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1.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일(21/192)
#21.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일
2023.12.21.
클라우스 공작가의 대부인 리오나는 식사 중이었다.
종아리에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는 유리는 기민하게 리오나의 입맛에 맞추어 음식들을 재배열하며 그녀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내가 시킨 일은 잘 해내고 있는 거니?”
“당연하죠, 대부인.”
유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녀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계단에서 굴러 다친 곳은 아직도 욱신댔으며, 회초리를 맞은 종아리는 흉터가 져 버렸다.
망할 에시카는 친정에서 공수하는 보석을 끊겠다 했고.
모든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서 유리는 더욱 초조했다.
‘이번 일은 제대로 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달그락-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리오나가 눈썹을 찌푸렸다.
“유리?”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던 유리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식기를 바로 놓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쾅-
요란스럽게 문이 열리고 쿵, 쿵 소리를 내며 칼리안 클라우스가 들어왔다.
리오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우아하게 닦았고, 유리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몸을 움찔하며 뒤쪽으로 빠졌다.
칼리안의 눈썹은 굳어 있었고 얼굴빛은 다소 창백했다.
리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저녁 끼니를 거르고라도 할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일은 마치셨나 봅니다. 공작.”
“어머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칼리안의 낮은 음성에 진득한 당황이 들어차 있었다.
리오나를 보는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앉으세요. 공작.”
리오나는 뭔가에 놀라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아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부드럽게 말하며 유리에게 눈치를 주었다.
유리는 칼리안의 의자를 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유리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조르르-
비어 있는 제 잔에 물을 따르는 리오나의 모습에 칼리안의 눈썹이 다시 꿈틀 움직였다.
어머니, 하나뿐인 제 어머니가 따스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본다.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습니까?”
“에시카에게 들어가는 예산 목록을 살피고 왔습니다.”
“……아.”
리오나의 입술 끝이 미미하게 움찔거리다가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갑자기 그것이 왜 궁금하셨을까요?”
“집안의 예산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클라우스가의 가주인 저의 의무이니까요.”
“오, 칼리안. 세심하기도 하지.”
딱딱한 아들의 말에 리오나는 칭찬하듯 말했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앉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분명 에시카의 사치가 심하여 가문의 운영에 무리가 갈 정도라고 하셨는데…….”
칼리안은 서늘한 눈빛으로 리오나에게 물었다.
“그녀가 결혼한 3년 동안 그녀에게 사용된 공작가의 예산은 불과 2만 링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공작가의 하녀 연봉이 5천 링 정도이고, 경력이 쌓이면 그 두세 배를 받는다.
귀족 여성이 입을 만한 드레스는 저렴한 것 한 벌이 2만 링, 조금 화려하다 싶으면 5만 링.
지금 리오나가 입고 있는 드레스도 5만 링 이상은 될 것이다.
그런데 공작 부인이 3년 동안 쓴 돈이 허름한 드레스 한 벌 값도 되지 않다니…….
사치라는 단어와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어불성설인 기록이었다.
칼리안을 바라보는 리오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서 공작은, 지금 이 어미가 거짓말을 했다고 따지러 온 것인가요?”
삽시간에 식사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어머니께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진실이라…….”
리오나는 차가워진 눈빛으로 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작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에시카는 돈으로 작위를 산 브리기트 집안의 딸로 자라와, 칼리안처럼 정통적인 귀족 자제들이 받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작 부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책무보다 자신이 누릴 것에 관심이 많았죠.”
“…….”
“클라우스 공작가의 사람이 되려면, 브리기트의 허영을 빼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더 엄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약한 내 아드님이 어미의 깊은 마음을 몰라줄까 저어되었습니다.”
리오나의 말에 칼리안의 손이 흠칫 움직였다.
“그래서 제게 거짓을 말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칼리안.”
리오나는 답답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칼리안을 공작의 작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칼리안의 보랏빛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리오나는 오히려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철석같이 저를 믿는 아들이 의심의 눈길을 드러낸 것에 상처받은 듯이.
“이 어미는 오로지 칼리안이 잘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걸 이렇게 이루어 냈고…… 에시카에 대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제게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어야 합니다.”
칼리안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녀복을 입고 자신을 바라보던 에시카가 참으로 뻔뻔하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언젠가부터 항상 같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이유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제 머릿속의 에시카 클라우스는,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매우 사치스러워서 공작가의 재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여자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에시카 클라우스에 대한 패배감을 느꼈다.
에시카는 제 앞에서 수그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 사치를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알았어요, 공작. 그때는 공작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섭섭했다면 그 또한 나의 잘못된 판단이겠지요.”
“…….”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공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알아주셔야 합니다.”
리오나의 슬픈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오나가 이런 눈빛을 할 때면, 칼리안은 가슴이 욱신거렸다.
자신을 위해 일생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향한 연민이 가슴을 답답하게 메워 왔다.
“그리고…… 에시카의 방을 공작께서 재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어머니.”
칼리안의 손이 꿈틀 움직였다.
에시카가 방을 옮긴 것 또한 어머니와의 갈등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골방에서 묵고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귀족 여인이 기거하기에는 너무도 협소하고 구석진 방이었으니까.
그래서 리오나와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방을 옮길 것을 명령했었다.
아마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
잠시 후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하셨어요.”
의외의 칭찬에 칼리안은 눈썹을 꿈틀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유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러잖아도 에시카가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방을 옮길 것을 제안하려고 했어요. 이 어미도 항상 마음이 불편했답니다.”
리오나는 화사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공작께서 이리 집안의 일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니, 우리 클라우스가 더욱 화평해질 일만 남은 것 같군요.”
칼리안은 잠시 멍하니 리오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어머니가 일부러 에시카를 괴롭히려고 그러셨을 리 없다.’
그리고 차분히 대답했다.
“네. 저 또한 클라우스의 평화를 바랍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리오나의 눈빛이 잠시 일렁였다.
칼리안은 토를 다는 아이가 아니었다. 특히 집안 내부의 일에 관해서는.
“다음부터는 에시카에 대한 처분을 내릴 때, 저와도 상의해 주십시오.”
리오나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 움직였다.
칼리안의 표정은 진지했고 짙은 눈은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입가의 미소가 뚝 가신 리오나는 아래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작.”
**
브리기트 가문은 튜레시안의 수도 토레스보다 남쪽에 위치한 프리하츠 지방의 귀족이었다.
바다와 접한 그곳은 늘 무역선과 상인들로 북적였고, 그곳이 더 활기차질수록 브리기트의 저택도 그러했다.
전쟁에서의 무역 제재로 제국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던 브리기트는 황제에게 남작 작위를 받았고, 이제는 일개 보석상 집안이 아닌 상인 귀족 가문으로서 지역을 부흥시키는 중이었다.
호사가들은 브리기트 남작가의 창고 속 보물이면 수도의 자잘한 귀족 가문들은 장바구니에 담듯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댔다.
“에시카가…… 편지를 보내었군.”
슈페르트 브리기트, 그는 브리기트 남작가의 장남으로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상단의 모든 권한을 맡고 있었다.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에 벽안을 가진 그의 외모는 매우 출중했다.
3년 전 하나뿐인 여동생 에시카는 수도 토레스의 명문가 클라우스 공작가로 시집을 갔고, 지참금을 잔뜩 챙겨 보냈으나 통 소식이 닿지 않았다.
공작가의 예법은 워낙 엄중하여, 친오라비라도 가까이 왕래하는 것이 흠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에시카의 소꿉친구 유리를 통해서라도 매달 보석을 보내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칙-
슈페르트는 봉투를 뜯고 편지를 펴 보았다.
바른 글씨로 눌러 쓴, 에시카답지 않은, 그러나 에시카의 것이 분명한 필체가 편지에 가득 쓰여 있었다.
[친애하는 슈페르트 오라버니께.프리하츠 항구에 설익은 벨벳 포도들이 들어올 시기이네요. 그 새콤한 향기도, 오라버니와 종종 보았던 바다의 불꽃도 그리운 요즘이에요.
오늘은 몇 가지 부탁이 있어서 오라버니께 편지를 썼어요.]
‘부탁’이라는 말에 슈페르트의 눈썹이 움직였다.
2년 전, 만나서 필요한 것이 있냐 묻자 힘없이 고개만 저었던 에시카였다.
언제나 밝고 씩씩했던 그 아이가 마치 영혼이 죽은 사람 같았었지.
걱정되었으나 더 묻지 말아 달라는 눈빛에 내키지 않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앞으로 제게 보내는 보석은 끊어 주세요. 만일 누군가 제 필체가 아닌 다른 필체로 보석을 요구한다든가, 제가 부탁했다는 말을 전한다면 다 거짓이니 그 사람을 청사에 고발해 주세요.]슈페르트는 굳은 표정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건 조금 어려운 부탁일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께 제 몫의 유산을 미리 받아 주셨으면 해요. 그 유산으로 다음 동봉한 지도의 토지를 매입해 주세요.]지도가 동봉되어 있었고, 수도의 서쪽 엘뮤르 지방의 황무지에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슈페르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복 전쟁으로 영토가 넓어지며 황제는 각 지역에 새로운 거점 도시를 세우고 싶어 했고, 엘뮤르는 서쪽에 거론되고 있는 거점 도시 후보 중 하나였다.
물론 엘뮤르보다는 ‘취헨’이라는 지역이 더 가능성이 컸는데, 물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클라우스 공작가 역시 취헨에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에시카가 동그라미를 친 엘뮤르는 취헨에 비해 환경이 열악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왜 에시카가 엘뮤르를…….”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꼭 부탁드려요,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