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5. 아내가 변하다(4/192)
#5. 아내가 변하다
2023.12.05.
다음 날 아침, 노크 소리와 함께 셀라가 들어왔다.
셀라가 든 쟁반에는 가장 신선한 야채와 빵, 그리고 음료가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셀라는 깍듯이 에시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재주가 미천하여 이것밖에 챙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인.”
그녀의 식사로는 오래된 빵이나 던져 주라는 대부인의 명령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아마도 셀라가 눈치껏 음식을 훔쳐서 겨우 가져온 것일 터.
에시카가 고개를 까딱 움직이자 셀라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돌아서려 할 때, 에시카가 셀라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화들짝 놀라 그것을 받은 셀라는 손을 펴 보았다.
반짝이는 작은 진주 한 알이 있었다.
아마도 저 같은 하녀들의 3개월 치 급료는 될 만한 보석이다.
“주방장을 위한 미끼이다.”
그 말에 셀라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이 진주를 주방장에게 준다면, 그는 기꺼이 좋은 음식을 빼줄 것이다.
“식탁 위의 종이를 가져다주거라. 일종의 레시피인데 그대로 조리해 달라고 하면 된다.”
물론 공작 부인의 취향에 따른 맞춤형 요리도 가능하겠지.
셀라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부인.”
이전 같으면 주방장에게 진주를 주는 대신 제가 몰래 팔아먹겠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내부의 사정까지 꿰뚫어 보고 있으며,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독이 들었는지 아닌지 판별하는 통찰력의 공작 부인이 제 어설픈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으니까.
‘이런 분이신지 왜 몰랐을까.’
어젯밤 이후 눈이 새로 트인 기분이었다.
하녀들의 처우는 모시는 분의 위치에 달려 있는데, 공작 부인인 에시카의 하녀인 그녀는 하녀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공작 부인은, 어쩌면 나중에 대부인과 맞설 수도…… 그렇다면 셀라의 입지도…….
‘……역시, 그럴 수는 없으시겠지.’
허튼 생각이 떠오르자 셀라는 그것을 지워 버렸다.
셀라가 방에서 나가고 에시카는 입술 끝을 비틀었다.
셀라를 거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공작 부인으로서 집안 내부에 눈과 귀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데, 그런 일을 모두 유리에게만 맡겼기 때문에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셀라는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한번 힘의 우위를 보여 주면 제 분수를 알고 수그리는 성격이다.
은근히 발이 넓어 이것저것 알아 오거나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말이다.
그러니 공작가에 있는 동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진주를 남겨 두어서 불행 중 다행인가.’
한 달에 한 번 친정에서 오빠들이 보석을 보내 주면, 에시카는 유리로부터 그것을 전달받았다.
이미 유리가 가장 좋은 보석들을 빼 간 줄도 모르고 불평했었지.
그리고 유리가 그녀를 달래며 ‘내가 남은 보석들을 팔아 물건을 얻어 올게’라고 말하면 남은 것들마저 줘 버렸다.
물론 유리가 얻어 온 것은 낡은 담요와 모포, 영 부실한 식사뿐…….
유리는 대부인의 하녀들에게 뇌물로 보석을 주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늘 차가웠다.
당연히 그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결혼식이 있기 전날, 아버지로부터 받은 진주 주머니만은 유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잘 숨겨 두어서 다행이었다.
‘우선은…… 주방장이 영약을 제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야.’
내공의 증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무림인들은 영약을 복용하고는 했다.
영령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만들기 쉬운 영약의 성분은 꿰고 있었기에 이 시대의 비슷한 재료를 떠올려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방장에게 제조를 부탁한 것은, 얼핏 보면 주스 같지만 내공 증진의 배합법이 담긴 ‘일영약’.
순탄하게 제조되어 매일 한 번씩 먹게 된다면 내공 증진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
착실한 운기조식으로 공력을 쌓고 있던 오후, 에시카는 갑작스러운 칼리안의 부름에 드레스를 챙겨 입었다.
친정에서부터 입었던 붉은 드레스는 연식이 꽤 있음에도 아름다운 그녀의 자태를 매혹적인 장미처럼 돋보이게 했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어쩐지 점점 더 예뻐지시는 것 같아요.”
레이스를 정리하며 셀라가 감탄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의 기를 순환하며 피부에 쌓인 노폐물이 배출되는지라 피부가 맑아질 수밖에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공작 전하.”
티타임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 칼리안의 뒤에 선 에시카가 입술을 달싹였다.
내키지 않는 사람과 차를 마시느니, 운기조식을 하는 게 낫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튀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이들은 불판의 메뚜기처럼 튀겨 줄 생각이니까 급할 것은 없어.’
“…….”
칼리안이 천천히 에시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멈칫한 채 꽤나 길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시카 클라우스, 그 여자가 맞는데 눈빛부터 자태까지 어쩐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따스한 바람에 은빛 머리카락은 살랑거렸고, 피부에는 혈색이 있었으며, 짙은 속눈썹 아래 푸른 눈동자는 햇살 아래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앉으시오.”
칼리안의 말에 에시카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찻잔을 들지 않은 채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짙은 침묵 속, 칼리안은 에시카를 보며 오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친우분들과만 차를 마시고, 정말 너무해요. 저는 언제나 칼리안의 곁에 있고 싶단 말이에요.”
제 곁에만 오면 조금 과장되게 뜨는 동그란 눈과 투정 섞인 코맹맹이 소리.
법도에 맞지 않는 자잘한 실수들까지…….
에시카와의 티타임은 언제나 피곤했고, 제가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해 계속 종알거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은 고문이었다.
“…….”
하지만 지금의 에시카는 인사말 하나도 없이, 되레 어색할 정도의 분위기를 만들며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건이 뭡니까.’ 하고 묻듯 무심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럴 리가, 생각하던 칼리안은 말을 꺼내었다.
“몸은 어떻소?”
“썩 괜찮아졌으나, 이전보다 많은 휴식이 필요할 듯합니다.”
에시카는 ‘휴식’이라는 말에 강조를 실었다.
‘충분히 쉬어야 하니 다시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뜻을 담아서 말이다.
그 말을 별 의미 없이 받아들인 칼리안은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 부인과 차를 마시자고 한 이유는, 경고를 하고 싶어서요.”
칼리안은 사실 에시카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젯밤 유리가 에시카의 핍박에 괴롭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악독한 에시카가 유리를 보고 다시 뺨을 올려붙이지 않을 보장이 없다.
“경고요?”
에시카의 물음에 칼리안은 조금씩 치미는 짜증을 참고 말을 이었다.
“클라우스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언행은 부디 자제해 주기를 바라오.”
“귀비, 부디 투기는 자제하길 바라오.”
“…….”
에시카는 서늘한 눈빛으로 칼리안을 바라보았지만, 칼리안은 에시카의 눈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의심은 스스로를 괴롭게 할 뿐.”
“그녀들과의 관계는 정치적 의도일 뿐이오.”
이내 칼리안은 찻잔의 식은 차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대는 공작 부인으로서의 책무만 다하면 되오.”
에시카는 아까와 조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칼리안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제 사랑을 애걸하거나, 혹은 유리에 대해 욕을 해 대는 반응을 예상했지만 둘 중 그 무엇도 아니었다.
대신에…….
“풋.”
에시카의 입술 끝이 올라가더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내 그녀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듯 몇 번을 피식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리안의 눈썹 끝이 꿈틀했다.
“그대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군.”
칼리안은 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이 실소 역시 제게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일 뿐.
이제 곧 태도를 바꾸어 유리와의 관계를 실토하라고 떼를 쓰겠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눈에 눈물을 잔뜩 담은 채 말이다.
참으로 제 친구와 비교되는 여자이다.
그러나 에시카는 여전히 웃음기를 감추지 않았다.
“…….”
그 웃음기에 칼리안이 이상함을 느낄 만큼 길게.
실컷 웃고 한참이 지나서야 에시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작 전하는 참 한결같은 분이시군요.”
에시카가 판단하기에, 칼리안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고집을 가졌다.
그 성정에서 비롯된 자존심 때문에, 돈으로 제 아내 자리를 꿰찬 에시카를 더 경멸했고.
유리는 칼리안의 알렛 반지를 차고 에시카를 자극했지만 그것은 다 계산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들려는 에시카를, 칼리안이 어떤 눈으로 볼지 알고 있었기에.
사내의 마음은 방해물 앞에서 본격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이니.
“공작 전하의 말씀대로 공작 부인으로서의 책무에만 신경 쓰도록 하죠.”
그리고 이어지는 에시카의 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
예상치 못한 답변이자 질문이 흘러나왔다. 용건이 끝났다니.
칼리안은 괜히 속이 답답해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시카의 서늘한 눈매 속 푸른 눈동자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여유로운 빛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 우리 관계로는 이런 대화조차 피차 시간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에시카의 입술이 차갑게 달싹였다.
칼리안은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오늘은 에시카가 에시카가 아닌 것처럼, 그 속에 다른 마음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에시카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칼리안을 바라보며 고고한 미소를 띤 채 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느긋이 차를 홀짝였다.
칼리안은 이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차향은 충분히 즐겼으니 좋군요.”
달칵- 에시카가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이만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의 부상으로 아직 휴식이 필요해서요.”
에시카 클라우스, 그 여자는 한 번도 제 앞에서 먼저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사랑을 구걸했고 볼썽사납게 뒤를 쫓아다녔으며 제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킨 에시카의 눈빛에서는 예전의 불쾌한 진득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늘 갖고 싶어 하던 보석을 보던 눈이 아닌, 흔하고 가치 없는 돌멩이를 보는 듯한 무심한 눈동자 위를 햇살에 반짝이는 짙은 속눈썹이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