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41. 리오나의 분노 폭발(41/192)
#41. 리오나의 분노 폭발
2024.01.10.
에시카의 말에 칼리안은 잠시 흠칫했다.
지금 그의 시야에는 에시카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나날이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에시카가 말이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에시카는 칼리안의 뒤편을 보고 짙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공작의 뒤에 서 있는 리오나를 향한 것이었다.
리오나의 꼭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칼리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에시카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올려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에시카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 움직였다.
‘이 짓은 기분이 좋지 않지만, 리오나가 화병이 나는 모습은 꽤 짜릿해.’
에시카는 제 손등에 입을 맞추는 칼리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음에도 콧대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면 뭐 하는가.
쓰레기통이라는 말도 과분할 만큼 남편으로 부적합한 인간인데.
그래도 꾹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넘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리오나를 보는 것은 즐거웠다.
“…….”
손등 키스를 마친 칼리안은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절절한 눈빛의 그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드레스를 마저 골라야겠어요.”
그 말에 칼리안의 보랏빛 눈에 아쉬운 빛이 감돌았다.
오늘의 에시카는 외모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목소리도 아름다웠고, 미소 짓는 모습은 숨을 멎게 하는 것 같았다.
이전까지 에시카에 대한 생각을 부정했다면, 이 순간만큼은 제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싶소.”
칼리안은 그녀에게 나직이 말했다.
에시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요즘 살이 찐 것 같아서 당분간 저녁을 가볍게 하고 싶어요. 오늘은 그냥 어머님과 단둘이 드시는 게 어때요?”
에시카의 말에 리오나의 눈썹이 다시 파르르 떨렸다.
제 귀한 아드님에게 자신을, 대체재 취급하고 있으니 뚜껑이 열릴 지경일 것이다.
칼리안에게 1순위는 언제나 리오나 자신이어야 했다.
그것이 리오나가 에시카를 견제했던 가장 주된 이유였고 말이다.
“……설마, 그래서 전에 내 드레스 선물도 거절한 건가? 날씬한 몸은 현숙한 여인의 덕목이니…… 어쩔 수 없군.”
그러나 칼리안의 말은 정말이지 리오나의 속을 박박 긁고 있었다.
에시카, 저 천박하고 잡스러운 며느리 따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어머니인 저와 같이하게 되어 아쉽다는 듯한 말투라니.
칼리안의 반응은 리오나 자신이 칼리안의 1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칼리안은 한참 동안 짙은 눈으로 에시카를 보다가 리오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칼리안의 말에 리오나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은 짙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제 어머니를 배려심 많고 정숙한 여자로 보는 칼리안은 리오나의 속을 짐작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요. 공작, 저녁에 봅시다.”
칼리안이 나가고 리오나의 방은 적막에 휩싸였다.
방에 있는 모두가, 칼리안이 나가자마자 리오나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에시카는 태연한 미소를 입술에 띠고 리오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리오나는 에시카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피곤해졌어. 내가 아까 고른 것만 주문해 주게.”
리오나의 입술이 달싹이자, 그녀의 눈치를 보며 숍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부인.”
“저도 아까 고른 것만 주문해 주세요.”
리오나의 형형한 시선을 받으며 에시카도 또박또박 목소리를 냈다.
“알겠습니다. 부인.”
이내 에시카는 리오나에게 말했다.
“어머님께서 피곤하신 듯하니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그런 에시카의 뒤에,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퓨솔레체.”
욕설이라도 내뱉듯 조금 숨이 찬 거친 목소리였다.
에시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
에시카의 방, 먼지가 쌓인 사전 하나를 펼쳐 읽은 에시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오나 클라우스.
그녀의 본래 이름은 리오나 이자벨레아, 멸망한 작은 왕국 스미첸의 왕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을 잃은 왕족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귀한 피였다는 자존심 하나는 그녀의 삶 전체를 지탱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클라우스의 안주인이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돈으로 작위를 산 평민 가문 출신의 며느리는 수치였다.
“천박한 피라, 진부하네.”
에시카는 나른한 목소리로 사전을 덮었다.
라퓨솔레체는 지금은 사어가 되어 버린 스미첸의 말로, 뜻은 ‘천박한 피’였다.
“부인.”
에시카의 앞에는 한스가 서 있었다.
40대인 한스는 십 대 초반부터 클라우스에서 일했으니 리오나가 클라우스 부인이 되기 전부터 시작한 클라우스의 역사를 그대로 보았다.
“자네, 그거 아나?”
“예?”
“보통은 말이야. 남에게 욕을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어. 보통은 내게 가장 치명적이다고 생각하는 욕을 남에게도 하는 것이거든.”
“……그렇습니까?”
“내가 배움에 결핍이 있다면 이 무식한 놈, 하고 남에게 욕을 하고. 경제적인 압박이 있으면 거지 같은 놈이라는 욕이 먼저 나오지. 화가 잔뜩 났을 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제 치부라는 말이야.”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중원에서도 ‘거지새끼들’이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쓰는 자는 개방 방주 영감탱이였다.
머리를 한 번 빗으면 이가 서 말은 나오는 영감이었는데, 영령이 주막에서 거지 세 놈을 팼다고 방망이를 들고 자신을 찾아왔었지.
물론 영령은 거지새끼라는 말을 듣고 그 방망이를 뺏어 영감을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패 주었다.
에시카는 리오나의 이글거리는 눈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제 모국어로 천한 피라는 말을 했어. 그 느낌이 평소와는 매우 달라서…….”
에시카의 입술 끝이 씨익 올라갔다.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지.”
한스는 에시카의 미소를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로 이처럼 사악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조사해 보라는 말씀이시군요.”
“응, 철저히. 기록이란 기록은 다 뒤지고 증언도 받아 와.”
한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잠시 망설이던 그는 에시카에게 말했다.
“이제 저를 온전히 믿어 주시는 겁니까. 부인의 시험은 끝나셨는지요.”
조금 긴장한 듯한 한스의 질문에 에시카는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한스에게 말했다.
“합격을 축하하네. 한스.”
에시카의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난 듯한 강자의 여유가 그녀의 태도에 배어 있다.
“자네는 이제 내 사람이야.”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날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자네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
사악한 웃음기는 조금 섬뜩했지만 그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었다.
평범한 아랫사람은 이런 태도의 주인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다.
능력과 기개, 안목까지 그녀는 그가 모셨던 어느 주인 이상이었다.
**
쨍그랑-
유리잔이 하녀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벽에 부딪혔고, 요란스레 깨지는 소리가 났다.
조각조각이 난 유리잔은 파탄 난 그녀의 마음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하녀는 바들바들 떨 뿐 감히 리오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리오나가 짜증을 내는 모습을 항상 봐 왔지만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리오나의 눈동자에서 지독한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 천박한 에시카에게 빠져들 듯한 눈을 하고 속삭이는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에시카를 이 집안에 들인 후, 칼리안의 입에서 나오길 바라지 않던 말이었다.
“망할 계집…… 여우 같은 계집…….”
칼리안 클라우스가 누구인가. 어떤 마음으로 낳은 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클라우스 공작으로 만들기 위해 리오나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다.
악독한 수를 써서 본처와 그 자식들을 내쫓고야 모자는 이 클라우스 저택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시카, 그 계집애는 잘난 것도 없이 돈만 많은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면서 생글거리며 공작 부인의 자리에 올랐다.
잘나고 총명한 제 아들에 비해 너무도 뒤떨어지는 여자였다.
그런 아이를 며느리로, 그리고 칼리안의 짝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 사실 제국의 아무리 고귀한 여성이라도 칼리안의 옆에 서기에는 부족하다.
설령 대공가의 여식이라도 어찌 칼리안의 곁에 어울리겠는가.
그러니 에시카는 늘 칼리안과 자신, 그리고 클라우스에 감사해야 했다.
리오나가 뺨을 때리고 짓밟아도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하녀들과, 에시카의 본질적 위치가 다른 것이 뭐란 말인가.
시어머니인 제가 밟으면 밟혀서 울부짖기나 하면 되는 천한 여자일 뿐!
그런데 이제, 대 놓고 자신을 모욕하고 있었다.
어머님보다 아름답지 않냐고?
칼리안에게, 그리고 클라우스에게, 여왕은 오로지 하나뿐이어야만 했다.
여왕의 자리를 대 놓고 넘보는 하녀를 참아 주기에는 리오나의 인내심이 끝이 났다.
“건방진 것, 지옥에 떨어질 년.”
리오나의 눈동자가 서늘한 살기로 빛나고 있었다.
으득- 하고 그녀는 이를 갈았다.
“너를 꼭 내쫓고야 말겠다. 이혼시킬 수 없으면 죽여서라도.”