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37.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황태자(37/192)
#37.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황태자
2024.01.06.
영령이었을 적 그녀 인생의 한 가지 원칙은, 상관없는 일에는 굳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교 출신이던 그녀는 정의감이 투철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득 없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했다.
제가 검을 뽑으면 피를 보고 끝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 저들은 굉장히 나쁜 선택을 한 것이다.
“아저씨. 그거 내 거야.”
그녀의 입술이 달싹이며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건달 같은 용병 무리는 잠시 흠칫했다.
하지만 그녀를 돌아본 그들은 그녀가 혼자라는 것을 보고 허, 하고 눈썹을 올렸다.
그리고 서로 비웃는 듯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요즘 이렇게 겁 없는 여자도 있었나.
에시카의 검을 집은 대장은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에시카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아가씨 거라고?”
에시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지금 내놓고 간다면 다치지 않고 여기에서 나가게 해 주지.”
“뭐?”
“크하하하하하! 방금 이 여자가 뭐라고 한 거야?!”
빤히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도 허튼 패기를 부리는 그녀의 행동에 대장은 클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 비싸지 않은 드레스를 보아하니 철 모르고 자란 귀족 여인네도 아닐 텐데.
그러자 다른 사내들 역시 킥킥 웃기 시작했다.
“뭐, 썩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라 돌려줄 수도 있지만…….”
대장의 눈길이 에시카의 옷깃에 닿았다.
그 끈적한 눈빛이 원하는 것은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그전에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나 할까. 이 동네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산다니,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냥 보내줄 수가 없겠어. 뭐, 내 애인이 되겠다고 하면 이깟 검이야 뭐…… 더 좋은 것도 사 주고.”
“킬킬킬킬.”
노골적인 희롱에도 에시카는 반응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대장은 에시카의 머리카락 쪽으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숫기가 없는 아가씨이군…… 이리 와 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에시카는 남자의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그의 팔을 내그었다.
찬란할 만큼 화려하게 피가 튀어 올랐다.
“……!”
이곳의 누구도 눈으로 따르지조차 못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아악!”
남자의 팔이 처참하게 피를 뿌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한 번 더 같은 기세로 그으면 팔이 분리되고 말 것이다.
“대…… 대장!”
“뭐야, 이 미친 여자!”
뒤편의 남자들이 성을 내며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남자의 검을 바라보던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원래부터 검을 꽤 소중히 여겨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에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살랑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는 야수의 것처럼 맹렬한 기운을 띠며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쓰레기들의 피로 더럽히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
기겁한 사내들은 에시카에게 검 끝을 들이대었다.
“하물며 그 쓰레기가 내 검을 잡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지.”
“아악! 아아악! 저년을 죽여!”
팔을 베인 대장은 꿱꿱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간만에 검을 잡고 자세를 취한 에시카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
에시카가 검을 뽑아 든 이후의 상황은 너무도 쉽게 정리되었다.
검무를 추듯 부드럽고 빠른 칼 놀림에 여기저기에서 피가 튀기고 뼈가 꺾였다.
남자들이 쓰러진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천영령의 기억과 기술을 가진 그녀에게 기사급도 못 되는 이런 버러지들의 상대는 식은 죽 먹기이다.
“……헉…….”
가게 주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평소와 같이 태연한 표정의 에시카는 제 얼굴에 튄 피를 흰 손으로 쓱 닦았다.
조금 몸을 숙인 에시카는 바닥에 떨어진 제 검을 주웠다.
그리고 살짝 검집을 뽑아 검날을 살폈다.
아름다운 선과 영롱한 윤기가 썩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
가게 주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쓰러진 남자들 사이에서 고고히 서 있는 그녀는 입술에 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제게 있었던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게다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이 와중에 웃고 있는 거지?’
하녀복을 입고 검을 제작하러 왔을 때는, 어떤 불쌍한 놈에게 이별 통보라도 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검이 자신이 쓸 검이었다니…….
‘게다가 이 어마어마한 실력은…….’
저 정도의 여기사가 있다면 토레스에 소문이 파다했을 텐데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보면 여기사도 아니다.
그렇다면 용병단에 소속된 암살자인가.
하지만 용병단의 여자들이 질 좋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일은 드물다.
‘정말 놀랍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군.’
피와 시체들 사이에서 웃고 있다는 살육의 천사.
어느 예술가가 만든 명화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검을 바라보던 에시카가 저와 눈을 맞추자 가게 주인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자들은 저들끼리 다투다 저리된 겁니다.”
“아…….”
“성대를 같이 끊어 놓았으니 증언하지는 못할 거예요. 일자무식의 용병 놈들이 글을 쓸 리도 없을 테고…….”
에시카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기가 맺혀 있었다.
성대를 끊어 놓았다니. 그게 가능은 한 일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입을 벌리지만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뻐끔거리는 저놈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 기묘함과 잔혹함에 섬뜩함이 밀려들었다.
“그냥 모가지를 똑 베어 버리면 좋을 텐데, 그랬다가는 귀찮아지니까.”
동네 시정잡배들의 다툼으로 인한 폭력 사건이야 조사도 들어가지 않겠지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몰살되었다면 틀림없이 조사에 들어갈 것이다.
무림이었다면 염라를 만나고 있을 자들이, 운 좋게도, 아니, 운 나쁘게도 살아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입단속을 할 수밖에.
“나는 귀찮은 일을 싫어해요.”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에 몸을 부르르 떤 가게 주인이 고개를 깊이 처박았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이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무기 상점이건, 보통 상점주들은 대형 길드에 보호세를 내고 있는 경우가 흔했다.
보호세를 내더라도 지역 잡배들이 아닌, 떠돌이 용병들이 행패를 부리는 일은 흔했지만, 아무튼 형편없이 쓰러진 이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까딱한 에시카는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검이 마음에 드는군요. 잘 쓰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가게 주인은 흠칫하는 표정으로 에시카를 보았다.
에시카…… 그러니까 영령은 늘 대장장이들과 검 공급자들을 존중했다.
그녀가 가혹하게 구는 것은 오로지 동등한 무인들뿐.
무기를 든 자는 누구든 자기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목숨으로 다해야 했지만, 검을 만들고 공급하는 자들은 이에 속하지 않는다.
“…….”
미소 짓는 에시카의 아름다운 모습은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검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부디 잘 사용해 주십시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
**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군.’
가게 문밖으로 나온 에시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 있는 레스반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대 놓고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황태자이니…… 참자, 생각하며 그녀는 그의 앞에서 서서 예법대로 인사했다.
몸을 조금 숙이자 살짝 들어 올린 치마 밑으로 가는 발목이 드러났다.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그의 검은 머리칼 뒤로 태양이 떠 후광이 비추는 모양새였다.
뒤에서 비추는 빛으로 인해 금안은 평소보다도 더 감정을 알 수 없을 만큼 짙고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그대에게서…….”
레스반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이 에시카의 흐트러진 머리칼 끝을 사르륵 만졌다.
그 접촉에 에시카는 눈을 조금 찡그렸지만 레스반은 서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피 냄새가 나.”
그의 짙은 금안을 마주 보고 있던 에시카의 푸른 눈이 살짝 일렁였다.
바람이 불자 에시카의 머리카락이 다시 살랑였다.
“하나, 둘, 셋…….”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며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여럿이야.”
혈향, 여자에게 하기에는 조금 무례한 언사이다.
그녀가 방금 흥겹게 칼춤을 추고 온 에시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마 제 온몸에 진득한 피 냄새가 배어 있을 것이다.
레스반 같은 고수는 살짝 문이 열렸다 닫힌 것만으로도, 자욱한 혈향을 알아챘겠지.
에시카는 차분한 표정으로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이에요.”
방금 벌였던 일을 그가 알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제가 휘두른 검을 후회해 본 적 없었다.
그 당당하고도 태연한 모습에 레스반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렇다면 그 검은.”
“…….”
“응징을 위한 검인가?”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다 사라진다.
그녀를 깊이 관찰하기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