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3. 스스로 효용을 증명해(33/192)
#33. 스스로 효용을 증명해
2024.01.02.
“역시…… 그대는 재미있어.”
레스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가 자신에게 이런 관심을 나타내는 이유는…… 역시 그 쪽지 속의 ‘하세츠’와 연관이 있는 것이겠지.
여덟 살 무렵이었던가, 잠시 끊겼던 기억이 있다.
‘이 일은 나중에 슈페르트 오빠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어. 아니면 그 이전이라도…… 알아볼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레스반은 쉽게 말해 줄 것 같지 않다.
그저 입술 끝을 아찔하게 비틀고 미소 지으며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어항 속을 관찰하는 아이처럼.
“…….”
정원을 산책하던 에시카는 문득 꽃 위로 손을 뻗었다가 조심스레 손을 오므렸다.
손을 펴 보자 손 위에는 하얀 나비가 앉아 있었다.
부드러운 날개를 가진 흰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데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
굳은 표정의 칼리안이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은 이미 몇 분 전부터 제게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물었다.
“오늘은 한가하신 모양이군요.”
서늘한 음색의 그 말에 칼리안은 손을 움찔했다.
몇 주 전이었다면 대번에 눈썹을 구겼겠지만, 칼리안은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칼리안은 몇 발자국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거리는 가까워짐에도 정신적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제가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는 눈빛.
칼리안의 가슴이 욱신거렸다.
“……어제는 내가 오해를 했소.”
조용한 화원, 칼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안은 잠시 후 무거운 입술을 열어 그녀에게 진심을 전했다.
“그대를 믿지 못하고 밀어붙여서 미안하오. 에시카.”
둘 사이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에시카의 눈빛은 여전히 쌀쌀할 뿐이었다.
에시카는 속으로 칼리안을 비웃으며 생각했다.
‘황태자가 쿠키를 먹어 나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았어도 당신이 내게 사과했을까?’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칼리안은 제 모든 행동을 합리화해 주는 리오나 클라우스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제가 무슨 짓을 하건 그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이 사과는 억지로 받아 낸 패배의 표면화일 뿐이다.
“사과는 잘 들었어요.”
에시카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에 칼리안이 흠칫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에시카라면 눈물이라도 흘리며 제게 서운했다고 아양을 피우거나,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자신을 다독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칼리안의 눈앞 에시카는,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칼리안은 에시카의 이런 눈빛이 어느 순간부터 불안해졌다.
정말 그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물론 짧은 시간 동안의 변덕이라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다른 일이 없다면, 저녁을 함께했으면 하는데 부인의 생각은 어떻소.”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에시카에게 말을 꺼내었다.
이번만은 그녀가 수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직접 그녀에게 사과했으니.
그리고 예전의 에시카는 늘 칼리안과 함께 저녁을 함께하고 싶어 했다.
“죄송하지만 점심을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아서, 오늘 저녁은 거르려고 해요.”
“…….”
칼리안의 손이 움찔 움직였다.
에시카는 영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산책을 하는 중이었답니다.”
칼리안은 속이 울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거절당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제안을 거절당했으니, 정말 착각이 현실이 된 것 같은 아득함이 밀려들었다.
에시카의 얼굴에 영 달갑지 않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칼리안은 일순간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라도 함께하자고 명령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알겠소.”
하지만 그랬다가는 클라우스 공작으로서의 제 위신이 우스워질 것이다.
식사를 거절하는 부인에게 매달린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껏 어두워진 눈빛으로 칼리안은 되돌아섰다.
그의 뇌리에 이글이글 짜증이 끓기 시작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된 거지?’
**
어둑한 창고 안, 주변을 살피던 한스는 에시카를 발견했다.
창문 아래 앉아 있는 그녀의 주변으로 달빛이 비치었다.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과 짙푸르게 빛나는 눈동자…… 마치 여느 동화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분위기의 그녀는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착각이 아니야, 부인은 변하셨어.’
한스가 곧장 에시카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다.
티타임에서 대부인을 패배시키는 그 모습을 보고야 한스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그녀가 바뀌었다면…… 충분히 패를 걸어 볼 만하다.
어차피 지금의 클라우스 공작가는 날로 재정이 위태로워지고 있으니까.
만약 제가 건 패가 실패하더라도, 에시카의 말대로 한스에게 손해는 없을 것이다.
“부인.”
한스는 에시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에시카 뒤의 셀라가 보였다.
그녀는 영 미덥지 않은 눈으로 한스를 보고 있었다.
“부인의 명령대로 대부인께 취헨 투자에 대해 권했고, 대부인께서는 차관을 써서라도 투자를 하실 모양입니다.”
이제 클라우스의 명운이 취헨 투자에 달렸다.
에시카의 입술 끝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한스는 의아해했다.
에시카의 수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클라우스를 가지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대부인께 취헨 투자를 권하도록 한 이유는, 투자가 실패하리라 생각하셔서일 텐데. 만약 투자가 실패하면 대부인뿐 아니라 클라우스가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제국 정세로서는 실패 가능성은 적어 보이기는 했다.
“게다가 취헨은 투자 가능성이 좋은 곳이라 이는 실패하기 어려운 투자입니다.”
취헨은 각광받고 있는 서부 거점 후보였으니 말이다.
“대부인은 실패할 거야.”
그러나 한스의 말을 끊는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차분하지만 서늘한 목소리.
“그러나 나는 실패하지 않지.”
에시카의 말에 한스는 움찔했다.
싸늘한 그녀의 미성은 한스의 논리 사고를 정지시켰다.
마치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힌다.
어둠 속 빛나는 에시카의 벽안 속 저 확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제게 부인의 생각과 뜻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주시면…….”
“자네는 아직 완전히 나를 믿지 않지. 나 역시 자네를 완전히 믿지는 않아.”
에시카의 목소리가 한스의 허를 찔렀다.
십수 년 동안 공작가의 재정을 관리하고 내외부의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던 한스이지만, 변하고 난 뒤의 에시카는 상대하기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는 말보다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네.”
“저는 부인을 믿고 부인의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믿지 않으신다니…….”
일부러 섭섭한 기색을 드러내는 한스였지만 에시카는 싱긋 미소 지었다.
“자네가 나에 대해 계산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나도 자네를 판단하겠다는 것뿐이야.”
그 말에 한스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만일 에시카가 티타임에서 기량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한스는 대부인에게 에시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전했을 것이다.
“자네도 내게 바라는 것이 고작 말뿐인 믿음 따위는 아니지 않는가.”
모두에게 당하던 바보 같던 공작 부인은 더 이상 없다.
한스의 속을 매섭도록 서늘하게 꿰뚫어 보는 한 여자만 있을 뿐.
지금은 사치스러운 대부인의 뒤처리만으로도 바쁜 그이지만, 한스는 본래 야심이 있는 자였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클라우스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쓸모없는 자들을 쫓아낼 걸세.”
“…….”
“그러니 자네 스스로 효용을 증명해 보아. 그래야 내 배에 태워 줄 테니.”
에시카의 붉은 입꼬리가 올라왔다.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곁에 장막 같은 달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
똑똑-
발코니에서 홀로 달빛을 감상하던 칼리안은, 제 옆으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뒤를 돌아보았다.
트레이에 그가 즐기는 술과 치즈를 가져온 유리가 서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유리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공작 전하, 오늘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셔서…….”
한 발짝 더 그에게 다가온 유리가 말을 이었다.
“편히 드실 수 있는 것들을 가져와 보았어요.”
그녀를 바라보던 칼리안의 입술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어째서였을까. 잠시나마 기대했었다.
저 문이 열리고, 이전처럼 에시카가 나타나기를.
전의 자신이라면 에시카에게 질색을 하며 방해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오늘이라면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칼리안의 쓴웃음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유리는 칼리안이 있는 발코니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 술과 조각 치즈를 올려놓았다.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이야기 상대가 되어 드려도 될까요?”
유리의 말에 칼리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화사한 금발과 붉은 눈동자, 확실히 공작가의 시녀로 있기에는 아쉬운 미모이다.
물론 에시카에는 미치지 못하는 축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에시카가 불러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유리도 어느 남자와 결혼을 했을 나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