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6. 잘못된 결혼(26/192)
#26. 잘못된 결혼
2023.12.26.
칼리안은 성이 난 채 리오나로부터 뒤돌아섰다.
리오나는 칼리안의 이름을 불렀지만 칼리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공작……!”
“사과…… 하십시오. 에시카에게. 그 후에 어머니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아들은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났다.
리오나는 한참 동안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무슨 오해를 말씀하시는 거죠?”
에시카의 말에 리오나는 회상에서 벗어났다.
그녀와 아들의 끈끈한 관계에 균열이 가게 만든,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앞에 있었다.
그런 불신의 눈이라니……. 리오나가 겪어 본 적 없는 패배였다.
리오나는 독기 어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에시카 네가, 유리와 하녀들을 학대했다는 오해 말이다.”
“……아.”
에시카의 입술 끝이 피식, 올라갔다.
빤히 떠오르는 그 미소마저도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리오나는 찻잔을 그 얼굴에 던지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건방진 계집애. 천박한 브리기트가의 딸 주제에.
속에서 솟아오르는 욕지거리를 삼킨 리오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공작께서 하시던 오해를 풀어 주었다. 내가 하녀들을 교육하던 것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고.”
에시카는 말없이 싱긋 웃는 표정으로 리오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공작께서도 너에 대한 언짢은 마음을 풀었으니 너무 심려하지 말고.”
뻔히 보이는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처럼.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구나.”
웃기지도 않는 사과였다.
이것이 사과라고 하면 뺨을 때리고 침을 뱉은 뒤 수건을 건네주는 것도 우호의 인사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에시카는 알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리오나가 지금 이 순간 인생 최대의 굴욕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꽤 에시카의 마음에 들었다.
“저도 매가 약인 줄 알았던 때도 있지만.”
에시카의 입술이 차가운 웃음기를 띤 채 달싹였다.
영령이었을 적 적들을 때려잡던 시절이 생각난다.
거꾸로 묶어 두고 몽둥이찜질을 몇 번 하면 고분고분해졌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역시 검이나 몽둥이 따위로는 진정한 항복을 받아 낼 수 없다.
“앞으로는 제게 불똥 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어머님.”
에시카의 말에 리오나의 눈가가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리오나는 너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겼다.
천박한 브리기트가에서 온 며느리 에시카 클라우스!
제 싸늘한 눈길에 고개 한번 못 들던 그 아이가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제게 퉁을 주고 있다.
에시카가 칼리안을 냉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밟힌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유리를 시켜 교훈을 주었었지.
하지만 알헤미츠의 티파티에서 소란을 피운 것에 더해, 뒤집어씌운 누명을 다시 되돌려 준 것.
그리고 오늘의 이 모습까지…….
‘네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리오나는 더 이상 미소조차 띠지 않은, 분노 섞인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클라우스는 오롯이 리오나의 영역이며 이 작은 왕국의 여왕은 분명 리오나이다.
한 왕국에 두 명의 여왕이 있을 수는 없다.
‘내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에시카를 응시하던 리오나는 손을 들어 찻잔을 들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머금으며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켰다.
누군가의 앞에서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리오나는 겨우 무심한 표정을 되찾고 에시카에게 물었다.
“다음부터는 네가 차를 준비하는 건 어떻겠느냐.”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시카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리오나의 입술 끝이 싸늘하게 비틀렸다.
언젠가 클라우스에서 쫓아내기 전, 제대로 된 교육을 해 줄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그녀를 관망하는 에시카는 리오나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새파란 계집 따위 곤경과 함정에 빠트리는 것은 별일도 아니라 생각하겠지.
볕에 나온 거슬리는 것을 다시 골방에 틀어박는 것이나.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사실은, 에시카의 전생인 영령은 당대 최고의 악녀였다는 것이다.
맹독을 가진 독사가 꽃뱀을 한입에 삼키는 것처럼, 영령은 제 적이란 것들을 수도 없이 삼켜 왔었다.
“날씨가 좋구나.”
화원에는 언제나처럼 향긋한 꽃향기가 흘렀다.
**
“여자들은 무엇을 좋아하지?”
칼리안의 질문에, 가벤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마음을 움직일 만한 선물.”
가벤 펠로페, 칼리안의 친우인 그가 고개를 잠시 갸웃하다가 아 하고 손뼉을 쳤다.
“아! 혹시 그 예쁘장한 시녀장에게 줄 선물입니까?”
“아니, 내 부인에게 선물할 것이다.”
칼리안의 말에 가벤은 놀란 듯 잠시 굳어 있었다.
칼리안이 제 부인인 에시카 클라우스를 미워한다는 것은 수도의 귀족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진 이야기이다.
그토록 미워하는 부인과 이혼하지 못하는 것은, 칼리안의 변덕으로 이혼하게 되면 그녀가 가져온 막대한 지참금을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이유 하나뿐.
가벤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부러 에시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큰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칼리안이 차가운 시선으로 가벤에게 되물었다.
“남편이 부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큰일이 있냐고 물을 만한 일인가?”
“아, 아니요. 당연히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공작 전하께서 부인께 무언가를 선물하신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니까, 놀라서 여쭈었습니다.”
‘처음’이라는 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남편이 부인에게 뭔가를 선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칼리안은 단 한 번도 에시카를 위해 뭔가를 선물해 본 적이 없었다.
“…….”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칼리안에게 가벤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상황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괜찮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칼리안은 딱딱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삼 년 전, 클라우스 저택은 분주했다.
클라우스의 젊은 주인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이, 장차 공작가의 안주인이 될 새신부를 맞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칼리안은 신부로 올 에시카에게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축사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전쟁터를 구르고 있을 황태자, 레스반의 형식적인 축사를 읽은 칼리안은 그것을 적당히 접어 두었다.
하인 몇이 와서 칼리안의 옷깃과 단추를 점검했다.
“그리고 이것이…….”
칼리안은 눈썹을 찌푸리며 종이를 받았다.
투서라고 적힌 그 봉투는 브리기트 가문이 있는 프리하츠에서 온 것이었으며, 붉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에시카 브리기트의 추악한 진실.’
봉투를 열어 칼리안은 그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 안에는 에시카 브리기트가 얼마나 문란하고 한심한 여자인지에 대한 표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람들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며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붉은 글자를 보아 그녀에게 원한을 가진 남자나 그 아내가 작성한 모양이었다.
여자의 필체임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태우거라.”
“공작 전하…… 누가 감히 이런 것을 썼는지에 대한 조사가…….”
“까닭 없는 소문은 없지.”
어머니인 리오나가 예상한 대로, 에시카는 막돼먹은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칼리안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가문의 재정을 위해 그 여자와 결혼을 해야 했고…… 애초에 돈으로 공작 부인 자리를 사려는 여자에게 기대 따위는 없었다.
시간이 되자 칼리안은 집무실을 나와 홀로 들어섰다.
결혼 파티를 위해 무도회장으로 꾸며진 홀에는 익숙한 얼굴의 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칼리안의 눈에,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보였다.
“…….”
흰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칼리안은 순간 흠칫했다.
은사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무엇이 면사포이고 무엇이 머리카락인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푸른 눈동자는 바닷속의 보석과 같이 빛나고, 볼에는 순진해 보이는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에시카 브리기트가 누구인지 잠시 잊을 뻔했던 그 순간…….
누군가 칼리안의 손을 잡았다.
칼리안이 옆을 보자, 그제야 현실이 들어왔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듯한 리오나의 서늘한 눈빛이 보였다.
“……공작.”
칼리안은 아까 제게 날아들었던 투서를 기억했다.
그래, 저 여자는 그 투서에 적힌 표현처럼 천박하고 막돼먹은 여자일 뿐이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아름다웠던 에시카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이내 그는 에시카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모두가 칼리안을 주목하고 있었다.
칼리안은 에시카의 앞에 섰다.
“……공작 전하.”
에시카의 복숭앗빛 입술이 달싹이며 여리고 다소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게 잘 보이려 드는 여자들은 대개 이런 가는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딱딱한 표정으로 에시카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일렁이는 눈망울을 똑바로 응시했다.
“……환영하오.”
사랑과 설렘에 가득 차 있던 에시카의 어깨가 흠칫했다.
칼리안의 목소리에서 싸늘한 냉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클라우스가의 여인이 된 것을.”
칼리안은 천천히 에시카의 손을 올려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에시카는 제 손에 가린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칼리안은 이렇게 근사하고 멋진 남자였지만, 친정 식구들은 모두 클라우스가와의 혼인을 꺼렸다.
칼리안의 어머니인 대부인의 성정이 좋지 않으며, 칼리안은 그에 휘둘리는 성격이라고 말이다.
또한…… 겉이 번듯한 공작의 여자관계에 대한 소문이, 말끔한 얼굴과 달리 영 좋지 않다는 것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언젠가 한눈에 반했던 그를 잊지 못해, 아버지께 결혼을 졸랐던 에시카였다.
단꿈에 젖은 철없는 그녀에게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
이내 그녀의 손등에서 입술을 뗀 칼리안은 에시카의 손을 놓았다.
에시카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칼리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보랏빛 눈은 역시 얼음처럼 차가워 보였다.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