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6. 하세츠에서 있었던 일(36/192)
#36. 하세츠에서 있었던 일
2024.01.05.
날카로운 리오나의 시선을 받으며 유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고되어 헛간에서 잠들었다가 늦게 깨어났습니다.”
“호오, 누가 들으면 내가 시녀장에게 가혹한 일이라도 맡기는 줄 알겠어.”
비꼬는 듯한 그녀의 어조에 유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냥 제 몸이 허술한 탓입니다.”
리오나 클라우스, 그녀는 본래 클라우스 공작가의 정부인이 아니었다.
선대 클라우스 공작의 내연녀로서 사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인물.
그랬던 그녀가 공작과 정부인을 이혼시키고 안주인 자리에 당당하게 앉은 이유는, 그녀의 계략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본처의 자식들까지 가문 밖으로 다 쫓아내고, 제가 낳은 막내아들 칼리안을 공작 자리에 앉혔다.
그런 그녀에게 유리는 아직 햇병아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설프게 대답하면 의심만 더 부추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유리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제게는 대부인이 은인이시고, 에시카를 떠나 대부인 편에 설 때부터 저는 평생 대부인을 따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흠, 그렇게 절절하게 내게 애원하는 것에 비해서…….”
리오나는 다리를 꼬며 차갑게 말했다.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니, 내 자네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
리오나의 말에 유리의 꾹 쥔 주먹이 움찔 움직였다.
회초리를 때린 것이 리오나라고, 유리는 결국 칼리안에게 실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칼리안의 분노를 샀을 테니, 눈물과 함께 리오나를 팔아 그의 동정을 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 충성심을 다시 보여 드릴 테니, 기다려 주세요.”
리오나의 호의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끊긴 보석이라도 얻는다면 조금 나아질 텐데.
자신이 다시 남작가에 에시카의 사정을 꾸며내어 편지를 보내기는 했으나,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충성심이라? 나를 한번 배신한 너를 내가 어떻게 믿지?”
그러나 리오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유리는 붉은 눈을 어둡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제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의심하신다면 당장 제 머리카락을 자르셔도 되어요.”
그 말에 피식 입꼬리를 올린 리오나는 테이블 위의 함에 들어 있는 가위를 집은 뒤 유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채를 틀어쥐며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대부인 리오나를 올려다보는 유리의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가 널 곁에 둔 이유는, 그리고 곁에 두고서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날 닮았기 때문이다.”
리오나는 휘어잡은 유리의 머리카락 끝의 한 뭉텅이를 싹둑 잘랐다.
유리의 붉은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만약 어젯밤 칼리안과 함께 있었던 것을 그녀에게 들켰더라면 잘리는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행스럽게 가위질은 위협일 뿐이어서 머리카락의 끝부분만 바닥에 우수수 떨어질 뿐이었다.
유리를 보는 리오나가 차갑게 입술을 달싹였다.
“처신 똑바로 하거라, 유리.”
리오나의 말에 유리는 간담이 서늘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에시카의 곁에 있으면서 리오나의 악마 같은 독기는 충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으나, 직접 당할 때마다 그녀의 지독함을 체감했다.
“알겠습니다. 대부인.”
그래도 유리는 절대 클라우스 공작 부인의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닿지 않을 높이에 있던 클라우스 공작의 손이 겨우 닿았고, 그의 품에 안기기까지 했다.
그토록 원하던 권력도 부귀영화도,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외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재수 없는 에시카를 공작저 바깥으로 쫓아내고, 언젠가 이 징글징글한 마귀도 해치우고, 모두가 선망하는 클라우스를 제 것으로 만들 것이다.
“믿어 주세요.”
**
에시카가 전에 무기 가게에서 주문했던 단검을 찾기로 한 날이 되었다.
한스가 그녀를 위한 마차를 제공해 주었기에 이동이 편했다.
가문 내의 조력자가 셋. 한스, 헤모스, 셀라…….
그들 덕분에 음식은 물론이고 제공되는 소품이나 의복 또한 점점 질이 좋은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 입은 것은 중산층의 평민들이 입는 드레스였는데, 하녀복보다 눈에 덜 띄는 것을 골라 달라고 하자 한스가 보내 준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일상에 착실히 협조하며 제 쓸모를 증명하는 한스였다.
‘물고기들이 모이고 있으니, 낚아 올리는 일만 남았구나.’
예정된 미래를 아는 것은 꽤 즐겁다.
에시카는 선뜻 기분 좋은 얼굴로 마차의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내공이 쌓이고 있다.
물론 이전의 힘을 되찾았다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무림 고수의 반열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리고 한 가지 변수는.
에시카는 어제 슈페르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여덟 살 때였다. 나라의 전란이 수습되지 않아 혼란스럽고 흉흉한 시기였지. 나도 전부를 알지 못하지만 네가 하세츠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어.”
세 살 차이의 첫째 오빠 슈페르트 브리기트, 그리고 두 살 차이 나는 둘째 오빠인 세르빈 브리기트…… 동갑인 유리와 함께 그들은 종종 하세츠 항구에서 놀았다.
어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숨바꼭질을 하던 에시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문의 모든 고용인이 나와서 하세츠를 뒤졌지만 에시카는 발견되지 않았다.
슈페르트와 세르빈은 목이 쉬도록 에시카를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에시카가 사라진 지 꼬박 하루가 되는 날이었다.
걱정에 수프 한술 뜨지 못했던 슈페르트가 날이 밝자마자 다시 하세츠에서 에시카의 이름을 부르는데, 어느 폐창고가 눈에 띄었다.
“창고에 무장한 남자들의 시체가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네가 있었지. 초점 없는 눈으로 피에 젖은 검을 들고 있었어. 그 검은 네 키보다도 컸지. 그 시체들의 검 중 하나로 보였다.”
슈페르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에 나붙었던 1급 수배 전단에 있던 남자아이 하나가 네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었던 것 같은데, 섬뜩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어.”
1급 수배 전단은 주로 반역자나 반역자의 직계를 찾는 데 쓰이는 최상급의 수배였다.
수도 토레스를 강탈당했던 튜레시안 황가가 나라를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에게 협조했던 세력을 잡아 죽이느라 수배를 남발하던 시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었어. 머리가 더부룩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소년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네가 이상한 언어를 하기 시작했어.”
“이상한 언어라고요?”
“그래,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단다. 그리고…… 쓰러졌지. 얼마지 않아 황가에서 나온 자들이 소년을 데려갔고, 우리 가문은 조사를 받았단다.”
1급 수배자와는 말도 섞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에시카는 소년과 꼬박 하루를 함께 있었기에 가문 전체가 조사를 받았다.
“소년은 어떻게 되었나요?”
“내가 알기로는…… 처형당했을 것이다. 1급 수배자의 말로는 보통 그렇거든.”
“……아마도 아닐 거예요.”
“……뭐?”
소년의 정체에 대해 적당히 짐작한 에시카는 속이 시끄러웠다.
레스반 데온 루세인과의 첫 만남은, 예상한 대로 클라우스 공작가에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마도 잠시 영령의 자아가 살아났었다는 것이겠지.
‘그곳에서,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을 했던 것이지?’
그녀는 에시카로서 살아왔지만 인생의 행로 중 정확히 그 시기의 기억만 끊겨 있었다.
가족들에게 들어 하세츠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레스반과 관련된 일이었을 줄이야.
‘결국 기억을 찾거나, 그에게서 답을 듣는 방법밖에 없겠군.’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레스반의 금안을 떠올리니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어 왔다.
잠시 후 마차가 무기점 앞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에시카는 잡생각을 털어 버리고 무기점으로 들어갔다.
무기점 안은 전에 들렀을 때와 달리 시끌시끌했다.
제 검이나 얼른 달라고 할 요령이었는데, 영 시답잖은 것들이 행패를 부리는 것 같았다.
“이 싸구려가 500링이나 된다고? 바가지 좀 작작 씌워.”
“여기 백 링이다. 받아라!”
“그럼 저희는 원가도 남지 않습니다. 백 링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닥쳐!”
여섯 명 정도로 구성된 무리의 대장이 무기 상점에서 받은 검을 뽑으며 점원을 위협했다.
“아이구, 나리……!”
“감히 우리한테 바가지를 씌우려 하다니, 어? 장사 똑바로 해!”
점원은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고, 에시카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관망했다.
행색으로 보아하니 외부의 용병들 같은데 질이 영 안 좋아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이건 덤으로 하나 받아 가야겠다. 토끼 썰어 먹을 때 좋겠군.”
무리의 대장은 점원의 옆에 있는 에시카의 조금 짧은 검을 집었다.
그러자 점원이 그를 말렸다.
“아이고, 안 됩니다. 이건 다른 손님 겁니다. 오늘 찾으러 오신댔는데, 돌려주시는 것이…….”
“모양 보아하니 실력 있는 놈도 아니겠구만.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고 해. 킬킬킬.”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그를 보던 에시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