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0. 자애로운 어머니와 형편없는 아내(20/192)
#20. 자애로운 어머니와 형편없는 아내
2023.12.20.
“저를 노예로 착각하시는 거군요.”
싸늘한 에시카의 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감정이 없는 물건이거나.”
그는 자신이 믿어 오던 세계가 무너진 사람 같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동자는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제게 구속당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은 당신이었으면서.”
“…….”
“이제 와서 날 구속하겠다고 하는 건가요?”
방치하던 새가 나는 법을 떠올리자 황급히 새장을 고치는 사람처럼 그의 태도는 지저분했다.
“당신은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야. 그리고 공작 부인은…….”
칼리안의 숨소리가 가빴다.
“이런 행실을 보여서는 안 돼.”
자신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칼리안은 에시카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오로지 에시카만이 부족하고 나쁜 아내일 뿐이었다.
에시카만…… 언제나 그녀만의 잘못일 뿐이었다.
에시카는 그의 보랏빛 눈동자를 또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공작께서는 내가 하녀로 변장한 이유를 수상해했죠. 그런데 이 하녀복을 입게 된 정황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하나밖에 없는 드레스가 대부인께서 보내신 하녀들의 물세례에 다 젖어 버렸거든요. 당신과의 티타임에서 감히 당신에게 맞섰던 일이 영 불쾌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입어 보게 되었는데 입다 보니 편하더라고요.”
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다.”
신혼 초에 칼리안의 앞에서 몇 번을 울었었다.
대부인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칼리안은 굉장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었다.
물론 대부인에게가 아닌, 에시카에게 말이다.
에시카가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해서 대부인이 벌을 내린다고 했었지.
그리고 에시카가 불평하는 것들을 모두 과잉 반응으로 간주했었다.
“어머니께서 당신을 교육하기 위해 내리신 합당한 처분을 당신이 오해한 것이겠지.”
칼리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집사를 불러 내게 지급되는 생필품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게 ‘클라우스 공작 부인’으로서의 기품을 지키고 책무를 다할 수 있을 만한 양인지. 하녀복을 입은 공작 부인이 직접 바깥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사 올 만큼 궁핍하지는 않은지.”
에시카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보탤 때마다 칼리안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리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눈빛.
여전하다. 칼리안은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공작 전하.”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공작 전하께서는 제게 이럴 자격이 없어요.”
칼리안의 가슴속, 말뚝을 박듯 얼음 같은 그 말이 박혀 들어왔다.
칼리안은 여느 때처럼 반박하고, 그녀에게 마음껏 분노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노가 소용없을 것임을 안 이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에시카는 이제 울지 않을 것이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얼음 같은 시선은 착각이 아니었다.
투정도 아니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쉬고 싶군요. 제 방에서 나가 주시겠어요?”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곤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
그를 내보낸 에시카는 싸늘한 눈빛으로 문을 쾅 닫았다.
이내 손을 뻗어 제 가슴 부근을 더듬었다.
심장 부근이 욱신거린다.
한때 자신이 열렬히 짝사랑하던 남자가 칼리안 클라우스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기분이 더러웠다.
‘영령의 기억을 더 일찍 되찾았더라면.’
에시카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은발과 푸른 눈동자, 티 없이 맑은 피부와 붉은 입술…… 모든 것이 완벽하다.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천영령의 황제를 닮은 칼리안, 그 작자와 말이다.
받은 만큼 갚아 준다는 것은 영령의 인생 수칙이었다.
에시카를 학대했던 클라우스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원수들이 잘사는 꼴을 보느니, 번거롭더라도 그들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이 낫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복수해 보았자 후련해지는 것은 없다고?
그건 복수해 본 적 없는 자들의 자기 위로일 뿐이다.
언젠가 이 클라우스는 거꾸로 뽑혀 산산조각이 날 테고, 에시카는 그 위에 설 생각이었다.
원수의 무덤 위에서 벌이는 연회는 언제나 즐겁다.
‘늦었어. 난 당신들이 우는 것을 보며 춤을 출 거야, 클라우스.’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에시카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뒤돌아설 때였다.
툭-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에시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
녹색 에메랄드가 박힌 반지는 황금으로 되어 있었다.
크기는 남자 손가락이 들어갈 크기인데…… 칼리안이 그것을 차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황태자의 반지인가?’
차를 마시고 나갈 때, 황태자가 그녀를 잡아 주었었다.
서로의 몸이 쏠렸었고 그때 반지가 그녀의 옷 속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에시카는 골똘히 그 반지를 응시했다.
‘돌려줘야 하나?’
하지만 돌려주려면 다시 그를 만나야 한다.
에시카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돌려주더라도, 일부러 그를 만날 기회를 잡지는 않을 것이다.
똑똑-
반지를 서랍 안에 넣은 뒤 문이 열리고 큰 트레이를 든 셀라가 방에 들어왔다.
“부인, 저녁 식사를 가져왔어요.”
칼리안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니 마주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공작 전하와 대부인께 들어가는 음식과 같은 저녁이에요. 여기, 영약이라는 것도 있어요.”
접시의 음식은 썩 훌륭했다.
수비드 방식으로 익힌 고기와 신선한 야채들, 수프, 그리고 디저트까지.
클라우스 공작가로 시집온 뒤 3년간 이러한 음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대부인은 에시카의 식사 예절을 지적하며 칼리안과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금했다.
골방에 들어온 뒤에는 상해 가는 음식만 받을 수 있었고.
“제법 괜찮군.”
주방장인 헤모스를 포섭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식단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음식 하나를 제대로 먹더라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에시카는 자신했다. 머지않아 제 눈치를 보는 것은 저들이 될 것임을.
달그락-
에시카의 식사가 계속되었다.
셀라는 간간이 에시카를 위해 잔에 물을 채우며 그녀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예전에는 정말 내가 미쳤었나 봐……. 이렇게 기품있으신 분을 몰라뵙다니.’
대부인은 에시카에 대해 험담할 때, 그녀의 천한 가문을 들먹였다.
그러니 하녀들은 천한 자신들이나 에시카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대부인의 괴롭힘에 더욱 동조했다.
똑같은 천한 사람인데 누구는 하녀이고 누구는 공작 부인이니,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에시카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셀라는 제가 정말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빛부터 식기 사용까지, 그녀는 완벽한 귀족이었다. 어쩌면 대부인보다도 더 절도 있어 보였다.
나이프질 한 번에 고기가 저렇게 깔끔하게 갈라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
“이게 전부인가, 공작 부인의 예산 사용 목록은.”
딱딱한 칼리안의 음성에 집사 한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정말 예상치 못했다.
지금쯤이면 대부인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찾아 공작 부인의 예산 사용 목록을 요구하다니.
“…….”
얇은 책을 넘기던 칼리안의 눈썹은 굳어 있었다.
“대걸레 백 개, 기름 오십 통, 마대 천 자루……. 이게 왜 공작 부인의 예산 사용 목록에 들어가 있지?”
칼리안의 지적에 한스는 뜨끔했다.
“아…… 잘못 끼워 넣은 모양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칼리안은 그녀가 처음 공작저에 왔을 때의 기록부터 유심히 살폈다.
대부인은 언제나 에시카의 사치스러움을 비판했다.
그러니 이 예산 사용 목록에는 분명 그녀가 했던 사치 내역들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집사를 불러 내게 지급되는 생필품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게 ‘클라우스 공작 부인’으로서의 기품을 지키고 책무를 다할 수 있을 만한 양인지. 하녀복을 입은 공작 부인이 직접 바깥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사 올 만큼 궁핍하지는 않은지.”
‘그 말이 진실일 리가 없어.’
거친 눈빛으로 증거를 찾던 칼리안의 눈이 어느 대목에 멈추었다.
드레스와 보석 목록이 보였다. 로벨리아 드레스 숍, 아뜨완 주얼리 숍.
이 두 곳에서 수도 없이 드레스와 보석을 구입한 내역이다.
칼리안의 눈이 번뜩였다.
‘또 내 앞에서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했군.’
“한스, 이 두 숍의 주인들을 당장 불러오도록 해.”
한스는 칼리안의 말에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칼리안은 형형한 눈빛을 한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공작 부인은 삼 년 동안 서른일곱 벌의 드레스를 로벨리아 숍에서 구입했고, 스물여섯 개의 보석을 아뜨완 숍에서 구입했다.”
“……아…….”
“그러니 그들은 분명 기억하고 있겠지. 공작 부인이 어떤 드레스를 구입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옷장에서 그것들을 찾아 앞에 내밀면 에시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것이다.
서른일곱 벌의 드레스로도 부족하다며 하녀 옷을 입은 그 건방진 에시카가, 뒤늦은 반성을 하며 무릎을 꿇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한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지 않고 있었다.
“저…… 공작 전하.”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사…… 사실은…… 저것은 공작 부인께서 구입한 목록이 아니라…….”
한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시카는 로벨리아 숍이나 아뜨완 샵의 이름도 모를 테니까.
“……대부인의 드레스입니다.”
칼리안의 얼굴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