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5. 시어머니의 사과(25/192)
#25. 시어머니의 사과
2023.12.25.
“제 증언은 여기까지입니다. 공작 전하.”
셀라는 칼리안에게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하고 에시카의 뒤에 섰다.
고개를 숙인 셀라의 머릿속은 에시카를 향한 감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 여동생의 상처를 보상받게 해 줄게.”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을 전부 예상하시다니…… 그녀의 능력은 정말 놀랍다.
“……공작 전하…….”
유리는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앞으로 가도 절벽이고 뒤로 가도 절벽인 느낌이다.
“그대에게는…… 정말 더없이 실망이군.”
유리를 향해 싸늘한 말을 뱉는 칼리안의 낯빛은 조금 붉었다.
그는 방금 에시카 앞에서 완전히 체면을 구긴 것이다.
기껏 시녀장의 말만 듣고 부인인 그녀에게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하녀에게는 클라우스의 명예를 걸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드러난 범인은 누가 보아도 리오나이다.
수치스러운 감정이 밀려들고 있었다.
“……제기랄.”
그가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에시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싱거운 악녀 몰아가기는 끝난 것 같으니, 가 보도록 하죠.”
그의 귀에 에시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시카…….”
칼리안이 에시카를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찬바람이 나도록 쌩 돌아섰다.
셀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리안은 손을 뻗었지만 벌컥 문을 연 에시카는 방을 나섰다.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칼리안은 셀라가 내려놓았던 회초리 상자를 거세게 걷어찼다.
상자가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에 유리는 몸을 움츠리며 더욱 떨었다.
**
한편 하녀들에게 다리를 주무르게 하며 누워 있던 리오나의 입술에는 웃음기가 맺혀 있었다.
에시카, 그것이 발버둥 친다고 하더라도 멍청한 에시카일 뿐이다.
감히 반기를 든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줘야겠지.
“너희도 잘 보거라.”
하녀들은 리오나의 말에 흠칫했다.
“주제 모르고 기어오르는 하찮은 것의 결말이 어떠한지.”
그녀들은 고개를 바짝 숙이고 리오나를 안마하는 데 집중했다.
리오나 클라우스,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감히 그녀의 뜻을 거스르는 이는 없었다.
그녀는 아들인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마저 제 뜻대로 조종했다.
그녀의 눈물과 손짓에 칼리안은 분노하고 그녀를 동정했다.
선대 클라우스 공작의 본처와 자식들을 밀어내고, 어렸던 소년에게 공작 자리를 차지하게 해 준 어머니에 대한 칼리안 클라우스의 대단한 효심.
두 사람의 관계를 무너뜨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뒤,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주무르던 하녀가 급히 일어섰지만 안에서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
누워서 안마를 받던 리오나는 고운 눈썹 사이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저번보다 훨씬 창백한 얼굴의 칼리안이 서 있었다.
다른 하녀가 리오나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주었다.
바로 앉은 리오나는 제게 다가오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에는 언제나 저를 향해 감돌고 있던 따스한 온기가 없었다.
그 순간 리오나는 지독한 불안을 느꼈다.
“무슨 일이에요, 공작?”
하지만 리오나는 그 불안을 드러내지 않고 부드럽게 물었다.
칼리안은 말없이 한참 동안 리오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딱딱한 입술을 열었다.
“저는 언제나 어머니께 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도 제게 진실을 말해 주셔야겠습니다.”
유리는 결국 칼리안에게 실토했다.
제 종아리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은 대부인의 짓이라고.
그리고 칼리안이 이 이야기를 리오나에게 하면 자신은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덜덜 떨며 자비를 구걸하는 유리에게 칼리안은 싸늘히 말했다.
어머니는 두렵지만, 에시카는 전혀 두렵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유리는 고개를 떨구며 엉엉 울었다.
저것이 정말 잘못을 뉘우치는 눈물일까……. 이제 칼리안은 유리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칼리안은 우는 유리를 달래지 않고 리오나에게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리오나의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언제나 공작가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그녀에게 추궁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클라우스의 이름을 건 순간 이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하녀들을 학대한 사람, 에시카가 아니었습니다.”
칼리안의 입술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순간 리오나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움찔거렸다.
‘유리, 이 쓸모없는 것.’
리오나의 속에서 스쳐 간 생각이었다.
“공작…….”
“어머니였습니까?”
칼리안의 눈썹이 굳어 있었다.
부드럽게 올라갔던 리오나의 입꼬리 끝이 움찔거렸다.
“말씀해 주십시오.”
**
에시카는 오늘도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자 맑은 기가 모여든다.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며 수련에 집중하자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고수의 지식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검술이나 초식은 형식에 불과한 것.
충분히 내공을 쌓고 나서 검술 수련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 달 정도만 더 수련하면 여느 기사들 정도의 내력은 가능하겠어.’
꾸준히 먹는 영약과 운기조식으로 꽤 진전이 있었다.
과거의 성취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본디 가지고 있는 힘의 반만 되찾더라도 성공이다.
운기조식을 끝내고 일어서자 때맞추어 바깥에서 셀라가 들어왔다.
“……부인.”
저택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긴장한 표정의 셀라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부인께서 부르셨어요.”
과거의 에시카라면 초조해하며 울먹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리오나 클라우스, 칼리안의 모친인 그녀는 에시카를 지독히도 미워했다.
아들에 대한 비틀어진 집착과, 본디 그녀가 가진 잔혹한 성정이 섞여 제 아들의 부인인 에시카를 죽도록 괴롭혀 댔다.
물론 일차원적인 방법뿐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숨 쉴 틈조차 없이 영혼을 태워 갉아먹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래.”
에시카는 옅은 미소를 띠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런데 너, 보상은 받았니?”
“네. 공작 전하께서 집사님께 여동생 일에 대한 보상을 명령하셨어요. 다 부인 덕분이에요.”
셀라는 문득 감격한 말투로 에시카에게 말했다.
클라우스의 명예를 건 이상, 칼리안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드레스를 단정히 정돈한 에시카는 리오나가 늘 티타임을 하는 화원으로 향했다.
고고히 걷는 그녀를 하녀들이 무례하게 힐끔거렸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대놓고 그녀에 대해 수군거리지는 못했다.
화원 앞에 다다른 에시카는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리오나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리오나가 차를 마시고 있었고, 그녀의 뒤 유리가 서 있었다.
유리의 얼굴이 뺨을 맞은 듯 붉어진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은 에시카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리오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시카의 목소리에 리오나는 고고한 시선을 차츰 올렸다.
기품 있게 틀어 올린 금발과, 칼리안의 눈동자 색과 같은 보랏빛 눈동자.
“그래, 오랜만이구나. 앉으렴.”
리오나의 허락에 에시카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싸한 분위기가 내려앉는다.
얼핏 태연해 보이는 리오나의 눈동자 속에는 뱀의 것 못지않은 독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리, 차를 따라 주렴.”
리오나의 명령에 유리는 에시카에게 다가가 찻잔에 차를 채워 넣었다.
유리의 차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에시카는 간식처럼 그것을 속으로 즐겁게 씹어 넘겼다.
“공작께서 네 방을 옮겨 주셨다 들었다. 너 또한 충분히 반성한 것 같다 하시니.”
“…….”
“오늘부터 다시 네 인사를 받으려고 한다.”
리오나는 에시카를 골방으로 쫓아낸 이후로부터, 그녀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에시카가 제가 하지도 않은 언행에 대해 용서해 달라며 그녀의 방 앞에 꿇어앉아도 울며 매달려도 리오나의 태도는 대쪽 같았다.
그것은 에시카에게 모욕을 주며 괴롭히기 위한 것이지,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녀들조차 에시카를 비웃었고 계속되는 굴욕의 시간은 에시카에게 깊은 상처였다.
“어머님의 용서와 자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에시카는 대답하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 태도에 리오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리오나는 귀한 제 아들 옆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려는 이 어린 계집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작위를 가진 천박한 부잣집에서 자라 온 이 애가 불행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니 에시카가 미소 짓는 모습은 언제나 뱀 같은 투지를 들끓게 했다.
“그리고…….”
찻잔을 잡은 리오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공작께서 오해를 하신 모양이더구나.”
리오나에게 그날의 일은 악몽과도 같았다.
칼리안은 왜 에시카를 학대의 원인으로 뒤집어씌웠냐고 물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리오나는, 다 공작가를 위한 일이라고 칼리안을 부드럽게 달래려 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칼리안은 변했다.
단 한 번도 제 어미에게 감히 품지 않았던 의구심이, 칼리안의 눈동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제 품에 있었던 아들이 치마폭 밖에 서서 저를 의심하는 상황은, 그녀가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칼리안은 리오나를 의심했을 뿐 아니라, 리오나에게 강권했다.
“에시카에게 사과하십시오.”
리오나의 눈망울이 상처받은 듯 흔들렸지만 칼리안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모함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쥔 칼리안의 주먹이 떨렸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