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28. 유능한 하인의 유능한 주인(28/192)
#28. 유능한 하인의 유능한 주인
2023.12.28.
요리에 열중하고 있던 헤모스는, 뒤에서 들리는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금발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유리 아네시스가 뒤에 하녀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누구에게 보내는 음식을 만드는 중이죠?”
유리의 눈썹 끝은 올라가 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내 기대를 저버린 너를 당장 죽이지는 않겠어. 특별히 기회를 주마.”
그녀의 뇌리에 대부인의 목소리가 박혀 있었다.
“감시라도 하러 온 거요? 거참 불쾌하구먼.”
손을 탁탁 턴 헤모스가 눈을 부라리며 유리에게 물었다.
“요새 공작 부인의 볼이 날로 통통해지는 것 같아서, 대부인께서 걱정이 많으시거든요. 혹여 주방에서 돕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헤모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공작 전하의 간식으로 보낼 음식이니 허튼 염려는 마시오.”
유리의 날카로운 시선이 주방 곳곳을 훑었다.
에시카가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푸석한 은발에도 윤기가 감돌고 있었고, 푹 패어 가던 볼에는 살이 차오르고 거친 피부 결이 나날이 좋아졌다.
“……아 진짜! 언제까지 거기 멀뚱멀뚱 서 있을 거요? 집중 안 되게!”
헤모스는 버럭 유리에게 화를 내더니 손가락으로 선반 끝을 가리켰다.
허름한 접시에 썩어 가는 빵이 있었다.
에시카의 것일 터.
“알았소, 뭐…… 확인할 것은 했으니…… 그런데.”
유리는 눈썹 끝을 가파르게 올리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공작 부인이 다과를 준비해 달라 할 겁니다. 티타임을 위해서.”
“다과?”
눈썹 새를 좁힌 헤모스가 되물었다.
“다과를 충분히 내주되 땅콩이 든 쿠키를 함께 내놓으세요.”
“땅콩이라면…….”
헤모스는 눈썹 새를 좁혔다.
“나중에 왜 땅콩 쿠키를 내놓았냐고 누군가 질책하신다면, 공작 부인이 혼자 먹겠다고 내달라 해서 내주었다고 얼버무리시면 됩니다. 후의 일은 언제나처럼 대부인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거예요.”
헤모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내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제야 유리는 사악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뒤돌아섰다.
유리를 뒤따르는 하녀들도 모두 사라지자, 창고에서 셀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헤모스와 셀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
에시카는 카탈로그를 들고 들어온 외부인들의 모습을 감흥 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에시카에게 최신 드레스 디자인이 수록된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이건…… 뭐지?”
그들과 함께 에시카를 찾은, 집사 한스가 대답했다.
“공작 전하께서 부인을 위한 드레스들을 구입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에시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탈로그를 성의 없이 넘겼다.
드레스들은 하나같이 비싸고 아름다웠지만, 그녀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에시카가 기뻐하는 기색이 없자 한스는 조금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부인께서 드레스가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지원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에시카는 여전히 차갑게 식은 표정이었다.
카탈로그를 몇 장 넘긴 에시카가 책을 그대로 한스에게 돌려주었다.
한스는 얼떨떨한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구나.”
그 말에 한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가지고 계신 드레스가 한 벌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인께서 부인의 다른 드레스들도 소각하시는 바람에…… 아무튼 공작 전하께서 마음을 쓰셔서 그러는 것이니 고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칼리안은 제 부인의 드레스 따위에 신경을 쓰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좋은 드레스들을 구입하고, 그걸 입고 나와 칼리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면 칼리안은 최근에 그녀에게 갖게 된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시카는 그런 것 따위는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공작 전하의 뜻이라면 더더욱 고르지 않을 거야. 가져가게.”
단호한 그녀의 말에 한스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 제 체면을 보아서라도…….”
“집사는 집안의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여전히 내가 공작 전하와 잘 지내기를 바라고 있군.”
에시카의 말에 한스는 손을 움찔했다.
집사 한스는,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유일하게 에시카에게 조금이나마 신경 써 준 이 중 하나였다.
울고 있던 그녀에게 마른 손수건 한 장이라도 쥐여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내가 브리기트이기 때문이겠지.”
“……부인.”
“이혼하며 내가 들고 왔던 막대한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골치 아프니까.”
한스의 얼굴이 굳었지만 차마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에시카가 시집오면서 들고 온 막대한 지참금으로 위태롭던 클라우스의 재정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국법상 남편 측에 명백한 유책 사유가 있다면 부인은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할 권리가 있다.
칼리안이 대놓고 외도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를 의식한 한스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통한 브리기트의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겠지.”
가문의 재정을 위해 행동하는 그는 온전한 대부인의 사람도 될 수 없었다.
그녀의 횡포를 묵인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죄송합니다.”
한스는 에시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차분히 말했다.
“최근 들어 부인께서 변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이전과 달리 공작 전하께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이시지요.”
한스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공작 전하와 대부인께서 지금까지 부인을 방치하고 학대하신 일에 대해서는 저도 차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혼은…….”
한스의 눈이 가라앉아 있었다.
대부인은 아직 승패가 명확지 않은 취헨 투자의 결과에 대해 장담하며, 이제 브리기트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신중하게 생각하심이.”
“그 점은 걱정하지 말게.”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에시카의 말에 한스는 어깨를 움찔했다.
앞을 보자,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에시카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푸른 눈은 벽옥처럼 또렷했으며 해일처럼 서늘했다.
“집사는 평생 클라우스 공작가를 위해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 클라우스의 주인이 누구로 바뀐들 한스 자네는 영원히 클라우스의 집사일 거야.”
그 말에 한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스는 눈치가 빨랐고, ‘클라우스의 주인’이라는 문맥에 담긴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유능한 하인은 유능한 주인을 원하는 것이 본능. 지금의 주인은 항아리 바닥에 연신 구멍을 뚫고 있으니 금화가 남아날 리가.”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원래 그녀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차가운 불길이 보였다.
생각을 확신으로 이끄는, 여유로운 강자의 불길이.
“…….”
한스의 앞으로 다가온 에시카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게 제대로 된 클라우스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긴밀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한스의 귓가에 흘러들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한스는 칼리안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칼리안은 서류를 읽고 사인하는 데 열중했다.
“숍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부인을 찾아뵈었습니다.”
순간 칼리안은 펜을 멈추고 한스의 말에 집중했다.
급해지는 칼리안의 속을 모르고 한스는 뜸을 들였다.
“……그런데 그것이.”
칼리안은 펜을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부인께서 드레스에 관심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드레스를 거절했다는 건가?”
칼리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렇습니다. 설득해 보려 했으나 워낙 완고하셔서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설득하려 들지 말고 곧장 돌아서게.”
“예?”
칼리안의 말에 한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내어줬더니 머리끝까지 올라타려 하는군.”
칼리안의 눈썹 끝이 거세게 올라가 있었다.
오랜 인내 끝에 돌아온 좋지 않은 결과에 그는 분노를 표출했다.
“사치를 부린다는 것이 오해였기는 하나, 그렇다고 남편의 호의를 거절할 자격이 있냐는 말이다.”
친우인 가벤에게까지 상의해서 신경을 써 줬더니, 에시카는 그 호의를 걷어찼다.
돈으로 작위를 산 브리기트의 딸 주제에, 제가 클라우스와 비슷한 고고한 귀족이라도 되는 듯 자존심을 내세운다.
“에시카 클라우스가 새 옷을 구입하는 것은 당분간 금지될 거야. 그녀에게 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걸세.”
에시카, 그녀는 그 드레스 카탈로그를 감사히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칼리안이 마음을 써 준 것에 대해 감동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공작 전하.”
속이 뒤틀리는 기분에 칼리안은 더 일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시카는 저를 이길 수 없는 여자이다.
아무리 칼리안과 리오나가 그녀에게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공작가의 생리가 그러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칼리안의 눈치를 보던 한스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화가 난 표정으로 서 있던 칼리안은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야겠군.”
지금 상태로는 더 업무를 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을 테니.
화를 식힐 요량으로 그는 바깥으로 나갔다.
화원에서는 향긋한 차와 달콤한 디저트가 있는 티파티가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