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 친구의 남편을 탐하는 좀도둑(3/192)
#3. 친구의 남편을 탐하는 좀도둑
2023.12.03.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에시카의 방문이 열렸다.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던 에시카는 들어온 이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에시카.”
하늘색의 단정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다름 아닌 유리였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추운 방에 홀로 있는 그녀를,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며 유리는 침대 가까이 다가와 섰다.
“몸은 좀 어때? 의사 말로는 머리를 다친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가증스러운 그 미소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에시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소로운 새의 모가지는 천천히 비틀면 된다.
도망칠 새장부터 처참하게 망가트려 놓고.
“유리 아네시스, 내 하나뿐인 친구.”
딱딱한 에시카의 말에 유리의 입가에 미소가 고였다.
‘머리를 부딪혀 기억을 잃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에시카는 말을 이었다. 그런 착각을 하게 두는 것은…… 진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낯으로 친구의 남편을 탐하는 좀도둑.”
유리의 미간이 흠칫 굳었다.
도둑이 아닌 ‘좀도둑’인 이유는 그 애가 훔친 남자가 별 가치 없는 것이어서였다.
“천박하고, 배워 먹지 못했고, 한심한 상간녀이지.”
눈썹 한번 꿈틀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가는 에시카를 보던 유리의 얼굴에 아까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먼저 웃음기를 띤 것은 에시카였다.
“왜, 더 말해 줘?”
지금 유리의 속이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제가 예상한 에시카의 반응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에시카라면 분명 유리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작은 단검도 가져왔다.
그것으로 고운 얼굴에 작은 흉터라도 만들어 주면 썩 보기 좋을 테니까.
실성한 공작 부인이 갑자기 혼자 칼을 들고 난동을 피웠다고 해도 공작가에서 진상을 파헤치려 할 사람은 없었다.
“재투성이, 유리 아네시스?”
그러나 에시카는 몸싸움 따위는 흥미도 없는 듯 말로 유리의 속을 긁었다.
브리기트 남작가의 위세에 기죽어 지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노골적인 표현에, 유리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에시카!”
유리는 으득, 이를 갈았다.
에시카 클라우스는 이런 멀쩡한 모습이면 안 되었다.
열흘 넘게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으로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부인의 명령으로 썩어 가는 빵만 배급되었을 테니 몰골은 더 말이 아니겠지.
하지만 에시카의 혈색은 오히려 다치기 전보다 좋았고, 그 눈빛에는 악의가 담긴 날카로운 생기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너!”
유리는 손가락을 들어 에시카에게 삿대질했다.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얼마 전 대부인께서 날 시녀장으로 임명하셨거든.”
유리의 붉은 눈동자에 승리감이 번뜩였다.
보통의 가문이라면 시녀장 따위는 귀족 부인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클라우스 공작가의 내부 권력은 오직 한 사람, 클라우스 공작의 어머니인 리오나 클라우스 대부인에게 있었다.
대부인의 말 한마디에 예산과 식료품, 손님을 맞거나 초대할 권리가 달려 있다.
껍데기만 공작 부인이던 에시카는 전대 시녀장에게도 저자세로 눈치를 봤어야 했다.
“물론 너와는 한때 친구였던 정이 있지만…….”
유리는 피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난 시녀장으로서 대부인의 호의를 최선을 다해 따르려고 해. 내 가치를 알아봐 준 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이 말은 최선을 다해 에시카를 괴롭히겠다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언젠가 대부인께서는, 내 시어머니가 되실 거니까.”
에시카를 자극하기 위해 덧붙인 말이었다.
유리는 스스로를 승리자라고 여겼다.
잘난 건 집안 하나와 반반한 얼굴밖에 없는 에시카, 그 주제에 제가 원하는 건 뭐든 다 가졌던 그 애가 클라우스 공작가에서 망가져 가는 꼴은 썩 재미있었다.
특히 제 남편의 마음을 빼앗겼다고 절망하는 모습은 멍청한 에시카의 투정을 달래 주며 견딘 세월에 대한 보상이었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지켜봐 줄 예정이었다.
“그럼 잘 쉬어. 공작 전하께서 사냥에서 돌아오실 시간이니, 새 옷을 준비해 둬야겠어.”
에시카가 말이 없자, 유리는 피식 웃음을 더하며 돌아서며 생각했다.
‘얼굴에 상처는 다음에 만들어 줘도 되겠지.’
그러잖아도 에시카를 싫어하는 클라우스 공작이, 흉해진 얼굴을 보면 얼마나 더 질겁을 할까.
이제 시녀장이 되었으니 기회는 많을 것이다.
“유리.”
마지막 간청이라도 하려는 걸까, 뒤에서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을 멈춘 유리는 여전히 고고한 미소를 띤 채 에시카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방 속 그녀의 벽안은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 친정 말이야, 오빠들이 매달 나를 위해 보석들을 보내 주었는데…… 생각해 보니,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이제 받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냈어.”
그 말에 유리의 손이 움찔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는 네가 늘 공작가의 정문 앞에서 보석들을 받아 왔었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야.”
유리의 입꼬리가 떨리는 것을 에시카는 느긋이 바라보았다.
“시녀장이 되었으니, 더더욱. 그런 잡다한 일은 맡을 필요 없겠지.”
에시카의 말에 유리는 황급히 반박했다.
“그…… 그래도, 친정의 도움인데 받는 게 좋지 않을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에시카는 유리가 갑자기 시녀장이 된 이유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대부인이 찾는 일이 많아졌던 이유 역시 말이다.
매달 에시카의 친정인 브리기트 남작가에서는 그녀를 위해 좋은 품질의 보석들을 보냈다.
유리는 그중에서도 극상품들을 빼돌렸을 테고…….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보석은 질렸어.”
“…….”
“지금쯤 가문에 편지가 도착했을 것 같네.”
에시카의 말에 유리는 제 치마를 꼭 쥐었다.
빼돌린 보석들은 모두 대부인에게 바치는 뇌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인은, 이득이 되지 않는 자를 곁에 두지 않는다.
그녀가 유리에게 바라는 것은 지속적인 극상품 보석.
“아무튼, 시녀장 역할. 잘해 보렴.”
에시카가 싱긋 웃자 유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벌써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를 보자 에시카는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소설 속 유리 아네시스가 클라우스 공작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1년 뒤, 그녀의 배 속에 클라우스 공작의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에시카에게 보내지는 보석을 횡령해 대부인에게 알랑댔겠지.
하지만 유리가 대부인의 호의를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여기에서 에시카의 보석이 빠지면 안 된다.
“…….”
아까의 기세는 사라진 채, 유리는 굳은 얼굴로 휙 돌아서서 나갔다.
‘저 멍청한 애는 보석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거야.’
제 무덤을 파는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
유리가 나가고 캄캄한 밤이 오자 에시카는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주제 모르고 날뛰는 것들을 참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에시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내력의 형성이었다.
이곳의 기운은 무림보다 짙은 편이었지만, 살아생전 훈련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에시카의 몸으로서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단전을 통해 토납 호흡하며 내공을 모아 일주천하며 내공이 지나는 길을 뚫는다.
그 첫걸음조차 벌써 일주일을 쏟고 있었다.
‘만만치 않군.’
마교의 방식대로 수련한다면 더욱 빠르고 순탄히 갈 수도 있겠지만, 허약한 몸으로 무리하게 내공을 쌓았다가는 아무래도 주화입마의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하자면 이 몸이 너무 연약해서, 정순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련하다가는 광인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답지는 않지만 정파에서 쓰는 정석적인 방법으로 서서히 힘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협박을 받은 셀라가 꽤 좋은 음식들을 꼬박꼬박 내오고 있으니, 좋은 음식으로 보양하며 강건한 정신으로 수련한다.
물론 적당히 내공이 트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는 속도가 붙을 것이다.
한번 간 길을 다시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십만대산도 첫 봉우리부터.’
에시카는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며 내공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내력을 천천히 순환시키며 기의 통로를 뚫기 시작했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 길을 내듯,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에시카는 정신을 집중했다.
몸에서는 땀과 함께, 쌓였던 노폐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렇게 한참 동안 끙끙대며 행공하던 에시카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난이도 극악인 이 약한 몸에 내공의 첫 통로를 뚫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이조차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다니.
잠시 후 에시카는 창밖에서 비치는 달빛을 받으며 눈을 떴다.
옷은 조금 젖어 있었지만 피부는 전보다 맑고 부드러워졌다.
기지개를 켠 에시카는 혼잣말을 했다.
“씻어야겠어.”
**
초대 없이 방문했던 손님을 보내며 칼리안은 말했다.
“황궁까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의례적인 말에 레스반은 왼손을 들어 거절을 표했다.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레스반 데온 루세인, 튜레시안 제국의 황태자.
칼리안과 비슷한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검은 머리카락과 선명한 황금안을 가진 절세 미남.
그는 29세에 이른 지금까지 미혼이었다.
적령기를 지나는 지금에도 미혼인 이유에는 여러 소문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전쟁만큼 매혹적인 여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에우니브스 정복 전쟁’ 이후 레스반은 잔혹한 전쟁광으로 불리었다.
오늘 이 전쟁광이 공작가에 들른 이유는 소르베에 보낼 클라우스 공작가의 지원품을 점검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휼 곡식에 껍질을 잔뜩 섞으려던 대부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철저한 방비가 필요한 것은 지원품뿐.”
서늘한 레스반의 목소리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더 신경 쓸 일 없게 알아서 철저히 관리하라는 의미였다.
이내 레스반이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자신의 흰 말에 올라타자, 푸른 망토가 크게 펄럭였다.
칼리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레스반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럼 편한 길 되십시오, 튜레시안의 작은 태양.”
고개를 까딱한 레스반은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서늘한 밤바람에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말은 질주했고 쭉 뻗은 나무들의 풍경이 쉴 새 없이 바뀌고 있었다.
클라우스 공작가의 길은 매우 잘 닦여 있었다.
공작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관리가 소홀했는데, 결혼 후 꽤 재물이 늘어났다고 들었다.
‘브리기트 남작가의 여식이었던가.’
혼인으로 제 가문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말을 달리며 눈썹을 찡그리던 레스반은 문득 고삐를 세게 잡았다.
“…….”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이 멈추어 서자, 레스반은 말에서 가볍게 내려 착지했다.
아직 클라우스 공작저의 영토임에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수풀 깊숙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울창한 숲속 하늘의 반달과 은하수가 가득 담긴 호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
살랑이는 바람에 은빛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젖은 흰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레스반의 시선을 느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뚝한 콧대와 아름다운 턱선에 음영이 져 있었고,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고운 눈썹 아래 푸른 별을 담은 것 같은 벽안이 일렁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옆모습뿐이었지만 레스반은 눈썹을 굳힌 채 그대로 서서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 일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호수로 사라졌다.
“……!”
레스반은 즉시 발걸음을 옮겨 호수에 가까이 섰다.
방금 보았던 그녀가 환상이었던 것처럼 호수는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곳에도 여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늘한 눈매 속 짙은 금안으로 오랫동안 호수의 풍경을 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