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0. 흔들리는 신뢰(29/192)
#30. 흔들리는 신뢰
2023.12.30.
“땅콩 쿠키! 대부인께서 땅콩 쿠키를 드셨어요!”
쓰러진 대부인의 곁에서 유리가 다급히 외쳐 댔다.
볼란과 마샬 역시 대부인의 손목을 주무르며 의식을 잃은 그녀를 초조히 바라보았다.
“이런, 몸을 떨고 계세요. 세상에나, 입술이 파래지셨어요!”
“어서 의사를 불러와요! 공작 전하께도 알리세요!”
하녀 하나가 대부인의 알러지를 중화해 주는 약을 들고 왔다.
“미리 처방받은 약이 있습니다. 이걸 드시면 정신이 돌아오실…….”
그리고 그것을 먹이려는데, 성큼성큼 다가온 에시카가 하녀의 손을 탁 쳐서 약을 떨어뜨렸다.
“에시카!”
유리는 눈을 치켜뜨고 에시카에게 소리를 질렀다.
마침 달려와 그녀의 행동을 포착한 칼리안도 눈썹이 굳은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에시카의 손목을 낚아채듯 거세게 잡았다.
“에시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곁에서 유리가 눈을 번뜩이며 칼리안에게 보고했다.
“대부인께서는 땅콩 알러지가 있는데, 에시카가 땅콩 쿠키를 준비했어요.”
에시카의 손목을 잡은 칼리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지어 알러지를 중화하는 약을 먹이려 하는데 약을 깨 버렸어요.”
“뭐라고?”
“에시카는 대부인을 해치려는 것이 분명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매서운 칼리안의 눈이 에시카에게 향해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고 답하면 그녀의 목을 조를 것 같은 눈빛이었다.
에시카는 이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눈썹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는 눈으로 그녀는 말했다.
“알러지가 아닌데 알러지 약을 먹이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뭐?”
“그러니 당연히 약을 떨어뜨렸죠.”
에시카는 칼리안의 반응이 우스울 뿐이었다.
보란 듯이 연기를 하고 있는 리오나의 모습도 지긋지긋하다.
누구도 오지 않는 섬에서 평생 단둘이서만 살아야 하는 모자였는데, 이리 쌍으로 우스운 짓을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저 쿠키는 땅콩 향이 날 뿐, 땅콩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칼리안이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거짓말이에요! 분명 땅콩 쿠키라고요. 에시카! 어떻게 대부인께 감히……!”
유리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에시카를 모함해 대었고, 에시카는 성큼성큼 다가가 접시 위에 올린 쿠키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칼리안에게 내밀었다.
“직접 드셔 보세요. 땅콩 분태가 섞여 있는지.”
칼리안의 눈썹이 다시 움직였다.
방금 모친이 이 쿠키를 먹고 쓰러졌는데, 아무리 땅콩 알러지가 없다고 해도 먹고 싶을 리가 없다.
굳은 듯 서 있던 칼리안이 에시카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럼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쓰러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부인과의 갈등이 있을 때, 칼리안은 단 한 번도 에시카의 옆에 서 준 적이 없었다.
그는 지독한 효자였다.
그리고 리오나는 그 점을 이용해 에시카를 더욱 괴롭혔다.
에시카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그냥 먹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칼리안은 거부하고 있었다.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듯.
그리고 그때였다.
“내가 먹도록 하지.”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에 에시카는 흠칫했다.
검은 머리칼과 찬란하도록 짙은 금안, 키가 크고 단단한 체구의 남자.
그의 검은 제복에는 제국에서의 공로에 대한 훈장들이 달려 있다.
“다행히도, 나도 땅콩 알러지가 있거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든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에시카의 앞까지 다가온 그는 손을 들어 에시카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았다.
묵직한 느낌이 피부에 느껴지자 에시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두 사람의 다른 색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레스반은 그녀가 들고 있는 쿠키를, 가볍게 베어 물었다.
에시카를 응시한 채 천천히 말이다.
그가 쿠키를 씹어 넘기자 한참의 정적이 이곳에 감돌았다.
“황태자 전하,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알러지 약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하녀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잽싸게 움직였다.
칼리안은 굳은 얼굴로 레스반을 보고 있었고, 에시카 역시 속으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땅콩 분태를 첨가하지 않고, 땅콩과 최대한 비슷한 향을 내게 해 줘. 자네에게 불이익은 없게 처리할 거야.”
헤모스의 실력으로는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는 땅콩 없는 땅콩 쿠키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이 쿠키에 땅콩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리오나의 기절 연기도 전부 허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황태자의 등장은 그녀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맛있군.”
에시카를 바라보며 레스반은 나른하게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멍하니 그를 보던 에시카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여전히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제 손목을 빼내었다.
이내 에시카를 꽤 길게 바라보던 레스반이 칼리안에게 말했다.
“쿠키에 땅콩 성분은 없어. 황궁 주치의들에게 물어보면 내게 땅콩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그 말에 칼리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에시카를 보았다.
“그러니 자네의 부인은…… 무죄라는 말이지.”
에시카의 눈빛은 차가웠고, 뒤늦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회는 지나갔다.
유리는 어이없이 종료된 이 상황에 눈썹을 굳힐 뿐이었다.
“대부인께서 눈을 뜨셨어요.”
잠시 후 하녀들이 대부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힘없이 눈을 뜬 대부인을 본 칼리안은 잠시 멈칫하더니,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님, 괜찮으십니까.”
“……잠시 어지러워서…….”
대부인은 이마를 짚었다.
에시카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리오나, 속으로는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어 하겠지.
며칠을 누워 있으며 칼리안에게 에시카에 대한 미움을 부채질하려 했는데 전부 허사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머니.”
“모르겠어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빈혈인가 봅니다.”
볼란과 마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땅콩 알러지가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맞아요. 잠시 현기증이 이셨나 봅니다. 매일 그렇게 공작 전하에 대해 걱정하시니…… 몸이 성하실 리가요.”
마샬은 칼리안의 눈치를 보며 과도하게 걱정을 해 댔다.
칼리안은 리오나의 몸을 부축하여 기대게 하며 말했다.
“침실까지는 제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업히시겠습니까.”
“아니에요, 공사다망한 공작께서…… 아앗.”
비틀거리는 리오나의 몸짓에 칼리안이 두말없이 리오나를 업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레스반에게 말했다.
“송구하지만 어머니께서 쉴 수 있도록 데려다드리고 복귀하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레스반은 서늘한 눈으로 고개를 까딱했고 레스반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하녀들이 리오나를 업은 칼리안을 따랐다.
에시카는 이 모습을 관객이 연극을 보듯 태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레스반을 보았다.
그는 다소 나른한 눈빛으로 에시카에게 말했다.
“공작이 바쁠 듯하니, 공작 부인이 나를 접대해야겠군.”
에시카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
칼리안의 부축을 받아, 리오나는 힘겹게 침대에 누웠다.
굳은 표정의 칼리안을 보며 리오나는 손을 뻗어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어미의 몸이 약해 미안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는데…… 이렇게 시간을 빼앗다니.”
칼리안은 조금 일렁이는 눈으로 리오나를 바라보았다.
오는 내내 에시카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하고 있기라도 했던 듯한 태연한 표정.
“그럼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쓰러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칼리안 자신이 소리 질렀던 것까지 귓가에 혼란스럽게 떠돌았다.
“…….”
이전에도 에시카의 실수로 어머니의 몸이 상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일주일이나 몸져누우셨고, 에시카는 일주일 내내 어머니의 방 앞에서 용서를 빌었었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하고 정신이 나간 듯 눈물 흘리는 에시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만약에 그 일도…… 다른 내막이 있다면?
“칼리안……?”
리오나가 부드럽게 자신을 불렀다.
언제나 온기가 가득한 어머니의 눈빛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우연? 때가 좋지 않게 현기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필이면 땅콩 향이 나는 쿠키를 베어 물었을 때.
리오나는 몸이 약했고, 집안에 의사들이 드나들 때마다 칼리안은 그녀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 과거조차 지금 이 순간 의심이 치밀었다.
“이 어미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황태자 전하께 가 보세요.”
칼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나가려는데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리가 보였다.
유리의 앞에 선 칼리안이 그녀에게 당부했다.
“어머님을 잘 돌보게. 그리고…….”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에시카의 눈빛이 심장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호의를 거절한 그녀에게 화가 치솟았는데…….
이제 또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대는 한낱 시녀장이고, 에시카는 공작 부인이니.”
유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더라도 이제 이름을 부르는 일은 삼가게.”
칼리안에게서 전에 느끼지 못하던 엄청난 벽이 느껴졌다.
유리는 부르르 떨리는 제 손을 스스로 감싸 쥐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에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공작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