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4. 클라우스의 명예를 걸고(24/192)
#24. 클라우스의 명예를 걸고
2023.12.24.
셀라는 칼리안에게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피가 굳어 있는 회초리들과 붕대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역겨웠는지 칼리안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조심스레 회초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셀라가 그러더군, 자기도 맞은 적이 있다고.”
칼리안의 서늘한 시선이 에시카를 향하고 있었다.
“같은 하녀였던 셀라의 여동생은 2년 전에 저택을 나갔는데.”
주먹을 꼭 쥔 셀라의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네가 말해 보거라.”
칼리안이 턱을 치켜들며 셀라에게 명령했다.
유리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셀라의 여동생에 대해서는 들은 적 없는데…….
설마 셀라가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쳄벨에 제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아요. 여동생은 한쪽 다리를 절게 되어서 일할 수가 없어서…… 제가 보내 주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어요.”
셀라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던 여동생은 대부인의 침대 시트를 제때 갈지 못했었다.
다른 부인이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티파티에 나타난 것을 본 대부인은 그러잖아도 심기가 불편했고 말이다.
그로부터 비극은 야기되었다.
“이건 제 여동생을 때렸던 회초리예요. 붕대도 여동생의 종아리를 감았던 것이고…….”
붕대는 갈색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상자를 바라보던 셀라는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여동생이 그렇게 된 것이 분해서 증거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작 하녀 따위가 윗분의 허물을 밝히는 용도로 쓸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고작 하녀 따위라도.”
칼리안은 서늘한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클라우스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이다.”
숙련된 하녀들은 집안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 재산에 반복적으로 손상을 가하는 자가 있으면, 설령 가문의 일원이라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칼리안은 에시카가 지금이라도 겁에 질리기를 바랐다.
빳빳이 세우고 있는 목을 수그리고, 물기 어린 눈망울을 일렁이며 잘못했다고 빌기를.
유리에게 질투가 나서 어쩔 수가 없었다며 사랑을 애걸하기를.
“공작 전하께서 제 여동생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셀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안은 가볍게 고개를 까닥했다.
“클라우스의 명예를 걸고. 물론이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듯 셀라가 목을 가다듬고 한결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공작 전하께서 들고 계신 회초리에 제 여동생을 때린 자의 손톱자국이 나 있습니다. 아마도 시녀장을 때린 사람과 동일인이겠지요.”
“……뭐?”
“원하신다면 시녀장의 다리에 난 흉터 자국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동생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셀라. 이건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다.”
칼리안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범인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에시카 클라우스. 선연한 푸른 눈을 뜨고 뻔뻔하게 이 상황을 관망하는 그녀 말이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칼리안의 손에 들린 회초리를 빼 가는 에시카였다.
다른 데 정신이 팔리기는 했지만, 칼리안이 붙잡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어느새 그 회초리는 에시카에게 들려 있었고, 에시카는 선명하게 난 손톱자국과 제 손톱을 덧대어 보았다.
“……지금 뭐 하는 것이오?!”
칼리안이 에시카에게서 회초리를 빼앗으려 했지만 일순간 그녀로부터 위압적인 기운이 느껴져 칼리안은 손을 흠칫 멈추었다.
심장이 덜컹한 칼리안은 에시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이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손톱자국……. 에시카의 손톱과 완전히 다르다.
“클라우스 공작가에 온 뒤 저는 손톱을 물들인 적도 없고 기른 적도 없어요. 공작께서 제게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으셨다면 아셨겠지만.”
칼리안의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이건 제 손톱자국이 아닙니다.”
막대기에는 깊게 팬 날카로운 손톱자국과 진분홍빛의 염료 자국이 보였다.
칼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공작 전하, 아마 공작 부인과 셀라가 작당한 듯하니 더 듣지 마시고…….”
유리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에시카가 다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차가우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는 칼리안의 귀에 깊게 꽂혔다.
“튜레시안의 어느 지방에도, 사람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관습은 없습니다.”
“……!”
유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칼리안 역시 눈썹이 굳은 채 그대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
그러니까, 손톱자국 따위는 준비운동이었을 뿐이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애피타이저라고 할까.
“……그게 무슨 뜻이지?”
칼리안이 형형한 보라색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며 물었다.
에시카는 입술을 달싹였다.
“튜레시안의 어디에서건, 아이가 잘못을 하면 손을 들고 있게 하거나 무릎을 꿇고 있게 합니다. 엄격히 체벌하는 가정에서는 손바닥을 때리기는 하지만 종아리는…….”
피식, 그녀의 입술 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때리지 않지요.”
“그럴 리가 없다.”
곧바로 에시카의 말에 반박하는 칼리안이었다.
“나는 어릴 적……!”
하지만 칼리안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일순간 무언가 깨달은 칼리안의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반면 아이가 잘못을 하면 종아리를 때리는 관습을 가진 나라도 있다고 하더군요.”
칼리안의 어머니 리오나는, 멸망한 왕국 스미첸의 왕족 출신이었다.
“……조사해 보시죠. 어느 나라의 관습인지.”
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미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눈썹이 딱딱하게 굳은 칼리안을 보던 에시카는 얼굴을 셀라에게 가까이 숙이며 물었다.
“셀라, 네 여동생을 때려 다리를 절게 한 사람이 누구이니?”
다정한 어조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져올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칼리안은 굳은 채로 서서 셀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자리로 에시카를 부른 것을 후회했다.
필승을 예감했으나 얻은 것은 패배뿐이었다.
대답하지 말라는 듯한 호소가 절망과 뒤섞여 그의 눈동자를 휘감고 있었다.
그러나 셀라는 차분하고 담담한 톤으로 대답했다.
“대부인이셨어요.”
“……!”
칼리안의 손이 움찔 떨렸다.
유리는 셀라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네가 공작 부인에게 학대당했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요? 저는 누구한테 맞았는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단지 제 여동생과, 하녀들이 학대당했다고 말씀드렸을 뿐.”
당당히 맞받아치는 셀라의 말에 유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너…… 너…….”
“시녀장님이야말로 말해 보세요. 정말 공작 부인께 맞은 거, 맞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셀라의 반격.
유리는 흠칫했다.
이미 상황은 반전되고 있었다. 셀라가 제 여동생을 데려와 흉터를 보인다면, 유리와 같은 것을 알아챌 것이고…… 유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칼리안에게 밝혀진다.
그러다가 칼리안의 관심을 잃기라도 하면, 그동안 품었던 꿈은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사실 에시카가 아니라 리오나였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 일은 대부인의 계획이었으며, 대부인이 자신을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시녀장님?”
셀라의 말에 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먹을 떨고 있었다.
“하긴, 가짜 사직서를 제출한 하녀들도 대부인의 체벌이 두려워서 아무 말 못 할 텐데, 당신이 인정할 리가 없죠. 전부 거짓말이라고.”
제기랄, 일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
칼리안은 여전히 입을 꾹 닫은 채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가, 셀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셀라의 말이 진실이기 때문이겠지.
그의 보라색 눈동자에 짙은 혼돈이 차올라 있었다.
“공작 전하께서는 클라우스의 명예를 걸고, 제 여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클라우스의 명예를 믿어요!”
셀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안은 입술에서 쓴맛을 느꼈다.
“…….”
분명 그랬었다. 이는 에시카에 대한 으름장이었다.
칼리안의 시선이 유리를 향했다.
이제 그는 에시카 앞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해 봐. 유리.”
칼리안의 분노 섞인 나직한 음성에 유리의 어깨가 움찔했다.
전쟁의 순간처럼 치열한 생각들이 유리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이 순간을 잘못 넘기게 되면 칼리안과의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중 가장 절박하게 차올랐다.
그러니 이 방법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공작 전하…….”
유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꿇어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공작 전하와 대부인의 관계가 소홀해지시는 것을 심려하여…….”
유리는 확실히 피해자 연기에는 자질이 있었다.
“제가 진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칼리안의 가슴이 다시 덜컹, 하고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에시카는 주저앉아 무릎 꿇고 우는 유리의 모습에 입술 끝이 비틀렸다.
칼리안은 눈썹 사이를 주름이 깊게 지도록 구기며 물었다.
그의 몸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친구를 모함했단 말이오?”
“그것이 아니라…… 흑…… 저도 두려웠어요, 공작 전하…….”
주저앉은 유리는 주섬주섬 치마를 걷어 올리며 애원했다.
이제 유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제가 잘못 입을 열면 다음에는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칼리안에게 동정을 구걸하는 것으로 노선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칼리안의 눈빛은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