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5)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5. 외도(35/192)
#35. 외도
2024.01.04.
말뜻에 비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에시카의 목소리에 슈페르트가 인상을 쓰며 곧장 되물었다.
“배신이라고? 그 애가 감히 너를 배신했다고?”
슈페르트가 내심 유리에 대해 경계했던 부분 하나는, 겉으로는 차분하게 에시카에게 다 맞추어 주는 유리의 속내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꼭 다른 뜻을 숨기고 억지로 맞추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어릴 때부터 상업심리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익혔던 그는 유리가 영 꺼림칙했다.
그래서 시집을 간 에시카가 유리를 부르는 것에도 넌지시 반대 의사를 표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에시카는 듣는 척도 안 했지만 말이다.
“유리는 이곳의 시녀장이 되었는데, 대부인의 곁에 붙어서 저를 괴롭히려 하고 있어요. 제 남편인 칼리안을 유혹하고 있고요. 자세한 점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에시카는 차분한 손길로 차를 마셨다.
에시카의 말을 들은 슈페르트의 속이 부글거렸다.
“감히 그 애가 은혜도 모르고 브리기트와 척지려 하는구나.”
겉은 발랄하지만 속이 여린 에시카가 유리의 배신에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까.
“내가 당장 공작 대부인께 말씀드려 그 애를 내치도록…….”
“죄송하지만 오라버니, 이건 클라우스의 일이에요. 저와 유리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에시카.”
차를 마신 에시카는 잔을 달가닥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공작 대부인은 외부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아요. 특히 브리기트의 참견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이내 에시카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라버니께서는 제가 편지한 대로 진행해 주시면 돼요.”
슈페르트는 멍하니 에시카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확실히,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그동안 에시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시카는 서늘한 눈빛을 띠며 미소 지었다.
“그 애는 훗날 배신에 대한 완벽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에시카는 대답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슈페르트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동생을 믿고 있었다.
“공작가에 시집가더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에시카.”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마. 걱정하지 말거라.”
슈페르트의 긍정에 에시카는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오랜만에 같이 차를 마시는 에시카는 철없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은 시집가기 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고 차를 마시는 자태부터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 관리까지…… 이제 누가 봐도 부인들의 예법에 통달한 어엿한 공작 부인으로 보였다.
슈페르트는 그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오묘한 안도로 와닿았다.
누군가에게 당하며 살지는 않겠구나.
“참,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엘뮤르의 토지는 구입하셨나요.”
“그래. 여기, 토지에 대한 서류도 가져왔다.”
슈페르트는 토지 구입 후 받은 증서를 에시카에게 주었다.
취헨이 각광받고 있는 지금, 엘뮤어의 지가는 그에 밀려 굉장히 저렴했다.
증서를 편 에시카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렸던 것보다 더 큰데요?”
원래 구입하기로 생각했던 토지의 2배 정도의 크기가 문서에 표시되어 있었다.
“내 사재도 보태었어. 생각해 보니 네가 결혼한 뒤 선물을 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받아 주거라, 에시카.”
슈페르트의 말에 에시카의 눈이 일렁였다.
큰오빠인 슈페르트 브리기트는 조금 딱딱했지만, 속으로는 세심하게 동생들을 챙겼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이 정도 토지면 그녀에게 엄청난 기반이 될 것이다.
에시카가 고마움을 표하자 슈페르트의 입가 역시 미소가 감돌았다.
“참, 그리고 오라버니께 여쭈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래, 무엇이든 물어보거라.”
에시카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걸려 있던 그것을 입에 내었다.
“제가 여덟 살에 있었던…… 하세츠에서의 일이요.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그때의 일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슈페르트의 눈썹이 움찔 움직였다.
**
다음 날 눈을 뜬 칼리안은 밀려드는 두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미간에 손을 짚은 그는 눈을 찡그린 채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데 자연스레 딸려와야 할 이불이 뭔가에 걸린 듯 완전히 딸려오지 않는다.
칼리안은 천천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손을 움찔 움직였다.
“…….”
유리 아네시스, 단정하게 금발을 틀어 올렸던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칼로 얼굴의 일부가 가려진 채, 제 옆자리에 누워 있었다.
새하얀 나신과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가린 이불이 보인다.
칼리안은 놀라서 얼굴이 굳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공작 전하께서도 높은 인망으로 영지를 잘 꾸려 나가시고, 황제 폐하의 신임 또한 얻고 계시잖아요. 아네시스에 있을 때부터 늘 공작 전하를 한 번쯤은 뵙고 싶어 했어요.”
싱긋 웃으며 제 술잔에 술을 따르던 유리의 얼굴만 드문드문 떠오른다.
머리에는 여전히 두통이 심했고, 칼리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잠시 후, 고운 눈썹을 살짝 찌푸린 유리가 파르르 눈썹을 떨며 눈을 떴다.
칼리안과 시선이 마주친 유리의 붉은 눈 역시 놀라는 듯 살짝 커지더니,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반응으로 칼리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젯밤 자신이, 에시카의 친구인 유리 아네시스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것을.
뒤통수가 뭔가에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이런…….”
절로 입 밖에 나오는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움찔 놀란 유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손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을 가린 채 말이다.
“공작 전하…… 저는…….”
칼리안의 시선이 다시 유리에게 향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푹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듯 말했다.
“……공작 전하의 잘못이 아니에요. 취하신 공작 전하를 거절하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칼리안은 그녀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천지 분간 못 하고 정말 유리와 외도해 버린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유리에게 늘 관심이 있었고, 알렛 반지를 줄 만큼 그녀에게 이끌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선은 넘지 않았었다.
그는 그저 그녀와 아슬아슬한 관심을 주고받는 관계를 즐겼을 뿐이지 책임질 일까지 가기 전에 그만두었단 말이다.
유리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서글프게 말했다.
“전부 제 잘못이니, 스스로를 원망하지 마세요.”
“……유리.”
칼리안은 제 이마를 짚으며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유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에 칼리안은 조금은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저와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떨며 울고 있으니, 남자로서 당연한 측은지심이다.
“그대는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전부 나에게 있겠지.”
유리는 클라우스 가문에 속한 시녀장의 신분이었고, 칼리안은 그녀의 주인인 공작이었다.
“공작 전하! 흑.”
그 말에 유리는 눈물 젖은 눈으로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칼리안의 품에 안겨 들었다.
갑자기 그녀가 안겨 들자 칼리안은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잠시 후 어색한 손을 들어 유리의 등을 토닥였다.
흰 침상 위에 옅은 핏자국이 나 있었다.
자신이 유리의 첫 남자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책임감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품 안에 안긴 유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 또한 이 일에 놀랐을 테고, 그녀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또한 행여 에시카에게 알려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칼리안의 눈동자 속은 갑자기 닥친 벼락 같은 상황의 여파로 짙게 흔들리고 있었다.
**
“제 오라비를 들였다고?”
리오나의 하문에 하녀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방금 슈페르트 브리기트 소남작께서 티타임을 끝내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에 리오나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내 자리를 비웠다고 제 안방인 것처럼 행동하는구나. 발칙하게도.”
에시카 클라우스, 한미한 남작가의 딸.
짓밟는 대로 짓밟혀야 할 천한 피 주제에 감히 고개를 뻣뻣이 든다.
칼리안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모양새이니 더 두고 볼 수 없다.
취헨 개발에 대한 수익만 들어온다면 시집갈 때 들고 왔던 지참금을 돌려줘서라도 클라우스에서 쫓아내고 말 것이다.
“그런데, 유리는 어디에 갔느냐. 아침 내내 보이지 않은 것 같구나.”
리오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리를 찾았다.
어젯밤부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타이밍에 맞게 문이 열리더니 유리가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대부인.”
리오나는 서늘한 눈빛으로 유리의 얼굴부터 발까지 훑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서 밤이슬이라도 맞고 온 것이야?”
그 말에 유리의 손이 움찔했다.
칼리안을 넘보는 말을 했다고, 실신할 때까지 제 종아리를 회초리로 후려쳤던 리오나이다.
까딱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