간 황금 사슴이 더 큰 풍요를 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에시카를 다시 바라보는 레스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과거 황후의 음모 때문에 에시카의 황금 사슴이 죽었던 일이 있다.
설령 사냥제에서 황금 사슴을 죽이거나 포획하는 것이 관례라고 해도 에시카는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에시카의 뜻은 알지만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사냥제의 원칙을 무시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백은의 양이라고 해도 몇 대의 황제가 지배하는 동안 굳건했던 사냥제의 관습을 쉽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
잠시 생각하던 레스반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에시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어.”
레스반은 원칙을 무시했다는 일갈 대신 에시카를 칭찬했다.
일부 신관들과 귀족들의 얼굴빛이 그리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의 금술이 좋은 것은 제국의 복이었지만, 황후가 나라의 관례를 깨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황제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끼어든다면 무시무시한 황제의 미움을 살 수도 있겠지.
모두가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황제와 황후를 보고 있을 때였다.
솨아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마른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황후가 황금 사슴을 죽이지 않고 관례를 어김에 솟아올랐던 사람들의 약한 불만은,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이런 일이…….’
‘한 달만에 비로구나. 설마 황후 폐하 덕분인가.’
오히려 이는 평범한 자가 이해할 수 없는 ‘백은의 양’의 결정을 환영하는 하늘의 징조처럼 보였으니.
사냥제에 따라온 신관들은 기뻐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후 폐하와 황제 폐하가 하시는 일에는 더 큰 뜻이 있구나 이해했다.
비를 맞으며 에시카를 바라보던 레스반이 전음으로 말했다.
‘카모스의 기술력으로 비가 예보된 날짜를 맞추어 사냥제로 잡더니. 제대로 써먹었군.’
에시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이제 그 녀석의 친구들을 죽이지는 않겠죠. 영 걸리는 부분이었어서.’
이번을 계기로 사냥제에서의 관례가 바뀔 것이다.
황금 사슴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황금 사슴의 뿔 껍질을 조금 떼 오는 것으로.
내리는 단비에 기뻐하고 있는 자들은 모르겠지만 오늘도 어느 악녀의 계략은 성공했다.
레스반은 에시카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를 제게 기대게 했다.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 보름은 비가 내릴 것이고 마른 땅은 충분히 목을 축일 것이다.
“우와아! 비다!”
“비!”
“대단해요, 어머니.”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들렸다.
노을이 져 가는 풍경 속 비를 맞으며 가족은 이 행복을 듬뿍 느꼈다.
-외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